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달날
날씨 : 아침부터 안개와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쌀쌀한 아침 기온에도 매화, 별꽃, 목련, 개나리가 봄을 안고 활짝 피었다. 이렇듯 새봄을 맞아 새 생명들은 물을 머금고 가지를 살찌우고 새싹을 틔우며 제 할 일을 하는데 오로지 사람만 새 봄이 왔음에도 할 일을 잊은 채 봄이 왔구나! 감탄만 한다. 참 무거운 아침이다. 벚꽃이 또 흐드러질까 두렵기도 한 아침이다. 안개마저 무겁게 내려 앉아 아침 학교 가는 길이 더 무겁다.
지율아버지가 어제 올린 푸른샘책가방장 환골탈태 수기를 보았으니 기대를 가득 안고 교실로 먼저 갔다. 정말 여러 아버님들의 손길 가득 담긴 책가방장이다. 금요일까지 아주 지저분한 낙서와 뒷판은 덜렁이고 가방 놓는 곳도 부서져 보기도 싫고 못에 아이들 손이 찔릴까 걱정이었는데 안전하고 튼튼하고 깔끔하게 고쳐놓으셨다. 앞으로 십년은 거뜬할 듯하다. 교사실에서 아침 공부거리를 정리하고 부엌으로 내려갔는데 뒤에서 갑자기 “왁”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준섭이다. “준섭아, 언제 왔어?” “히히, 아까 왔는데 선생님 놀라게 하려고 선생님방에서 일할 때 이렇게 이렇게 기어서 갔지요.” 아이고야 선생을 놀리려고 몸 숙여 낮게 기어오는 준섭이 모습이 참 귀엽다. 여하튼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준섭이는 목적을 달성하고는 아주 뿌듯한 얼굴이다. 준섭이 장난 덕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힘을 받는다.
모두 아침 열기하는 날이니 오늘은 아주 짧게 학교 둘레를 걷기로 했다. 시우는 병원에 들려 온다고 늦는다고 했는데 은후는 아직 오질 않았다. 시간이 다 되어 은후 없이 걸었다. 학교 옆 텃밭 작은 숲에 산수유가 흐드러졌다. 산수유 꽃을 살피고 있는데 윤태가 “선생님, 나 어제 감자탕 먹으러 갔다가 벚꽃 핀 건 봤어요.” “정말? 벚꽃은 벌써 피지 않을 텐데” 그러자 옆에 있던 유민이가 “아니에요. 나도 용마골에서 봤어요.”한다. “그래? 그럼 담에 그 꽃 선생님도 보여줘요.”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뒤로 가서 매꽃이 핀 것을 보여줬다. 그러자 유민이가 “선생님, 내가 본 것은 매꽃인 것 같아요. 이렇게 생겼어요.”한다. 그러자 윤태도 자신이 없는 얼굴이다. 영호가 묻는다. “선생님, 이 매화는 먹을 수 있어요?” “그럼, 꽃지짐에 올릴 수도 있고 차로 마실 수도 있어요.” 그러자 윤태가 “아, 차로 먹고 싶어요.”한다. 날씨도 안 좋고 목도 칼칼하던 차에 윤태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도 괜찮을 듯싶어 매꽃을 열 두 송이를 땄다. 아이들이 모두 아침 열기에 앉은 사이 살살 씻어 물기를 빼두었다. 모두 아침열기를 하는데 지후, 인웅, 준섭, 지율, 유민이가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장난도 없이 잘 앉아있다. 인웅이와 준섭이는 본디 장난이 많은 아이들인데. 둘러 앉은 아이들 얼굴을 살피니 모두가 고단해 보인다. 주말 지내고 온 달날 아침이면 아이들 얼굴이 보송보송 통통 튈 풍선처럼 생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토요일 일요일 쉬지 못하고 답사를 다녀온 정일, 한별, 상미, 호준 선생의 얼굴에도 고단함이 가득해보인다. 소현이는 이틀을 열감기로 잠만 잤다고 하는데 얼굴이 예뻐 보인다. 제법 아가씨 얼굴도 있다. 1학년 어린이들이 감기에 많이 걸려있다. 몸관리에 좀 더 애를 써야겠다. 영호는 목감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은후는 얼굴에 상처를 안고 학교에 왔다.
모두 아침열기를 마치고 조금 쉰 뒤 모둠 아침열기를 하는데 시우가 들어온다. 둥굴게 하루 공부 이야기를 마치고 건강 챙기는 이야기를 하며 시우에게 “시우야, 병원에서는 뭐라고 해? 병원에 또 가야 해?”라고 묻는데 대답이 없다.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다. “시우는 얼굴에 상처가 나서 여러분들이 얼굴 만지는 장난을 하면” 이쯤 이야기 하는데 시우 눈에서 눈물이 터진다. “시우야, 왜 울어요?” “나, 그 소리 듣기 싫어요. 자꾸 얼굴 물어보는 것 싫어요.” 친구들이 크게 붙인 반창고에 걱정을 담아 묻는 소리가 부담스러웠나보다. 금방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시우야, 시우 부끄럽게 묻는 게 아니고 알아야 시우를 도울 수 있어서 그래요. 우리 날마다 몸이 조금 안 좋은 사람이 있는 지 어떻게 도와야 하는 지 서로 묻고 이야기 나누잖아요.” 그래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시우는 바쁘다. “보세요. 은후도 얼굴을 다쳐왔어요. 근데 얼마나 아픈지, 놀 때 서로 조심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서로 돕지요.” 은후의 얼굴을 흘끗 보더니 시우 얼굴이 밝아진다. 아마도 남달라 보이는 것이 싫었나보다. 은후가 이야기를 이어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우 얼굴이 밝아진다. 얼굴 상처를 놀던 손으로 만지면 세균이 들어갈 수 있으니 서로 얼굴을 만지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했더니 하루 내내 영호가 옆에서 시우 얼굴을 만지지 않도록 알려준다. 영호 몸은 거의 반은 시우에게 돌아가 있다.
요번 주 시 맨발 동무를 함께 읽고 반쯤은 그 자리에서 외워버렸다. 알맞게 식은 매화차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니 코로 먼저 먹는다. 요런 것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나 보다. 아이들은 작은 잔을 두 손으로 바쳐들고 코로 한 껏 매화 향을 들이 마신다. 매화 차에서 사과 냄새도 나는 듯 한데 윤태와 준섭이는 석유냄새라고 한다. 차에서는 조금 단 맛이 났다. 은후와 인웅이는 아무 맛도 안 난다고 한다. 천천히 차를 마시고 쉬는 시간을 갖았다.
요즘 푸른샘 친구들은 모이는 시간이 아주 많이 줄었다. 약속한 11시 5분 전에 책상 네 개씩 붙이고 앉았다. 아이들이 모이기 전 부엌에서 아이들이 마신 찻잔을 씻고 있는데 은후가 내려와 “선생님, 나 배가 아파요.” 한다. 내가 얼마나 아프냐고 묻자 “나, 똥 싸도 돼?”한다. “그래, 그럼 얼른 똥 누고 와요.” 하자 옆에 있던 호준 선생님이 ‘흠, 이 대화는 뭐지?’ 하는 낯빛으로 우리를 본다. 자리에 예쁘게 앉은 1학년 친구들과 오늘 함께 읽은 책은 <나무>와 <나와 너>이다. <나무>는 글은 없는 그림책으로 나무의 한 해 살이를 그림으로 나타낸 책이다. 오제는 어린이집에서 본 책이라고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이들도 열심히 그림을 보지만 곧곧에 숨은 것들을 세세히 보지는 못한다. 아마도 글이 있는 그림책에 익숙해서 그런 듯하다. <나와 너>를 읽을 때도 내가 읽는 소리에는 집중을 하지만 펼쳐진 그림을 세세히 보지는 못한다. 책읽기에 아이들이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필 수 있도록 읽어주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
책읽기를 마치고 바로 이어 한글 닿소리 ‘ㅛ, ㅜ, ㅠ’를 익혔다. 지난주에 많이 하지 못해 오늘은 조금 많이 빠르게 나갔는데도 아이들이 잘 따라 온다. 12시가 넘어서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힘겨워 하지 않고 정성을 들인다. 마지막 뒷정리까지도 깔끔하게 한다.
낮공부는 모두 함께 하는 몸놀인데 미세먼지 농도를 살피니 아주 나쁨이다. 강산이와 몇 몇은 꼭 밖에 나가서 축구를 하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럴 수 없는 일, 모두 1층 마루에 모여 앞구르기, 뒤구르기, 옆 구르기를 익혔다. 아이들은 대체로 앞구르기는 잘 하는데 뒤구르기와 옆 구르기는 두려움을 갖는다. 몸을 균형 있게 쓰려면 익혀야 하는 몸동작들이다. 1학년 아이들과도 때때로 해야겠다. 구르기에 이어 4,5,6학년들이 쇠날 하는 춤 수업에서 했던 1~5단계 걷기 놀이를 했다. 1은 아주 천천히 걷기, 2는 천천히 걷기, 3은 보통으로 걷기, 4는 뛰기, 5는 멈추기인데 용케도 부딪히지 않고 잘도 걷고 뛰고 멈춘다. 참 단순한 움직임인데도 하는 아이들도 신나고 보는 선생들도 신난다. 나도 끼어 함께 하고 싶은 충동이 자꾸 인다.
지율이네서 보내온 돼지감자를 들고 마침회를 하러 올라갔다. 요즘 푸른샘은 말 전달 놀이에 빠져있다. 덕분에 마침회 준비가 아주 잘 된다. 아이들이 모두 둥그렇게 앉아 말 전달 놀이를 하고 있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이다.^^ 하루 흐름을 살피고 지구를 지키는 실천 물 아껴 쓰기와 전기 아껴 쓰기 어떻게 했나를 물으니 저마다 할 말 들이 많다. 다들 한 꼭지씩 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시우는 “난 없어.”한다. 당당하다. 시우도 집에서 학교에서 지구 특공대로 할 것들을 찾아보자고 이야기 하는데 유민이가 몸을 비비 꼬며 쑥스러운 듯 이야기를 꺼낸다. “근데, 나 실수 한 게 있어요.” “엉? 우리 유민이가 어떤 실수를 했을까요?” “있잖아요. 세면대 청소를 내가 하는데 물을 조금만 받아서 해야 하는데 엄청 많이 받아서 했어요. 물을 너무 많이 썼어요.” 스스로 생각해서 지구 특공대가 물을 많이 쓴 것이 부끄럽고 큰 실수라고 생각하는 유민이, 이대로 삶으로 살다보면 지구를 생각하고 아끼는 버릇이 그대로 유민이 몸에, 우리 아이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을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고 < !>라는 책을 읽어줬다. 다른 마침표들과 다른게 싫어서 어떻게든 같아지려고 노력하던 느낌표가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아침에 시우의 눈물이 마음에 걸려 읽어줬다. 아이들은 책이 끝나자 "다른 것도 좋은데"라고 이야기 한다. 다른 것은 정말 아름다운 것인데, 아이들이 살아가며 누군가와 스스로를 견주지 않고 자기 빛깔 그대로 사랑스럽게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