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님께
감독님을 처음뵌 것은 1996년 코아아트홀로 기억합니다.
크지 않은 극장에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을 옹기종기 모아놓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이 없는 세 아이들 이야기를 하셨죠. 자신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소속'과, 놀고 먹으면서 비디오나 보는 게 꿈인 '삼겹'과, 미용사가 되고 싶은 여성스러운 '섬세'. 이 세 아이들을 이야기 하면서도 다른 분들처럼 억지스럽게 희망을 주지도, 세상이라는 곳이 그래도 살만하다느니 하는 말씀도 않으시더군요. 세상이 아름답다는 설교는 접어두고 그저 현실의 암울함만을 조용하게 짚어 주셨죠. 마침 영화 일을 하다가 졸지에 '백수'가 된 내 이야기 같아서 극장을 나와 멍하게 혼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병우씨의 기타 소리조차 들릴 듯 말 듯 쓸쓸했던 그곳에서 처음 본 감독님을 그래서 아마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 친구>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만났을 때
얼마 전에는 시네코아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감독님의 근황을 엿보았습니다. 역시나 변하지 않은 감독님의 이야기가 너무나 반가웠는데, 오늘은 DVD로 감독님의 시골 아줌마같은 수더분한 모습을 보고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사실 무소속과 삼겹과 섬세 세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던 차였습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니 세 친구의 8년 뒤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더군요. 여전히 남루하고 꿈에 젖어 사는, 그래서 아직 어른이 안 된 것만 같은. 그래요, 어쩌면 <세 친구>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밴드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살아가는 게 힘들어도 기타를 놓지 못하는 '성우'와 인생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정석', 그리고 언제나 마음이 약해서 손해만 보는 '강수'. 이들 중 누가 무소속이고, 삼겹이고, 섬세인지는 알고 싶지도, 알아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8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다를 게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그들이 이미 넥타이가 익숙할 만큼 다 자라버렸는데도 8년전 모습대로 그저 이 사회의 이방인마냥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돈도 되지 않는 그런 음악을, 딴따라를 버리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살아가려면 얼마나 고단할까요, 보기만 해도 씁쓸한 그들이 묘하게 정이가고 가슴 한켠으론 부럽기까지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드럼을 놓고 운전대를 잡다.
감독님!
성우는 왜 음악을 포기하지 않을까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음악이기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그 힘들고 고단한 삶에 자신의 첫사랑인 '인희'를 끼워넣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정석은 왜 혼자서 독립하지 않을까요? 그는 신디사이저를 연주하기 때문에 성우를 떠나는 편이 먹고살기에는 나을 텐데. 아직 우정이라는 끈이 소용이 닿는 세상인 까닭인가요?
그리고 강수는요, 강수는 잘 사나요? 순진하고 무식해서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던 그가 결국 드럼 스틱을 놓고 마을버스 운전대를 잡은 건 어쩌면 잘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하고 살기에는 너무 버거운 세상이잖습니까.
참, 그 와이키키 브라더스 나이트 클럽의 염색머리 웨이터는요? 성우와 정석과 강수를 밀어낸 셈이 된 그 친구 원맨 밴드를 아주 잘 하던데 성우 일행보다는 조금 더 화사한 색으로 그려봐도 괜찮겠죠? 노오란 염색머리같은 색으로요. 성우처럼 꽉 막히지도 않았고, 정석처럼 아무여자한테 찝적되지도 않고, 강수처럼 무식하지도 않으니까요.
성우에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 행복해?'라고 묻곤 스스로 생을 마감해버린 친구가 있었지요. 감독님은 바로 그 물음에 같이 궁리해보자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들고 나온 것 아닌가요. 인희가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해피엔딩 같아 안도하면서도, 괜한 설움이 비치는 것도 아직 내가 그 물음표에 마땅한 느낌표를 찾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요.
유치원 꼬마들에게 묻듯 정리해볼까요? 인희는 사랑하는 성우를 따라서 야채트럭 대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반대로 강수는 드럼을 놓고 마을버스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럼 누가 더 행복할까요?
문제는 삶이라는 것이 이처럼 단순화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정답이 없다는 것이지요. 다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궁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야 부질없는 짓이라 하더라도, 궁리해보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살아있다는 이유가 만져질 것 같습니다.
다음 영화는 '사랑밖에 난 몰라'이길...
DVD에는 감독님의 이야기 말고도 많은 것들이 들었더군요. 염색머리 웨이터로 웃음을 선사했던 류승범씨와 감독님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틀어놓고 영화의 뒷 이야기들을 알콩달콩 속삭이는 것을 듣자니 아주 재미난 게 많더군요. 감독님은 말수가 적으신 분 같던데 그걸 다 이야기하느라 꽤나 힘드셨겠네요. 그에 대면 류승범씨는 이 영화나 TV에서 보는 것보단 훨씬 얌전하네요. 감독님 옆이라 그런가요.
덕분에 저는 강수가 마을버스를 몰 때 버스 안에서 우는 아이를 업은 여자가 정석 역을 한 박원상씨의 아들과 아내라든지, 방안에서 햇빛이 보이는 모습이 실제로는 밤에 찍었다는 것이라든지 갖가지 정보(?)를 입수했고, 이제 어디가서 아는 척을 할까 입이 근질근질하답니다.
감독님, 정말 좋은 영화 잘 보았습니다. 다음 번엔 또 어떤 이야길 들려주실까 기다려도 될까요? <세 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오래된 우정이라거나 팍팍한 현실같은 이야기 대신 찐한(?) 연애 이야기면 좋겠습니다. 감독님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생각만으로도 설레입니다. 인희의 절규같은, 그렇지만 수줍은 노래 '사랑밖에 난 몰라'랑 같은 제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흥행에 참패하고도 잔치를 벌이다
<와이키키브라더스>는 저예산 영화로 기획되어 개봉했지만 흥행에 실패해서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했다. 당시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달마야 놀자> 등 조폭영화는 극장에 걸기만 하면 관객이 구름처럼 몰렸지만 <와이키키브라더스>는 참담할 정도의 흥행성적으로 극장에서 일찍 간판을 내렸다.
하지만 이 영화의 팬 또는 마니아라 할 만한 관객들이 생겨나고, 때마침 외면당한 몇몇 좋은 영화들을 다시 보자는 이른바 와/라/나/고(와이키키 브라더스/라이방/나비/고양이를 부탁해) 살리기 캠페인도 열려 제작사인 명필름이 아예 시네코아를 대관해 다시 걸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구름관객'은 조폭영화의 몫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에 그쳤지만 제작자나, 감독에게 좋은 경험을 안겨주기도 했다.
명필름은 재개봉에서도 별 재미를 못봤지만 소위 '열광'하는 팬들을 위해 한국영화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잔치를 벌였다. 2002년 2월, 팬들과의 고별인사라는 의미를 담은 '와이키키브라더스 콘서트'가 그것이다. 대학로 라이브 극장에서 열린 이 자리에는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과 감독, 제작자가 나와서 영화의 노래들을 직접 불렀다. 성우 역을 맡았던 이얼씨가 음치라 영화속 노래를 대신 불렀다는 김진석씨가 가창력을 뽐냈고, 강수와 정석이 나와 가수 못지않은 열창을 할 때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와 비명(?)으로 화답했다. 인희 역을 맡았던 오지혜씨가 영화속에서와 같은 의상으로 나와 '사랑밖엔 난 몰라'를, 그 3류 성인 나이트 특유의 색스러운 몸짓으로 불렀을 땐 '앵콜' 요청이 쇄도 했다.
관객과 배우와 제작자와 영화가 하나가 되는 자리,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벅찬 경험이었는지는 말로 풀기 어려울 정도다. '대박'을 터트렸다는 <쉬리>도 <친구>도 못한(또는 안한) 뒷풀이를 흥행에 실패한 저예산 영화가 멋들어지게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찬사를 아낄 수 없다. 만약 이 영화에 대스타들이 나와서 흥행에 성공을 했다면 이런 행사를 할수 있었을까? 이런 애프터서비스가 비주류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라면, 나는 언제까지나 비주류를 사랑하고 열광하고 싶다.
첫댓글 산울림님의 글을 가끔 말고 자주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단순오락,데이트코스,시간때우기로 치부하며 놀이동산 바이킹과 같은 즐거움만 추구하는 관객은 와이키키...같은 영화가 주는 소박한 영화보기의 매력을 전혀 알턱이 없죠^^ 와이키키브라더스 콘서트라...현장을 못본 저도 상상만해도 즐겁고 흐뭇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