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28회
“그랬을거야. 수한이 그 날 기분이 그랬을 거야.”
진철도 한경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을 것이다. 군인들이 술을 마시고 아가씨를 품에
안고 잠을 잔다는 것, 그러나 수한은 돈으로도 그러기가 쉽지 않은 몸이었을 것이다.
아니, 수한이가 돈으로 여자를 사려고 해도 여자들이 기피했을 것이다.
‘그 녀석, 그 때 나에게 말했던 대대본부. 그 후로는 여자를 품어보지 못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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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이 들지 못했던 진철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에 몸을 뒤척이다 발에 무엇인가 걸린다는
느낌을 받으며 눈을 떴다. 식탁과 식탁 사이에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천천이 몸을 일으키는데
“오빠 이제 일어났어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정이 주방에서 음식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른 씻고 오세요. 간단하게라도 식사를 하고 가야지요.”
진철은 수정의 말을 들으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몇 사람이 한 쪽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졸고 있었지만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오빠들 벌써 일어나서 씻으러 가셨어요.”
“나는 왜 안 깨우고”
“먼저 씻고 들어와서 깨운다고”
수정이의 말 꼬리를 자르는 것은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 진철이 일어났구만. 얼른 씻고 와, 사람 없을 때”
한경이 진철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말을 건넸다.
하지만 진철은 씻기 보다는 담배가 우선이었다. 자리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선다. 바깥 공기가 아침이라
조금 차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선 심호흡부터 한다. 가슴까지 들어가는 공기는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그가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는데 장의차가 들어오고 있다.
“진상 리를 들러서 갈 거예요.”
수정이가 기사에게 말했다. 그래도 오빠가 살던 마을을 가는 것으로 노제를 대신 할 모양이다. 하기는
노제를 지낼 이유도 없지만,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아보는 것으로 오빠에 대한 서러움을 조금이라도 옅게
하고 싶은 것이다. 관을 고정시키고 허리를 펴는 기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벽제 화장장으로 갈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찬의 아들이 수한의 영정을 들고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 뒤에 그의 가족들이 자리 잡고, 화장장으로 가는 일행이 전부 올라타도 자리는 남았다.
조문객이라고 해야 진철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운구를 위해 준호가 부른 친구들이 전부였던 것이다.
장의차는 전곡을 벗어나 남계리를 지난다.
남계리에는 얼마 전 문산까지 도로가 개통되어 있었고,
그 도로로 가면 한 시간 내에 화장장에 도착 할 수 있을 것이지만,
기사는 유족들의 뜻을 따라 진상 리 방향으로 직진을 한다.
댕골이라고도 하는 황지리를 지나고 경옥의 아버지가 근무했던 부대를 지나 고개를 내려간다.
그리고 버스는 곧 진상리로 들어섰고, 잠시 후 수한이 살았던 집골목에 정차한다.
수찬의 아들이 영정을 들고 앞서 내리자 가족들이 뒤 따라 내렸고, 일행들도 그 뒤를 따른다.
마을 사람들도 소식을 들었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묵언으로 일행들을 맞아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