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최근에 목사를 청빙해야 할 교회의 장로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장로님!
요즘 교회 때문에 수고가 많지요? 이참에 평소 내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살면서 철없는 인간들이 목사라고 시건방 떠는 꼴 많이 보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목사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더군요. 그나마 나는 목사가 밥 벌어 먹는 수단이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매질을 하기라도 했지만.
목사 청빙 방법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목사 청빙을 단순히 설교 듣고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옛날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설교 들어보고 결정을 했었지요.
그러나 사람을 한 번 만나서 말로 감동을 주는 것을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사기성 많은 사람이 제일 잘하지요. 행동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어렵지 말로 감동을 주는 것이 어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차려놓은 무대에서 마음먹고 하는데…….
그것도 못하면 자질 면에서 이미 목사로서의 소질이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생활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선 이력서를 면밀히 검토해 보아야 하겠지요. 지금 우리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선 그 목사 이름을 검색해 보아서 아무 곳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그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즘 세상에 온라인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석기 시대처럼 살고 있는 교회들이 대부분 입니다.
내가 성결교회에 목회를 한다면 6개월 만에 전 세계는 몰라도 시드니에서는 제일 유명한 교회로 만들 방법이 있습니다. 힐송 교회가 멀티미디어를 잘 사용하지만 호주 언론의 단골 공격 대상입니다. 기술은 발달했지만 컨덴츠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다음으로 구태여 비싼 비행기값 들여서 왔다갔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skype를 통하여 화상 통화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그런 것 못한다? 그런 사람은 이 시대의 목사로서 자격미달이지요.
아마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화상 통화를 한다면 교인들의 참여도가 저절로 높아지고 의견을 들을 수 있으니 민주적인 절차가 자동적으로 될 것이고, 별 것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젊은이들이 동원되면 더욱 새로운 목회자 청빙에 관심이 높아져서 좋을 것이고요. 교회는 젊은이들이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나이 먹은 장로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더욱이 호주에서.
참고로 지금은 세계의 어떤 기독교 회의에 가도 여성과 청년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목회자 청빙 과정에 반드시 청년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요즘 언론에 한참 보도되고 있는 공군 무기중개상 부정혐의로 조사 받고 있는 일광 공영의 이OO은 내 친구가 담임 하고 있던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마침 이번에 그 목사가 시드니에 왔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는데 ‘마녀사냥.’이란 말을 쓰더군요. 전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국가에 큰 손상을 가져오는 사건에 대해서 말입니다. 차라리 ‘표적수사’라는 말을 썼다면 일면 타당성이 있었을 겁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흔히 목회자들에게 결여되기 쉬운 ‘객관적 실체적 본질을 보지 못하는’ 모습을 또 다시 느꼈습니다. 목사들은 늘 자기 생각대로 설교를 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자기 느낀 대로 보는 주관적 경향이 강합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속으로는 객관성이 전혀 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로는 그럴듯하게 객관적으로 포장하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위선적이 되기 쉽지요. 교회에 와서 진실하고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에서 보다 더 위선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책임이 큰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사고를 할 줄 아는 목사를 만나야 성도들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들 가운데 나이는 젊은데 생각이 늙은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것이 축복이 아니라 넓고 깊게 생각할 줄 아는 목회자를 만나는 것이 축복이고,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는 도둑을 키우는 목회자를 만나면 성도들이 ‘끓는 물속의 개구리‘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예수의 정신에 철저하게 서 있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신자들을 영적으로 좁고 얕은 시냇물가로 아니고 넓고 깊은 대양으로 인도할 수 있는 목사도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숙명처럼 평생 벗어나지 못할 교회라는 조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내 생각에 교회는 어떤 이들에게는 유대인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그 안에서 살다 죽어야 했었을 중세기의 게토와 같은 것일 겁니다. 자발적이기도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 특히 이민 교회는 거의 전부가 게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밖의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구체적으로 정치, 역사, 문화, 철학, 과학 등과 담을 쌓고 살아서 무엇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내 이야기를 해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과거에 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다 버리고 지금은 책장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책 중 어느 한 권을 뽑아도 보통 목사들은 이해하기가 힘든 책들입니다. 물론 나에게도 어렵습니다. 어떤 책을 몇 년 동안 만져 보지도 못하는 책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어려운 책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설교 준비 외에 신학 공부를 별로 하지 않습니다. 한번 보수적 신학 프레임에 갇히면 더 공부를 하지 않아도 같은 소리를 반복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깊고 넓게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 깊고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고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상한가를 치고 있는 법륜 스님의 법문이 왜 인기가 있을까요? 넓고 깊고 새롭기 때문입니다.
어느 글에서 ‘생각의 물구나무서기’라는 생소한 표현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생각하던 방식에서 완전히 뒤집어 생각해 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세뇌 당한 관습적 사고를 하기 쉽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계속 공부를 해야지요. 평신도들은 그렇게 못해도 목사는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울 것이 있지요.
절대로 교만한 의미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목사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그들이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해석으로 설교를 해도 최소한 3 년은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골프 치러 다닐 시간에 공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설교는 기도도 해야지만 결과적으로 목사의 머릿속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 목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의 총량에 비례할 수밖에 없지요. 무식하면 무식한 소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장로는, 내가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수백 명의 생계가 달려 있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수 백, 잘 하면 수천 명에게 영적, 정신적, 내면적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장로의 사업보다도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 입니다. 이런 기관에 자질이 없거나 실력이 없는 사람을 책임자로 선택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나는 또 어떤 목사가 와서 허송세월을 할까 하는 정말 걱정이 큽니다. 태평양 선교라는 허망한 구호 보다는 교민사회를 휘한 봉사와 선교에 힘을 써야 했습니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쯤 탄탄한 교회가 되었을 겁니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의 내용이 딴 세상 소리 같지요? 아닙니다. 나 같이 생각하는 목사들도 많습니다.
제발 이번에는 신중이 생각해서 좋은 목사를 모시기 바랍니다.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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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빈 머리속에서 무슨 설교가 나오겠습니까? 설교를 하기전에 설교자의 인성이 문제 입니다. 인성이 안된 설교자는 좋은 설교를 할래도 할수가 없습니다.앞으로 인성이 안된자는 목사를 시켜서는 안됩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예전에는 목사는 거룩한 모습만 보이는 신실한 목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십년을 신앙생활하면서 교회의 면면을 알게 되니까 전혀 다른 모습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함이 없는 목사들이 판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들의 특징은 교회를 지키기 보다는 잖은 외출로 정치목사 노릇하는 목사들입니다. 어떻하면 이름있는(대형교회목사) 목사만나서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하려는 목사를 말합니다.작은 교회에 담임목사되어 그리스도 부흥에 온 힘을 기을이기 보다 큰 교회로 위임되어 목회하려는 떠돌이 목사들 입니다. 그러면 고급아파트,승용차,고액연봉을 받아 팔짜 고칠 생각만 하는 목사들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