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글을 읽었으니까. 머리도 식힐 겸 가벼운 글, 저의 수필을 한 편 올리겠습니다.
오댕
이동민
퇴근 길에 길가에 있는 포장마차를 보았다.
겨울이 되어서 그런지 도로변에는 포장마차가 눈에 많이 뜨인다. 오뎅을 삶는 작은 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사먹는 고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린 학생이 대부분이다. 내 식성이 비릿한 냄새가 나는 생선을 싫어하는 편이라 생선가루를 넣어 만든 오뎅의 삶은 국물보다는 적당한 양념을 곁들인 된장 국물이 뱃속을 더 편하게 해준다. 그래서 오뎅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추억 하나가 나를 붙잡는다.
내가 결혼하고 신접살림을 차린 곳은 기억자 한옥의 단칸 방이었다. 하기야 거지꼴이나 다름없던 그때 무슨 용기가 나서 결혼할 마음을 내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집은 장가를 들여 전셋집이라도 얻어 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값이 싼 삯월세 방을 찾다 보니 그런 단칸 방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소꿉장난을 하듯, 연탄 부엌에 냄비 밥을 짓고 된장 찌개를 끓여서는 찻상이나 다름없는 조그만 밥상에 달랑 얹어서 방에 갖고 왔다. 아내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이 그냥 재미가 있었다. 겨울 긴 밤에 이불 밑으로 파고들었어도, 문틈으로 들어오는 한기가 선뜩선뜩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긴 밤에 아내는 외투를 걸친 체 찌그러진 작은 함석 냄비를 들고 대문을 밀치고 나섰다. 골목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큰 길이 나온다. 큰 길 가에서는 저녁마다 포장마차가 나와서 장사를 하였다.
아내가 포장마차에서 사오는 것은 꼬치에 꽂혀있는 오뎅이었다. 국물까지 얻어서 냄비에 담아 왔다. 그리고는 연탄불 위에 얹어서 뜨끈하게 끓인 후에 방으로 갖고 왔다. 오뎅을 덥썩 덥썩 베어 먹고는 국물을 후루룩거리면서 마시던 맛이 자꾸 머릿속에서 그림이 되어 떠오른다.
어떤 날은 내가 그 함석 냄비를 들고 오뎅을 사러 가기도 하였다. 먼저 온 손님이 있을 때는 추위에 동동거리면서 한참이나 기다렸다. 그 해 겨울의 밤에는 오뎅을 사러 냄비를 들고 나선 일이 유독 많았다. 겨울 밤이 길어서 일까. 그해 겨울에는 아내가 왜 그렇게 오뎅을 많이 찾았을까.
그 후에 큰 병원에 근무하면서, 병원 사택에서 살 때는 오뎅을 사러 집밖을 나선 일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해의 겨울 밤에는 오뎅을 사러 나선 일은 없었으니 그냥 지나가는 삶 속에서 잠깐 추억거리로 남아 있는 작은 일이었을까. 그때 무슨 이유에서 입맛이 유난하였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지냈는데, 이제 생각하니 그때가 우리 큰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연탄 냄새로 머리가 지끈지끈했던 샛방의 좁은 부엌, 씽씽대던 바람 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이불 밑으로 파고 들면 몇 번이나 세수를 하라고 다그치던 아내의 목소리, 아내가 퇴근하면서 동네 시장에 들려 사오던 배추나 시금치 그리고 콩나물이 한 웅큼도 안 되었다. 도무지 가정을 꾸리고 살림을 한다는 기분이 안 나던 시절, 그래도 마음은 백만 부자가 되어 출근길에 택시라도 탈라치면 돈이 아깝다고 옷소매를 붙잡으며 눈흘김을 보내던 아내의 얼굴, 잔소리라며 싫어하였던 나, 왠지 오늘따라 그때가 유난히 그립다. 단칸방 시절이 고생스러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나를 만나는 사람은 나의 단칸방 시절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아이구 선생님쯤 되면------, 라며 말꼬리에 남기는 여운이 아파트 정도에서 신접을 시작하였으리라는 믿음같은 것을 풍긴다.
얼마 전에 모임이 있어서 일본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꾀나 비싼 집이라는 음식점에 들린 일이 있었다. 생선을 싫어햐여 일본식 음식점에는 잘 들리지 않아서인지 낯설다. 내 고정관념 하나가 여기서 깨어졌다. 긴이 음식 정도로만 생각해온 오뎅이 아주 비싼 가격으르 필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갖가지 재료들로 장만하였고, 온갖 양념들도 곁들여졌다. 색깔도 울긋불긋하여 대나무 꼬지에 꽃혀 있던 포장마차의 오뎅과는 보기만으로도 달랐다. 우선 눈맛부터 군침이 돌았다. 내가 더 놀란 것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표였다. 이렇게 비싼 돈을 지불하고 먹는다는 우쭐한 기분을 가격으로 나타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는 이렇게 비싼 오뎅을 먹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면서 입 밖으로는 그런 말을 꺼니지 않았다.그런 말을 하면 촌띠기로 보일 것 같아서 였다.
비싼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 정신적으로 우월감을 느끼므로 얻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함석 냄비를 들고 포장마치에 가서 사오던 오뎅맛에서 느꼈던 행복감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함석냄비에 담겨있던 오뎅이 주는 행복감이 훨씬 더 값지다는 내 생각이 바뀌지는 않으리라.
길에 서서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를 바라보며 멍한 생각에 젖어 있는 사이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이 포장마차의 천막 틈새를 타고 밖으로 퍼져나간다.
(*1994년에 발간한 첫 수필집 ’떠내려간 고향‘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