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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화도는 해양 능력이 강한 고려의 외교에 유리했다. 강화도는 다양한 항로를 이용해 동아시아 어떤 지역과도 방해받지 않고 교류할 수 있었다. 특히 몽골의 적대국인 남송과 무역, 우호관계 등을 추진해 몽골에 외교적 부담을 주고 군사력을 분산시키는 데 유리했다.
넷째, 무신정권은 몽골 제국이 추진한 정복전쟁의 구도를 파악하고, 내부 혼란을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몽골의 대고려전은 세계 패권 전략과 정복전쟁의 일부였으므로 공격 시기와 규모 등의 판단과 계획은 처한 상황과 전체 계획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그래서 40여 년 동안이나 약체인 고려를 전면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무신정권은 이런 몽골 제국의 정책과 군사전략적 특성을 간파하고, 현실적인 한계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칭기즈칸은 1207년 서하를 공격한 이후 1211년부터 금나라를 공격했고, 1215년에는 수도인 연경(베이징)을 함락하고, 이어 고려를 침입했다. 1221년에는 헝가리와 폴란드를 침공했다. 1231년(고종 18년) 8월에는 사리타이가 고려를 침공했다가 강화로 천도한 해에 용인전투에서 전사했다. 몽골은 1233년 만주를 장악했고, 1234년 1월에는 금을 멸망시켰다. 1236년에는 발트해까지 진격했고, 폴란드 왕국을 공격했다. 1240년부터는 러시아 전토를 지배했다. 1252년에는 아랍의 압바스 왕조를 멸망시키면서 이란 이라크 지역을 점령했다. 1258년에는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이듬해 ‘일한국(Il Khanate)’을 세웠다.
이 거대한 대전투는 모두 강도정부 시절 발생했다. 거대한 전쟁 속에서 몽골에 고려는 금나라와 송나라의 배후세력이라는 지정학적 가치가 있을 뿐 군사전략상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 몽골 군대가 고려와 벌인 아홉 번의 전투는 정부 없는 나라를 약탈하는 수준이지, 본격적인 전쟁은 아니었다.
더구나 몽골은 1259년 몽케 대칸이 남송을 원정하는 도중에 죽자 내분과 혼란에 빠졌다. 결국 동생인 쿠빌라이 칸이 뒤를 잇고, 1271년 국호를 원으로 개칭했다. 그 과정에서 고려는 쿠빌라이의 편을 들어 외교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본다. 그 결과 유리한 조건으로 1270년 개경으로 돌아가고 항복해 쿠빌라이의 부마국이 됐다.
군사력을 갖추고, 국제질서의 상황을 간파해가면서 유연성과 배짱을 겸한 고려 무신정권의 외교 전략은 현실감이 부족한 지금의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옮김)
#한국사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