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귀하게 쓰이는 그릇 (정바울)
[딤후2:20-21]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하면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18장 3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장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12장 50절에도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그 사람이 나의 모친이오 나의 형제니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다시 봐야 한다. 수박 겉핧기 식으로 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소리 그것 따라서 하지 말고 성경 말씀을 다시 읽으면서 주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시도록, 말씀대로 살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깨끗해진다.
깨끗해지는데 주신 다섯 가지의 재료들은 무엇인가?
첫째,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물은 회개를 의미한다.
둘째는 시편 119편 9절에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사오리까?라고 하는데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되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에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긋해 진다. 왜냐하면 말씀이 나를 씻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나는 너희를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래서 셋째는 성령이고 넷째는 불인데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 다섯째는 보혈이다.
우리를 청결하게 깨끗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의 재료들이 마음에 들어와 있어야 된다.
첫째가 물인데 회개를 의미한다. 빨리 깨닫고 주님 잘못했습니다하고 회개해야 한다.
둘째,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있으면 이런 게 와도 사탄아 물러가라 쫓겨난다. 근데 말씀이 없으면 웰컴 하고 받아들인다.
셋째는 성령과 그다음에 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혈, 그 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가 된다. 보혈이 우리 마음에 흐르고 있어야 된다. 깨끗해졌다고만 해서 당장 쓰임받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훈련을 시키신다. 교육을 시키신다. 연단을 시키신다. 그래서 일 년의 과정을 지나야 드디어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훈련을 잘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새 역사를 이루신다. 보혈이 내 마음에 흘러가게 하시고 그 보혈에 젖어서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오늘도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다. 주님 앞에 우리가 이렇게 깨끗하게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고 놀라운 새 역사를 이루어 주신다.
34.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
나균용 목사님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구원을 위해 다시 살아나셨고 구원을 위해 하늘에 올라가셨으며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다가 이제 인류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드디어 구원의 완성이 된다. 이 큰 역사를 이루시는 이 모든 것이 전부 구원이라고 하는 한 단어 속에 나타난다. 그런데 구원 가운데도 어떤 구원이냐?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해내실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라고 하는 이름은 다른 것으로부터의 구원도 필요하지만, 특별히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하는 말씀이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구원의 문제를 가볍게 여긴다. 육신이 구원받는 데에는 신경을 많이 쓰고 그걸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하지만 정말 우리 영혼이 구원받는 이 거룩한 일을 위해서는 관심도 없고 힘쓰지도 않는 것이 오늘의 이 불행한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육신이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특별히 동성애 를 인권으로 포장하고 이런 건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인권이 잘 됐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구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마지막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첫째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셨고, 그다음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셨다. 이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죄로 들어가는 길, 즉 죄의 길목이다. 이 시험을 물리치고 시험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셋째로는 “다만 악에서 구해주시옵소서”. 이 악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이것들의 침략을 받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앞부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세 가지 기도가 있고 그다음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는 기도가 있고 그다음에 세 가지는 죄의 용서와 시험에 드는 것, 그리고 악에서부터의 구원, 이렇게 세 가지 전부 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신다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모든 것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고 악에서부터 구원내시기 위해서 어떤 역사를 이루시느냐?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바꿔주신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인 우상숭배하는 장소에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부터 건져내주셨다.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 또한 애굽 땅에서부터 건져내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내시되 제일 처음 어떻게 구원하시느냐, 악한 환경에서부터 건져내신다. 다만 악에서 구해주시옵소서라고 말씀하실 때 악한 환경에서 구해주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던 그 땅에 정착해서 살게 하지 아니하시고 그 땅에서 다른 땅으로 옮겨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첫 번째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믿으면서 사는 사람이 돼야 한다. 두 번째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21장에 부활하신 후에도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씀을 무려 세 번씩이나 거듭 물으시면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할 것을 명령하셨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잘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뜨겁게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백성들이 다 되어야 한다.
35.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나균용 목사님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성경에 보면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모습 몇 가지가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유월절 어린양이 나오고, 또 속죄제물로서 어린양이 나타나고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에 하나님 앞에 드려진 어린 양도 있고, 또 대속죄일에 드려지는 양도 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속죄를 위한 제물은 제사 가운데 네 번째이고, 다섯째 제사로 속건제가 있는데 다 속죄를 위한 제사이다. 첫 번째 번제도 죄를 속하는 것이고 세 번째 제사인 화목제도 죄를 속하는 것으로 제사란 다 죄와 연관이 있는 것인데, 첫 번째 제사부터 세 번째 제사에 대해서는 모두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나 네 번째 나오는 속죄제나 다섯 번째 제사인 속건제에 대해서는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죄를 위한 제물에 대해서 향기롭다는 말을 안 쓰고 있는데, 에베소서 5장 2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려지셨다 말한다. 예수님은 첫째, 속죄제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드려지셨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서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라고 한다. 히브리서 10장 6절에 보면 더 이상의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 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 하신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번제와 속죄제를 완성시키셨기 때문에 이제 다른 짐승을 잡아 드리는 그런 제사는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또 이사야 53장 10절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속건제물로 자기를 드리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나타나는 것이 화목제물이다.로마서 3장 25절, 요한일서 2장 2절, 요한일서 3장 10절에서 예수님은 화목제물이라고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뿐 아니라 예수님은 대속죄 일에 두 염소를 택해서 그중에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되고 또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되는데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택함 받은 그 염소는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는 속죄의 제물로서 어린 양이 있고, 둘째는 유월절 어린 양이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었다고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셨다. 셋째는 대속제일에 드려지는 여호와를 위한 어린양이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화목제물이라고 설명하는 말씀이 3번 반복해서 나온다. 속죄 제물로써의 어린 양은 한 개인을 위한 어린 양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온 가족들을 위해서 드려진 어린 양이다. 그리고 이삭 대신에 드려진 어린 양이다. 다음으로 대속죄일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여호와를 위한 양이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써 화목제물로 드려졌는데 이 화목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더 가까워지기 위한 제사이다. 내 속의 죄를 없애고 내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오르고, 그래서 모든 죄와 나쁜 생각도 다 버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하게 될 때에 거기에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36.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나균용 목사님
[삼하 20:14-19]
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집합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발을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 지어다 들을 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정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사무엘하는 굉장히 어두운 내용의 이야기가 있는 장이다. 처음에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인 우리아 장군을 전쟁터에 내보내 적의 칼로 죽이고 그 죄의 결과로 다윗의 집에 칼이 끊이지 않게 된다. 맏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동생을 강간하는 사건, 그로 인해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일이 발생하고 또 반역을 일으켜 왕위를 위협하는 사건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바가 또 반역을 일으키는 사건이다. 그래서 급히 요압을 세바가 있는 성인 아벨로 진압하라고 보낸다. 아벨은 이스라엘의 가장 제일 북쪽 끝에 있는 성이다. 세바가 들어간 그 성에 요압 장군이 가서 포위하고 토성을 쌓고 진입하려고 할 때 그 성의 지혜로운 여인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옛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이는 속담인데 아벨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온 성인데 요압이 그들에게 물으면 문제는 해결될 것인데 요압처럼 성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요압이 20절에 대답한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요압은 여기서 그렇지 않다는 말을 세 번 반복한다. 그러면서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서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성에서 떠나가리라고 얘기한다. 그때 지혜로운 한 여자가 요압에게 말하기를 그의 머리로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던지리다 하고 가서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감에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서 요압 앞에 던졌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아벨 성의 의미는 히브리어로 숨, 허무하다의 뜻이 있다. 즉 인생이 허무하다는 의미인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다. 아벨 성은 세상의 모든 골치 아픈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어보는 곳이다.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지혜의 도시였다. 그 도시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있었다. 또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저절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지혜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다. 한국 교회가 아벨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하고 한국이 아벨과 같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반역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어려움이 많지만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전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이 세상을 새롭게 변혁시켜 나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