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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 (14)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 (롬8:1-17)
(부제; 성령 안에 있는 자의 자유와 하나님의 아들됨)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주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의 처절하고도 가슴 아픈 영적 갈등을 목격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이 고백은 비단 바울만의 탄식이 아닙니다. 거룩한 율법 앞에서 날마다 넘어지고, 죄의 중력에 이끌려 절망하는 우리 모두의 비명이었습니다.
내 힘과 결단으로는 결코 죄를 이길 수 없다는 절망의 막다른 골목, 그것이 7장의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한 로마서 8장은 완전히 다른 공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7장이 어두운 밤하늘의 ‘탄식의 장’이었다면,
8장은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성령의 승리의 장’입니다.
7장에는 무력한 ‘나’라는 단어가 지배했지만,
8장에 들어서면 위대한 ‘성령’의 이름이 매 구절마다 메아리칩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사의 핵심입니다.
인간의 몸부림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고 우리 안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 오늘 말씀은 단순히 “착하게 삽시다”라는 도덕적 훈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위대한 승리가,
오늘을 사는 우리 삶에 어떻게 성령을 통해 실제가 되는지 선포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진 구속이 성령 안에서 어떻게 우리 삶 속에 적용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1–4절)
■ 법정의 선포: 영원한 무죄
보십시오. 1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1:1)
“그러므로 이제”라는 단어에 담긴 무게를 느끼십니까? (1-7장 내용전체)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고, 율법의 엄중한 심판대 앞에서 영원한 사형 선고를 기다리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온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께로 옮겨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도 죄인 취급을 받으셨고, 그 결과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대속의 신비요, 복음의 정수입니다.
/여기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우주적 법정에서 내려진 ‘영원하고 최종적인 무죄 선언’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과거를 들추며 참소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외모와 조건으로 정죄합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 정죄의 감정에 갇혀 살곤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온 우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너는 의롭다” 하셨는데, 그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구원은 요동치는 우리의 감정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법적 선언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2절은 그 해방된 것에 대한 근거를 설명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 ‘죄와 사망의 법’은 인간을 죄로 이끌어 결국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죄의 절대적인 지배력과 강제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죄는 인간을 묶어 둡니다.
그래서 과거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이라는 거대한 중력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절대적인 권능과 다스림인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양력의 법칙을 이용해 중력을 이기고 하늘로 솟아오르듯,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짓누르던 죄와 사망의 권세(죄와 사망의 법)를 깨뜨리고 우리를 날아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처럼,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었듯이, 성도는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옮겨졌습니다.
구속사는 “해방의 역사”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압제에서 영원히 빠져나왔듯,
우리는 성령 안에서 완벽한 자유인으로 해방되었습니다. 할렐루야
3절과 4절은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밝힙니다.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절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 즉, 인간은 연약하고 죄성이 있어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하 하나님은 죄 없는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십자가에서 그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이제 성령(영)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은 율법의 억지 의무가 아니라, 사랑과 은혜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율법의 요구)을 성취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십자가는 부드러운 사랑의 감상주의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와 심판이 집행된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대충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무서운 죄의 대가를 당신의 아들에게 고스란히 쏟아부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고,
이제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그 의로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복음은 단순히 ‘지옥 면제권’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전에는 죄를 사랑하던 우리가, 이제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삶의 혁명’입니다.
2.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 (5–11절)
바울은 이제 우리가 살아갈 두 가지 삶의 방식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5절“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절“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삶
(5절) 육신의 일을 생각함 (세상중심) (6절) 결과는 사망입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통치를 거부함)
성령을 따르는 삶
(5절) 영의 일을 생각함 (하나님중심) (6절) 결과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부활의 소망)
■ 마음의 지향성이 결론을 만듭니다.
5절과 6절에서 말하는 ‘생각’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깊은 지향성, 영혼이 닻을 내리고 있는 방향’을 뜻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없는 삶의 자리입니다.
인생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두고, 세상의 안목과 정욕을 채우는 데 온 마음을 쏟는 삶입니다.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그 길의 끝은 결국 허무와 ‘사망’입니다.
반면, 영의 생각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주파수를 맞추는 삶입니다.
나의 관심이 하나님 나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 삶의 열매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참된 평안은 환경이 편안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우리 영혼에 강물처럼 흘러드는 줄 믿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계십니다.
7-8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7절과 8절이 지적하는 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가 왕 노릇 하려는 태도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9절은 선포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성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직분입니까? 모태신앙이라는 경력입니까? 화려한 종교적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는가’ 입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죄의 흔적으로 인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생명입니다.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그 성령께서 장차 우리의 죽을 몸도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혼의 구원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의 부활까지 포함하는 우주적이고 완전한 구원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오늘을 이길 소망을 얻습니다.
3. 우리는 은혜에 빚진 자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12–17절)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우리는 죄에게 빚진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과분한 사랑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살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여전히 영적 싸움은 존재합니다.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죄의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내 안의 성령을 의지하여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성화는 죄와 대충 타협하는 삶이 아닙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죄는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갉아먹습니다.
날마다 성령의 거친 검을 들고 죄를 죽여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신분의 변화: 무서워하는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녀로
15절은 우리 신분의 거대한 변화를 선언합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구약의 종들은 주인 앞에서 늘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했습니다.
‘혹시 잘못하면 쫓겨나지 않을까, 매를 맞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아바(Abba),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성경에 총 3회 언급)
/로마서8장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4장 6절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마가복음 14장 36절
이르시되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아바(Abba) 는 당시 유대인들이 쓰던 아람어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아빠'라는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두려움이 지배하는 법적 관계가 아닙니다.
결코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이 지배하는 가족 관계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질 때도, 낙심하여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과 더불어 세밀하고 분명한 음성으로 증언하십니다. “낙심하지 마라, 너는 여전히 내 사랑하는 자녀다.”(16절)
4. 로마서 8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특권은 무엇인가? 4가지
첫째,. 두려움 없는 정죄의 해방 (자유함)
자녀는 더 이상 심판이나 벌을 두려워하는 ‘죄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립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둘째,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친밀함 (기도의 특권)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어린아이가 부모를 부르듯 ‘아빠(아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자녀임을 끊임없이 증언하시며,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아픔 속에서 신음할 때도 성령님이 친히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십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
세째,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는 '상속자' (영원한 기업)
자녀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하늘의 유업을 물려받을 자격을 얻은 ‘공동 상속자’가 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7)
네째, 끊어질 수 없는 완전한 보호와 사랑 (영원한 안전)
세상의 그 어떤 고난이나 박해, 심지어 죽음이나 천사나 권세자라도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의 모든 삶을 간섭하셔서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 성도에게는 영광을 위한 고난의 신비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7절은 자녀 된 우리에게 주어질 놀라운 특권을 말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7)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기업을 물려받을 왕 자(녀)요, 상속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상속자의 조건에는 한 가지가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고난’입니다.
우리의 큰형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신 후에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셨습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이라면, 그분의 몸 된 교회의 길도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진짜 자녀라는 가장 확실한 훈장이자 표지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No cross, no crown)은 없습니다.
비록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이 고달프고 눈물 날지라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하늘의 영광은 지금 우리가 겪는 잠깐의 고난과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결론: 성령 안에서 사는 구속받은 인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8장 1절부터 17절은 죄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인간이 성령 안에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격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복음의 파노라마입니다.
우리는 본래 정죄 아래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으로 법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성령을 우리 마음에 등불로 켜주셔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정죄받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인하신 의인입니다.
죄와 사망의 종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인입니다.
영적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절망 속에 죽어갈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영광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는 과거의 죄책감에 묶여 육신을 따라 살지 맙시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성령을 따라 걸어갑시다.
비록 우리가 때로 연약하여 쓰러질지라도,
우리 안의 성령께서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이 위대한 성령의 승리를 날마다 삶으로 살아내시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