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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합회 서장Ⅱ 특강 2강-3 (2013. 10. 21.)
陳少卿 季任(一)
최고운 선생은 중국에서 유학하고, 중국에서 벼슬하다가 다시 신라로 건너와서 신라에서 한림학사까지 지내고, 그러다가 다 포기하고 정말 제대로 수행하려고 가야산으로 들어가는데, 홍류동어귀에서 스님들이 걸망을 지고 내려오는 겁니다. ‘나는 지금 발심해서 산으로 들어가는데 저 중들은 어쩌자고 산에서 내려오는가?’
僧乎莫道靑山好(승호막도청산호)하라.
중이여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 그 청산은 도입니다. 도를 말하는 겁니다. 도 닦는 일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 말입니다. 도 닦는 것이 좋다면
山好何事復出山(산호하사부출산)고?
그 도가 좋다면 산에서 왜 다시 나오느냐? 도 닦는 일 포기하고 왜 다시 나오느냐?
試看他日吾踪跡(시간타일오종적)하라.
시험 삼아 다른 날 나의 종적을 한 번 지켜봐라.
一入靑山更不還(일입청산갱불환)하리라.
나는 한번 청산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를 홍류동에다 써 붙이고 그 길로 가야산으로 들어가서 “신선이 됐다.ㆍ도를 통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一入靑山更不還. 한번 청산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바로 그 정신이 간화선 공부하는 사람의 정신입니다. 一入靑山更不還.
정말이지, 공부하려는 그 생각 한번 각오했다면ㆍ청산에 들어가는 것을 각오했다면ㆍ도통하기를 각오했다면, 이 뜻입니다. ‘더 이상 다시 기웃거리지 말라.ㆍ기웃거리지 않는다.ㆍ인생살이 이것으로 끝낸다.’ 이 겁니다.
야~~ 진실로 ‘내 모든 인생을 이걸로 끝낸다.’ 라고 탁 제대로 각오했을 때,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불교에는 그런 세계가 있습니다. 한번 발심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그런 일들이기도 합니다.
近年以來로 有一種邪師가 說黙照禪하야 敎人으로 十二時中에
是事를 莫管하고 休去歇去호대 不得做聲하라 恐落今時라하거든
往往士大夫가 爲聰明利根所使者가 多是厭惡鬧處라가
乍被邪師輩의 指令靜坐하야 却見省力코는 便以爲足하야
更不求妙悟하고 只以黙然으로 爲極則하나니 某不惜口業하고
力救此弊호니 今稍稍有知非者러라
願公은 只向疑情不破處叅호대 行住坐臥에 不得放捨어다
僧이 問趙州호대 狗子도 還有佛性也無잇가 州云無라하니
遮一字者는 便是箇-破生死疑心底刀子也라
遮刀子欛柄 只在當人手中이라 敎別人下手不得이니
須是自家下手라사 始得다
近年以來(근년이래)로, 근래에 와서
有一種邪師(유일종사사)가, 일종의 삿된 선비가 있어서
說黙照禪(설묵조선)하야, 묵조선을 이야기해서
敎人(교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十二時中(십이시중)에,
是事(시사)를 莫管(막관)하고,
아무 일도, 말하자면 관섭하지 말고 = 관계하지 말고, 이 말입니다.
休去歇去(휴거헐거)호대,
뭐 죽었느니ㆍ살았느니, 불성이니ㆍ진여니 하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해서 전혀 관계치 말고, 그저 쉬어라ㆍ쉬어라ㆍ쉬어라ㆍ쉬어라.
休去歇去. 쉴 휴자 지요. 쉬어가고ㆍ쉬어가라. 쉬어라ㆍ쉬어라.
우리 절 집안에 쉬어라는 소리 잘 쓰지요. 쉬어가고ㆍ쉬어가되,
不得做聲(부득주성)하라. 공부를 짓는다는 소리도 하지 말라.
不得做聲 = 짓는 소리 하지 말라. 그리고
恐落今時(공락금시)라하거든, 今時에 떨어질까 두렵다. 망상에...
今時는 망상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망상에 떨어질까 두렵다.
이렇게 가르치거든 往往에 士大夫(왕왕사대부)가
爲聰明利根所使者(위총명이근소사자)가,
총명하고 근기가 영리한데 부림을 받은 자가, 부린 바가 된 사람이, 그 총명한 것 심부름이나 하고, 근기 영리한 것. 거기에 그냥 끄달리고 그냥 그 심부름 노릇 하던 사람이,
多是厭惡鬧處(다시염오요처)라가,
많이들 시끄러운 곳을 厭惡하다가,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다가, 그렇지요.
그런 사람들은 영리하고 또 유능하고 그래서 할 일도 많고요. 그래서 아주 바쁘게ㆍ복잡하게 사는 겁니다. 그래서 시끄러운 것 싫어해요. 그러다가
乍被邪師輩(사피사사배)의, 잠깐 삿된 스승,
묵조선을 말하는, “쉬어가고ㆍ쉬어가라.” 라고 가르치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이 指令靜坐(지령정좌)하야,
조용히 앉아라.ㆍ조용히 앉아라. 라고 指令하는 겁니다. 가르쳐서 앉게 한다. 조용히 앉게 하거늘, 가르쳐서 조용히 앉게 하는 것을 입어서 = 被.
却見省力(각견생력)코는, 도리어 힘 덞을 보고는,
잠깐 동안 앉아서 아~ 그것 마음 쉬고, 가만히 그냥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쉬고ㆍ쉬고ㆍ쉬고ㆍ쉬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그것 괜찮거든요.
便以爲足(변이위족)하야, 곧 만족함을 여겨서 = 삼아서
更不求妙悟(경불구묘오)하고, 다시는 妙悟를구하지 않는다.
妙悟 = 미묘한 깨달음. 여기서 또 이것이 또 묵조선과 간화선의 차이입니다. 妙悟를구하지 않나니, 위빠사나도 거의 깨달음 이야기 안하잖아요.
바로 그 순간 예의주시하고 마음을 챙겨라. 그것뿐입니다. 거기까지라고요. 그러면 사람은 아주 침착해지고 점잖아지고 무게가 있어지고 그런 것은 있습니다. 그런데 妙悟는 없는 겁니다. 간화선은 화두를 들고ㆍ들고ㆍ들어서 일심이 돼가지고 靜中一如(정중일여). 動靜一如(동정일여).
夢中一如(몽중일여). 病中一如(병중일여. 그 다음에 寤寐一如(오매일여). 그 다음에 生死一如(생사일여)까지 가서 그 관문을 뛰어넘어서 마지막에 妙悟. 미묘한 깨달음이 있어야 됩니다. 간화선 단계는 여기까지라고요. 간화선은 그런 단계를 거치는 妙悟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요히 앉는 것만 가르치는 겁니다.
묵조선이라는 것이 妙悟를 구하지 아니하고
只以黙然(지이묵연)으로, 다만 묵묵히 있는 것으로써
爲極則(위극측)하나니, 極則을 삼아요.
그것을 極則으로 삼아요. 최고로 삼나니,
某不惜口業(모불석구업)하고,
내가 구업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 이 대혜스님은요? 묵조선비판하고, 묵조선을 간화선으로 바꾸기 위해서 태어난 원력보살입니다. 不惜口業입니다. 구업을 아끼지 아니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사정없이 비난하는 사람이 바로 이 대혜스님입니다. 사정없이 비판하는... 스스로도 그랬잖아요.
不惜口業하고 力救此弊(력구차폐)호니,
힘써 이 폐단을 구제했더니
今稍稍有知非者(금초초유지비자)러라.
지금에 조금씩ㆍ조금씩 묵조선이 그릇이라고 하는, 잘못 됐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 말입니다. 하도 대혜스님이 떠들어대어 놓으니까요. 그리고 또 대혜스님 신도가 누굽니까? 전부 재상이다. 뭐, 요즘으로 치면 장관이다. 국회의원이다. 교수다. 이런 사람들, 여기 교수도 몇이 나오지요. 이런 사람들입니다. 참정 벼슬하는 그런 사람들. 사회적으로 아주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그냥 사정없이 불어제끼는 겁니다.
“묵조선 그것 틀린 것이다. 간화선이라야 진짜 공부다.” 하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계속 그렇게 떠들어대는 겁니다. 그리고 邪師輩라고 그랬잖아요. 삿된 스승이라고, 삿된 스승의 무리들. 이것이 승려로써 얼마나 점잖지 못한 표현입니까? 그런데 不惜口業입니다. 구업을 아끼지 않고 이렇게까지 했더니, 요즘에 와서 겨우 조금씩 그것이, 묵조선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
지금요? 우리 전통 간화선에서, 위빠사나가 들어와 가지고 천하를 횡행하고, 선방에서 2ㆍ30프로가 위빠사나해도 누구 하나 비판하는 사람 없고, 누구 하나 떠들고 일어나는 사람 없습니다. 전부 묵묵히 꿀 먹은 벙어리입니다. 그 생명이 다 사라진 겁니다. 간화선의 패기가 다 사라진 겁니다. 간화선의 패기도 생명도 다 사라진 겁니다. 지금은 고인들이 됐지만, 제가 첫 철 해인사 선방에 있을 때, 저도 열두시까지 안 잤거든요. 앉기만 하면 졸리니까 열두시까지 마당에 계속 왔다 갔다 하는데, 어느 날 저 쪽에 일타스님 방엔가 불이 켜져 있어요. 그런데 계속 떠드는 소리가 나기에, 그래선 안 되는 줄 알면서 ‘큰스님들 무슨 소리 하는가?’ 가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하도 큰소리 하니까 밖에서도 다 잘 들려요. 그런데 無자 가지고 싸우는 겁니다.
일타. 도견스님입니다. 이제는 고인이 실명을 거론해도 상관없지요.
無자 가지고 싸우는 겁니다. 無자 가지고 어떻게 싸우느냐? 여기 계속 無자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無라고 해야 된다.”하는 사람 있고,
“아니다. 없다.” 라고 해야 된다. 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거 싸울 만하지요? 조주스님이 無라고 했지, 없다. 라고 하진 않았다 이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니까 “없다.”고 해야 맞지 않느냐? 이걸 가지고 밤새도록 싸우는 겁니다. 밤새도록... 그것이 얼마나 좋은 토론입니까?
그런 토론이 있어야 된다고요. 그런 토론 문화가 있어야 되는데, 엉뚱한 것, 안 해도 될 것 가지고 시시비비하니까 불교가 앞날이 참 암담하지요.
“無라고 해야 된다.” “없다. 고 해야 된다.”
“無라고 해야 된다.” “없다. 고 해야 된다.”
無~~ 라고 했는데 왜 없다. 고 하느냐 이 겁니다.
無라는 것이 없다는 말 아니냐 이 겁니다. 그거 똑 같은 1분이면 끝날
토론을 가지고 몇 시간을 하는 겁니다. 몇 시간을... 화두 들다가 또...
두 분이 다 아마 無자 화두를 들었나 봐요. 그러니까 그렇지요.
이런 이야기도 저 한데서나 듣지 어디 가서 듣겠습니까? 서장만큼이나 아주 귀중한 말이지요?
願公(원공)은, 원컨대 그대는
只向疑情不破處叅(지향의정불파처참)호대,
다만 疑情 = 의심하는 정. 의심하는 마음. 의심하는 정을 깨뜨리지 못한 곳을 향해서 참구하되,
行住坐臥(행주좌와)에 不得放捨(부득방사)어다.
行住坐臥에 놓아버리지 말라. 자나ㆍ깨나, 앉으나ㆍ서나, 가나ㆍ오나 그저 無ㆍ無ㆍ無ㆍ無, 뭐라고요?
僧(승)이 問趙州(문조주)호대, 중이 조주 선사에게 묻되,
狗子(구자)도 還有佛性也無(환유불성야무)잇가?
개도 또한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州云無(주운무)라하니, 조주가 말하되 無~~ 라고 했으니,
이렇게 無라고 했지, 없다고 했느냐? 이 겁니다.
아, 無자가 없을 무자 아니냐? 아니지, 無라고 했는데, 왜 없다고 했냐?
아, 없다는 그것이 無자이고, 無자가 없다는 뜻이지... 아니, 그래도 無라고 했는데, 없다는 소리 안했다 이 겁니다.
州云無라하니 遮一字者(자일자자)는,
이 한 글자, 無라고하는 한 글자는,
便是箇破生死疑心底刀子也(변시개파생사의심저도자야)라.
생사의 의심을 깨뜨려 버리는 칼이다 말입니다.
이것은 보통 칼이 아닙니다. 없을 無자!!! ←이것은 무서운 글자입니다.
생사를 깨뜨려 버리는 칼이다. 생사문제가 여기서 다 박살이 난다 이 겁니다.
遮刀子欛柄(자도자파병)은, 이 칼의 칼자루는,
刀子 = 칼. 欛柄 = 칼자루.
칼의 칼자루는, 只在當人手中(지재당인수중)이라.
다만 當人 = 그 사람. 當人手中 = 그 사람 手中에 있다 이 말입니다.
敎別人下手不得(교별인하수부득)이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下手不得이다. = 손대지 못한다.
우리가 “하수인”그러지요? 직접 어떤 일을 처리하는 사람. 직접처리 못해요. 본인이 해야 됩니다. 當人이 해야 된다고요. 당사자가 해야지, 딴 사람으로 하여금, 무슨 청부살인 같으면 딴 사람 시키면 되지만, 이것은 그것하고 아닙니다. 자신이 해야 되는 일입니다.
下手不得이니
須是自家下手(수시자가하수)라사,
모름지기 自家가, 자기가 下手해야, 자기가 손을 대어야
始得(시득)다. 비로소 된다.
若捨得性命인댄 方肯自下手어니와 若捨性命不得인댄
且只管在疑不破處하야 崖將去하면 驀然自肯捨命一下便了하리니
那時에사 方信靜時便是鬧時底며 鬧時便是靜時底며
語時便是黙時底며 黙時便是語時底라 不着問人하야도
亦自然不受邪師의 胡說亂道也리니 至禱至禱하노라
若捨得性命(약사득성명)인댄,
만약에 性命 = 생명. 생명을 버릴진댄,
方肯自下手(방긍자하수)어니와,
바야흐로 기꺼이 스스로 下手해야 되거니와 = 손을 내려야 하거니와,
若捨性命不得(약사성명부득)인댄,
만약 생명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것이 생명하고 맞바꾸는 공부입니다.
그래야 생사 해탈이 되니까요. 생사를 초탈하려면 생사를 걸어야지요.
간단한 논리 아닙니까? 생사 걸 자신 없으면 이 공부 못하는 겁니다.
아예 안 되는 겁니다. 그저 자기 모습, 명예니ㆍ무슨 이익이니ㆍ무슨 재산이니ㆍ토굴이니ㆍ주머니에 있는, 통장에 있는 돈 몇 푼이니, 여기에 연연해가지고는 이 공부하고는 10만 8천리입니다. 이것은 생사를 초탈하는 공부기 때문에 생사를 걸어야 됩니다. 공식이 간단하잖아요. 너무 간단한 공식입니다. 생사를 초탈하려면 생사를 걸어야지요. 그래서 여기 생사를 건다는 말이, 性命이라는 말은 생명입니다. 생명 그대로... 만약 생명을 버리지 못한다면,
且只管在疑不破處(차지관재의불파처)하야,
다만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 곳에 있어서
崖將去(애장거)하면, 밀어붙인다. 이 말입니다.
崖將去 = 밀어갈지언정 = 밀어붙일지언정,
驀然히 自肯捨命 一下便了(맥연자긍사명일하변료)하리니,
驀然히 = 밀어붙이면.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 곳에서 밀어붙이면,
문득 스스로 기꺼이 생명 버림을 한번 해 마칠 것이다.
생명을 한번 버리게 될 것이다.
那時(나시)에사, 그 때야
方信(방신), 바야흐로 믿을 것이다. 무엇을요?
靜時便是鬧時底(정시변시요시저)며,
고요한 때가 곧 시끄러운 때며,
鬧時便是靜時底며, 시끄러운 때가 곧 고요한 때다.
語時便是黙時底(어시변시묵시저)며, 말하는 때가 곧 묵묵한 때며,
黙時便是語時底라.
묵묵한 때가 곧 말하는 때라고 하는 것을 아마 믿게 될 것이다.
그 때 되면ㆍ그 때 되면,
不着問人(불착문인)하야도, 딴 사람에게 안 물어도,
亦自然不受邪師(역자연불수사사)의, 또한 자연히 삿된 선비의
胡說亂道也(호설란도야)리니, 胡說亂를 받지 아니하리니,
胡說亂 = 어지럽게 말하고, 어지럽게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것이다. 삿된 사람들, 묵조선하는 사람이 무슨 소리 하더라도 그쯤 되면, 하나도 거기 끄달리지 아니할 것이다.
至禱至禱(지도지도)하노라. 지극히 빌고 지극히 비노라.
부디 좀 이렇게 하라. 오로지 無자로 밀어붙이라.ㆍ無로 밀어붙이라.
간화선의 어떤 윤곽이 조금 떠오르지요? 오늘 간화선의 어떤 정신. 그 간화선의 어떤 정신이 아마 조금 이해가 됐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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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삼보에 귀의합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