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청와대 열린마당-회원게시판에 올렸는데 웬일로 글이 안 들어갑니다. 동기생님들의 도움으로 펌으로 옮겨진다면 그 이상의 영광은 없겠습니다. 2007.930.15:00>
급! 북의 통일전선부장을 만나주시는 대통령께:
청와대 회원게시판에 올렸던 최근 글이 오늘 삭제된 것을 확인하고 이 글 씁니다.
지워진 글은 “공화국 영웅1호의 대남공작”과 “10년전의 노동당 특집보도전문”으로서 1997년 5월 26일의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오늘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글이었습니다.
국민들이 몰랐기 때문에 6.15와 10.4의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대남공작의 중지와 중단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 오늘 북한의 대남공작총책이 청와대를 방문하는 기회를 다음과 같이 활용해 주실 것을 시민의 한사람으로 급 건의합니다.
북한의 1997.5.26일자 노동신문기사를 최근 읽었음을 상기하신 후
1. 10년 전에 찬양 고무했던 남한 내의 공작활동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가?
2. 진정한 화해협력을 원한다면 대남공작활동을 즉각 중단하고 공작기구도 없애라.
3. 중단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 발동으로 즉각 체포가 요구됩니다.
지워진 글은 아래의 #첨부1과 첨부 #2와 같습니다.
1997.11.30.14:50
예비역 육군소장
vietnamwar.co.kr -인강 칼럼
#첨부1:“공화국 영웅 1호”의 대남공작
최근, 10년 전의 북한 노동신문(1997년 5월26일자) 특집보도를 접한 필자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우리 정보기관은 당시에 이 사실을 크게 발표하지 않았고 자료에 접근 가능했던 학자와 언론들도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침묵해 왔을까?
이런 사실도 모른 채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던 필자는 자신의 과문을 탓하며 상념에 빠져 있다가 11.13일자 국방일보에서 “재일동포 ‘김정사 간첩사건’등 일부조작 가능”이란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들과 국방부의 출입 기자들이 문제의 노동신문 특집기사를 읽고 대남공작의 실체만 인정할 수 있었다면, 어떤 특정사건에서 간첩의 조작이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의 제시 없이 “간첩사건의 일부조작가능”이란 결론도출과 기사의 제공은 없었으리라고 보아, 관련 사실을 국민들에게 속히 알리는 것이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이 글쓰기를 결심 했다.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렬사”라는 제목의 특집보도는 (1)‘신념과 절개를 목숨 바쳐 지킨 성시백동지의 결사적인 투쟁을 보고’, (2)‘인생의 뜻 깊은 새 출발’, (3)‘나는 김일성장군님의 특사다’ (4)‘혁명가의 신념과 영생의 삶’이라는 소 제목아래 김일성의 비밀공작원으로 서울에서 활약했던 성시백(본명, 정향명, 6.25전쟁발발 2일 후 간첩죄로 사형, 아들은 현재 김일성 대학 총장재임)의 공작활동 내용을 담고 있다.
1947년 초, 북에 올라가 김일성으로부터 애용하던 회중 금시계 등을 하사 받는 장면과 서울에 돌아와 당시 남한의 각 정당과 산하단체를 정당협의회로 묶는 통일전선 형성, ‘선전공작’을 위한 ‘조선중앙일보’, ‘광명일보’를 비롯한 10여종의 신문사 경영, 육군의 ‘사단’은 물론 예하의 ‘대대’와 ‘헌병대’, ‘사관학교’, ‘육군정보국’까지 ‘조직선’을 늘렸던 국군의 와해공작과 정보공작, 당시 서울에서 활동했던 UN감시위원단 조직의 와해 및 방해공작 그리고 김구 선생에게 김일성의 특사임을 밝히고 1948년 4월의 ‘남북연석회의’ 초청장을 직접 전달하여 참가케 하는 등등의 광범한 활약 장면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10개 신문사의 경영과 각개 정당의 조정 그리고 국군의 정보공작과 와해공작 등에 소요된 엄청난 공작자금은 어떻게 조달되었을까? 기사의 어디에도 언급은 없으나 북한의 화폐개혁이 47년 12월 1일 단행되었다는 사실-당시 남북의 화폐는 동일, 남한은 5개월 늦게 화폐개혁-로부터 성시백에게는 회중시계와 함께 무한대의 공작금이 지원됐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필자의 개인의견임)
성시백의 활동내용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철저한 비밀로 부쳐지다가 김대중 정부가 탄생되던 선거의 해에 북한의 내부 선전용으로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보다 3년 전인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이인모 노인의 북환 송환이 있었고 4년 후에는 김대중 정부에 의한 63명의 비전향장기수 송환으로 연결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들 비전향 장기수들은 북한에 돌아가 모두 성시백에 이은 공화국 영웅대접을 받고 있으니 현재 남쪽에서 활동하고 있을 북측 공작원들의 사기 상태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애국시민들이 이들의 사기에 눌려 끝까지 침묵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침묵은 한다 하더라도 감시와 경계의 눈만은 크게 떠야만 할 것이다.
대통령선거 한 달을 앞두고 서울에서 총리회담이 열리고 있고 평양에서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게 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북으로 부터의 북풍도 불어올 수 있고 괴상한 남풍도 예상 되며, 그 일부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애국 시민들과 대한민국의 국군과 공무원들이 10년 전에 보도된 노동신문의 특집기사만 읽게 되면 “철경만대”(‘철’저한 ‘경’계로 ‘만’반의 ‘대’비)의 자세를 쉽게 갖출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혼란기에, 남한의 정당과 군과 언론에 성공적으로 침투했던 공로로 “공화국 영웅 1호” 칭호를 받은 성시백의 역할을 오늘 누가 맡고 있으며, 그 자금조달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대한민국 구국의 길이 열릴 것이다. 국민들이 냉철한 판단력을 갖출 때 대통령에 출마한 여야의 후보들도 냉정을 되찾고 현명하게 성숙된 선거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러한 뜻에서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10년 전의 북한 노동신문 특집보도가 국방일보와 기타의 주요 일간지에 조속히 소개될 것을 기대하며, 필사즉생의 각오로 이 글 남긴다. 1997년 5월26일자의 노동신문 특집보도는 광화문 우체국 6층, 통일부 북한 자료센타에서 열람이 가능함을 알려드리며, 대한민국 만세!
2007.11.17
www.vietnamwar.co.kr 인강칼럼
#첨부2: “10년 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 전문”은 분량관계로 위 홈페이지의 인강칼럼 동제목 글을 참고바랍니다
첫댓글 이를 어쩜 좋단 말인가?!! 대남공작총책이 제발로 넘어 왔는데 우리국군과 국정원은 이를 체포할 생각이나 하고 있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