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일백열다섯 번째
반갑고 기쁘고 고맙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시인 공초 구상具常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인사말입니다. 그는 어디에서든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인사했답니다. 지난주 친구의 병문안을 갔을 때 한 친구가 대뜸 그랬습니다. “야! 너 왜 여기 누워 있어?” 병문안을 왔으면서 왜 누워 있느냐는 그 친구의 말이 내게는 처절한 외침으로 들렸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직 누워 있을 때가 아니라 꽃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때인데 왜 누워 있느냐고,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누워 있는 친구 앞에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꽃자리에 서 있는데 너는 왜 누워 있느냐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조차 “오랜만이야” 그러면서 악수하면 끝이었습니다. 나 역시 그랬고, 내게 잘해주는 친구에게만 악수하는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누워 있는 친구가 우리에게 그리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듣지 못했지만, 그 친구는 ‘누워 있어 미안해, 찾아줘서 고맙고 반갑다’라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의 얼굴이 그리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린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늘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반갑고 기쁘고 고맙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지금 있는 자리가 꽃자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가톨릭 신자여서 진즉에 그걸 알았나 봅니다. 평소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대했는가에 따라 평생 내 곁에 있을 사람이 결정됩니다. 반갑고 기쁘고 고마운 사람이 내 곁에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리하기가 왠지 쑥스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