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어머님은 딸부부와 함께 방을 쓰는게 전혀 어렵지 않으셨나봅니다 아니 항상 함께 있고 싶어하신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쁨을 오래누리지 못하시고 어머니의 방으로 떠나셨네요 베리나무님 부부 두분다 어머님이 불편하지 않게 잘해드린것 같습니다 저는 영월에서 신혼을 시작했는데 창밖의 동강이 보이는 영월의 풍경을 좋아 하셨던 어머니는 자주 오시고 싶어하셨고 몸이약한 아내는 어머니가 오시기 며칠전부터 끙끙 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혼한지 5년도 안되어 어머니는 다시는 못오실 길을 떠나셨지요 지금 아내는 어머니는 정말 좋으신 분이셨으며 그때 너무 철이 없었다고 후회합니다
베리꽃님의 존경스러운 어머님, 산골 외딴 집에서 귀한 무남독녀를 이렇게 잘 길러내셨지요. 교회에서 밤샘 기도에 새벽 예배까지 마친 후 주무시다 영면에 드셨으니 하나님이 팔 벌려 맞아주신 그 품 속에서 포근한 안식을 누리고 계실 거예요. 어머니가 그리워 글을 쓰셨군요. 저는 저랑 평생을 함께 사시던 엄마가 4년 전 돌아가신 뒤, 죄스럽게도 아주 빠르게 엄마를 잊고, 그리워진 적도 거의 없어요ㅠㅠ 엄마와 남편이 성격이 서로 맞질 않아서 서로 참으며 살아온 세월이라서 제가 마음 고생이 컸어요.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 문상 오셔서 눈물로 저를 위로해주셨던 베리님, 이 글을 읽으며 저도 모처럼 아픈 가슴으로 엄마를 떠올립니다.
첫댓글 어머님은 딸부부와 함께 방을 쓰는게 전혀 어렵지 않으셨나봅니다
아니 항상 함께 있고 싶어하신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쁨을 오래누리지 못하시고 어머니의 방으로 떠나셨네요
베리나무님 부부 두분다 어머님이 불편하지 않게 잘해드린것 같습니다
저는 영월에서 신혼을 시작했는데 창밖의 동강이 보이는 영월의 풍경을 좋아 하셨던
어머니는 자주 오시고 싶어하셨고 몸이약한 아내는 어머니가 오시기 며칠전부터 끙끙 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혼한지 5년도 안되어 어머니는 다시는 못오실 길을 떠나셨지요
지금 아내는 어머니는 정말 좋으신 분이셨으며 그때 너무 철이 없었다고 후회합니다
영월이면 제가 귀농해있는 청풍과 가까운 곳이군요.
바람쐬러 자주 영월에 가곤 하지요.
그곳에서 신혼생활을 하셨군요.
친정엄마에 비해 시어머니는 어렵지요.
저는 아마 시어머니였으면 한방을 못 썼을거에요.
지금에사 생각해 보니
남편이 참 고마웠네요.
홍시가 열릴때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는
나훈아 노래의 주인공이 베리꽃님네?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 한다는것은 옛말이고
요즘은 장모님(장서갈등)때문에 이혼한다는데
이렇게 귀한 인연도 있군요.
요즘 같았으면 인간극장 방영감인데....
인간극장깜 맞겠어요.
장모님 돌아가실 때 까지 한방을 쓰는 사위가 어디 있겠어요.
그땐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당연한 것처럼 여겼네요.
딸네 가족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셨던 어머니..
아..어머니..하고
가만 불러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ㅠ
찬바람부는 겨울의 길목에서
떠나신 어머니는 하늘나라의 따스한방에서 편히 쉬시고 계시리라...
딸내외방에서 눈치보며 지내셨을 엄마는 지금쯤 보일러가 빵빵한 따스한 하늘나라 방에서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엄마독립시킬 궁리만 하다가 영원히 독립해버리셨으니
암만 세월이 가도 가슴을 치게 되는군요.
그러게요.
오죽 하셨으면 한 방에서 지내셨을까요.
아마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계실꺼에요.
우리 모두의 자화상 입니다.
그 당시에는 독립이 숙제인 듯 했는데
지금은 하루 단 한번만이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이뤄지지 못하는 바램이 무슨 소용일까요.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뼈에 사무칩니다.
사위가 그 만큼 미덥고 아들 못지않게 여기셨으니 한 방에계셨다 여깁니다
사위도 딸도 엄마도 다 정이 깊은 식구였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 이 글에 다 담지 않은 듯 합니다 마음이 그렇네요..
지금도 엄마가 이해되니
저는 역시 엄마의 딸인가봅니다.
그래도 저는 제 딸에게
안 그랬을 것같긴 합니다.
시집은 일단 잘간거라고 생각함 ㅎㅎ
거기다 나이들어 홀로 꿀벌이장한다고 산속으로 들어가고 ㅎㅎ
연합군을 독립군만든
꿀이장 나빠요.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희 이웃사촌이셨던 것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 이유들이 다분했겠지요.
이제 세월흐르고 나니
불편했던 지난 날이
오히려 뼈져린 그리움으로만 남는군요.
가을은 엄마의 계절이라고 늘 제목붙이는 이유가
그런 것이겠지요.
엄니 가신 계절이되니
더욱 새록새록 엄니 향한 사무친 그리움이네요
역시 내남자가 세상 최고지요
무남독녀 딸을 반려자로 만났다고
장모님 모시기도 지극하셨으니요
너무 가슴시리지 마셔요
엄마가 원하지 않으실거자나요
저는 내일 대구로
이거 자랑이 아니고
걱정을 안았답니다
엄니가 곁에 계신 정아님이 늘 부럽습니다.
저는 엄마가신 지 작은딸나이만큼의 세월이 흘렀네요.
잘 모실 생각보다 방에서 내보낼 궁리만 했으니 이런 불효가 어디 있을까요.
암만 세월이 흘러도
눈물의 양은 같네요.
아쉬움
또 아쉬움
저의 고향 가까이 다녀오셨는데
다음주에 가시지~~ㅠ
안동을 다녀오면서
이젤님 생각이 났었네요.
의성이라는 이정표도 보이고.
장사장님께서 이젤님 아버님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역시 최고의 아버지셨어요.
그리운 어머님........
오늘따라 어머님이
너무 많이 보고 싶어집니다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겠지요
어머님에 대한 감동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아마도 산사나이님 어머님도 하늘나라 젤 좋은 방에서 편안히 지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도 훗날 그 옆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겠지요.
베리꽃님의 존경스러운 어머님,
산골 외딴 집에서 귀한 무남독녀를 이렇게 잘 길러내셨지요.
교회에서 밤샘 기도에 새벽 예배까지 마친 후 주무시다 영면에 드셨으니
하나님이 팔 벌려 맞아주신 그 품 속에서 포근한 안식을 누리고 계실 거예요.
어머니가 그리워 글을 쓰셨군요.
저는 저랑 평생을 함께 사시던 엄마가 4년 전 돌아가신 뒤, 죄스럽게도 아주 빠르게 엄마를 잊고, 그리워진 적도 거의 없어요ㅠㅠ
엄마와 남편이 성격이 서로 맞질 않아서 서로 참으며 살아온 세월이라서 제가 마음 고생이 컸어요.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 문상 오셔서 눈물로 저를 위로해주셨던 베리님,
이 글을 읽으며 저도 모처럼 아픈 가슴으로 엄마를 떠올립니다.
달항아리님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마치 제 엄마같은 느낌과 감정이 생기더군요.
환경도 비슷하고 모습도 인자하시던
그 어머니.
지금도 많이 많이 그리우시지요?
엄마는 사랑을 손수 실천하신
참 신앙인이셨네요
사위와 딸이 사랑하는
그 모습까지도 사랑하신....
사위는 이제서야
장모님의 하해와 같은 사랑을
감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베리와 신랑은 기술도 좋아요
그 엄중한 상황에서
큰딸을 가히 잉태하셨으니
기네스북 감인
고난도 기술을 칭찬합니다
고난도 기술을 눈치채셨군요.
이제는 멍석을 깔아줘도 그 기술을 발휘못하게 되었네요.
세월이 여러가지를 변화시켰나봐요.
얼미나 배려해 드렸으면~~
지금 시대에는
정말 영화같은 이야기지요
시모님 오시면
안방에서 아들과 주무시라고
나는 비켜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친정엄마올때는 그냥 엄마 혼자
옆방서 주무시고~~
그 시절 저희 엄마는
절대자였어요.
엄마가 원하시는 일엔
변명이 필요없었지요.
그렇게 무서웠던 엄마였지만 세상에서
젤 보고픈 사람이
또 엄마네요.
3년동안 그리그리 고대하시다가 제대한지 한달만에 소천하신 우리 엄마
베리님 덕분에 인자하신 엄마를 새삼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새 우리엄니 나이가 되다보니
더욱더 보고 싶습니다
엄마!!!엄니
참으로 안타까우셨겠어요.
어머니가 아들 제대 한 달 남겨놓고
하늘나라로 가셨군요.
살다보면 슬픈 일이 참 많아요.
그래도 힘내어 살아야지요.
역시 문재입니다.
그런데 안동 의성은 내 나와바리인데,
베리나 이젤님이나 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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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을 읽어 매우 흡족하도다.
만백성이 즐겨 읽을 것이로다.
거서리님 서울 나와바리인 이태원에
케밥먹으러 가고 싶네요.
요즘은 제천 예천 안동을 못 벗어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