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유 찾던 날
2024년 10월 22일(화),
하루 종일 검은 구름이 짙게 하늘을 덮고 비를 뿌렸다.
내일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니 그 속내가 보였다.
오후시간에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들고 꽃을 찾아 나섰다.
불암산이 공원화 되면서 파헤쳐져 그 서식지를 잃은 꽃
꽃향유를 혹시 볼 수 있으려나 하면서 말이다.
근데 참 묘한 곳에서 비를 맞고 피어 있는 녀석들을 만났다.
흔한 꽃이지만 내 사는 곳에서는 이제 영 사라졌다 했는데
얼마나 반가웠던지 ...........
녀석들은 어디에서 살다가 어떻게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아마 공원을 만들면서 당매자, 가막살나무 등을 식수했는데
그 과정에 종자들이 유입되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주룩주룩 비는 뿌리는데
고맙고 반가워
한참을 함께하였다.
글, 사진 / 최운향. 2024. 10. 22.
꽃향유
연기(緣起),
시공(時空)을 초월한
보는 것을 초월한
지극히 자연적인
거역할 수 없는
빈틈없이 이어지는
묘용(妙用)의 샘
여보게,
거기 꽃향유
그렇게 피었구나
그래,
너처럼
나도 피고 ........
글, 사진 / 최운향. 2024. 10. 22.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꽃향유
꽃이 있는 뒷쪽의 모습
본 가지가 잘려나가니 새 순이 나오며 꽃을 피운다.
2024. 10. 22.
추억 속의 사진 / 2014년 10월 양수리 진중면에서
가을 길을 걸으며
또 한 가을에 길을 갑니다.
교회당 철책에 갇힌 홍접초는 삐끔히 머리를 내밀어
마지막 꽃을 피우고는 하염없이 지나는 이들을 봅니다,
끝내 철책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좌절감
그리고 극에 달한 외로운 표정이 느껴집니다.
제비꽃 씨방은 세 갈레로 벌어져 무덤 위에 씨앗을 털어내고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 날개처럼 아련히 보입니다.
꽃향유는 볼품없이 듬성듬성 자잘한 꽃잎을 달고
그래도 제 향기를 더듬어 찾아드는 꿀벌을 고마워합니다.
작살나무 보랏빛 열매 옆에는 처참히 뚫리고 뜯긴 잎이
푸른빛을 잃은 채 달려 있습니다.
뚱딴지는 볼품없이 시들어 말라버린 꽃을 달고 서 있는데
붉게 익은 배풍등, 청머루덩굴 열매의 고운 빛이 부러울 겁니다.
마른풀 이삭 위에 앉은 부전나비 한 쌍
수놈이 날개를 떨며 정을 청하나 암놈은 본 척도 안 합니다.
이미 그 배가 부른 걸 보니 해산날이 이른 것 같습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벌판과 그 속을 가르고 이어진 에움길
억새의 은빛 광채, 수확을 위해 땀 흘리는 농자
곳곳이 고운 빛으로 단풍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합니다.
국화의 계절을 국화가 모를 리 없으니
가는 길 도처 그 향 가득 피어오르고
특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감국을 바라보고 나면
그 찐한 향기는 손끝에도 묻어납니다.
걷다가 보면 노랗게 피고 지는 미역취꽃
코스모스를 비롯해 많은 꽃들과 대면하지만
때를 지나 피어나는 패랭이꽃, 으아리꽃 등을 볼 때는
참 반갑고, 절친했던 오랜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 같습니다.
내 걷는 가을 길엔
기억 자 휜 허리로 허연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리어
겨우겨우, 뒤뚱뒤뚱 걸어 주일 미사 영성체를 모시는
고령의 할머님도 만납니다.
그 믿음의 길을 따라 무슨 꽃이 피어나고
어떤 세상이 보일까요?
내 걷는 가을 길엔
이제 21개월 된 손녀딸도 있습니다.
손잡고 걷다가 올려다보는 천사 같은 그 얼굴
천진난만한 그 마음의 길 가에는 어떤 꽃이 만발하고
어떤 세상이 보일까요?
깊어가는 가을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하늘엔 목화 향 그윽한 뭉게구름 꽃이 피어나고
가끔 눈을 감고 코끝을 세워 그 냄새를 맡아보기도 합니다.
가을 길을 걸을 수 있음은 분명 큰 축복입니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에서
뭍 꽃들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겠지만
작고 볼품없더라도 향기로운 갈꽃이 될 수 있다면
그건 더 큰 축복이며
행복일 겁니다.
2014. 10. 19 / 글. 사진 최 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