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 계시는 벗 님들 :
광화문역에서 한성대입구역까지 걷기의 후반부입니다. 오던 길로 곧장 가면 성북구민회관으로 가지만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성북동으로 내려왔습니다. 길상사로 향했습니다.
길상사에 닿기 전에 한국가구박물관이 있어 들어가 볼까 하였더니 아직 개관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금년 가을이나 되어 개관 할 것이라고 합니다.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길상사를 향하여 내려갔습니다.
며칠 전 입적한 법정 스님과 길상사가 설립되는 과정의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지요. “眞香” 이라는 예명을 가진 김영한 이라는 기생출신이 운영하던 요정 대원각이 길상사로 바뀌었지요. 김영한님은 백석이라는 월북시인과의 이야기로 유명하였었고요. 1987년 김영한님의 시주로 대원각은 10년 뒤인 1997년에 길상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길상사 정문에 도달하니 법정스님의 입적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분향을 위해 절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정문에는 “三角山吉祥寺” 라고 현판이 붙어있었는데 보통 일반적인 절과는 정문의 구조가 달랐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마당으로 들어가니 왼쪽편에 극락전이 있고 앞쪽으로 조금 더 가니 TV에서 여러 번 본 관음보살상이 서 있었습니다. 천주교신자인 서울대 최종태교수의 작품으로 성모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으로 유명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분향하고 있었습니다. 법정스님은 많은 책을 썼는데 불행히도 백학은 아직 한 권도 못 읽었군요. 이제 기회 있으면 한 번 빌려 읽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길상사를 나와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선잠단지가 있었습니다. 고려 때 중국 황비 서릉씨를 누에의 신으로 모시고 매년 제사를 지내던 곳인데 1908년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기고 이곳에는 집터만 남아있었습니다.
큰길을 만나 오른쪽으로 약간 올라가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 “澗松미술관” 을 찾았지만 일반에게 공개는 5 월과 10 월에 한다고 입구에 써 붙어있어 훗날을 기약하고 돌아 나섰습니다. 간송미술관은 전형필님이 수집한 미술품으로 1966년에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개관하였다고 하는데 귀중한 미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간송(澗松)의 “澗” 은 “산골물 간” 이라고 합니다. 즉 간송이란 “산골 물 가의 소나무” 라는 뜻이군요. 참 멋있는 이름입니다.
다시 큰 길로 나와 조금 더 올라가니 이태준 이라는 소설가가 살던 집이 “壽硯山房” 이라는 현판을 걸고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작지만 아담한 한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태준님이 쓴 소설은 읽은 기억이 없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 분도 월북한 사람이더군요.
큰 길로 다시 나와 조금 더 올라가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 심우장(尋牛莊)을 찾았습니다. 33인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님이 12 년간 살던 집이라고 합니다. 다섯 칸 짜리 작은 한옥집이었습니다. 尋牛란 깨우침을 찾는 과정을 소를 찾는다는 어떤 불교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글씨는 당시 유명한 서예가인 오세창님의 글씨라고 합니다.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을 피해 북향으로 지었다고 하는 집입니다.
집 뒤쪽으로 가 보니 나지막한 굴뚝이 마당에 따로 서 있었습니다. 집의 뒤쪽이지만 이 곳이 남쪽이 되는군요.
심우장을 나와 한성대입구역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옛날에는 길의 동쪽 편에 성북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 복개가 되어버렸군요. 언젠가 청계천처럼 복개를 걷어내고 다시 개천이 흐르기를 기대하면서 한성대입구역에 도착해 오늘의 걷기를 마쳤습니다.
백학 드림
첫댓글 자유롭고 여유롭게 산길을 걷고 있는 자태가 글을 통해 보여집니다. 이런 길은 홀로 걸어야 제 맛이 느껴질 듯..
다음편을 기대하게 하는 묘한 중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