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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올라 멀리 보라 (골 3;1-10)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이 베스트 셀러로 각광 받은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이라는 이름을 가진 갈매기입니다.
조나단 갈매기는 다른 갈매기와 전혀 다른 갈매기였습니다.
다른 갈매기들은 해변가에서 하루 종일 먹이만 찾아 헤메며 살았습니다.
배브르면 놀고 자고, 배고프면 먹이를 찾는 것이 하루 일과였습니다.
그러나 <조나단 갈매기>는 <잘 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결국 조나단 갈매기는 <허무 맹랑한 갈매기>라는 죄목을 쓰고
갈매기 사회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좇겨난 조나단 갈매기는 쫓겨난 외로움 때문에 울지 않았습니다.
동료 갈매기들이 능력이 있으면서도 날지 않고
가능성이 있는 데도 하늘로 오르지 않고
땅만 보고 사는 것이 안타가워서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좇겨난 조나단 갈매기는 갈매기들에게 <너희들도 이렇게
멋지게 나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불철주야 멋지게 하늘을 치솟으며 나르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야 말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조나단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은빛 날개를 가진 두 마리 갈매기를 정신없이 따라 갔습니디.
그 곳에 가 보니까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갈매기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조나단 갈매기는 노숙한 늙은 갈매기로부터
하늘을 치솟아 나르는 기술을 더욱 더 확실히 배웠습니다.
이제 조나단 갈매기는 능숙하고 멋진 비행술을 터득하였습니다.
이제는 완벽하였습니다.
더 높이 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빨리 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멋지게 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쉽게 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철학이 더하여졌습니다.
노숙한 늙은 갈매기는
조나단 갈매기에게 비행술을 가르쳐 주면서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라>
이 말에 감동을 받은 조나단 갈매기는
자기를 내좇은 갈매기들에게 돌아 가던 중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자기처럼 쫓겨나는 플레쳐라는 갈매기를 만났습니다.
조나단 갈매기는 플레쳐 갈매기에게
높게 날라 멀리 보는 시각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것이 <갈매기의 꿈>의 내용입니다.
조나단 갈매기의 말중에 가장 핵심적인 말은 이것입니다.
<가장 높이 나는 자가 가장 멀리 본다>
<높이 올라 멀리 보라>
성경으로 들어 갑니다.
바울도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외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높이 올라 멀리 보라>
그러면 어떻게 하면 높이 올라가서 멀리 볼 수 있을 가요?
그 비결이 있습니다.
1. 생각을 높여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1-2)
높이 올라가 멀리 보는 고상한 삶을 살려면
위엣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
그 것처럼 높이 생각을 올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보다 더 높은 생각이 어디 있겠습니다.
높은 산만큼 생각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비행기 뜨는 10km 정도로 생각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처럼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인공위성만큼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앉아 계신 하늘 보좌만큼 생각을 높이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생각의 날개를 조나단처럼 높이 올리십시오.
신나게 올리십시오. 땅을 보지 마십시오.
민정시찰을 하던 왕이
다리밑에서 불쌍한 고아를 데려다가 궁중에서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거지로 사는 사는 삶이 익숙하였습니다.
그래서 비단 이불을 박차고 나가
대문앞에 쭈구리고 자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깡통을 들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낮이면 그늘에서 자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도무지 궁중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 하여 왕이 불러 말했습니다.
<네 집은 여기가 아니라 다리 밑이다>
그 거지 아이가 말했습니다.
<여기보다 거기가 편합니다. 도로 가는 것이 내게 좋습니다>
<높이 올라 멀리 보라>
왜 그럴가요?
바울은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1-2)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아
하늘나라에서 살 것이니 생각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윗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엣 것을 버리라>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부활할 것이고
부활하게 되면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스럽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아예 부활할 몸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땅의 지체를 죽이며 살라는 것입니다.
땅의 죄를 다 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나는 탈무드를 읽다가 감명깊은 랍비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유대인 마을에 적들이 쳐들어 와서
예쁜 처녀들 몇 명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몸값을 요구하여 돈을 벌려는 것이었습니다.
먼 곳까지 유대인들이 돈을 가지고 가서
협상을 벌려서 드디어 처녀들을 구하였습니다.
그 날 밤 처녀들을
어느 곳에 숨겨두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데
마침 그 마을에 유대인 랍비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성자라고 소문난 거룩한 랍비였습니다.
랍비는 사정 이야기를 듣고
처녀들을 자기 집 다락방에서 그 날 밤 지내게 하였습니다.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하는 높은 다락방이었습니다.
그 날 밤이 깊었습니다. 랍비는 그 처녀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다가 말고 일어나 사닥다리를 놓고
처녀들이 자는 다락방으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음란한 마음이 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랍비는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랍비는 갑자기 사닥다리 위애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이야!>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에 수많은 이웃들이 뛰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불이 나지 않은 것을 알고 물었습니다.
<왜 불났다고 거짓말로 소리를 질렀습니까?>
랍비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실수할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을 내가 산통 내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땅에서 내 음욕이 들어나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에게 책망받는 것보다 낫지요>
이것이 바로 높게 생각하고 멀리 보는 삶입니다.
2. 말을 높여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음성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강문호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높이 올라 멀리 보라>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며 살려고 하면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여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예수 이름으로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들어도 불편함이 없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여도 예수님이 듣고 계시다가는
의식을 가지고 말하며 사는 것이 높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 옆에 예수님이 계시다>
이런 차원의 말이 높은 차원의 말입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함께 하시겠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들으셔도 떳떳한 말을 하는 것이 높은 질의 말입니다.
벳세다에 5천명이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거냥 보냈다가는
허기져서 쓰러질 것같이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먹을 것을 주어라>
이 때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제자들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때가 저물었습니다>
<빈 들입니다>
<200 데나리온도 부족할 것입니다>
모두 부정적인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말했습니다.
<5병2어 가진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안드레 말속에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었습니다.
기적이 들어 있는 말을 하는 이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능력의 말을 하는 이에게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옆에서 같이 죽어간 두 강도의 말은 천지차이였습니다.
한 강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동일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눅 23;40)
이 강도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강도는 말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눅 23;42)
이 강도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이 강도는 천국에 갔습니다.
한 마디 말로 지옥과 천국이 갈라졌습니다.
말의 차원을 높이십시오. 주안에서 말하여야 합니다.
기적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구원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겨룩한 말을 하여야 합니다.
멀리 올라 멀리 보려면 말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1652평을 사려고 합니다. 계약 단계입니다.
우리 힘에는 넘치는 일입니다.
이 일을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시는 대로 막 적었습니다.
<모험없이 큰 일없다>
<내밀면 갈라지리라>
<네가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
<계산은 인간적인 방법이다>
<내가 기적을 줄 공간을 만들어라>
<돈에 일을 맞추지 말고 일에 돈을 맞추어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상식이요,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믿음이다>
높이 올라 멀리 보는 삶을 가지려면 말을 높여야 합니다.
3. 삶의 질을 놓여야 합니다.
조나단 갈매기는
무엇을 먹을가 무엇을 마실가 무엇을 입을가 차원에서
어떻게 좀 더 멀리 나를가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이 멋지게 나를가하는 차원으로 올라 갔습니다.
조나단 갈매기는 삶의 질이 달랐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4-10)
이 본문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말이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죽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네크로사태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시는 살아 나지 못 하게 완전히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학교에까지 30분 이상을 산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 때 가끔 뱀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같이 가던 아이들과 함께 그 뱀을 잡아 돌로 죽였습니다.
그 때 어설프게 죽으면 다시 살아 복수한다는 말을 듣고
돌로 짓이깁니다. 그리고 토막토막 냅니다.
그리고 흙냄새 맡으면 다시 산다고 하니까
돌위에 올려 놓거나 나무에 걸어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크로사태란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이렇게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1. 음란, 2. 부정, 3. 사욕, 4. 악한 정욕, 5. 탐심,
6. 분, 7. 악의, 8. 훼방, 9. 부끄러운 말, 10. 거짓말을
이렇게 완전히 죽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 하게 네크로사태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LA 유니온 교회에서는 <원수 사랑상>을 제정하였습니다.
그 교회 이론은 이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명령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원수를 사랑한 사람들을 뽑아서
매년 한 명씩 <원수 사랑상>을 시상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원수가 있는 데
원수를 사랑하였으면 추천하여 드리겠습니다.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좀 더 고차원적인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높이 올라 멀리 보는 삶입니다.
일본에 있었던 일입니다.
석정 덕태랑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상점에 점원으로 일하던 중에 주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이 예뻤습니다.
주인 아내를 겁탈하고 탄로날까 두려워 그 여인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살인이 탄로날 것같아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다 그 집에 붓고 그 집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잡혀서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감옥에서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사형당하여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소에 있는 이들에게 열열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특사에 특사를 거듭하여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무기수에서 감형을 거듭받으면서
장기수로, 장기수에서 단기수로, 단기수에서 석방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으로 나오지 않고
죽기까지 자원하여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20여년을 감옥에서 살면서 수많은 죄수들을 구원하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온 일본이 떠들석할 정도로 대단하였었다고 합니다.
감옥에서도 삶의 질을 높인 사람입니다.
어떤 여자 분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실직하였습니다. 자녀들은 학교에서 퇴학당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이 곳 저 곳으로 돌아다니며 불량한 소년으로 자라났습니다.
이 여자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어느 날 동반자살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자는 방에 가스 밸브를 열어 놓았습니다.
집안이 가스로 가득 차고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옆집 열린 문틈으로 찬송이 울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그 찬송을 들으면서 갑자기 그 여자의 눈이 달라졌습니다.
근심과 고통만 보이던 그 여자의 눈에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생을 맡기고,
자기의 모든 근심을 맡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혼탁한 공기를 몰아냈습니다.
며칠 후에 자녀들과 함께 시골로 가서 새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근심이여 안녕>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저술한 메니큐스 마네 부인입니다.
오늘 삶의 질을 높이십시오.
조나단 갈매기 같이 높이 오르십시오. 멀리 보십시오.
외동딸을 둔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딸과 결혼하자고 죽자 살자 따라 다니는 총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총각이 장로님에게 와서 결혼시켜 달라고 졸랐습니다.
장로님이 이 것 저 것을 묻다가 또 물었습니다.
<한 달 수입은?> <200만원입니다>
<그러면 내 딸이 지금 150만원 받으니
합해서 350만원이면 그럭저럭 살겠군>
<이미 합해서 200만원입니다>
<그러면 200만원 가지고 집 세까지 내면서 어떻게 살래?>
총각은 신용카드를 보여 주면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장인어른 염려 없습니다. 카드긁으며 살지요>
결혼후 카드빚이 산더미처럼 늘어 났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너희들 대단하다.
그 수입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호화롭게 살아가니?>
<카드 긁어며 살아>
<그러면 카드 빚은 어떻게 갚으려고 그래?>
<그래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
<무슨 아르바이트?>
<글을 쓰고 있지>
<무슨 글?>
<매월 카드 값좀 갚아 달라고 아버지에게 편지 쓰고 있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생활을 하다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심판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내 아들 예수를 믿었기에 구원은 받았다.
그러나 카드를 너무 많이 긁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주었기에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
부부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그 죄값 벌금을 카드로 긁으면 안 될 가요?>
이렇게 삶의 질을 낮추지 마십시오.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1-2)
얼마 전 모 교회 부흥때였습니다.
아침에 4,000원자리 해장국을 세 번 먹었습니다.
한번 먹어보고 맛있기에
아침마다 그 곳에 가서 그 것만 먹었습니다.
아침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였습니다.
주인이 모 교회 집사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이 음식점이 잘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맛있으니까요>
<맛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서 맛을 내 주십니다.
그래서 한 그릇 한 그릇 파는 것을 정확하게 적지요.
24시간 일합니다.
식사와 식사 사이 손님없는 사이
잠간잠간 자는 것이 전부이지요.
그래서 교회 가면 좁니다.
피곤하여 한번도 설교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요.
그래도 하나님이 이 사업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네요.>
이것이 대답이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을 바꾸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 않습니다.
순간의 성령의 역사면 족합니다.
오늘부터 3가지를 높이 십시오.
1. 생각을 높이십시오.
2. 말을 높이십시오.
3. 삶의 질을 높이십시오.
<높이 올라 멀리 보라>
-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의 보혈의 강단 중에서
* 사진 출처 : KBS TV 뉴스에서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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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가을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