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행동 말고 말로만 하시라
나는 동부전선 보병사단의 말단 소총수였다. 32개월 넘는 군 복무 기간에 두 번 철책 경계 임무에 투입됐다. 후방에 주둔한 시기에도 GP 급수시설 공사 ‘노가다’로 징발되어 수시로 DMZ를 드나들었다. 시멘트를 나르고 땅을 파고 공병이 폭파한 바위 조각을 치우면서 여름 석 달을 보냈다. 그때는 남북 당국 모두가 상대를 비난하는 확성기 방송을 했다. ‘의거입북’과 ‘의거귀순’을 권하는 전단과 책자를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냈다. 나는 남북이 저마다 군사분계선 너머로 쏘아대는 방송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선전 책자와 전단도 싫도록 보았다.
남과 북은 왜 그럴까
그때를 아는지 물어보려고 40년 전 경험을 꺼낸 건 아니다.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여부를 검토한다기에 그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그리 되었다. 1980년 12월 이병 계급장을 달고 들었던 대남 확성기 방송은 나름 괜찮았다. 30분 동안 온갖 뉴스를 다루었는데, 때가 때인지라 전두환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시민을 얼마나 잔혹하게 살상했는가? 전두환은 어떤 방법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는가? 전두환은 왜 김대중을 죽이려고 하는가? 미국은 왜 전두환의 뒷배를 봐 주는가? 이상저온으로 인한 남한의 흉작 상황은 얼마나 심각하며 전두환 정권은 부족한 식량을 어느 나라에서 어떤 조건으로 조달하였는가? 들어보니 대부분 사실에 근거를 둔 이야기였다.
북이 방송을 시작하면 우리도 철골 구조물에 스피커 열여섯 개를 얹은 확성기를 켰다. 하지만 대북 심리전 방송은 아니었다. 병사들이 북의 확성기 방송을 듣지 못하게 하려고 대중가요를 내보냈다. 누구 노래였겠는가. 1980년 혜성처럼 떠올랐던 가왕 조용필이다. ‘단발머리’와 ‘창밖의 여자’를 비롯한 1집 앨범 수록곡을 밤낮없이 틀었다. 사용료도 주지 않고 ‘불후의 명곡’을 음파 방해 수단으로 쓴 문화적 야만행위였지만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 목적을 이루는 데 가왕보다 더 적합한 사운드를 내는 가수가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대남 방송의 마지막 순서는 언제나 같았다. ‘국군 장병 여러분, 이제 장군님의 노래를 들으시겠습니다.’ 여자 아나운서가 그렇게 말하면 김일성 찬양 노래가 나왔고, 그 노래가 끝나면 방송을 멈추었다가 30분 후에 재개했다. 동틀 무렵 철수하는 우리에게 추운데 밤새 얼마나 고생했느냐고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망원경으로 보았는지 이름과 계급을 불러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했다. 25분 넘게 말이 되는 방송을 해놓고서는 마지막 ‘장군님의 노래’로 선전 효과를 꽝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뭐지?
궁금하기로는 우리 군 당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1963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바로 그것은 공세적인 대북 심리전 방송이 아니라 대남 확성기 방송 청취를 방해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우리 군 당국은 왜 저러는 걸까? 어째서 막강한 출력을 내는 스피커로 대중가요만 틀고 있다는 말인가.
확성기의 심리학
전역을 반 년 앞두고 대대장의 호출을 받았다. 정보사령부에 가서 교육을 받고 아군 GP에서 ‘자유의 소리’라는 대적선전대 요원으로 근무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계엄법 위반으로 붙잡혀 군사재판을 받았고, 학교에서 잘렸고, 감옥이 너무 붐빈 탓에 군대에 온 나더러 그런 업무를 하라고 하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교육을 받고 나면 전역이 석 달밖에 남지 않는다고 했다. 대대장은 영등포에서 노조탄압 규탄 가두시위를 하다가 붙잡혀 온 일병을 대신 보냈다. 군 당국이 소위 ‘반체제 운동권’ 출신 병사를 심리전 요원으로 선발한 것은 GP의 확성기로 주고받던 ‘드립 배틀’에서 판판이 지는 사태를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북 GP의 확성기 심리전은 욕설로 끝날 때가 많았다. 북측 요원들은 광주 학살, 교수와 기자 집단 해고, 대학생 구속, 빈부 격차처럼 구체적인 사건과 문제를 들먹이며 공세를 폈지만 우리 요원들은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북한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김일성 우상화, 독재, 인권탄압 같은 것인데 그 논쟁을 하기 어려웠다. 전두환도 국민을 대량 살상했다. 국회를 폭력으로 해산했다. 체육관 선거에 단독 출마해 99.9퍼센트 찬성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국보위’라는 불법조직을 만들어 제멋대로 법을 만들었다. 어찌 북의 독재를 마음 놓고 비판하겠는가. 우리 요원들은 매번 최후의 카드를 빼들었다. 김일성과 김일성의 여자(들)에 대한 쌍욕이다. 그러면 북측은 화난 한 마디를 내뱉으며 ‘드립 배틀’을 중단했다. ‘거 참 욕하지 말라우!’
‘장군님의 노래’는 대남 심리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개인숭배와 독재를 필수요소로 삼는 북한 체제의 약점을 드러내 역효과를 불렀을 뿐이다. 나는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우습고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 노래를 송출한 것은 충성심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김일성 주석은 ‘민족의 태양’이자 ‘세계의 영도자’여야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상천국’이어야 한다. 그게 사실이 아니고 대남 심리전에서 역효과를 낸다고 해도 내가 안전하게 살려면 그렇게 확신하는 시늉을 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해서 확성기 방송에 매번 ‘장군님의 노래’를 튼 것이다. 최고 권력자가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으로 바뀌었지만 이러한 집단적 허위의식 또는 폐쇄적 충성경쟁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들이 목적 합리성을 전적으로 결여한‘장군님의 노래’를 튼 이유를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목적 합리성의 결여
1987년 민주화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는 역공당할 걱정 없이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비판할 수 있다. 경제력도 우리가 압도한다. 냉전 해체 직후부터 북이 파멸적 경제난을 겪으며 ‘고난의 행군’을 하는 동안 한국 경제는 계속 발전했다. 남북의 경제력은 이제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함으로써 교류를 촉진하고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킨 노태우-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때 휴전선의 확성기는 침묵했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 대응조처로 재가동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자제했다. 2016년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을 규탄하면서 박 대통령이 다시 꺼낸 확성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27 판문점 합의로 창고에 넣었다.
확성기 방송 대결을 종식하려고 노력한 첫 번째 국군통수권자는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그가 주도해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는 제1장에 ‘상호 체제 인정, 내정 불간섭, 중상 비방 금지’를 명시했다. 군사분계선의 확성기 비방 방송은 이 규정에 어긋난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려고 노력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그 노선을 계승했다. 2018년 <9월 평양 공동선언> 부속 ‘9.19군사합의’의 DMZ 비무장화 조항에 따라 확성기를 아예 떼버렸다. 2020년에는 국회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금지 조항을 추가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 여당 일각에서 ‘9.19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하면 별도 입법 조처를 하지 않고도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 확성기 방송으로 김정은과 북한 권력층과 북한의 체제를 비난해서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는 걸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외교 언어라고는 모르는 김여정이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향해 필설로 다하지 못할 만큼 찰진 욕을 퍼부을 것이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권력자들을 약 올리는 데는 확성기 방송만한 게 없다. 확성기 방송 재개 주장은 굳이 그것을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 그들은 남북의 화해 협력으로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 전쟁 리스크 확대로 인한 국민경제의 손실을 막는 것을 할 일로 여기지 않는다. 북한 권력자를 약 올려 대결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반북 정서를 부추기면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40년 전 들었던 ‘장군님의 노래’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추진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도 주체의 불안과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일 뿐이다. 의미 있는 목적도, 그것을 이루는 데 기여할 가능성도 없다.
전작권이 없어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쟁과 관련하여 숱한 어록을 남겼다. 후보 시절의 ‘선제 타격’에서 <조선일보> 신년 인터뷰에서의 ‘한미 공동 핵 훈련’, 북한 무인기 관련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준비’까지 온갖 과격한 말을 쏟아냈다. 이미 있는 드론 부대를 창설하라고 하는가 하면 우리 군을 믿을 수 없다고 격노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그래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군대도 전쟁도 잘 모른다.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전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여성과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몇몇을 제외하고 대통령실 1급 이상 공직자의 병역사항을 분석한 작년 9월 SBS 보도를 다시 꺼내 본다. 지금도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분석 대상 44명 가운데 병장 만기 복무자와 정상적으로 복무한 장교 또는 장성 출신은 각각 9명과 8명뿐이었다. 3명은 복무 중 부상으로 의병 전역했다. 절반이 훨씬 넘는 24명이 질병 면제(6명), 수형 면제(3명), 방위병과 공익근무(12명), 산업기능요원 대체복무(1명), 임관한 날 전역한 석사장교(2명) 등으로 현역 군복무 경험이 없었다. 안보라인도 특별하지 않았다. 국군최고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부동시로 면제, 김대기 비서실장은 방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하는 김성한 안보실장은 단 하루 복무한 석사장교이고,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근시’로 군대를 가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실을 옮긴다고 군의 중요한 거점 공간을 타격해 뿔뿔이 흩어놓고 무슨 일만 나면 ‘격노’해서 군 수뇌부를 질타하니 예비역 육군병장인 나는 화가 난다.
한 가지만 부탁하자. 계속 그렇게 말로만 하시라. 김정은을 자극해 도발을 유도하고, 그것을 비난해 우리 국민의 반북 정서를 자극하시라. 그렇게 해서 국정수행 지지도를 올리고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시라. 정치놀음에만 그친다면, 실제적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괜찮다. 만약 남북한이 소규모 국지전이라도 벌이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경제위기를 포함한 총체적 난국에 빠질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일정을 자꾸 늦춘 탓에 아직도 전작권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다. 우리 대통령한테 전작권이 없어서 다행이다. 조금은 덜 불안하다. 그렇게 느끼는 내가 낯설다. 새해 벽두부터 이 무슨 해괴한 감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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