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질은 나 자신을 위하여’*
어느날 아침 산책을 나갔다. 낙엽을 쓸고 있는 어르신 한 분과 마주쳤다. 평소에도 자주 뵈었기 때문에 처음엔 그 지역을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은 그 동네의 평범한 주인이었다. 지나칠 때마다 그분이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그날은 내가 먼저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이 길이 항상 이렇게 깨끗한 건 모두 어르신 덕분입니다.”
어르신은 비질을 멈추고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을 쓸고 있을 뿐이라오. 나는 마음이 더러워져서 온통 더러운 것만 눈에 보이거든.”
대만에서 요양을 하며 여유가 생겨서인지 아니면 예전에 쫓던 명성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달아서인지 나는 지금 평범한 소시민들에게서 아름다운 소양을 많이 발견한다. 거리를 청소하던 어르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택시기사, 버스기사, 음식점 종업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예의가 바르고 친절할뿐더러 자기 자리를 지키며 매일 성실히 살고 있다.
그 동안 나는 이런 각각의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내 깊은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본성은 나만 바라보는 ‘오만’이었다. 오만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99점이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가 어머니께 심한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뿌리깊은 습성은 큰 고통을 겪으며 철저히 깨지지 않은 이상 웬만해선 고치기가 어렵다. 오만한 마음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잠깐 깨달아 반성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건을 계기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결국 끊임없이 스스로 일깨우는 수밖에 없다.
내게는 다섯 명의 누나가 있다. 그중 다섯 째 누나는 눈치가 빨라 아버지 기분을 잘 살필 줄 알았다. 그런 누나가 “아버지 성격이 온화한 편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매우 엄격한 분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누나가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아버지로부터 점수를 받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누나는 이미 마흔 살이었고 자기 분야에서도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아버지로부터 80점 이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내게는 그런 기억이 없지만 누나는 아버지에게 점수를 받는 동안 자신감을 늘 잃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누나는 훗날 심리상담사가 되면서 당시 느낀 굴욕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교육적 관점에서 나는 자식에게 점수를 주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평생 스스로에게 엄격하길 바라셨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의 점수는 외적인 평가가 아니라 내적인 자기반성이었던 셈이다. 내가 잘못 했을 때 “네 기분은 어땠니?” 라고 물으셨던 것 역시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한 친구에게 아버지가 누나에게 점수를 주셨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유학자 탕쥔이(唐君毅 1909-1978 중국철학을 재정리한 신유학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말년에 자기 자신에게 점수를 매기며 불합격을 줬다고 한다. 병에 걸린 뒤 자기 자신을 반성하던 중 스스로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남보다 높게 여기면 사람을 무시하게 되고 이 생각이 계속되면 오만한 마음이 커지기 마련이다. 탕쥔이는 이 점을 경계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이미 ‘세상은 불완전하며 내게는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다.’라고 단정 짓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의 배후에는 ‘나는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보다 뛰어나며 많은 사람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악을 몰아내고 선으로 세상을 구하겠다’ 라는 훨씬 끔찍한 생각이 버티고 있었다. 이런 구세주 콤플렉스는 아마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라. 겉보기에는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공익에 최선을 다 하는 것 같았지만 멀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그런 내게 과연 몇 점을 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