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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 제 24 장. 第 24 章.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다. 1. 감숙성(甘肅省)에 접어들자 만천은 배를 내려 육로(陸路)를 택했 다. 난주까지 배로 가는 것이 빠르고 편하지만 만천은 일부로 속도 를 늦추려고 육로를 택했다. 도이롱의 투덜거림도 만천은 듣지 않 았다. 일행은 간편한 차림으로 말을 몰아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객점이 나올때마다 만천은 먼저 떠난 사람들에 대해 수소문 했다. 사막으로 떠난 인원은 근 이천명에 달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되돌 아온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만천의 걱정은 늘어만 갔다. 그러나 일단 출발한 길을 멈출 수도 없었다. 만천은 진짜 유람이라도 나온 듯 천천히 길을 걸었다. 시간을 늦 추는 길만이 오직 안전하다는 것을 만천은 알고 잇었다. 청룡, 백 호기가 벌써 난주에 도착했을 테지만 만천은 서두르지 않았다. 도일봉은 점차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사태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 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토록 천천히 가는 것은 정말이지 지겨웠다. 무슨일이 있다면 빨리 가서 알아보고 부딪쳐 보고 싶다. 하지만 만 천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다만 넓은 들판이 나오면 장군을 타고 한바탕 달림으로서 답답함을 해소시켰다. 겨울바람이 매섭기 보다 는 오히려 시원했다. 이제 이틀 정도만 걸으면 난주다. 도일봉은 더욱 조바심을 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높은 고개를 넘자 앞쪽은 드넓은 평원이었다. 도일봉은 참지 못하 고 또 한 번 장군을 몰아 내쳐 달렸다. 장군이 바람처럼 달려나갔 다. 눈발이 휘날려 얼굴을 때렸다. 기분이 좋다. 이 자유로움이 정 말 좋았다. 한시간여를 달리자 금방 평원이 끝나버렸다. 도일봉은 장군에서 내려 눈밭을 뛰어다녔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추위는 더 욱 맹렬해진다. 눈밭에서 지겹도록 뒹군지가 꽤나 오래 되었는데도 만천 일행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천천히 온다해도 지금쯤이면 이곳 까진 왔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도일봉은 갑 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도일봉은 장군을 불러 타고 왔던 길을 향해 내달렸다. 고개를 되 넘어 고개밑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지라 발자국들은 벌써 덮여버렸다. 아무런 흔적이 없 다. 도일봉은 다급한 생각이 들어 말등에서 뛰어내렸다. 길 옆 소 나무에서 가지를 꺽어들고 근처를 쓸어보았다. 눈 아래 발자국들이 보였다. 한참을 전진하다보니 검붉은 핏자국이 보였다. "피!" 그렇다. 눈 속에 핏방울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만져보니 아직 굳 지도 않았다. 만천등이 누군가가 싸웠던 것이 분명했다. 도일봉은 서둘러 눈을 쓸었다. 피는 더 이상 없었다. 싸움은 싱겁게 끝난 모 양이다. 발자국들도 지워져 있었다. 만청 일행이 누군가에게 사로 잡힌 것이 분명했다. 도일봉은 근처 숲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푸른 헝겁조각을 발견했다. 누군가 표시를 하기위해 일부로 걸어둔 것이 분명했다. "만천이로구나!" 만천은 청삼을 입고 있었고, 이렇게 표시를 해둘 위인은 역시 그 밖에 없다. 도일봉은 숲 속으로 더 들어가 보았다. 이번엔 땅에 떨 어져 눈 속에 박혀있는 헝겁조각을 발견했다. 한참을 더 들어가다 보니 말과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보였다. 눈을 쓸어보니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도일봉은 가소롭다는 듯 웃움을 지었다. "내가 여기까지도 못올줄 알았단 말이지? 흐음. 내가 사냥꾼 이었 다는 것을 모른 너희들은 분명 실수한거야! 더욱이 만천의 수작마 져 눈치채지 못한 주제에!" 도일봉은 장군을 불러 길을 따라 함께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분지가 보였다. 제법 입지조건을 갖춘 산채 라 할만했다. 그곳에 여러채의 건물이 눈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산적들인 모양인데, 너희들은 상대를 잘못 택했어!" 도일봉은 장군을 두고 멀찌감치 돌아 산채로 접근했다. 골짜기 입 구에 감시초소가 있었다. 조심조심 산채에 접근한 도일봉은 한쪽 건물 모퉁이로 접근했다. 그곳에서 한동안 산채안을 관찰했다. 그 런데 이상한건, 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라는 사실이다. 남 자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도일봉은 크게 흥미를 느껴 홀로 중얼 거렸다. "이건 여도적 들인 모양인데! 허 참. 여자들이 떼를 지어 산적질 을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일인데...별일도 다 있군그래. 제 기랄. 장군부 대원들이 창피도 막심하게 여자들에게 잡히다니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이 계집애들은 남자들을 잡아다 뭘 할까? 신랑감이 필요했나? 재미있군, 재미있어! 산채의 계집애들이 모조 리 예뻣으면 좋겠다. 그럼 신랑감이 되는것도 억울하진 않을거야. 헤헤헤." 도일봉은 밤을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움직였다. 그런데 여기저기 살펴보아도 만천등은 보이질 않았다. 마굿간에서 말들을 발견했을 뿐이다. 마굿간을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몸을 숨기고 보니 늙은이였다. 노인은 말들에게 먹이를 주 었다. 도일봉은 슬그머니 접근하여 노인의 목을 감아두르며 단검을 드리댔다. "찍소리도 내지마!" 노인은 입을 크게 벌렸으나 목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감히 소 리를 내지 못했다. 커다랗게 뜨여진 눈알이 이리저리 움직일뿐이 다. 도일봉은 노인의 목을 슬쩍 그었다. 피가 베어나왔다. "여도적들 밑에 있는 늙은 마굿간지기 피도 똑같이 붉군! 순순히 말을 할테냐?" 노인은 제풀에 놀라 도일봉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개부터 끄덕 였다. 너무 놀랐는지 바짓가랑이에서 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좀 전에 남자들이 잡혀왔을 것이다. 어딨어?" 노인은 침을 꼴깍 삼키며 더듬거렸다. "저기...저...세 번째... 세 번째 건물" "이곳엔 몇 명이나 있느냐? 두목놈은 누구야?" "마흔...마흔 세명. 두목님은...두목님은..." 노인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노이(張老二), 장노이. 또 어디서 꾸물거리고 있어요. 어서 나 오지 못해요!" 나이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도일봉은 재빨리 노인의 입을 막았 다. 도일봉이 낮게 물었다. "두목놈은 어디 있느냐?" 손을 떼자 노인이 딴소리를 해댔다. "나으리, 살려줍쇼. 이 늙은 것은 그저..." "잔소리 말아. 두목놈은 어딨어?" 노인이 말하기 전에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짜증이 섞인 목소리 다. 마굿간 쪽으로 오는 모양이다. 도일봉은 노인의 입을 막고 순 간적으로 과나놀이를 내리쳐 기절시켰다. 도일봉은 기절한 노인을 한쪽으로 끌어다 놓고 몸을 숨겼다. 소녀가 다가왔다. "이봐요, 장노이. 뭘 하는 거예요? 또 몰래 잠을 자는 거예요?" 소녀는 노인이 건초더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뒤집 으며 소리쳤다. 꼼짝도 안하자 소녀가 깜짝 놀랐다. "어머. 장노이, 장노이!" 소녀는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하며 몸을 돌려 밖으로 뛰어가려 했 다. 문 앞에 누군가 있는 것을 보고 또 깜짝 놀랐다. "그대는...누군가요?"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귀여운 18세 소녀였다. 도일봉이 빙그래 웃었다. "손님이라오. 어려운 일이라도 있나요?" "장노이가 말에 치어 죽었나봐요. 그런데 그대는 못보던... 사람 인데요?" 도일봉은 소녀를 흉내내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투까지 흉내냈 다. "장노이는 말에 치인게 아니예요. 말을 듣지 않아 내가 한 대 때 려 기절한 것이지. 그대도 한 대쯤 얻어맞고 싶나요?" "어머!" 소녀가 놀라 달아나려 했다. 도일봉이 재빨리 달려들어 소녀의 팔 을 잡아 비튼후 한쪽 벽으로 밀었다. 도일봉은 다른 손으로 소녀의 입을 막은체 빙글빙글 웃었다. "장노이도 바로 여기서 얻어 맞았지. 그대도 얻어맞고 싶지 않으 면 말만해. 묻지 않고 바로 때려 줄테니까. 어때? 공짜로 한 대 맞 아 볼테야?" 소녀는 눈을 매섭게 뜨고는 말하지 않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일봉이 웃었다. "그대처럼 예쁜 아가씨가 이런 산 속에서 뭘 하는거야? 아까보니 남자들을 여러명 잡아오던데? 신랑감이 모자라나?" 소녀는 매섭게 노려보기만 했다. 도일봉이 소녀의 볼을 꼬집어 주 었다. "쳇, 말하기 싫어? 그런데 이곳 두목놈은 누구야? 그놈도 여자 야?" 도일봉은 살짝 손을 뗐다. 소녀가 당장 소리를 지르려 했다. 도일 봉은 다시 입을 막고 고개를 저어보였다. 다시 손을 떼자 소녀는 먼저 침부터 탁 ㅂ았다. "네깐 녀석이 누구관데 남의 집에 침입하여 누굴 협박하는 거야? 네깐 녀석이 그런걸 알 자격이라도 있을 것 같아?" "허! 요 아가씨좀 보게. 성깔이 보통이 아닌걸! 너희 두목놈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래? 내가 만나본다고 뭐가 떨어질 것도 아닌데? 날 죽이기라도 할까?" "너같은 자는 한 손가락으로도 죽일 수 있을걸!" 도일봉이 눈을 똥그랗게 떳다. "아이쿠, 무서워라! 하지만 난 기어이 두목놈을 좀 만나봐야 겠 어. 자, 먼저 앞장서야지?" 도일봉은 소녀의 등을 밀었다. 소녀는 도일봉이 맨 손인 것을 보 자 용기를 내어 재빨리 몸을 돌리며 양주먹을 날려 가슴을 후려쳤 다. 도일봉은 불시에 기습을 당했다는 듯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뜬체 숨을 쉬지 않았다. 소녀는 자신의 공격이 이토록 쉽게 성공하 자 오히려 어리둥절 해져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 끝으로 도일 봉의 가슴을 쿡쿡 찔러 보았다. "왁!" "엄마야!" 도일봉의 호통에 소녀는 깜짝 놀라 두 팔을 높이 처들며 비명을 질렀다. 도일봉이 빙그래 웃으며 말했다. "아파서 죽을뻔 했네! 아가씨의 손이 왜이리 매워?" 소녀는 속은걸 알고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흥흥." "어서 가야지?" 도ㅇ종은 소녀를 앞세우고 산채의 중앙건물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몇사람을 만나긴 했지만 도일봉이 워낙 여유있는 모습인지라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건물 앞에는 두명의 소녀가 지키고 있었 다.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비슷한 모습의 소녀들이다. 그녀들은 소 녀와 도일봉이 접근하자 인상을 찡그렸다. "연화(蓮花). 무슨 일로 왔느냐? 뒤에 있는 자는 누구고?" 소녀의 이름이 연화인 모양이다. 도이롱은 웃으며 연화의 귀에 대 고 소근거렸다. "이봐, 연화아가씨. 이곳 여자들은 모조리 암호랑이 같구만. 두목 놈도 암호랑이야?" "닥쳐요!" 연화는 몸을 돌리며 도일봉의 따귀를 후려치려 했다. 도일봉은 껄 껄 웃으며 고개를 숙여 피했다. 연화가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을 보 면 두목놈을 대단히 우러러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때 눈을 치켜뜬 두명의 소녀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호통을 쳤다. "뭐하는 수작들이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도일봉이 중얼거렸다. "요 계집애들은 정말 버릇이 없구나. 그래도 난 뒷문으로 온것도 아니고, 손님처럼 앞문으로 왔는데 말야. 졸개들이 버릇이 없는건 오로지 두목놈이 못났기 때문이야. 누군지 안봐도 알겠군!" 문지기 소녀가 소리쳤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네놈은 누구고?" 도일봉이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며 소리쳤다. "이놈은 도일봉이다. 낮에 너희들이 잡아온 남자들의 친구야. 너 희 두목놈을 만나러 왔다!" 두 소녀는 일순 어리둥절 했다. 그러나 곧 적인걸 알고 허리에 걸 린 검을 잡으며 바짝 경계했다. 도일봉이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까지 경계할건 없어. 싸우러 온게 아니니까." 두 소녀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몰라 일순 엉거주춤 서있기만 했다. 그때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매(竹妹). 들려보내라!" 도일봉은 빙글빙글 웃으며 죽이라고 불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죽이로구나? 괴상한 이름도 다 있군. 나의 이 지팡이는 소림사에만 있는 홍옥죽이란 품종인데, 아가씨는 어떤 품종이지?" 죽이란 소녀가 얼굴을 붉혔다. 옆의 소녀가 발끈 하려는데 도일봉 은 이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껄껄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는데 목언저리에 차가운 감촉이 전해져 왔다. 도일봉은 웃움을 뚝 멈추 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날카로운 검날이 목을 겨누고 있었다. 앞에 두여인이 있다. 그리고 한 여인이 싸늘한 표정으로 검을 쥐고 있었다. 두 여인을 확인한 도일봉은 목에 다아있는 검날보다도 여 인들의 생김새가 더욱 흥미로웠다. 밖에 있는 두 소녀와 안에 있는 두 소녀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아마도 네자매인 모양이다. 그 것이 신기하긴 했지만 목에 걸려 있는 검날은 참기 힘들었다. "이것들이 정말... 아야!" 호통을 치는 목으로 검날이 밀려왔다. 살갖이 베이고 피가 한방울 흘러 내렸다. 도일봉은 눈썹을 곤두세우며 손을 들어 검을 내리쳤 다. 여인이 깜짝 놀라 검을 움추렸다. 도일봉의 죽봉이 어느새 소 녀의 발 등을 꽉 찍었다. "아야!" 소녀가 발 등을 찍히고 비명을 질렀다. 도일봉이 호통을 쳤다.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들 같으니! 혼나볼래?" "이자가 감히!" 두 소녀가 지지않고 소리를 질렀다. 도일봉은 목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쓰윽 문질러 닦고 인상을 찡그렸다. "너희 여자들은 남자로태어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 거라! 여직껏 내게 피를 흘리게 하고 무사한 놈은 있지 않았어. 못 된것들 같으니라고!" "뭣이. 네놈이!" 두 소녀가 단번에 검을 뽑아드는데 방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밖이 왜이리 시끄러우냐? 손님이 왔으면 안으로 모시지 않고!" 늙은여인의 목소리였다. 도일봉은 두 소녀의 검을 손으로 밀치고 성큼성큼 소리가 들려온 방으로 걸었다. 안쪽은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 이었다. 그곳엔 한명의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머리칼을 하 얗게 변했는데, 주름살이 없고 체격도 정정해 보였다. 두 소녀가 따라들어와 할머니 뒤에 섰다. 도일봉은 이 할머니가 두목인가 싶어 실망하고 말았다. 젊은 여인 이길 바랬던 것이다. 도일봉은 인상을 찡그리며 할머니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ㅎ너니가 도일봉의 아래위를 살폈다. "젊은이는 누군데 함부로 남의 집을 찾아왔는가?" 도일봉이 퉁명스럽게 내ㅂ었다. "집은 무슨 집이람? 여도적들 소굴이지. 할머니는 어째서 지나가 는 남자들을 잡아온 것입니까? 보아하니 시집갈 나이는 이미 지난 것 같은데요?" 할머니가 어이가 없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산에 사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 게 마련이야. 이름부터 밝혀야지?" "어이쿠! 방구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더니 할머니가 바로 그 짝 이지 뭡니까? 나도 산에 사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규칙이 있고 삼가 는 것이 있다는 것쯤은 압니다. 사실은 나도 산도적이거든! 하지만 할머니 같이 째째한 도적은 아닙니다. 그들을 잡아온 것이 여자들 에게 짝을 지워주려는 것이 아니거든 놓아 주시구려. 갈 길이 바빠 요. 이왕지사 잡혀서 포로신세가 되었으니 얼마간의 몸 값은 지불 할 용의가 있습니다. 사실 뭐...그들을 짝 지워주려 한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어요. 그들중 한명만 빼고는 모두 총각이거든요." 두 소녀가 피식 웃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젊은이는 누군데 그들의 몸 값을 지불하겠단 말인가?" "헤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내 부합니다. 창피스럽게 잡힌몸이 되었지만 표시를 해두어 내가 찾아올 수 있었어요." 할머니는 도일봉이 잡혀온 자들의 우두머리란 말에는 별 방응이 없더니, 오는길에 표식이 남아 있었다는 말에는 두 소녀를 바라보 았다. 분명 질책의 뜻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가 다시 도일봉을 바 라보았다. "몸 값을 내겠다고 했는데, 얼마를 내겠는가?" "얼마를 원하는지 내가 알게 뭡니까? 할머니가 값을 불러야지요?" "한사람에 천냥씩만 내게." "엥? 천냥씩이나요? 어이쿠, 정말 비씨기도 하구나! 그럼 팔천냥 이나 되는 거금중의 거금인데...내가 그만한 돈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지. 시간이 바쁘니 덤테기를 쓰 라면 써야지!" 도일봉은 품 속에서 가죽주머니를 꺼내 탁자위에 와르르 쏟아놓았 다. 반쩍거리는 보석들이 얼마간 있었고, 흑진주와 호랑이 발톱등 이 있었다. 세 여인은 주머니에서 이런 물건들이 쏟아지자 눈을 크 게 떳다. 도일봉은 그중 호랑이 이빨들을 골라 주머니에 다시 넣었 다. "이 호랑이 이발과 발톱들은 귀한 것이긴 해도 할머니는 흥미가 없을테고...하나 둘 셋....아이쿠! 모자라군, 모자라. 한 육천냥은 되겠는데요? 아참. 그들 주머니에도 얼마간 있을테니 그것을 합치 면 얼추 계산이 맞겠네요. 내가 지닌건 이게 전붑니다." 할머니는 물끄러미 도일봉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 눈에 어려 있었다. 다짜고짜 남의 소굴에 배짱도 좋게 찾아온 것도 그렇고, 두려운 빛도 없이 순순히 몸 값을 내 놓는것도 수상했다. 더욱이 이런 거금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자체가 아무래도 꺼림찍 했다. 잡혀온 자들중 제법 부유하게 자란 듯 보이는 자가 있긴 했 지만 이런 거금을 선 듯 내놓을 줄은 몰랐다. 할머니는 도일봉을 떠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잡힌 사람들 몸에 있는 것들은 몸 값이 될 수 없네." "헤헤. 할머니가 이제서야 장사하는 요령을 기억해 내셨군요. 어 찌되었든 그들을 풀어주세요. 정 몸 값을 받아 내셔야겠다면 돌아 오는 길에 나머지를 전해주리다. 못 믿겠다면 차용증이라도 써 드 리지요." 두 소녀는 도ㅇ종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비웃었다. 할머니가 말 을 이었다. "젊은이를 어찌 믿겠는가? 안오면 그만인데?" "나는 낙양 사는 도일봉 입니다. 유명한 이름은 아니어도 인근에 선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남들은 다 알아도 이 늙은이는 젊은이를 모르네." 도일봉의 입술이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이 도일봉을 못 믿겠단 말이지요? 좋습니다!" 도일봉은 갑자기 꽝 탁자를 내리치며 호통을 내질렀다. "흐응,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 여기서 결판 을 내봅시다. 내가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나를 무시하는데야 더 참을 수 없는 일이야. 한판 해봅시다!" 할머니는 정말 당장이라도 죽봉을 들어 후려칠 것 같은 도일봉을 멀둥이 바라보았다. 어찌 처리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협박을 해보겠다고?" "제기랄. 누가 협박을 한다고 그래? 협박은 오히려 할머니가 하고 있는 것 아뇨?" 사람을 잡고 몸 값을 요구하는 쪽은 노파 쪽이다. 할머니가 고개 를 저으며 차분히 말했다. "내 젊은이의 결기를 봐서 참기로 하겠네. 매(梅)야. 손님에게 차 를 대접하거라." 도일봉에게 검을 들이댔던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주방으로 향했 다. 도일봉은 일이 잘 풀리겠다 생각하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름들이 모두 이상야릇 하구만. 이름이 또 매야? 매와 죽이 라..." 어이쿠, 이런! 그렇구만.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 子)로구나. 거참 신기한 이름들인걸!" 할머니와 소녀는 빙긋 웃을뿐 말하지 않았다. 잠시후 매라는 소녀 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가져왔다. 향기가 좋다. 도일봉은 차 를 받아 후루룩 한모금 마셔보았다. "아하. 차 맛이 아주 좋구나! 내 전에 강남에서 용정차(龍井茶)를 마셔보고 감탄을 했더니만, 이 차 맛도 그에 버금가는걸. 쌉쌀한 맛도 잇고, 이 달짝지근한 맛은 또 뭘까? 차 이름이 뭡니까?" 매가 코웃움을 쳤다. "몽향차(夢香茶)라는 것이다!" "몽향차라? 차 이름도 이상한걸?" "이상할 것 없다. 이름 그대로 차를 마시면 꿈을 꾸게 될게다." "꿈을 꾼다고?" 도일봉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차 안에 몽혼약(夢昏藥)이 들어있네. 자네 신분을 확인해 보고 풀어주도록 하지." "몽혼약? 그건 흑점(黑店)의 도둑들이 나그네들의 정신을 잃게 만 드는 약인데...?" 매가 깔깔 웃움을 터뜨렸다. "멍청하긴 소를 닮았구나! 어서 쓰러져라!"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도일봉은 머리가 띵 한 것을 느꼈다. "어이쿠, 어지러워라! 아이고, 머리야! 이 고약한 할망구가... 정 말 못씁 계집들이구나! 계집들이란 그저 늙으나 젊으나 똑같아! 에 라이, 이거나 먹어라!" 도일봉은 죽봉을 들어 할머니의 머리통을 노리고 후려갈겼다. 할 머니가 피하는 틈을 노려 몸을 비틀 거리면서도 문 쪽으로 달렸다. 도일봉은 먼저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밖에 있던 두 소녀가 앞을 막자 도일봉은 죽봉을 풍차처럼 돌리며 달려나갔다. 미친 듯 휘두르는 죽봉에 밀려 소녀들이 물러섰다. 저 쪽에서 장군이 콧바람을 불며 목책을 넘어 달려왔다. "장군, 빨리와라! 난 큰일났다!" 매는 달려오는 말이 보통 아님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말을 막아라! 못 오게해!" 그녀의 호통에 구경만 하고 있던 여인 졸개들이 우루루 달려나가 장군의 앞을 막았다. 장군이 마구 날뛰며 졸개들을 위협했다. 도일 봉은 장군 쪽으로 달렸다. 소녀들이 앞을 막았다. "이 계집들. 저리 못비켜! 장군...장군...나는..." 얼마간 날뛰던 도일봉 결국 버티지 못하고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못된...할망구..." 그리고는 끝내 고개를 떨구며 기절하고 말았다. 장군만 사납게 날 뛰고 있었다. 소녀들은 졸개 둘을 불러 도일봉을 옮겼다. "아이고, 머리야..." 도일봉은 머리가 뽀개지는 통증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 뿐이었다. 벽 한쪽에 뚫려 있는 손바닥 만한 구멍을 통해 어스름한 달ㅂ이 비쳐들었다. 어디 골방에라도 갇친 모양이 다. "못된 할망구. 빌어먹을 계집들! 아이고, 머리야..." 도일봉은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어 정십을 수숩하고 몸을 살폈다. 상처는 없었다. 죽봉과 장군전등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들이 없어 졌다. 도일봉은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를 더듬었다. "멍청한 계집들. 화사는 찾지도 못했군!" 허리띠 안쪽에 감겨 있는 화사는 그대로 있었다. 화사가 있는이상 두려울 것도 없다. 자신을 얻은 도일봉은 밖을 향해 악을 썼다. "계집애들아. 물을 마시고 싶다. 모조리 박살을 하기 전에 어서 물을 가져와!" 도일봉의호통에 손바닥만한 구멍이 열렸다. "이놈아, 잡혀있는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혼나기 전에 얌전히 있어!" 구멍을 통해 여인의 얼굴 반쪽만 보였다. "쳇. 이곳 계집들은 인정머리라곤 찾을길이 없구나. 물이나 다 오." "흥." 여인은 콧방귀를 뀌고 사라져 버렸다. 잠시후 다른 여인이 고개를 디밀었다. "흥, 그대는 잡혀 있으면서도 여전히 큰소리만 치는군요?" "아하. 주근깨 아가씨, 연화였군! 그대가 날 생각해서 물을 가져 다 줄 줄은 몰랐는걸?" "누가 그대를 생각해 준다고 그래요? 더 떠들면 물을쏟아버릴 테 예요!" 도일봉은 얼른 물그릇을 가로챘다. "좋아. 잠시후 그대의 볼기만은 치지 않을게. 가서 그 할망구에게 전해. 날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말라고!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이 곳을 아에 개박살을 내겠다고 전하란 말야. 어, 시원하다. 물 맛은 좋군!" "그대는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잊었나요?" "안이나 밖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지. 아참, 장군은 어때? 검은 말 알이야?" "말은 도망갔어요. 허풍좀 작작 떨어요. 흥!" 연화는 코웃움을 치며 가버렸다. 한참을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 었다. 화가 치민 도일봉은 마구 욕을 해대며 문을 걷어찻다. 밖을 지키고 있는 여인이 소리쳤다. "이 녀석아, 조용히 못해! 정말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어?" 도일봉은 더 참지 못하고 화사를 싹 뽑아들었다. 웅웅웅. 손에 힘을 주자 흐느적 거리던 화사가 빳빳이 고개를 처들며 울움 을 토해내었다. "계집애들아. 두 쪽으로 잘려나가고 싶지 않으면 저만큼 물러서 라. 에익!" 도일봉은 단단하기 이를데 없는 참나무 문짝을 향해 화사를 내리 쳤다. 참나무 문짝이 싹 갈려 나갔다. "에익. 애익!" 한 번 두 번, 화사를 내리치자 참나무 문짝은 마치 종잇장처럼 찢 겨나가기 시작했다. 꾸당탕! 마지막으로 도일봉은 찢겨나간 문짝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문짝 이 떨어져 나가고 밖을 지키고 있던 두 여인이 너무 놀라 입만 크 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일봉은 화사를 허리에 두르고 재 빨리 달려들어 두 여인의 검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두 여인의 엉덩이를 때렸다. 찰싹찰싹! "엄마야!" "아이고, 아야!" 두 여인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지르며 뺑소니 쳤다. "금방 얻어 맞을걸 왜 말을 안들어? 핫핫핫." 도일봉은 껄껄 할머니의 거처 쪽으로 뛰었다. 얻어맞은 엉덩이를 비비며 도망치던 두 여인이 그때서야 소리쳤다. "저놈 잡아라!" "저놈이 도망친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도일봉은 그들에겐 싱경쓰지 않 았다. 어둠속을 달려 할머니 거처로 뛰어들었다. 뛰어들기도 전에 매난국죽 네 자매가 앞을 막았다. 도일봉은 빼앗은 두 개의 검을 뽑지도 않은체 네 자매를 향해 휘둘렀다. "요 못된 것들아. 이 도일봉은 빚을 지고는 못사느니라! 이젠 너 희들이 혼날 차례야. 에이, 못된 것들! 저리 안비켜!" 자매들이 나서기도 전에 달려온 남녀들을 덤벼들었다. 도일봉은 쌍검을 마구 휘두르고, 양발을 풍차처럼 돌려 후려차고 걷어찼다. 사람들은 성난 표범같은 도일봉의 기세에 이리저리 얻어맞고 나가 떨어졌다. "물러서라!" 매는 졸개들이 도일봉의 생대가 되지 못함을 보고 뒤로 물렸다. 졸개들은 특사라도 받은 듯 재빨리 물러섰다. 매는 동생들과 함께 검을 뽑아들고 도일봉을 애워쌌다. 도일봉이 어떤 방법으로 빠져 나왔는지 궁굼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은 게로구나!" "요런 못된 것! 오냐, 나는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다.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죽이는지 내 끝내 겪어봐야 하겠다. 요것들이 한 수 접어두고 상대했더니 아예 날 가지고 놀려들어? 나는 하나를 받으 면 열을 돌려주는 사람이니라! 다리 하나쯤은 부러뜨려라 내 화가 풀리겠어!" 매는 성난 표범처럼 무작정 달려드는 도일봉의 기세에 놀라 다급 하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세 자매가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가 이내 한명씩 방향을 점하고 대들었다. 도일봉은 양 옆과 뒤의 공격 때문에 매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일봉은 뒤로 한발 물러서 며 허리를 꺽었다. 뒤쪽의 검이 허리를 스쳐 지났다. 도일봉은 쌍 검을 양쪽으로 휘둘러 양 옆의 검들을 처냈다. 양 옆의 자매가 부 딪치지 않고 물러섰다. 앞 뒤의 자매들이 한발 다가서며 검을 찔렀 다. 양 옆을 신경쓰고 있던 도일봉은 하마터면 오른쪽 옆구리를 찔 릴뻔 했다. |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요감사해요~^^
즐독입니다
잘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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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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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atkgkqsl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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