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4,1-11
나 요한이 1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4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5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6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7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8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9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11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오늘의 묵상
한 미나를 받아 수건에 싸서 보관한 종의 잘못은 게으름에 있습니다. 이 본문과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서는 이 종의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알려 줍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태 25,26) 게으름은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악덕입니다. 무엇이든 시도해야 그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이 시작됩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주님께서는 당신 섭리로 이끄시고, 그 섭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십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게으름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냉혹하시고 무서우신 분으로 여겼기에, 자신이 실패하였을 때 그것을 다그치실 하느님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이 종의 또 다른 잘못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신만의 성소(부르심)와 사명이 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미나를 맡긴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며 사명을 맡기십니다. 나라는 사람은 유일하고, 주님께서는 그런 유일무이한 나에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이처럼 모든 이에게는 자신의 성소가 있으며, 그래서 성소의 수는 그리스도인의 수만큼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통해서 거룩함으로 나아가고 또 세상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자신의 성소를 시작하지 못합니다. 두려움 없이 성소의 첫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비록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 안에서 언제나 어떤 열매든 맺으리라 믿으며, 담대하고 성실하게 성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4달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아이를 위한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아이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위한 중환자 병원에서 4달 동안 지내야 했습니다. 사고 직후 저는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기도를 마치면서 보니, 아이의 발가락이 조금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3번 더 병원을 찾았고, 아이의 모습은 조금씩 좋아 보였습니다. 가족들은 병원에서 퇴원한 아이를 위해서 세례성사를 청하였습니다. 세례를 주기 위해 아이의 집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저와 봉사자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아직 아이가 말은 하지 못하지만, 기분 좋은 웃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조금씩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겨우 발가락만 움직일 수 있었던 아이가 눈을 떴고, 웃을 줄 알았고, 손을 내밀면 꼭 잡을 수 있었습니다. 세례식을 진행하는 동안 아이의 부모는 물론, 봉사자도 모두 울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정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요셉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앞으로 요셉이 큰 시련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앞으로 요셉이 나자렛의 성 요셉처럼 가정을 보호하는 우산이 될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기적처럼 좋은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기도와 도움이 있었습니다. 교우들은 아이의 병원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성 어린 나눔을 하였습니다.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 간호해야 했던 아이의 엄마를 위해서 음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이의 할머니는 한국에서 와서 아이와 함께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았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아이 엄마의 회사에서는 아이 엄마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보험이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매주 주보에 아이를 위한 기도를 공지하였고, 교우들은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아이의 부모에게 ‘성탄 미사’에 아이와 함께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부모도 성탄 미사에 함께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세례식을 준비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를 살리셨던 표징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는 죽지 않고, 자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은 소녀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탈리타쿰(일어나라.)’ 소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일어났습니다. 저도 아이를 위해서 ‘탈리타쿰’이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아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요즘 우리는 묵시록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재물과 권력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길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손이 둘인 것은 하나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남을 돕는 데 사용하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에게 발이 둘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눈이 둘인 것은 하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아름답게 보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에게 귀가 둘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어려움을 들어 주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의 재능과 능력은 본인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지만 그 반은 남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고, 손해 보는 일이 아님을 나무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뭇잎이 그렇게 가을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우리도 언젠가 인생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져야 하는 나뭇잎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떨어지는 걸 슬퍼하기보다 떨어지기 전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떨어지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떨어질 것을 알고 준비하는 것이 참된 삶입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부활의 태양은 떠오르고 새봄 새잎이 또 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밤하늘은 별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들의 선행과 우리들의 봉사가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희망의 별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조재형신부)
첫댓글 제게 부여하신 성소가 무엇일지를 유추해 봅니다.
지금 여기에서 제가 하느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바가
무앗인지를 곰곰 헤아려봅니다.
오늘 제 생각과 말과 행위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건 무엇이며
그에 반하는 건 무엇이었을지를 따져봅니다.
주님, 저를 인도하소서.
제 눈을 뜨게하시고 제 귀를 열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