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됐었는데 일본 샐러리맨들을 대상으로 한 짧은 시조(센류)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시조가 있었다. "프러포즈, 그 날로 돌아가 거절하고 싶다."이다.
어째 대상이 뿐이겠는가. 세상의 상이란 상은 죄다 주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시조다. 사실 무르고 싶은 것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그렇지만 백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의 제목이 '1Q84'이든데 처음엔 IQ가 84밖에 안 되는 사람의 얘기를 적었나 했더랬다. 근데 하필 84냐구 하고 의문을 가졌다. 나중에 소설을 좀 더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1984년에서 '9' 대신에 'Question'을 썼다는 것으로 그 때가 잘 기억나지 않아 의문으로 처리를 했다는 것인데 작중 등장인물이 이때에 Parallel World의 세계로 간다, 뭐 이런 내용이다. 이쯤 읽었는데 아직 끝까지 못 읽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으나, 끝까지 읽어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1984 근처의 사건들을 깨끗이 무르고 말았다.
무르고 싶다. 아! 무를게 한 둘이 아니어서 무를 거 끼리 싸우다가 보면 제대로 하나도 무르지 못하고 허탈한 꼴에 다다르겠으나 어찌됐건 죄다 다 무르고 싶다. 어째 하나도 무르지 않고 싶은 것이 이렇게도 없는 걸까. 너는 어떠니?
무를게 많은 것 중에,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말했는데 사실 나도 그 해 '1984'년을 무르고 싶다. 짧은 군 생활을 끝내고 여기 오게 된 것이다. 왜 그 때 이곳을 오게 된 것인지. 그 때부터 세상이 마구 꼬였었다. 모든 것이다. 돈, 여자, 가정, 직장, 친구간의 우정, 음악의 이해, 인류학자적인 양심, 불륜 등등. 하루키랑 나랑은 약간의 나이 차가 있다만 그와 나는 1984를 공유하는 것 같았다.

1984년이 내게 없어져야 한다. 재빨리 그 해를 없애면 지금 내 평행 세계의 다중 세계중 하나에 얹혀살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뭔가 하고 있을 것 같다. 아귀다툼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꽥꽥거리지는 않을 거고. 이마와 광대뼈 골짜기도 훨씬 덜 주름 잡혔을 테고, 사랑을 진짜 좀 알고 사랑을 하고 담배와 커피를 끊지 않고도 잘 살게 됐을 거라.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가정도 역시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 보담은 괴롭겠니.
사실을 말하자면 많이 창피한 일이지만, 그건 젊은 나이 때 흔한 일이지만, 이성에 꼬였다는 말인데, 1984 연초, 그 때 여기서 있을 건지 저기로 갈 건지를 결정을 했어야 했다. 거기를 간다고 생각하니까 그가 무서웠다. 여기로 올 것으로 생각하니까 아무 제약도 없는 듯 했다. 그래서 여기로 왔는데 결과는 여기가 단테가 그리는 신곡의 지옥이었다는 것 아니니. 더 무서운 그대를 만나고........ 그래서 이 꼬라지로 됐다. 좋은 면? 개똥이다 라고 말해야 옳다.
이번 명절날 여럿이 모였더랬었는데, 여럿이 모일 수 있다는 것도 괜찮은 일에 속하기는 하다, 그 때 형님이 술에 취해 말씀하셨다. '너는 똥이다!' 한 번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술을 계속 드시면서 수십 번을 얘기했을 것이다. 내 평생에 그날만큼 똥에 깊이 적셔 본적이 없다. 내가 왜 똥이 되어야 하는 가. 당위성이 있을까. 근데 사실 다들 속에다 똥을 갖고 있지 않나. 똥을 가지고 있으니 똥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고.
인생이 아무리 똥 같다고 그래도 모든 것이 다 무르고 싶은 것은 너무 했다. 그렇다면 아예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죽고 싶지는 않고 무르고 싶지 않은 것이 뭐 있을까 세세히 살펴봤다. 워낙 기억하고 싶은 것 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좋은 것조차도 덤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리라. 이러다 보니까 내 똥 같은 인생이 그냥 세상을 염쇄적으로 살피는 것이 돼버렸다. 쾌락의 요소는 아예 밟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예방접종을 좋아할 이유가 없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죽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과연. 생각해 보니까 오늘, 이 오늘부터라도 무르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이 진짜 내 생애에서 긴요하고, 긴요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거쳐야할 날이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되는 것이지 않을까 다짐해 본다. 내 주위의 떨거지들 때문에 이런 다짐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심히 걱정이다 만 그래 그 걱정도 남 탓이나 하는 것이니까 올바른 것이 되지 않는다.
평행세계 저쪽에서 탱자탱자하며 잘 사는 내가 또 존재한다고 해도, 녀석이 보기엔 내가 똥같이 보여도 하나도 꿀리지 않고 잘 살거다. 어제는 잠을 잘 잤다는 말이다.
첫댓글 ㅎㅎ 오늘도 잠 잘~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