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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18일 화요일 새벽기도회 ♣
성경:시편41:1-4(구832P)
제목:빈약한 자를 돌보는 자의 복
1.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4.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예배의부름:시편40:16-17
신앙고백:(사도신경)
찬 송:428장(통488장)
성경봉독:시편41:1-4
말씀선포:빈약한 자를 돌보는 자의 복
합심기도:주기도:찬양:(오늘집을 나서기전 )
할렐루야! 오늘도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신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고도 놀라운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목}***“빈약한 자를 돌보는 자의 복”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10장 5절로 10절에 말씀하시기를 "율법을 따라 드리는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였습니다.
같은 말씀이 오늘 본문 6-8절에 나와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제사를 더 이상 원치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통 한 완전한 제사, 속죄의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특별히 본문은 마냥 의미 없이 교회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성도의 삶에 큰 의미를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1. 기도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1절).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 자를 반드시 만나 주십니다.
2. 고난가운데서 만날 수 있습니다(2절).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가 됩니다.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 그 고난의 시기가 비록 기기 막히게 와 닿더라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고난에서 여러분을 만나주십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만난 것이 고난 가운데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것이 고난 가운데였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3. 찬송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3절).
찬송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입술에 주셔야 만날 수 있습니다.
4. 기적가운데 만날 수 있습니다(5절).
기적을 체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적은 바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 삶속에서도 내 생각속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행하시는 바를 체험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우리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5. 말씀가운데서 만날 수 있습니다(6절).
항상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속에 넣어 두시고 그것을 암송하시고 묵상하시며 그 말씀속에서 살고, 순종하고, 전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6. 긍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11절-12절).
우리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이 끊어져서는 안됩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따라 우리가 벌을 받게 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긍휼을 따라 우리를 용서하시고 도와 주십니다.
긍휼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세리 처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만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7. 은혜가운데 만나야 합니다(13절).
은총은 속히 도우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말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습니다. 내 삶 가운데 형편을 따라, 사정을 따라 나를 돕는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순종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빈약한 자를 돌보는 자의 복" (시편 41:1-4)
이 구절 속에서 우리가 대하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Ⅰ. 빈한한 자를 돌보는 자에게는 구조와 위로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1. 우리는 다윗이 이런 말씀을 다음 두 가지에 적용시키기 위해 언급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그가 고난에 처하게 된 때에도 자기에게 친절하였으며 자기의 입장에 매우 동정적이었던 그의 친구들, "빈한한" 다윗을 "권고해 주는 자들에게 복을"빈 것입니다.
그는 그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동정하고 염려해 주며, 자기에 대한 좋은 생각을 그대로 지니고 존중해 주는 자들을 여기 저기서 만났던 것입니다.
그 반면에 그의 원수들은 그에게 너무나 무례하였고 그를 매우 학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기에게 베풀었던 모든 친절에 대해, 특히 그들 역시 고난에 처하게 될 때에 보상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서, 그들에게 축복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대적돌이 자기에게 행한 도발은 그 친구들을 그에게 더욱 더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2). 혹은 그 자신에게 그는 자기가 불쌍한 자를 돌보았으며, 궁정에서 명예와 권세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을 때 빈궁한 자들의 궁핍과 불행을 인식하고서 저희에게 원조를 제공하였다는 자기를 위한 양심의 증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에 따라 병 중에 있는 그를 강건케 하시며 위로해 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 우리는 이 말씀들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여 더욱 일반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 그 약속에 대한 논평이 나옵니다.
"자비로운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을 얻을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우리에게서 요구되는 것은 어떤 긍휼입니까?
그것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나 그 신분 상태에 있어서, 곤궁하거나 고통당하는 자를 고려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알뜰하고도 상냥하게 생각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쓰라림을 주목하고 그들의 처지를 탐색하여, 그들을 동정하고 그들에 대한 관대한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불쌍한 자들을 지혜롭게 돌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우리는 타인들의 빈궁과 고생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말은 우리에게 "마스길"이 되어야 합니다.
(2).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이 긍휼을 베푼다면 우리에게 약속되는 자비는 어떤 것입니까?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는(설사 그가 불쌍한 자들을 구원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저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대해 동정적인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구제함에 있어 신중하고도 분별심있게 행동합니다.) 자기 하나님으로부터 권고 받을 것입니다.
그는 정직한 자들의 부활에서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세상에서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 경건의 가지는 어느 무엇에 못지 아니하게 생명의 약속을 많이 받으며, 그 생명은 지금 누리고 있는 생명이고 또한 현세적 축복으로 보상되고 있는 생명입니다.
빈자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은 번성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확실하고도 안전한 길입니다. 그와 같은 행위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로부터의 효과적이고도 때 맞춘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을 확고히 믿을 수 있습니다.
[1]. 모든 환난에서. 그는"재앙의 날에 저들을 건지실" 것이니 최악의 시기에도 그들은 무사할 것이며 타인들이 휩쓸려 들어가는 재난에 빠져들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진노하심의 날에 숨기우는 자가 있다면 바로"저들"일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이와 같이 구별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도 가혹한 취급을 당할 자들과는 구별하여 대우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위험 가운데에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어 살려두실 것입니다. 만일 가장 훌륭한 자와 마찬가지로, 자기들의 생명을 일천 번이나 몰수당한 자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약탈물 대신으로 받게 된다면"그것이야말로 큰 은총으로서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저희가 보다 더 애호되리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사망의 화살이 저들 주위에 빗발치듯 날아 들 때도 저들은 보호되어 살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원수가 그들을 위협하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그들을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유력한 원수라도 위로부터 받은 힘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의는 인간이나 마귀들을 막론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것들의 악의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약 불쌍한 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구제하고 구조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러한 선의 중의 한 몫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특히 질병에서(3절).
여호와께서 다윗이 오랫동안 아파 누워 있던 "쇠약한 병상에서" 심신 양면으로 "그를 붙드시고 그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폈다." -이것은 매우 겸손한 표현으로 병자를 간호하고 보살피는 자들의 시중을 암시하는데, 특히 아픈 자녀들에 대한 어머니의 고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병상을 저들에게 편안하도록 손질해 주는 것을 나타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병상이라면 반드시 잘 만들어졌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그의 병상 전체를,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다 손질하셔서 어느 부분도 편하지 않는 부분이 없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병상을 "돌리실"것이니(그 단어는 그런 뜻입니다)이는 그것을 흔들어서 아주 안락하게 고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혹은 그는 병상을 건강의 침상으로 바꿔 버리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체적 고통과 질병하에 있는 그들을 강하게 하시고 편안하게 하실 것이라고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그들이 결코 아프지 않으리라고는 약속하지 않으셨고, 그들이 쇠약한 채 오래도록 누워 있거나 병으로 죽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고통을 인내로써 견디게 하실 것이며 즐거운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릴 수 있도록 해 주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몸이 고통 중에 누워 있을 때에도 영혼은 편안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Ⅱ. 이들 약속에 의해 지시받고 고무된 다윗의 기도(4절).
"내가 말하기를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우리가 기도문을 기록해 주는 것은 유익한 일이니, 이는 우리가 우리 기도에서 말했던 것을 우리 행위에서 철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의 겸손한 청원.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는 엄격한 공의의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 할 줄 아는 자로서 자비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빈한한 자들에게 긍휼을 보였던 가장 선한 성도들조차도 하나님을 그들의 채무자로 삼지 않았으며, 그의 자비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 아래 있을 때에는,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친절하신 긍휼에 위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호와여, 내 영혼을 고치소서."
죄는 영혼의 질환이며, 용서해 주시는 긍휼은 그것을 고쳐 주십니다. 또한 새롭게 하는 건강보다도 이 영적인 치유를 더 열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2. 그의 참회의 고백.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옵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은 치료를 필요로 합니다. 나는 죄인 중에서도 비참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며,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눅 18:16).
이것은 어떤 특정의 대범죄 행위와 관련을 갖는게 아니라 그의 많은 나약한 죄, 즉 그가 병으로 자기 앞에 나열하였던 나약함이 죄와, 그 결과 "내 영혼을 고치소서"하고 기도하게 만든 두려움과 전반적으로 관련된 것 같습니다.
***{결론}***
"빈약한 자를 권고하라"
우리 성도들이 권고해야 할 빈약한 자들이란 어떤 자들일까요?
1.말씀이 빈약한 자.
2.사랑이 빈약한 자.
3.육신적으로 빈약한 자.
성도 여러분!비약한 자를 권고하는 일에 인색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그저 형식적으로만,혹은 인간적인 동정으로만 관심을 표현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전적으로 위하는 것도 되지 못합니다.예수님께서 우리를 권고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원히 변함없고 참된 유익을 주는 권고를 행해야 합니다.
진정 생명과 진리가 되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말씀이 빈약한 자들을 권고하고, 영원하고 참된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이 빈약한 자들을 권고하며,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사 풍성히 누리도록 하신 우리의 재물과 육신의 강건함으로 우리는 육신적으로 궁핍하며 연약한 자들을 권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권고는 빈약한 자들을 부요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들 자신이 더욱 우리를 권고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케 하며,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는 귀한 도구로 사용되는 특권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한 부인이 응급실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생명이 얼마남지 않았군요,오늘이 고비인데 아무 방법이 없군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그의 다섯 자녀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멍하니들 집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길 한복판에 우뚝 멈추고는 소리쳤습니다.
"얘들아,아빠가 깜빡 잊은 것이 있구나,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어".
즉시 그들은 집으로 뛰었고,밤이 새도록 모두 무릎을 꿇고 아내와 어머니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부인은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은총과 선하심을 생각하며 주님을 찬양했습니다.의사도 포기했던 그녀였지만 남편과 자녀들의 믿음의 기도가 그녀를 다시 살렸던 것입니다.
병상에 누운 다윗의 기도 또한 도우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시편41:3).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나 가족이나 자녀들이나 아시는 분 중에 육체적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십니까?
병든자를 위하여 간절히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병든 자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약5:15-16절).
여러분의 질병도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묵상:시편41:3-4절입니다. 오늘은 말씀을 묵상하시고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시는 가족들이나 성도들을 위하여 더 많이 기도하시고 전화나 문자로 위로의 메신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