201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 강대선
구릉 / 강대선
아가미를 버들가지에 꿰인 메기가 탁자에 앉아 있다
딸려온 물빛이 거무스름하다
물내가 전부였을 것 같은 저 입으로
뻐끔거리는 허공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고향을 바라보려는 듯 눈을 부라린다 수염은 그가 한 마을의 유지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구릉이 실은 고분이었다는 구깃구깃한 신문기사가 메기 앞에 놓인다
고분에는 왕이었을 어쩌면 한 고을의 유지였을 사람의 뼈와 금으로 된 장신구가 신발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신발이 수염이었을까
구릉 속으로 유영을 하는 메기가 버들가지를 빠져 나온다
한 때는 잘 나갔던 기억으로 살아온 주인장이 하품을 한다 눈물이 찔끔거리는 메기가 끓는 탕 속으로 몸을 던진다 구릉은 왠지 메기의 잘 나가던 한 때처럼 쓸쓸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신발처럼 남겨진 버들가지를 허공으로 보내준다
한 번은 어디론가 훨훨 날아보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遺志였다
[당선소감] “시가 내게 자유를 줬지만 어깨는 무거워졌다”
원고를 보내지 못하고 며칠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바라봄의 시간 동안 문득 시들이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안에만 가둬 둔 것이었을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다시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시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날아간 시는 당선 소식을 물고 돌아왔습니다. 날개가 가벼워졌습니다. 내가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쓴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조금 더 가벼워져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가 저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당선의 기쁨을 주신 심사위원님과 광주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시와 함께 한 시간은 매 시간이 고통스럽지만 기쁨이었습니다. 허형만 은사님과 정윤천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시의 열정으로 가득한 지송시회, 시빚기반 식구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한 시간들 속에서 제 시는 태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 기쁨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나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깨가 이전보다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이야기를 시에 담고 싶습니다. 제 시가 추운 세상을 데워주는 따뜻한 구들장이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언어·수사 과잉시대, 오랜만에 만난 여백의 감각
시는 뜻과 이미지에 기대면서도 뜻과 이미지를 넘어서는 시적 울림이 있어야 한다.
뜻과 이미지가 건축물이라면 울림은 건축을 있게 하는 여백의 공간이다.
대상과 현실을 해석하면서도 여백을 품고 있는 언어는 지금 여기의 시를 두근거리는 미지의 상태로 있게 한다.
재래의 서정시들로부터 아슬아슬한 언어실험, 현실에 대한 핍진한 묘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개성의 향연을 뒤로 예심을 통과한 20여편의 작품 중 최종적으로
‘표준형 인간’과 ‘우리들의 시간은 없고’, ‘구릉’이 남았다.
먼저 ‘표준형 인간’은 생활 세계의 구체적 현장에서 세계의 그늘을 탐색하는 아이러니한 어조가 인상적이었으나 ‘나는 복제물이 많다’ 같은 기시감 있는 문장들과 덜컹거리는 호흡이 다소 아쉬웠다.
‘우리들의 시간은 없고’는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탄력있는 이미지 운용, 세계의 그늘과
존재의 그늘을 씨줄과 날줄로 조직하는 날렵한 구성력이 돋보였다.
동봉한 시편들 또한 평균 이상의 고른 수준으로 안정감이 있었으나 문제는 그 안정감이
예측 가능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구릉’은 신선한 이미지가 일품이다.
일상 공간의 대상들을 재구성함으로써 낯설게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도약
또한 감탄스러운 데가 있다.
고고학적 상상력을 인유하는 방식에 있어 기운 흔적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겠으나
예상치 못한 가족서사와의 결합을 통해 절제된 방식으로 갈무리한 결구는 불만을 잊게 하는 긴 여운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시적공간 내에 머물던 파문이 시적공간 밖으로 퍼져나간다.
언어와 수사가 과잉된 시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여백의 감각이 아닌가.
심사위원 손택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