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3r4EgwLqMM?si=joNSH5ihfgmOWKrH
Arthur Rubinstein - Chopin -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Op 21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hur Rubinstein, 1887~1982
폴란드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약한 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폴란드에서 태어났고, 6살 때 연주회에 출연해 '신동'이라는 평을 받았다. 11살에 베를린에서 데뷔, 당시 막스 부르흐에게 '천재'라는 평을 받았으나, 정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자신의 위치를 쌓은 연주자. 만년에는 파리에 거처를 정하고 유럽 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약하다가 95세로 타계했다. 특히 로맨틱한 연주가 장기이고 쇼팽, 차이코프스키, 브람스의 음악에 정평이 나 있다.
루빈스타인 Rubinstein, Anton Grigoryevich 1829~94
러시아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작곡가.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독일계 유대인이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워 피아노의 신동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1840~43년 유럽 각지를 순회 연주했으며, 1844~46년에는 동생 니콜라이와 함께 베를린에서 데인에게 작곡을 배웠다. 유럽에서 리스트와 더불어 19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하였다. 그는 리스트에게 배운 일도 있으며, 거인적 성격과 열광적 정열로써 청중을 압도하였다. 주로 독일 낭만파 풍의 작품을 썼는데, 지금은 피아노 소품 〈천사의 꿈〉 등만이 남아 있다. 1862년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음악원을 설립, 음악교육에 힘썼다.
작곡가로서는 서구음악 전통에 바탕을 둔 러시아 음악의 창조를 제창하여 국민악파와 대립했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삼중주곡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은 그를 추도하는 작품이다.
빌헬름 캠프 Wilhelm Kempff, 1895~1991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교회 오르가니스트 집안에서 태어나 오르간 연주, 작곡 등을 배웠다. 1910년대 후반부터 연주 활동에 들어가 1918년 베를린 필과 협연한 바 있고, 이후 유럽 각지로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독일 고전파와 낭만파 음악을 주 레퍼토리로 하고 있으며 베토벤의 훌륭한 해석자로 정평이 나 있다.
작곡 분야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오페라, 발레, 교향곡, 피아노곡, 오르간곡 등 다방면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특히 베토벤과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은 대표적인 본보기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클라우디오 아라우 Claudio Arrau, 1903~1991
남미 칠레 태생으로 7살 때 칠레 정부의 장학금으로 베를린에 유학, 리스트 만년의 제자 크라우제에게 사사했다. 이후 유럽에서 명성을 높여 2차 세계대전 이후 남미가 배출한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특히 바흐의 건반 음악 전곡 독주회를 갖던 중 바흐이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데 의문을 품어 이후 자신의 연주회에서 바흐를 제외시킨 유명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베토벤에 특히 심취했고 쇼팽, 리스트, 슈만, 브람스 등이 더 뛰어난 연주를 남겼다.
클라라 하스킬 Clara Harkil, 1895~1960
루마니아 출신의 여류 피아니스트. 특히 고도의 장애를 딛고 일어선연주자로 유명하다. 부카레스트에서 태어나 7살 때 데뷔하여 코르토와 포레에게 사사했고, 파리 음악원을 14살에 수석으로 졸업한 바 있는 유례 없는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다. 이자이 연주의 반주자로서 이름을 떨쳤으나 독주자로서의 명성도 점점 높아졌다. 특히 고정파와 낭만파 음악의 연주에 탁월햇고 모차르트에 있어선 일인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orowitz, 1904~1989
'20세기의 리스트'로 불리는 명 피아니스트.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키예프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22년에 데뷔하여 2년 뒤에 베를린 연주를 통해 호평을 받으며 세계 부대에 알려졌고, 이후 유럽 각지를 돌며 순회 연주회를 가졌다.
특히 런던에서의 연주는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28년 토스카니니의 딸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옮겨가 그곳에 정착했다. 한때연주를 중단하기도 했으나 65년 카네기 홀에서 재기 연주회를 가지며 다시금 세계 무대의 명 피아니스트로 등극했다.
만년에 모국인 러시아로 돌아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가진 음악회가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 때문에 해외 연주시 반드시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항공기로 실어가 연주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역동적인 힘과 풍부한 음색, 그리고 면밀함으로 '최후의 낭만파 피아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프레드 브란델 Alfred Brendel, 1931~
현대 피아노의 상징과 같은 존재. 체코의 비젠베르크에서 태어났고, 유고의 자그레브,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등지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16살 때부터는 빈에 거주하면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했다. 특히 에드윈 피셔의 영향을 크게 받아 화려하게 어필하기보다는 구심적이라고 할 만한 작품에의 추구를 보여주고 있으며 지적인 해석으로 유명하다.
하이든에서 쇤베르크, 베베른에 이르는 이른바 빈 파의 작품을 장기로 한다.
이론가로서도 널리 알려져 강연, 집필, 악보의 교정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니지 Vladimir Arhkenazy, 1937~
구 소련 출신의 유태계 피아니스트 및 지휘자. 볼가 강변 고리키에서 태어나 6살에 피아노를 시작,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던 55년 쇼팽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한 데 이어 56년에는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56년에는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획득했다. 이를 계기로 서방 세계에 나아가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89년에는 고국으로 돌아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공연해 큰 환영을 받았고, 인기나 실력 면에서 폴리니 및 아르헤리치 등과 함께 현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고 있다.
풍부하고도 화려한 색채감과 서정성 넘치는 표현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70년부터는 지휘 활동도 병행하여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의 작품은 연주와 지휘를 겸하는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Marta Argerich, 1941~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
14살 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럽으로 건너가 굴다, 미켈란젤리 등에게 사사했다. 57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 주네브 국제 콩쿠르 등에서 우승한 바 있고, 이후 쇼팽 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풍부한 음악성과 날카로우면서도 강인한 연주 기교를 겸비한 천부적인 피아니스트로서 실제 생활에서도 정열적이고 자유분방하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현악기 주자들과의 실내악 연주, 혹은 남성 피아니스트와의 듀오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로스트로포비치, 마이스키, 비숍 등이 그녀와 함께 즐겨 연주하는 음악가들이다.
이보 포고렐리치 Ivo Pagoreich, 1958~
유고 출신의 피아니스트.
80년 쇼팽 콩쿠르에서 3차 예선에 올랐으나 본선에서 탈락해 심사 결과에 항의한 아르헤리치가 심사위원직을 사임한 것으로 일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주인공이다.
7살 때부터 음악가인 부모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웠고, 11살 때 베오그라드를 방문한 티마킨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러시아에 유학했다. 78년부터는 리스트 음악원에서 케제라제에게 사사하며 급격하게 도약했다. 78년 알렉산드로 카사그란데 국제 피아노 콩쿠르와 80년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하며 신성으로 등극해 현재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https://youtu.be/Ixq-AEkxM54?si=LOHDivnAiUxbR0xD
Ivo Pogorelich -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live 1988)
글쓴이 : 베토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