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空 崔 桂 植 언론인(수필가)]
설 연휴에 TV 시청을 하다 보니 매스컴이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채널은 다양해졌으나 50~80세대는 선택할 권리도 없이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에 따라 회사 광고 수입에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청률이 높은 쪽으로 편성 제작을 해야 하나보다.
어느 공중파에서 명절 증후군에 대해 젊은 새댁을 인터뷰 했더니 시댁에 안가니 너무 편하고 좋다는 발언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나도 결혼을 시킨 딸, 아들이 있기에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어가고 있는가! 가족이라는 주체가 없어진 나라인 것 같아 서글프다. 우리 식구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설날에 만나면 꼭 물어보아야 한다. 10명중 6명 이상은 대한민국은 언론이 문제야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나도 언론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종사 한 곳이었기에 그래도 아직은 덜 썩은 곳이 언론이라고 대변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모 일간지를 보니 공중파만큼 자극적이고 인기에 영합한 글을 보게 되었다. 유명대학 교수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터뷰 내용 중 젊은 세대에게 환영 받을 만한 명절에 관한 질문에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기자 - “설에는 음식장만이 스트레스인 여성들에게 화두를 던져주시면 어떨까요?”
작가 - “화두를 던지자니 주제 넘는 일입니다. 중요한 건 죽은 사람은 음식을 안 먹는 다는 것이고 명절이란 산 사람들이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란 것입니다. 술은 누가 먼저 따르고 전은 누가 부치느냐라는 오래된 권력이 원기를 회복하는 작업이랄까. 가족이 공적인 의미를 가졌던 때가 있거든요. 몇백년 전에는 대가족이 자본을 축적해 구성원들에게 대부기관, 구호기관 역할을 했는데 오늘날의 가족이란 사적인 이익을 위한 가르텔에 가까운 집단이죠. 공적인 기능이 사라진 상태에서 오래된 권력 관계가 희미해 질 때 쯤 새삼 관계를 확인하는 정치적인 모임인데 이런 모임은 소규모일수록 좋아요. 대규모가 될수록 권력적인 요소가 강해지니까.”
기자 - “명절에 대한 칼럼을 많이 썼는데 본인은 명절을 어떻게 보내나요?”
작가 - “최대한 평소처럼 보냅니다. 저희가족은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하고 명절즈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끼리 자기 방식대로 만나고 있죠.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죠. 그런데 주변에서 명절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은 못 봤어요.”
이 인터뷰를 보고 지금 혼자 사는 인구가 30%에 육박하고 명절이면 해외에 가는 인구가 2019년 2월 2일에도 인천공항에만 22만 5천명으로 최대인원을 기록했다는 보도를 보고서 새삼 가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197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인구가 너무 많이 늘어나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운동을 펴왔다. 지금은 아이를 너무 적게 낳아 정부에서는 셋째 아이를 낳는 가정에 보육비를 지원해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가족이란 소중하고 행복한 삶을 살며 같이 지내면서 언제나 공기처럼 꼭 있어야 할 존재이다. 가족의 존재는 결혼이라는 매개체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 지금 우리의 실정은 핵가족 시대에 살고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삶이 풍요롭지 않으며 집을 장만할 수가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핵가족이란 한 쌍의 부부와 미혼의 자녀만으로 구성된 가족’
아이가 없는 핵가족은 아이보다 자신의 미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만이 생활을 즐기는 이런 가정의 모습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펴져나갔다.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되며 학교마다 입학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는 남녀가 평등해지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많아지고 부부가 둘 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버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족을 듀크족이라고도 한다. 아이를 일부러 낳지 않고 부부만 사는 가정은 딩크족이라고 한다.
여성가족부에서도 친족, 가족 간의 불평등한 호칭을 5월에 발표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장인, 장모를 아버지, 어머니 부모로 불려진다. 정부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설 연휴가 끝나자 이혼시즌... 변호사를 찾는 남편들이 늘었다. 시댁에 먼저 가느냐 처갓집에 먼저 가느냐가 싸움의 시작이라고 한다.
나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성을 뜻한다. 나는 절대적이지만 우리는 상대적이다. 나는 세상에서 꼭 하나만 존재하지만 우리는 매우 많이 존재한다. 우리라는 개념은 그것에 속한 각각의 개별 주체들이 그것을 확장한 나로서 이해할 때 성립된다.
한 가족에 속한 성원들은 각기 가족을 확장된 자신들로서 이해하고 살아가면 그때 가족은 우리로서 성립한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주체는 넓게는 우주 좁게는 사회에 속하는 규정들이다. 가족이 있으므로 어려울 때 특히 길흉사에 힘이 되면 사람같이 사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내 아버지 그리고 눈물 나도록 희생적이셨던 내 어머니를 존경의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 내가 생각하는 큰 업적은 그분들이 가족을 사랑하며 돌보아 오늘의 내가 있게 한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나에게 피와 살을 준 내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해 나와 같은 성을 쓰고 같은 핏줄을 나눈 조상들에게 후손들은 기억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있기까지 뿌리가 되어준 조상을 받드는 것은 정성과 공경을 으뜸으로 해야 하고 물질적 사치는 귀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조상이 전 한일은 그 뒤를 잘 이어나가야 하고 늘 게을러질까 조심해야 할 것이다. (퇴르언행록)
이렇게 가족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나에게는 늘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족에게 나의 아픔을 낱낱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줄 이제 알았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나누는 것입니다. 당신의 나눔으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행복의 미소가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 미소는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당신곁에서 함께 웃음 짓는 행복한 사람이 진정한 가족입니다.
가족을 사랑합시다. 우리가족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