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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 장로교 디모데 복음 교회(R.P.Timothy Gospel Church 원문보기 글쓴이: 나랑카
제1장 세계교회협의회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지금은 신앙 교리적으로, 도덕 윤리적으로, 사상 이념적으로
다방면에서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한 말세지말입니다.
비성경적 연합운동(Un-Biblical Ecumenical Movement), 비진리와 타협하는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 신오순절운동(Neo-Pentecostal Movement, 은사운동),
열린예배(Seeker's Service, 타락된 예배), 온갖 이단 시조들(Trends of Hereses) 등
우리의 고귀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 불초의 저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실상을 밝힌다"가
바른 신앙의 한 지침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저자 : 조영엽 박사 (전, 국제기독교연합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총재 Carl McIntire 박사 보좌역)
1. 오이쿠메네
(Ecumenical; 에큐메니칼)
1) 오이쿠메네의 어원적 고찰:
오이쿠메네(oijkoumevnh ; one world; 한 세계)는 오이코스(oijko" ; a house; 집)와 메노(mevnw ; to abide; 거(居)하다)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한 집 또는 한 세계(one world)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현대적 의미는 2교회 또는 2교단(교파) 이상의 일치 연합을 뜻한다. 이러한 일치 또는 연합운동을 영어로는 에큐메니칼 운동(Ecumenical Movement)이라고 한다. 전(全)세계 자유주의 교회들의 연합단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일치(연합)운동의 본산지이며, 본거지이다.
2) 신약성경에서의 오이쿠메네
영어의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헬라어 오이쿠메네에서 인출되었다. 이 단어는 신약 헬라어에 15회(마 24:14; 눅 2:1; 4:5; 21:26; 행 11:28; 17:6, 31; 19:27; 24:5; 롬 10:18; 히 1:6; 2:5; 계 3:10; 12:9; 16:14) 기록되어 있다.
3) 오이쿠메네의 용법:
이 단어(오이쿠메네)는 몇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사람이 거주하는 온 세계, 온 땅(홀레 테 오이쿠메네; all the world, whole inhabited earth; 온 세계, 거주하는 온 땅, 마 24:14; 행 17:6; 19:27). 여기서 오이쿠메네는 '사람이 거주하는 온 세계, 온 땅'을 말한다.
② 온 세상 사람들(텐 오이쿠메넨; the world, god 17:31). 여기서 오이쿠메네는 '온 세상 사람들'을 말한다.
③ 로마 제국(파산 텐 오이쿠메넨; all the inhabited world; 사람이 거주하는 온 세계, 눅 2:1; 행 11:28; 24:5). 여기서 오이쿠메네는 '로마 제국이 점령한 온 천하'를 말한다.
④ 장차 올 세상, 세계(오이쿠메넨 텐 멜루산; world to come, 히 2:5). 여기서 오이쿠메네는 '장차 앞으로 임할 세계'를 말한다. 장차 올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므로 이루어질 메시야 시대(Messinaic age)를 말한다.
4) '오이쿠메네'의 현대적 의미: 두 교회 또는 두 교파 이상의 일치 ․ 연합을 말한다. 이 일치 ․ 연합 운동을 영어로는 Ecumenical Movement 라고 부르며,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이 오이쿠메네(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적 기구이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신앙고백이 일치하지 않는 교회들의 인본주의적․세속적․조직적․유형적․비성경적 연합운동이므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는 우리는 세계교회협의회와 그들의 연합운동을 반대하며, 반면에 성경이 교훈하는 성경적 연합을 강조한다.
2. 세계교회협의회 로고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로고(Logo)는 밑에서부터
1. 흉흉한 물결(wave): 갈릴리 호수에서의 풍랑
2. 배(boat):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탄 배
3. 십자가(cross):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상징
4. 오미쿠메네(Ecumenical): 연합․일치 등을 상징한다.
이 로고는 W.C.C의 간행물들, 문서들, 서적들, 기타 W.C.C.와 관계된 일체에 W.C.C. 로고로 사용한다.
3.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교세
① 분포도
세계교회협의회는 6대주, 7개 지역(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 유럽 중동, 북미, 오세아니아), 110개 이상의 나라, 349개 교단이 가입되어 있다. 저들의 주장에 의하면 세계교회협의회(W.C.C.)에는 5억 8천만(550 million) 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349개 교단을 지역별로 분석한다면 아프리카 27%, 유럽 23%, 아시아 21%이며, 28%는 개혁주의 전통계통, 16%는 루터파, 11%는 감리교이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및 정교회한국대교구 등 4개 교단이 W.C.C.의 정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산하 단체이다. 이 단체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측),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정교회한국대교구 등 8개 교단이 가입되어 있다.
② 다양한 교파들
세계교회협의회 안에는 20개 이상의 다양한 교파들(Church families)이 가입되어 있다.
1. 앵글리칸(영국 국교, Anglican)
2. 침례교(Baptist)
3. 형제교(Brethren)
4. 그리스도교(Church of Christ)
5. 제자교회(Disciple)
6. 성공회(Episcopal)
7. 복음교회(Evangelical)
8. 후스파(Hussite)
9. 독립교회(Independent)
10. 루터교(Lutheran)
11. 감리교(Methodist)
12. 메노나잇(Mennonite)
13. 모라비안(Moravian)
14. 초교파(Non-denominational)
15. 구(舊) 가톨릭(Old Catholic)
16. 정교(Orthodox)
17. 장로교(Presbyterian)
18. 퀘이커(Quaker)
19. 오순절교회(Pentecostal)
20. 개혁교(Reformed)
21. 왈도파(Waldensian) 등등이다.
③ 지역별 회원 교단 수 신도수
동방정교: %, 개혁파: 28%, 루터파: 16%, 감리교: 11% 순이다.
제2장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기원과 발달 과정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기원과 발달과정은 몇 개의 시냇물이 하나의 큰 강으로 흘러들어 온 모습으로서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세계교회협의회는 1800년대 후기와 1900년대 초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탄생한 선교단체들과 기독청년운동들에 의하여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19세기 기독청년면려회들과 교회연합체들의 탄생
많은 사람들은 1910년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Edinburgh)에서 모였던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를 자유주의자들의 세속적 연합 운동(Ecumenical Movement)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이 "세계선교대회" 이전 영국과 미국에서 다양한 교회 연합기구들이 탄생되었다.
1792년 "침례교선교협회"(Baptist Missionary Society)가 조직되었다.
1795년 "런던선교협회"(London Missionary Society)가 조직되었다.
1846년 영국 런던에서 "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ance)이 조직되었다. 이 회의에는 북미와 유럽에서 52개 기독교 단체로부터 800명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1867년에는 미국 지부가 조직되었다.
1844년 "기독청년면려회"(YMCA: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가 영국 런던에서 조직되었다. 이 단체는 대략 1870년부터 1918년까지가 가장 전성기였으며, 회중 교회의 조지 윌리암(George William, 1821-1905), 부흥사 D. L. 무디(Moody, 1832-1899) 그리고 기독청년면려회 총무로 오랫동안 일한 존. R. 모트(John R. Mott, 1865-1955) 등이 중심인물들이었다.
1851년 "기독청년여성면려회"(YWCA: 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가 영국 런던에서 조직되었다.
1895년 "세계기독학생연맹"(WSCF: World Students Christian Federation)이 조직되었다.
1875년 "개혁교회연맹"(Alliance of Reformed Churches)이 조직되었다.
1881년 "세계감리교협의회"(World Methodist Council)가 영국 런던에서 조직되었다.
1905년 "침례교세계연맹"(Baptist World Alliance)이 영국 런던에서 조직되었다.
1908년 "미국연방교회협의회"(FCC: Federal Council of Churches: NCCC 전신)가 미국에서 조직되었다.
이상 기독청년면려회들, 선교단체들, 교회협의체들은 1910년 "세계선교대회"(WMC)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탄생하게 되었다.
1.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
1910년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미국 감리교 평신도인 존 R. 모트(John R. Mott)의 활약으로 159개의 선교회들로부터 1,196명의 대표들이 모여 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하였다. 모트는 에딘버러 8개 분과위원회 중 한 분과위원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600명의 사람들에게 개별적인 질문을 담은 개인 서신들을 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하였던 대표들 대다수는 교회들로부터 파견된 것이 아니라 선교에 관심이 있는 교회의 중진들이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에딘버러대회에는 유럽과 북미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외의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은 겨우 17명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이 세계선교대회 결과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가 탄생되었다. 따라서 에딘버러대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탄생 장소로 일컫는다.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는 1921년 뉴욕 주 모혼크 호수(Mohonk Lake)에서 세계 선교에 관심 있는 미국 내 30개 지역 또는 전국 기독교 단체들이 올드함․모트․패톤(Oldham, Mott, Patton) 등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조직하였다.
국제선교협의회(I.M.C.)는 1961년 인도의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던 W.C.C. 제3차 총회시 W.C.C.에 흡수될 때까지 40년 동안 생활과 봉사, 신앙과 직제를 위시하여 국제적․국내적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한 많은 기구들이 탄생되는 데에 디딤돌이 되었다.
이 단체는 1928년에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1928)의 국제선교협의회는 1910년 국제선교협의회 창설 때와는 달리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인 복음과 교회의 연합 교회의 연합 및 교회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였다. 한국에서는 정인과 주일학교연합회 총무, 신흥우 YMCA(기독청년회) 총무, 김활란 이화여자전문학교 학감, 양주삼 NCC(한국기독교교회연합회) 회장, 윌리암 아터 노블(William Arthur Noble) 감리교 선교사 등이 참석하였다.
1938년에는 스페인의 마드라스에서, 1947년에는 위트비(캐나다 온타리오)에서, 1952년에는 윌링겐(서독)에서, 1958년에는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1961년에는 인도의 뉴델리에서 W.C.C. 제3차 총회시 W.C.C.에 합병되어 지금은 W.C.C.의 "세계선교․전도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로 되었다. 이 단체는 세계 최초의 에큐메니칼 기구이었다. 이 대회의 중요 인물들은 모트․올드함․윌리암 템플 등이었다. 그런데 모트와 올드함은 평신도들이었다. 에큐메니칼 운동 초기에 평신도로서의 그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
존 R. 모트(John R. Mott, 1865-1955)는 열심 있는 미국 감리교 가정에서 태어나 무디(D. L. Moody) 부흥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평신도로서 20세기 상반기 동안 에큐메니칼 운동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1915-1928년까지 기독청년면려회(YMCA: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총무로 있었으며, 1910년 세계선교대회를 대부분 주재 진행하였다. 또한 1948년 W.C.C. 창립 총회시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전세계를 순회하며 기독청년면려회와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C)를 조직하는 일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었다.
조셉 올드함(Joseph Oldham, 1874-1969)은 스코트랜드의 영국 교회(Anglican Church)의 평신도로서 키가 작고 성격은 수줍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수였다. 존 모트처럼 올드함도 기독청년면려회(YMCA)와 세계기독학생운동(WSCF)의 총무로 있었다. 그는 1921-1938까지 국제선교협의회의 중요한 대회들을 주도해 왔으며, 특히 1937년 옥스퍼드에서 개최되었던 생활과 봉사 세계선교대회를 착실히 준비한 준비 위원장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상에서의 구원이란 무엇인가?'이었다. 세상에서의 구원이란 곧 사회 구원을 말한다.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 1881-1944)은 영국의 요크(York) 대주교(1929-1942) 그 후에는 캔터베리 대주교(Archbishop of Canterbury, 1942-1944)로서 교회연합을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 활동한 사람이었다. 그는 청년 및 학생 모임에 자주 연사로 나가기도 하였다. 그는 "생활과 봉사운동"과 "신앙과 직제 운동"이 통합되는 1937년 에딘버러 에큐메니칼 대회의 회장이었다. 그는 1928년의 "국제선교협의회"와 1937년 "생활과 봉사대회"의 대부분의 메시지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1942년에는 영국교회협의회 출범시 사회를 진행하였다. 그는 이러한 다양한 경험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창립될 때 임시 의장직도 맡았었다.
윌리암 템플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는 극단의 자유주의자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이 이 시대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강조한 기독교 사회주의자(Christian Socialist)였다
2. 생활과 봉사 운동 (Life and Work Movement)
그 후 1925년 8월 19-30일까지 웁살라의 대주교 나단 죄더블롬(Nathan Soederblom)의 주도 아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생활과 봉사 세계기독교대회"(Universal Christian Conference on Life and Work)가 개최되었다. 죠지 벨(George Bell)은 죄더블롬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죄더블룸은 공동체의 교제를 통하여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하여 20세기 전반부의 어떠한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하였다"고 말하였다. 죠지 벨은 W.C.C. 제1차 총회시에는 W.C.C. 중앙위원회 의장을, 제2차 총회시에는 회장이었다. 이 대회의 대표들은 그들이 속한 교단들이 파송한 대표들이었다. 이 대회에는 다수의 동방정교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스톡홀름 대회는 에큐메니칼 협의회를 조직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였다. 죄더블롬은 기독교의 일치를 위하여 영구적 에큐메니칼 협의회가 시급히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미 1923년 영어로 발간된 『그리스도인의 교제』(Christian Fellowship)라는 책에서, 그리고 1925년 독일어로 발간된 『기독교의 일치』(Enigung der Christenheit)라는 책에서 영구적 연합기구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1929년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개최된 "생활과 봉사"에 관한 계속 위원회 모임에서는 "스톡홀름 운동을 영구적 조직"으로 제정할 것과 그 명칭을 "생활과 봉사를 위한 세계기독교협의회"(Universal Christian Council)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이 제안은 그 다음해(1929) 첵스브레스(Chexbres)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이 대회로부터 시작하여 "생활과 봉사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모임들이 있었다.
1937년 4월에는 옥스포드에서 "생활과봉사대회"가 개최되었고 생활과 봉사 운동에 적극적인 윌리암 템플․게르마노스․윌리암 아담스 브라운․존 모트․비셔트 후프트 등은 "신앙과 직제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으므로 이들 모두는 옥스포드에서 개최된 생활과 봉사 대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옥스포드 대회의 관심은 사회․정치․도덕적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적 원리들의 적용이었다.
윌리암 템플이 기초한 옥스포드 대회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교회의 첫째 의무와 세상에 대한 교회의 가장 큰 봉사는 교회가 행동을 통하여 교회가 되는 것이다 … 그분 안에서 사랑과 봉사의 교제로서 결합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기독교의 최대 사명인 복음전파로 인한 영혼구원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은 세계교회협의회가 창설되기를 원하였다. "생활과 봉사 운동"은 동년(1937) 신앙과 직제 운동과 통합하였다.
3. 신앙과 직제 운동 (Faith and Order Movement)
1927년 8월 3-21일까지 미국 성공회의 감독 찰스 브렌트(Charles H. Brent)를 중심으로 스위스 로잔에서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World Conference on Faith and Order)라는 또 하나의 세계 대회가 열렸다. 브렌트의 비젼은 전세계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로잔대회는 신앙과 직제에 대한 첫 번째 세계대회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에딘버러 대회의 의장이었던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이 개회 설교를 하였다. 그는 교회의 기구적 연합을 강조하였다. 이 대회의 주요 관심은 교회의 연합 문제였다. 이 대회로부터 시작하여 "신앙과 직제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모임들이 있었다. 1936년 여름에는 "생활과 봉사 대회"가 챔비(Chamby)에서, "신앙과 직제 대회"가 클라렌스(Clarens)에서 각각 개최되었다. 이 두 회의에서 30명, 나중에는 35명으로 증원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생활과 봉사의 스톡홀름대회"와 "신앙과직제의 로잔대회" 이래로 진행되어 온 에큐메니칼 운동의 조직과 사업에 관련된 권고문을 만들어 "옥스포드 대회"와 "에딘버러 대회"에 제출하고자 함이었다.
1937년 7월 8-10일까지 단지 이틀 반 동안이기는 하지만 35명의 위원들이 런던의 웨스트필드 대학(Westfield College)에서 모였다. 여기서 "생활과 봉사운동"과 "신앙과 직제운동" 소위원회가 구성되어 양대 운동의 통합계획을 세우기로 결의한 결정적 모임이었다. 캔터버리 대주교 윌리암 템플은 묻기를 "그러면 새 기구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할 것입니까?" 빗셔트 후프트는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가 어떻습니까?" 대주교는 "좋은데요, 그 명칭이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고 또 원하였던 것입니다." 라고 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이 명칭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8월 22일부터 9월 4일까지 화란의 암스텔담에서 개최되었던 제1차 W.C.C. 총회 11년 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