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讀讀 폴 투르니에, '모험으로 사는 인생'
@안전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의미를 따라 모험할 것인가?
모든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검증된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안정된 울타리 안에 머무르는 삶은 '안전'하다.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하지만, 폴 투르니에는 '안전'이야말로 사실상 가장 위험한 '인생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삶, 예측가능한 것들만 선택하며 도전따위는 늘 넣어두는 삶,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는 삶은, 결국 "살아보지 못한 삶"이라는 가장 큰 실패로 귀결된다.
삶의 위험을 피하려다 삶 자체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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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마주하며, 그가 발견한 인간 고통의 근본적 근원은 다름아닌 '의미의 상실'이었다. 이에, 투르니에는 독자들을 향해 정면으로 묻는다. 당신은 예측 가능한 '안전'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하더라도 가슴 뛰는 '의미'를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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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가능한(아니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투르니에는 그러한 삶을 '살아있음'이 아닌, 그저 '기능하는' 상태로 본다. '기능하는 상태'의 삶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지는 몰라도, 그 자신의 고유한 생명력은 꺼져가고 있는 비극적 상태의 삶이다.
그저 '기능하는' 기계적 삶을 벗어나 진정으로 '살아있는' 한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 투르니에가 제시하는 처방이 바로 '모험'이다. 여기서 모험이란 무모한 도전 혹은 거창한 탐험이 아니라, '의미'를 향한 용기있는 응답이다. 내면의 목소리가 "이 길이 맞다."고 속삭일 때, 비록 그 길이 낯설고 위험해 보일지라도 용기를 내어 발을 내딛는 결단 말이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다시 용기내어 사랑하기를 선택하고,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길임을 알면서도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투르니에가 정의하는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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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검증된 '안전'이라는 성벽 안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의미'라는 나침반을 붙들고 예측불가능성과 위험으로 가득한 광야로 나아갈 것인가?
광야는 단순히 텅빈 곳이 아니다. 광야는 위험과 구원이 공존하는 곳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 길이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세례요한이 광야로 나갔던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참조: 폴라 구더, '광야의 의미')
'생명'과 그 생명을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신 창조자를 만나는 그 장소, 광야는 오직 '모험'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더 이상은 '기능하는 껍데기'로 살지 않겠노라 결단하는 이들은 광야로 향하는 '모험'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광야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창조자를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있음'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얼마전 우연히 추천받은 이 책으로 인해, 내 안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울렁임을 느낀다. '안락한 무덤'을 박차고 나와, 다시 넘어지고 또 실패하고 때로 상처 입을지라도, 기꺼이 '살아 숨 쉬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거침없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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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계속된다. 하나님은 곧 훨씬 더 위험한 모험을 하셨다.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이다. 즉 모험의 정신을 부여받은 존재, 모험을 사랑한 나머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창조의 완전한 질서를 뒤엎는 데까지 휩쓸려 갈 수 있는 존재를 만드신 것이다." (모험으로 사는 인생 中)
#모험으로사는인생 #폴투르니에 #살아있음_의삶 #기능하는_삶
권도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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