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연찬
● 배우려는 마음 그 자체가 승리의 신행(信行)
불법(佛法)을 배우려는 구도심 그 자체가 승리의 신행이라고 해도 좋다.
모두가 '행복과 평화의 박사'이고, '인간주의의 철학박사'이다.
▶ (수필《신ㆍ인간혁명》2003년 8월 1일, 전집 제134권)
● '유사시에 강한 사람'이 된다
'어서'는 '신심의 중추'이고, 그러므로 확고부동한 '인격의 중추'가 된다.
그리고 '언론전(言論戰)'의 기둥이다. 만인행복의 길을 여는 '희망의 경전'
이고, '용기와 지혜의 원천'이다. 교학이야말로 위험천만한 인생의 거친
바다를 건너기 위한 나침반인 대철학이다. 교학이 강해지면 신심은 더욱
강해진다. 반대로 강인한 '중추'가 없으면, 유사시에 약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학회탄압으로 투옥된 간부는 차례로 퇴전했다.
도다 선생님은 "결국, 교학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격분하셨다.
연조(蓮祖)가 "어리석은 자의 버릇이란 약속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
느니라." (어서 234쪽)라고 질타하신 모습 그대로였다.
이 "필요한 때"에 강한 사람은 예외 없이 '어서'를 생명에 새긴 사람이다.
▶ (수필 '인간세기의 빛' 2005년 10월 13일, 전집 제137권)
● 무한한 용기, 최고의 힘을 발휘
'광포추진의 원동력을 위한 교학'이다.
'어서'에는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의 정의(正義)가,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절복ㆍ홍교의 길이 나타나 있다. 또 광선유포의 투쟁을 전개하는 자세도,
불법지도자(佛法指導者)의 모습도, 인재육성의 요체도 남김없이 나타나
있다. '어서'를 배우면 대성인의 정신도 느끼게 된다. 어본불에게서
광선유포의 지남(指南)을 받들고, 최대의 격려도 받게 된다.
이 '어서'의 말씀대로 행동해야 비로소 교학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실천교학'이 없이는 진정한 불법연찬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실천교학이 있어야 무한한 용기가 솟아오르고, 최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수필《신ㆍ인간혁명》1998년 8월 19일, 전집 제129권)
● 인생의 막힘이 없어진다
도다 선생님은 "불가사의하게도 '어서'를 배독하면 다른 책들을 훨씬 수월
하게 읽을 수 있다. 생활에서도 명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막힘이 없다."고 확신하셨다. 모두 은사가 말씀하신 대로이다.
불법(佛法)은 절대승리의 인생을 쟁취하는 법리다. 숙명전환(宿命轉換),
변독위약(變毒爲藥)의 종교이다. 인간혁명(人間革命)이라는 희망의 철학이다.
▶ (수필 '인간세기의 빛' 2007년 10월 19일, 전집 제138권)
● 지쳤을 때 '희망'과 '용기'가 된다
우리에게는 '어서'가 있습니다. 이만큼 강한 것은 없습니다.
"법화경보다 뛰어난 병법은 없다."입니다. 한쪽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좋습니다. 대성인의 정신을 끝까지 구도해야 합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혔을 때야말로 '어서'를 펴라."
"피곤할 때야말로 '어서'를 심간에 물들여라."
'어서'를 펴면 '희망'도, '용기'도, '지혜'도 얼마든지 솟아납니다.
절대적 확신이 생깁니다. 결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습니다.
▶ (《어서와 청년》)
● 한 줄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한 줄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좋다. 나날의 생활과 광포의 투쟁 속에서
'어서'를 배독해야 한다. '어서'를 '알자,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진지하면 모공으로도 흡수된다.
도다 선생님은 한줄 한줄 '어서'를 배독하면서 '그대로입니다. 그야말로
그대로입니다.'라고 깊이 배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신심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스스로 몸으로 부딪혀서 '아, 이런 말씀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
▶ (《승리의 인간학》)
● 실천해야 한다
"신심 없이 교학만을 내세우며 자랑하는 사람은 증상만(增上慢)입니다.
마지막에는 불법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논리만을 생각하고 신심 없는 자는 구관조나 앵무새와 마찬가지'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어서'의 한 구절이라도 좋으니까
철저하게 실천하여 몸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대성인의 가르침을
끝까지 전부 읽은 것에 통하기 때문입니다."
▶ (소설《신ㆍ인간혁명》제6권 '가속')
● 지엽적인 토론으로 흐르면 안 된다
교학을 배울 때는 '핵심'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도다 선생님은 '요점을 잊고 지엽적인 토론으로 흐르는 교학'을 훈계하시고,
시조깅고를 예로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확한 교학을 제대로 익혀라.
나카쓰카사 사부로 자에몬노조가 한 사람이었는지, 두 사람이었는지는
이 도다에게 아무 상관 없다. 내 교학은 '시조깅고가 어떤 신심을 했고,
대성인은 신심을 어떻게 가르치시고 투쟁하셨는가.'라는 투쟁의 교학이다."
선생님의 교학은 어디까지나 '실천교학'이었다.
'사제(師弟)의 교학'이고, '광선유포의 교학'이었다.
▶ (전국 최고협의회, 2006년 8월 5일)
● 최고로 가치 있는 인생을 보내기 위해
미국의 벗은 "신입회원이 교학시험을 치르기까지가 절복이다."라고 서로
말한다고 한다. 기쁜 일이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가.
인간의 빛은 그로써 결정된다. 여러분은 최고의 법을 수지하고 있다.
재보나 지위가 있는 것도 좋으리라. 하지만 그뿐만으로는 영원성이 없다.
삼세의 생명에서 보았을 때, 가장 큰 약진의 원천인 묘법(妙法)을 여러분은
수지하고 있다. 불법(佛法)은 '생명 그 자체가 최고의 보배'라고 가르친다.
▶ ('오늘도 광포로', 2013년 11월 15일)
● 끝까지 배우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힘이
'설마가 실현'이 된 저 오사카투쟁 ㅡ.
우리는 가장 먼저 이 '어서'를 배독했다.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여러분을 법화경 십나찰(十羅刹)이여, 도우십사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
느니라." (어서 1132쪽) 모두 이 금언을 생명에 깊이 새기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대확신의 기원과 강성한 신심으로 출발했다.(중략)
1956년에 실시한 교학시험도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니었다.
행복승리를 위한 시험이었다.
일기당천의 투사를 단련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대성인은 법화경의 문자에 대해 "육안(肉眼)인 자(者)는 문자라고 보며,
이승(二乘)은 허공이라고 보며, 보살은 무량의 법문(法門)이라고 본다.
부처는 일일(ㅡㅡ)의 문자를 금색의 석존이라고 보실 것이니 즉지불신
(卽持佛身)이란 이것이니라." (어서 1025쪽)라고 가르치셨다.
'같은 성훈'이라도 배독하는 경애와 일념의 작용으로 깊이가 달라진다.
'어서 근본으로 투쟁하자!' ㅡ 이렇게 정하고 끝까지 배우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힘이 용현한다.
▶ (수필 '대화의 대도' 2011년 9월 10일)
● 학회는 어디까지나 '행학의 이도(二道)'로 나아간다
도다 선생님이 서거하시고(1958년 4월 2일) 가장 먼저 전국적으로 실시된
행사가 임용시험(4월 6일)이었습니다. 아직 고별식(4월 8일)도 끝나지 않은
때였지만, 대스승을 잃은 비탄 속에서도 예정을 변경하지 않고 엄연하게
시행한 행사가 교학시험이었습니다. 전국 60여개 도시의 시험장에서
많은 동지가 시험을 치렀습니다. 세간에서는 (도다)선생님이 돌아가신
이후의 학회에 대해 여러가지로 야유하고 중상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학회는 한결같이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걸었습니다.
▶ (《법화경의 지혜》, 전집 제30권)
첫댓글 '어서'에 "일체의 초목(草木)은 대지에서 출생했느니라. 이것으로써 생각컨대
일체의 불법도 또 사람에 의해서 홍통되느니라." (어서 465쪽) 하고 씌어 있듯이,
불법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인간'입니다. 위대한 '법'이 있어도, 그것을 수지하고 넓히는
사람이 없으면 법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대성인은 "전지(傳持)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치 목석(木石)이 의발(衣鉢)을 가진 것과 같으니라." (어서 508쪽)
하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묘법을 이어받아 넓히는 '전지의 청년'이 중요합니다.
학회는 인간교육, 세계시민교육의 배움터입니다. 인간혁명의 불법은, 전 인류의 경애를 높입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계'를 구축하는 희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법련 2018년 9월 8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