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찌부지한 날씨 덕분에 속이 영 편칠 몬했는데, 웬걸
막상 구미에 도착하고 보니 여간 좋은 날씨가 아니였습니다. 관광호텔 뒷편 등산로를 갑작스레 폐쇄한 덕분에
우리 느림보 일행은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곤 오소리 가족들 처럼 올망 졸망 몰려서 한참을 헤매이다 자그만 오솔길을 점지하곤
이내 힘차게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곰과에 속하는 오소리는 항시 자신이 다니는 길만 선택하여 이동을 하기 때문에, 여름철에 이를 유심히 관찰해 둔 사냥꾼들이
겨울철에 오소리들이 다녔던 길을 따라 가서, 굴 속에서 동면하고 있는 오소리 가족을 일거에 습격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오솔길이란 말의 유래라고 한다더군요.
잡목 숲을 한참을 힘겹게 오르다 문득 연수원 쪽에서 뚫린 주 등산로를 반갑게 만났습니다.
능선길에서 바라 본 구미 일대의 경관은 구미시를 유유히 휘 감아 도는 낙동강의 힘찬 물줄기가 너무도 호쾌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어릴 적 듣던 노래 가락에 낙동강 700리란 말이 있었는데 근자에 실측을 해 본 결과는 1300리라고 그러더군요.
지금은 시 군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강원도 태백이란 지명을 쓰지만 그전에는 황지, 장성이란 곳이 탄광촌에 있었습니다.
황지란 지명은 황씨의 연못이란 뜻인데 이 자그만 연못이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라고 합니다.
영남의 주강인 낙동강은 힘차게 아래로 흐르는 직강으로 독일의 라인강을, 호남땅을 흐르는 여러 강들은 실개천처럼 이곳 저곳을
아주 섬세하게 적시면서 흐르는 프랑스의 쎄느 강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프랑스와 우리 호남지방 분들은 예능면에
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면서 여유로운 삶을 산다고 합니다.
들러 붙은 비계덩어리 덕분에 여러 번을 숨을 껄떡이다가 갠신히 올라 선 칼다봉에서 몇 몇 느림보님들과 성찬을 함께 했습니다.
제 왼쪽으론 오늘 새로이 느림보 회원이 되신 네 분의 잘 생기신 젊은 분들이, 제 오른쪽엔 막 식사를 끝낸 마이산님과 캠비님이
늦게 온 우리들을 위해서 그냥 판을 벌린 상태로 계셨는데 어푸. 눈 디비지는 사건이 벌어 졌습니다.
호남 광주 출신의 안경 쓰신 영계 한분이 큼직한 비닐 봉투 속에 수북하게 담긴 가오리 무침이란 걸 우리쪽으로 드리 밀기 바쁘게
제가 신주 단지처럼 소중히 여기는, 페트병에 담긴 처음처럼을 한병 빼 들었지 멉니껴?
처음에는 산에서 쐐주는 먼 쐐주냐며 손사래를 치시던 마이산님과 캠비님께서 늑달같이 달려 들더니 정신없이
들이 키고 씹어 대더만요.
포만감이 올 무렵에야 어떤 분이 가오리 무침이란 어떤거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 졌는데 이에 대한 답변이
너무도 자상하고 일상생활에 유용한 정보이기에 잠시 지면을 할애해 봅니다.
해양어류에 정통한 지식을 갖고 있는 캠비님 말씀이 홍어,가오리,간제미는 본시 상어과에 속하는 연골류인데 거의
사촌지간이라고 하더군요. 늑대와 코요테의 차이인데 갑작스레
이 세상에서 가장 쓰잘데기 없는 인간이나 물건을 보고 왜 하필이면 홍어 저엇 같은 신세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선문답을 하지 멉니껴?
일순 정적이 흐른 후의 캠비님의 부연 설명은 다름 아니라 홍어 같은 연골류의 숫컷을 잡아 올려서 배 쪽을 보면
배꼽 부위에 숫넘은 오징어 알처럼 생긴 커다란 심벌이 양쪽으로 두개가 음전한 모습으로 붙어 있는데
홍어도 숫넘은 크기나 맛 그리고 당연히 가격면에서 요즘의 우리 인간들 처럼 암컷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별 볼 일 없는 신세인지라 배에서 어부가 홍어를 낚으면 여지없이 홍어 심벌을 칼로 싹둑 잘라 버린답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숫넘은 당연 고가의 암컷 가격으로 팔리게 되는데 어부 입장에서 볼 적에는
홍어 숫넘 저엇은 천하에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는 겁니다.
전 캠비님의 명강의를 들으면서 구져 등산이나 열씨미해서 세다리를 토실 토실하게 살이나 잘 찌워서 집꾸석에서
지발 홍어 신세나 면해야 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면서 잠시 이빨을 뿌드득 깨 물었습니다.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약사암 경내는 둘러 쌓인 거대한 바위 덩어리 속에서 한편의 무릉도원을 연상시켰습니다.
일주문의 현판처럼 동국 제일의 절경을 한껏 감상하는 우리 느림보님들의 표정은 마냥 즐거웠습니다.
이 용복씨의 노랫가락이 절로 나오더만요.
진달래 묵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쫒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 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사람들이 어딜 가나 홍어 신세는 용하게 알아 보더만요.
주작님과 곰순님이 큼직한 카메라를 제 베낭에 밀어 넣더만요.
다음에 사진 아니 찍어 줄 일이 염려되어 찍소리 몬했는데, 다리를 절룩이지도 않고 그져 다리가 조금이라며 얼버무리던
곰순님이 그다지도 심한 찰과상을 입으신 줄은 돌아 오는 버스에서 치료를 받으실 적에야 겨우 알았습니다.
강대장님과 곰순님 그리고 우보님을 뒤로 하고 하산길은 꽃님을 앞 세우고 사력을 다해서 구르는 돌삐처럼 바삐 내려 왔습니다.
지난 번 마이산 뒷풀이에 늦게 당도하여 갠신히 얻어 먹은 달랑 쐐주 반병의 악몽 때문인데, 웬걸
쏘가리님께서 큼직한 사발면 그릇에 돼지고기와 두부,김치,떡을 잔뜩 넣은 얼큰한 콩나물국을 항거석 담아 주셔서,
자리로 오니 여러 느림보님들께서 원한의 쐐주를 잔이 넘치게 그득 그득 부어 주시더군요.
늘 홍어 신세를 면해지 못했었는데 운 좋게 느림보의 일원이 되어서야 오늘처럼 사람 대접을 받게 되니 한동안 콧잔등이 찡하더만요.
일원들이 자리를 일어 서는 통에 애껴 먹던 약간의 국물과 고기 몇점을 애통하게도 남겨 두고야 말았는데
여직도 그 생각을 하면 일 없이 입맛이 쩝쩝 다셔 집니다.
앙드레님의 빼어 난 조리 솜씨는 가히 해동 조선에서 제일입니더. 다음 작성산 산행이 너무도 기대됩니다.
두 그릇 반 정도는 너끈하게 해 치울 수 있습니더.
모든 느림보님들의 건강하심과 안녕을 빌면서 탄천변 은둔 도인 돌삐 드립니다.
첨언 ; 돌아 오는 귀환 버스에서 뒷좌석에 앉으신 우보님께서 중국 황산으로 향하는 이번 오월 해외특별산행에
동참하느냐고 물으시길래 선약이 있어서...
본인이 오랜 세월 중국을 오가며 거간꾼(?) 노릇을 많이 해 보아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아는데
이번 여행길에 꼭히 주의하고 명심해야 할 점이 딱 두가지가 있으시다면서 저에게 카페에서 공지를 해 주시라는 분부가 있어서...
1. 중국에서 현지인에게 카메라 같은 귀중품을 맡길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의 공민증을 회수를 한 연후에 그리 하여야
먹튀를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다는 것이고.
2. 집에서 보고 난 신문지를, 특히 숙녀분들께서는 필히 지참하라는 것인데 듣고 보니 앞으로 국내 산행에서도
꼭히 필요한 일인 듯 하더군요.
중국은 땅덩어리가 워낙이 넓다 보니 시야가 확 트인 평원길을 자동차로 오랫동안 달리게 되는데
이때 급한 용무를 볼 일이 생기면, 버스 속의 모든 일행이 동시에 우르르 내려 사방으로 흩어 지게 되는데 짜장.
짚이나 덤불 속으로 우선 머리만 쑤셔 넣고 보는 매에 쫒긴 꿩처럼
허허 벌판에서 체면 불구하고 틀고 앉을 때 신문지로 얼굴만 감싸 안으면 댄다는 겁니다. 히 히.
첫댓글...이제야 느림보 일원으로 대접을 받으셨다는 말씀은
그동안 섭섭했다는 말씀이신데...
말씀을 하셨어야지요.그렇다면 산나리가 쐬주한병 꼬불쳐 뒀을지도..
'허허 벌판에서 체면 불구하고 틀고 앉을 때 신문지로 얼굴만 감싸 안으면 '
그런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그건 상해에서 이동할때나 그렇지요.
우리는 황산 발아래 바로 내리니 신문지 준비는 필요없을듯..
염려 감사합니다.
느림보에서야 당연 첫날부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너무도 잘 받았습니더.
사람 대접 제대로 몬 받은 건 다름 아니라
지 집꾸석에서... 팽 (코 푸는 소리임다.)
돌삐님 글 재미있게 소화하였소. 주작의 렌즈와 카메라 배낭에 넣을때 공민증 확인했어야 했는데.. 신참이신 돌삐님 께서 산에서 점심홍어 무침이라고
나는 느림보 2년이지났어도 홍어 비스무리한것 구경도 못했는데 역시미남은 안경낀 영계님의 홍어대접 다받으시고 명강의 까지 다들으셨으니
행복하고 즐거워웠겠어요. 부럽도다 내짝 돌삐님 이시여 다음에도 좋은일 있으면 숨기지 마시고 보고하셨으면 고맙곘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