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위락, 사리 등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가 고구려 땅에 설치한 주를 표현한 것으로, 나름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베리아쪽 지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북한 최고의 고구려 전문가인 손영종 선생의 [고구려사]에 실린 지도인데, 당시 무슨 교통로가 발전해서 그 지역까지 고구려가 영토로 삼으려고 노력했겠습니까? 영토라고 한다면, 단순한 세력권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북쪽에 사는 부족민들이 고구려와 교역을 하고, 고구려를 큰 나라로 알고 찾아왔다고 해서, 그 지역이 고구려영토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지도상의 영토를 왜곡하는 중국의 엉터리 역사인식을 비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용만선생님, 연해주북단과 흑룡강일대에서 고구려성곽, 온돌장치, 토기, 화살촉 등 유물 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여국을 건립한 동명의 원고향인 북이탁리국의 중심지가 흑룡강 부유현 일대라는 주장도 보았고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화권과 세력권,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그려진 지도가 아닐런지요?
하북성 요동이 요나라 이후 요령성 요동으로 지명이동된 것을 알지 못하면 저런 지도밖에 나올 수 없겠지요. 통전의 고구려 강역 동서 6,000리에 대하여 서쪽으로 대흥안령산맥을 넘을 수 없으니 동쪽으로 사할린 섬까지 넣어서 동서6,000리를 만들어 놓은듯 합니다. 고구려시대 요동은 하북성입니다. 고구려의 전성기시 서쪽 강역이 태행산맥을 훨씬 넘어갑니다.
엉터리군요. <한서/지리지>부터 <당서/지리지>까지 모든 정사 지리지에 기록된 지역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영역입니다.
1963 년 북조선 평양에서 간행된 <고조선에 관한 토론 논문집>에 실린 림건상의 `고조선의 위치에 대한 고찰`에서 림건상은 `란하와 요하 강 사이에 있는 요서의 일부도 고조선에 속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알려진 한의 낙랑군이 이 지역에 있엇다고 주장했다.`고 <고조선> 유엠뿌진 저 이항재 옮김, 머리말 5 쪽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북한 학자 중에서는 가장 정확한 지적이며 1960 년 리지린도 고대의 요동이나 패수를 지금의 란하 부근이나 대릉하로 비정했나 봅니다.
첫댓글 위락, 사리 등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가 고구려 땅에 설치한 주를 표현한 것으로, 나름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베리아쪽 지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북한 최고의 고구려 전문가인 손영종 선생의 [고구려사]에 실린 지도인데, 당시 무슨 교통로가 발전해서 그 지역까지 고구려가 영토로 삼으려고 노력했겠습니까? 영토라고 한다면, 단순한 세력권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북쪽에 사는 부족민들이 고구려와 교역을 하고, 고구려를 큰 나라로 알고 찾아왔다고 해서, 그 지역이 고구려영토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지도상의 영토를 왜곡하는 중국의 엉터리 역사인식을 비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용만선생님, 연해주북단과 흑룡강일대에서 고구려성곽, 온돌장치, 토기, 화살촉 등 유물 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여국을 건립한 동명의 원고향인 북이탁리국의 중심지가 흑룡강 부유현 일대라는 주장도 보았고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화권과 세력권,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그려진 지도가 아닐런지요?
하북성 요동이 요나라 이후 요령성 요동으로 지명이동된 것을 알지 못하면 저런 지도밖에 나올 수 없겠지요. 통전의 고구려 강역 동서 6,000리에 대하여 서쪽으로 대흥안령산맥을 넘을 수 없으니 동쪽으로 사할린 섬까지 넣어서 동서6,000리를 만들어 놓은듯 합니다. 고구려시대 요동은 하북성입니다. 고구려의 전성기시 서쪽 강역이 태행산맥을 훨씬 넘어갑니다.
엉터리군요.
<한서/지리지>부터 <당서/지리지>까지 모든 정사 지리지에 기록된 지역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영역입니다.
1963 년 북조선 평양에서 간행된 <고조선에 관한 토론 논문집>에 실린 림건상의 `고조선의 위치에 대한 고찰`에서 림건상은 `란하와 요하 강 사이에 있는 요서의 일부도 고조선에 속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알려진 한의 낙랑군이 이 지역에 있엇다고 주장했다.`고 <고조선> 유엠뿌진 저 이항재 옮김, 머리말 5 쪽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북한 학자 중에서는 가장 정확한 지적이며 1960 년 리지린도 고대의 요동이나 패수를 지금의 란하 부근이나 대릉하로 비정했나 봅니다.
1970 년 대에 들어서부터 점차 저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요동을 지금의 요동으로 비정하기 시작합니다. 역사란 학문이 정치에 예속되는 과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