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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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의 안개낀 장충단 공원..
나의 오랜 애창곡이기도 하지만..
장충단공원은 젊은 시절 완성되지 않은 내 사랑의 무대이기도 했다...
몇년전 9월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걸려온 한통의 전화..
" 00 씨 되시죠? "
" 그렇습니다만..뉘신지요? "
"............ "
이렇게해서 30여년만에 만남의 약속이 만들어졌는데.....
30여년전
나는 제대후
다니던 직장에 복직원 제출하고..
여기저기 다른 곳에도 기웃기웃하며 땀 흘릴 때였다.
그러던중 어느 휴일.. 망중한을 달래려고 남산을 찾았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었고..
나!..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연애 한번 안하고 고뇌하던 청년..
그 청년이 장충단공원 인근에서 뒤늦게 한 여인을 알게된 것이다.
미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상냥하고,그저 술 잘하고 시원시원 말 잘 통하던 여인..
그후 그녀와 나는 장충단 공원, 남산, 대한극장,빵집 ,족발집을 전전하며
시간만 되면 마음을 나누고..아무튼 여자를 모르던 내가 갑자기 그냥 설레움으로 들뜬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달후 그녀는 부모를 따라 외국으로 떠나고...
그러니까 초가을에 만나 눈내리던 년말에 눈을 맞으며 헤어져야했으니.....
년말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타고 내리는 눈은
내 허망한 눈속을 파고들어 외부로 분출되지도 못하고..
그냥 마음속 깊이 용해되어 그렇게 잠겼다.
그후..
나는 전처럼 다시 고독한 청년으로 덩그러니 남겨졋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그러면서 이제 30여년이 흘렀는데..
이런 오묘한 날이 찾아오다니...
그 여인과 만나기로 한 날..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설레이는 마음에 남산 인근 약속장소로 간다.
그런데 설레임으로 너무 일찍 나갔는지..두시간 가까이 공원 일대를 서성거렸으니..
장충단공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함이 없어 보인다.
초가을이지만 늦더위로 공원 나무그늘 아래 6070으로 보이는 노인 대여섯분이
장기를 두며 더위를 피해 있었고..마침 장기 고수인 나도 옆에서 한참 구경하며 긴장감을 풀고 있는데..
그때 문자메시지가 왔다.
내게 설레임 안겨준 그여인의 문자메시지다.
아~~그리움,설레임으로 조급한 마음에 덜렁대다 그만 전화기 땅에 떨어진다.
그런데 이게 불길한(?) 전조임을 알턱 없는 나!
아니나다를까..
"곰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만나지않는게 좋겠다"는 요지의 내용..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아니다..나답지 않다.
묘한 기분에 밖으로 나와
맥없이 공원주변을 걸어본다.
그리고..그날..
나는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 한구절을 반복 암송하며
장충단공원을 맴돌고 또 맴돌았다...
.
.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에 호숫가 가을에 공원
그 벤취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1956년 3월 시인 박인환님은
"세월이가면"을 남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저는 이 세상에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첫댓글 저의 유일무이한
사랑 비스므레한 이야기입니다
지난번 올린 장충체육관에 이어
장충단공원 신라호텔 국립극장 남산에 오른후 하산하면서
반대편 대우빌딩으로..그리고 길건너 어느분이 글에 올린 청파동쪽으로
추억따라 노래따라 쭈욱~ 한번 여행해 볼까 합니다
에효 진짜로 만나나 가심이 벌렁벌렁했건만 ㅎㅎ
약속날자까지
몇일은 최상의 기분..
그기분 말로 표현 안됩니다..ㅎ
그렇지요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지요
이제
기억하려 해도 가물가물
길거리에서 만난다해도
서로 몰라 보고
비껴가겠지요
그래서
닉이
가을이 오면 인가요?
아릿한 추억을 소환해 온 글
잘 읽었습니다 ㆍ
.
이때쯤이면
지난 로맨스 몇편 올라와야하는데..
찾아봐도 안보여 구닥다리 하나 올려 봅니다.
확실히 10년전 카페보다는
평균연령이 높아졌나봐요..ㅎ
젊은 날 한때 인연이 되었던 여인을 70이 다되셔서 만난다니 얼마나 설레셨을까요
피천득님의 인연에도 아사꼬와의 두번째 만남은 안만나는게 더좋을뻔했다고 나옵니다
세월이 가면 올려드립니다
https://youtu.be/-FoGaP0pjCY?si=pFr-wG5cpAxXEffu
PLAY
10년전쯤 이야기입니다
만난 건 아니고 불발탄이죠..
이때쯤이면 사랑이야기 많이 올라오는데..
올해에는 이런 이야기 안보여 하나 올려봤습니다.
매번 음악선물
감사합니다.
과거의 여인은 안 만나는게 좋다고들 합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과거의 여인을 헤어진지 16 년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과거의 추억 이야기를 해도 해도 한이 없습디다
물론 미모는 나이가 들어서 많이 줄어 들었지만
과거의 추억은 아름다웠구 그 추억은 우리들의 것 이었습니당
내 경험 이었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태평성대님에게는
특별히 만남의 약속 이뤄졌나 봅니다.
그게 다 평소 태평성대님 실천하신 인덕의 결과 같군요..부럽습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어도
그때의 여운은 제 마음속에
늘 따뜻하게 자리하는거 같습니다.........
애틋한 옛사랑의 기억을 올려주셔서 이 아침에 마음이 덩달아 말랑말랑해집니다. ^^
그 추억 속의 사랑을 훗날 안 만나셨으니 이런 글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달콤쌉싸름한 일체의 감정이 다 건조되고 휘발된 오늘날 이 시점에
모처럼 고운 글로 마음 정화하고 갑니다. ^^
아휴..표현이 참 말랑말랑합니다..ㅎ
우리네 삶이 무슨 일을 하더래도 말랑말랑해야
연착륙도 가능하겠고 온기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 잠시 해봅니다.
제가 따라갈 수 없는 섬세하고 고운 감성 표현에 저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네요.
달항아리님..오늘 하루도 따뜻한 온기로 마감하시고 편안한 저녁시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배호님 시 속에 등장하는 박인환님 좋아하는 분들인데 특히 박인환 시인의 생전 에피소드 듣는 걸 좋아 하지요 배호님 생전은 너무 슬픔으로 점철 되어서 우울하지요
멋진 시 세월이 가면 음미합니다.
박인환님..
사실 제가 시를 좋아하지도..알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몇몇 시를 좋아하고 기억하는데..그중 하나가 세월이가면" 이랍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여러 에피소드 남긴 박인환님과 그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운선님..
운선님에게도 먼훗날 후배들이 운선님을 추억하며 스토리텔링 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도록 오늘도 내일도 잘 살아주시리라 믿습니다.
20여년 전,
저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설레임 또한 비슷했었던 것 같아요.
다만 두 손을 마주 잡았으니 가을..님에 비하면 해피엔딩..ㅎ
그런 추억 하나 가지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ㅎㅎㅎ
그러셨군요..해피엔딩..ㅎ
예비백수님 지난 일이 왠지 제일처럼 즐겁네요.
하지만 저도 그때 여운이
잔잔히..그리고 따뜻하게 마음 속에 자리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