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버리면 진짜를 찾게 되죠”
평범한 세 사람이 특별해진 이야기 마음공부를 말하다
간혹 마음을 비우라는 권유를 받을 때가 있다. 혹은 스스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함께 들기도 한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 현실에 충실해야지.” “좋긴 한데,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해보자.” “정말 마음이 비워질까, 마음을 비우면 내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등등이다. 여기 각자 교사로, 의사로, 가정주부로 열심히 살아온 세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각각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수련을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마음을 버렸고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 사람의 마음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리 이권자 / 사진 김혜균
남편이 “찜질방 간다고 생각하고 다녀오라” 권유
한일선 남편이 워낙 마음이나 명상에 관심이 있다 보니까 저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남편이 먼저 마음수련을 하더니 저보고도 꼭 해보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했는데, 너무 재밌더라구요.
김형주 전 좀 마음이 힘들 때 하게 됐어요. 98년에 대학 동기한테 얘기 듣고 시작했는데, 당시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복직도 됐고, 결혼하고 집 사고 애들도 낳고, 나름 잘 풀리고 있었거든요. 근데도 이상하게 사는 게 재미가 없고 우울하더라구요. 이렇게 쳇바퀴 돌아가듯 살아야 하나 싶고, 그래서 집사람한테 말하고 훌쩍 갔어요.
허애정 저는 4년 전에 위암 진단을 받았어요. 위절제술을 받고 항암치료 받던 중에 시댁 어른께서 추천해주셨어요.
평소에도 늘 권하셨는데, 그땐 들리지 않았죠. 항상 바쁘니까. 그리고 솔직히 전 마음을 닦는다, 뭐 이런 것을 좀 무시한다고 할까, 그런 게 있었어요. 그런 건 속 편하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나하고는 절대 상관이 없다고요. 그러다 위암 수술 받고 이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집에서는 아무래도 애들도 있고, 쉬지를 못하니까 남편이 찜질방 간다고 생각하고 가봐라, 하더라구요.
한일선 마음찜질이었네. 효과는요?
허애정 항암치료 아홉 번이 아주 편안하게 지나갔죠. 담당 의사는 점점 힘들어질 거라고 했는데, 수련을 병행하니까 저한텐 수월하더라구요. 식사 적응도 금방 하고 몸 상태도 금세 예전으로 돌아와서, 8개월 만에 다시 근무를 했어요.
한일선 아유, 다행이네요. 수련도 진짜 열심히 했나 보다.
허애정 사실 전혀 기대하는 게 없이 갔다가, 마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버리는지를 정확히 얘기해주시는데 놀랐고요. 잠깐 수련을 해봤는데 정말 마음이 가벼워지는 거예요. 와, 이건 진짜구나 싶으니까 저절로 열심히 하게 되더라구요.
한일선 맞아요, 저도 1과정 때부터 와 닿았던 게, 어릴 때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많이 하셨거든요. 저는 늘 엄마 편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 곧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엄마가 싫어하는 사람은 곧 내가 싫어하는 사람, 이렇게 이분법으로 살았던 거라.
수련하고 이틀쯤 지났는데, 세상에! 그게 정말 완전 오류였다는 걸 알겠는 거예요. 그게 아니었구나. 그 사람들을 참으로 본 게 아니라, 순전히 내 중심적인 관념으로 본 거잖아요. 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절감했지요.
허애정 평생 자기중심적인 관념을 갖고 살아온 나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되돌아보게 하는 게 마음수련의 대단한 점 중 하나인 거 같아요.
한일선 맞아요. 그러다 보니까 살면서 놓친 부분도 짚어볼 수 있게 되구요. 저는 늘 ‘난 행복하긴 한데 내가 행복을 따라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이더를 행복에 맞추고 그 조건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조건에 맞을 때만 행복한 거지. 그건 진짜 행복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늘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했던 거라. 수련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금붕어 사면 비닐 안에 한두 마리 넣어주잖아요. 그럼 금붕어는 그 안에서 왔다갔다 쳐다보는 게 다잖아요. 내가 바로 그렇게 살았구나.
허애정 그건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어떤 부모가 되느냐도 해당되는 것 같애요. 예를 들어 부모라는 비닐봉지가 우주 무한대만큼 크면 이 금붕어는 우주 무한대를 헤엄칠 수 있잖아요. 아이들한테 그런 비닐봉지가 되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환경은 바로 부모와 선생님이 아닐까 해요.
학생들 싸울 때 “마음속 가짜 사진 버리자”며 풀어줘
김형주 찔립니다.(웃음) 전 교직을 한 게 애들이 막 좋아서라기보다 사범대 나왔으니까 자연스레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는 제 문제에 매달리다 보니까 애들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고 제 삶이 짜증 나니까 애들한테 짜증도 많이 냈던 것 같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참 누구보다‘나는 애들을 이해해줄 줄 알고, 품어줄 줄 안다’고 생각했어요.
한일선 그래도 수련하고는 달라지셨잖아요.
김형주 수련을 해갈수록 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꾸 깨닫게 되니까요. 화가 날 때도 그게 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거라는 걸 아니까 아무래도 다르죠. 예를 들면 한 아이가 청소를 안 하고 도망갔잖아요? 그럼 얼마나 열 받습니까. 옛날 같으면 그 마음이 탁 남아 있다가 보자마자 무섭게 야단을 쳤어요. 근데 이제 화가 나는 내 자신부터 보고 버릴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요즘은 다음 날 애를 봐도 화가 안 난다는 게 문제예요.(웃음)
허애정 학생들 대하는 게 변화되신 거네요. 저도 제3자가 보면 굉장히 친절하고 열심히 하는 의사였어요. 하지만 ‘나는 의사고 이 사람은 환자다’라는 전제를 깔고 친절한 것과 그런 거 없이 내가 이분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한 예로 환자가 많아서 한 시간을 기다린 분이 화를 내며 들어와요. 예전엔 “명단 보셨죠. 환자가 되게 많아요. 저도 열심히 보고 있는데 늦네요” 하고, 말은 친절하게 하되, 그 저변에는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탓하지 말라’는 게 깔려 있었어요.
한일선 내 입장만 이해시키는 거지.
허애정 그렇죠. 그럼 환자분도 계속 못마땅해하시거든요. 근데 지금은 “기다리시느라고 너무 힘드셨죠. 저라도 짜증 날 거 같아요. 많이 기다리신 만큼 정성껏, 세심하게 봐드릴게요” 하고 진심으로 말이 나와요. 그럼 환자분도 눈 녹듯이 화가 사라지고, 진료 후엔 오히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가세요. 이분은 본래 그런 분인데 그런 조건에 처하니까 화가 난 것뿐이라는 거. 그런 걸 볼 줄 알게 되었다는 게 옛날과 큰 차이더라구요.
김형주 한번은 애들 둘이 싸우길래 ‘마음 버리기’를 시켰어요. “눈 감고, 싸운 친구를 떠올려 봐라. 그게 진짜 친구냐, 니 마음속에 담아 둔 가짜냐. 그 친구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봐라. 니가 가졌던 감정들이 쌓여 있지 않니? 너의 마음은 원래는 맑고 깨끗한데, 그런 것들로 가려져서 친구를 보면 마음이 불편한 거다. 그걸 다 버려보자.” 한 30분 수련하고 나면 “답답한 게 없어졌어요, 친구한테 미안해요” 하면서 둘이 싹 풀려서 나가요.
허애정 마음을 쌓기보다는 그렇게 버릴 줄 알게 되도록, 선생님과 부모가 함께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한일선 그럼요. 더 바랄 게 없죠. 그게 진짜 잘 사는 거죠. 아무튼 난 젊어서 수련한 분들이 너무 부러워요. 저는 애들이 다 큰 다음에 했기 때문에 안타까울 때가 있거든요. 우리 애들이 착하고 공부도 잘했기 때문에 전 애들이 나한테 효도를 다했다고 감히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떠올려 보니까 내가 너무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 애들이라고 친구들처럼 하고 싶은 게 없고, 충동적인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근데 내가 그런 걸 전혀 표현하지 못하도록, 착한 역할만 하게 만든 거예요. 그만큼 내가 누른 거죠.
김형주 학교에서 애들 보면 비워야 할 마음이 정말 많아요. 안타까울 정도로.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당장 애들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마음, 상처받은 마음, 열등감부터 없애야 하는데…. 너는 원래 참이었다고 이야기해주기보다 너는 왜 그 모양이니? 하면서 계속 야단만 치니까 아이들은 주눅 들고. 시험 한두 번 잘못 친 게 자기 마음을 가려버리니까. 나는 공부 못한다 생각하고.
한일선 그런 게 바로 마음에 사진을 찍어놓는 거잖아요. 마음수련원에서 버려야 하는 마음이란 곧 내가 살면서 눈, 코, 입, 귀, 또 감각으로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이다, 그걸 버려야 한다고 했을 때 진짜 공감이 가더라구요. 근데 애들이 그런 말을 잘 이해할까 싶어요.
김형주 이렇게 말해주면 이해는 해요. 네가 수학을 잘 못하는데 시험을 본다 치자, 딱 문제를 풀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니? 그럼 옛날에 시험 못 본 거, 그래서 야단맞은 거, 수학은 어렵다는 거, 이런 게 딱딱 떠오른대요. 그러면서 기운이 쫙 빠지고 아예 풀고 싶지 않아진다는 거예요. 그럼 제가 묻죠. 그게 지금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만일 그런 사진들이 안 뜨면 그냥 보이는 대로 풀 수 있지 않냐, 빨리 그 사진들을 버리자고요.
허애정 못한다는 마음뿐 아니라 잘한다는 마음도 버려야 한다는 게 또 마음수련의 포인트죠. 제가 그런 경험이 있어요. 전 항상 모범생이다, 예의 바르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그걸 사진인지도 모르고 사진을 찍으며 살아왔겠죠. 그러다 의대 다닐 때 다른 과 선생님께 불려가서 한 20분간 야단을 맞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몇 날 며칠을 울었어요. 나는 늘 칭찬받았고, 항상 옳다는 사진이 있었으니까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만약 그런 사진들이 아예 없었다면 내가 뭔가 실수했구나, 인정이 됐을 텐데 말이에요.
한일선 그래서 좋다, 옳다 하는 사진도 버려야 되더라고요. 그게 있으니까 사람을 볼 때도 저 사람은 옳네, 동그라미. 저 사람은 엑스, 이렇게 가리게 되잖아요. 이제 그런 시비에서 벗어나니까 편안하고 너무 좋아요. 누굴 만나도 금세 친해지고.
마음사진 버리는 기쁨, 해보면 알죠
허애정 1과정 때 제가 “좋은 걸 왜 버려요?” 하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때 강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옛날 좋았던 걸 사진으로 갖고 자꾸 비교하기 때문에 현재가 행복할 수가 없어서”라고 하시더라구요.
김형주 그 말은 곧 지금 내 모습이 있기까지의 원인을 과거 사진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제 얘기를 하자면 저는 무슨 일을 하다가 어려움에 닥치면 순간적으로 탁 놔버리는 게 있었어요. 판단 중지, 포기, 무기력,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어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도망가려고 하는 거예요.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더라구요. 그러다 수련을 하면서 떠오른 장면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시골에서 자랄 때였어요. 비가 많이 와서 흙탕물이 된 냇가에서 애들하고 고기를 잡고 놀고 있는데 저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이 물에 빠진 거예요. 여동생이 급류에 쓸려 가는데 오빠인 나는 그걸 지켜만 봤어요, 아무것도 못하고….
한일선 저런!
김형주 그 순간 아마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아, 이거였구나’ 알겠더라구요. 그 뒤로 수련하면서 그 장면을 반복적으로 버리니까 어느 때부턴가 도망가려는 마음이 극복이 되고, 어려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한일선 아유, 정말 사진 꼭 버려야 돼.
허애정 사진을 없애는 기쁨이라는 건 수련을 하면 할수록 엄청나죠. 전 아무래도 직업이 의사다 보니까 마음수련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막연히 비운다, 버린다 하고는 달랐던 거 같아요. 우선 방법이 아주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몸 마음이 하나다’라고 하는데, 그건 정신과 교과서에도 나와 있어요. 어떤 병에든 심리적인 배경이 있다는 거죠. 예전엔 막연히 통계로만 생각했는데 수련을 해보니까 각각 설명이 되더라구요. 그걸 저한테 적용해 봐도 제가 젊어서 암까지 걸린 건, 어려서부터 난 성공해야 되고 모범생이어야 하고 누가 나를 비난하지 않게 해야 하고…. 그런 그림을 너무 많이 그려놓은 거예요. 거기에다 맞추면서 살려다 보니까, 그 힘듦이 내 몸으로도 나타났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일선 그냥 살면 되는 건데. 수련하고서야 정말 그냥 사는 게 뭔지 알게 되는 거 같애요. 모든 기대나 기준, 내 중심적으로 바라는 게 없어지니까 그냥 있는 대로 바라볼 수 있고 그대로가 편안하고.
김형주 저도 많이 변한 것 중 하나가, 전 세상 살면서 참 고마운 걸 모르고 살았거든요. 근데 내가 살면서 찍었던 사진을 자꾸 빼가면서 사실은 내가 봤던 세상이 진짜 세상이 아니었다는 게 느껴지고 수련을 해갈수록 이제야 비로소 진짜 살아가는구나, 느끼게 되니까 매사에 감사할 줄 알게 돼요.
허애정 맞아요. 허황하게 내가 찍은 사진세계 속에서 살 때는 남에게 바라는 것도 많았는데, 이제 진짜 삶을 사니까 바라는 마음이 없어져요. 남이 나한테 뭘 해줬으면, 하기보다 내가 뭘 해줘야 될까를 생각하게 되고요.
한일선 수련할수록 정말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죠. 남아 있는 마음을 돌아보게 해주고 또 버리게 해주니까요. 오늘 이 시간도 정말 좋았어요.
김형주 맞아요. 또 많이 배웠습니다.
한일선 / 59세. 주부 서울시 송파구 오륜동 2001년 마음수련 시작 김형주 / 47세 서울 광남고등학교 국어교사 1998년 마음수련 시작 허애정 / 39세 일산병원 감염내과 전문의 2004년 마음수련 시작
출처 _ 월간 마음수련 2008년 10월호
마음수련 웹진 http://webzine.maum.org |
첫댓글 애정누나 ^^
마음수련 ^^
^^
정말 멋져요!
형주샘 정말 동안이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