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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검은등 뻐꾸기의 울음☆]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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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등뻐꾸기의 울음]
임 보 시집 / 한국의 서정시 081 / 시학사(2014.06.20)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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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등뻐꾸기의 울음
임보
네 마디로 우는 저 새의 울음소리
사람의 음성과는 달리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되질 않아
문자文字로 옮길 수가 없다
흔히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운다 하지만
어찌 들으면
“첫차 타고, 막차 타고” 하는 것도 같고
“언짢다고, 괜찮다고” 하는 것도 같다
또 어떤 이는
“혼자 살꼬, 둘이 살꼬” 한다고도 하고
“너도 먹고, 나도 먹고” 한다고도 한다
듣는 이에 따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만어萬語를 품고 있는 저 무궁설법
누가 따라잡을 수 있단 말인가
오봉五峰
임보
선사禪師 다섯 분이 엉검엉검
구름을 딛고 갑니다
은하수 저 너머 어느 별 마을에
무슨 잔치라도 벌어졌는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개 끄덕이며 활개 치며
도포 자락 바람에 날리며
허공을 딛고 갑니다.
파도
임보
수천마리 백사白蛇들이
흰 깃을 세우고 식식대면서
해안을 따라 달려간다
어느 곳에
전신戰神의 나팔 소리라도
울리고 있나 보다.
시詩
임보
시를 씹는다
입이 쓰다
독이 오른 말들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말들과 시비를 하며
금계랍金鷄蠟*을 삼키듯
써**가 빠진다.
* 금계랍 : 몹시쓴 해열 진통제. 연산키니네.
** 써 : ‘혀’의 전라도 방언
너
임보
내가 그 앞에서면
그는 네가 되고
내가 너를 떠나면
너는 다시 그가 된다
너는 내가 가는 곳마다
태어나서
내가 떠날 때마다
죽는다
아,
무지개처럼 드러났다
노을처럼 스러지는
아름다운 너
너는 순간의 꽃
슬픈 환상이다.
누가 다녀가셨을까
임보
마당가
매화나무 그늘 밑에 잠시 서 있다 왔는데
발목이 가렵다
긁었더니 콩알만 한 두드러기가 돋는다
무엇에 물린 자국이다
제 영토에 무단 침입했다는 경고리라
어느 나라 특공대였을까?
개미 나라?
모기 나라?
내 뜰의 주인도
나만이 아니다
보시
임보
내설악 한 보살님은 들꽃을 좋아해
날마다 들꽃으로 꽃 보시를 하고요
만경 들 한 처사님은 곡차를 좋아해
날마다 막걸리로 술 보시를 하고요
논은 벼 보시
밭은 콩 보시
청산은 눈보시
유수는귀 보시
보시만 누리고
보시할 줄 모르기는
천지간에 오직
이 한 몸뿐
다비茶毘
임보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화火--중中--생生--연蓮
불꽃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
세월에 대한 비유
임보
세월이 거북이처럼 느리다고
20대의 청년이 말했다
세월이 유수流水처럼 흘러간다고
40대의 중년이 말했다
세월이 날아가는 화살이라고
50대의 초로初老가 말했다
세월이 전광석화電光石火라고
70대의 노년이 말했다
한평생이 눈 깜짝할 사이라고
마침내 세상을 뜨는 이가 말했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한 우리들의 생애
임보
겨울이 길고 봄이 더디 올지라도
이웃이 자주 우리를 괴롭힐 지라도
세상이 우리를 돌아보지 않을 지라도
행운이 늘 우리만을 외면할 지라도
엿새를 일하고 하루만 쉴지라도
때로는 사랑이 우리를 배반할 지리도
남루가 우리의 육신을 허전케 할지라도
늘 패배의 쓴잔을 삼키며 잠 못 들지라도
…………………………………………………………
휴대폰 노숙
임보
교회나 동창회에 다녀온 아내는
치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사람들 얘기를 자주 한다
글쎄 말이에요
전화기를 신발장에 넣어 둔 사람도 있대요
어제 아내와 함께 집에서 매실을 땄다
나는 담장 위에 올라서서 장대로 매실을 떨구고
아내는 밑에서 떨어진 매실을 주워 담았다
오늘 아침 아내가 말했다
나도 중증인가 봐요
두 사람의 휴대전화기가
어젯밤 매실나무 밑에서 노숙을 했다는 것이다
혹 걸려올지도 모를 전화를 대비해서
매실나무 밑에 놓아 둔 것을 잊은 채
그만 들어와 하룻밤을 지낸 것이다
아내의 얘기를 들은 그때까지도
나는 모르고……
두 사람의 증세가
막상막하다
고향은 변하지 않는다
임보
고향의 산과 들은
고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속에 있다
보라,
밤마다 우리가 꾸는 꿈을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향의 친구들은
세월이 가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보라,
밤마다 찾아오는 유년의 꿈을
벌거벗고 물장구치는 저 개구쟁이들을
도로가 새로 뚫리고
집들이 새로 들어앉고
낯선 얼굴들이 고향을 다 점령했지만
내 고향은 옛날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
대숲 속의 초가집들
낮은 담장에 기어오른 호박넝쿨
가슴 드러낸 채 물동이 이고 가는 여인네들
정자나무 그늘 밑에서 긴 담뱃대 물고 쉬는 노인들
개울물 소리며, 개 짖는 소리며, 낮닭 우는 소리
아직도 눈과 귀에 가득하다
집 한 채 짓다
임보
평생 집 한 채 지어 본 적이 없는 놈이
삼복더위에 집 한 채 지었다
그것도 이틀 만에
철공소에 사가서 조립식 앵글을 절단해 오고
목공소에 가서 베니어판을 업어다 놓고
자로 재며 톱질하고 못을 박고 지붕을 덮어
근사한 양옥 한 채 만들었다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 견공
십여 년 기른 진순이 집이다
지난 장마에 쓰러진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앉혔다
그런데 어닌 일인지
집주인이 탐탁해 하지 않는다
헐린 옛집에 정이 들었는지
새집엔 영 들어갈 기미가 없다
나도 농장주가 되었다
임보
금년 봄에
드디어 나도 농장주가 되었다
수만 마리의 양 떼나
수천 두의 소떼들을 방목할 만한
아득한 평원은 아니어도
트랙터나 경비행기를 동원해서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수백만 에이커의 광활한 농토는 아니어도
아니,
쟁기나 따비를 댈 만한
몇 마지기의 땅도 못 되긴 하지만
삼각산이 건너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내 밭을 마련했다
구청이 분양한 ‘친환경 텃밭’인데
3.3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된 것
6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9,900㎠의 농장― 3평의 땅을 잡았다
내 농장의 명칭은 223호
은퇴한 내겐 ‘주말농장’이 아닌, ‘평일농장’이다
머지않아 우리 집 식탁에
상추며 쑥갓이며 가지며 풋고추며 ……
신선한 야채들이 푸짐하게 공급될 판이다
가지[茄]를 따다가
임보
고추나무 사이에 몇 포기 심은 가지가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았다
저 보랏빛 고운 살결
어린애의 피부처럼 보드랍기도 하리
내 농사의 첫 수확
저놈을 따다 나물을 만들면
저녁 식탁은 참 향기롭기도 하겠다
살며시 다가가 한 놈의 꼭지를 잡는다
“앗 뜨거!”
나는 손을 놓고 주춤 물러선다
가시에 찔린 손끝이 얼얼하다
저 부드러운 놈이 가시를 품고 있다니……
밤송이가 가시로 밤알을 보호하듯
탱자나무가 가시로 탱자를 지키듯
가지도 꼭지에 가시를 달아 오는 손을 막는다
(겉만 보고 함부로 덤비다간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가지가 가시를 지녔다는 사실을
가지를 손수 심어 보고서야 비로소 알다니
농촌에서 자란 내가 참 민망키도 하다
오빠가 되고 싶다
임보
나팔바지에 찢어진 학생모 눌러쓰고
휘파람 불며 하릴없이 골목을 오르내리던
고등학교 2학년쯤의 오빠가 다시 되고 싶다
네거리 빵집에서 곰보빵을 앞에 놓고
끝도 없는 너의 수다를 들으며 들으며
푸른 눈썹 밑 반짝이는 눈동자에 빠지고 싶다
버스를 몇 대 보내고, 다시 기다리는 등굣길
마침내 달려오는 세라복의 하얀 칼라
‘오빠!’ 그 영롱한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토요일 오후 짐자전거의 뒤에 너를 태우고
들판을 거슬러 강둑길을 달리고 싶다, 달리다
융단보다 포근한 클로버 위에 함께 넘어지고 싶다
네가 떠나간 멀고 낯선 서울을 그리며 그리며
긴 편지를 지웠다 다시 쓰노라 밤을 새우던
열일곱의 싱그런 그 오빠가 다시 되고 싶다
바람을 몰고 가는 소녀
임보
높다란 둑길을 빨간 자전거 하나 굴러갑니다
하얀 원피스의 목련꽃이 핸들을 잡았습니다
신명 나게 굴러가는 바퀴가 바람을 일으켜
짧은 치맛자락이 펄럭입니다
아니, 목련꽃 치마 밑이 궁금한지
앞에 있던 바람들이 달려와 치마를 자꾸 들춥니다
길가 수양버들 실가지들이 흔들흔들합니다
개울에 있던 왜가리도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립니다
앞산 숲 속 어디선가 뻐꾸기도 조급히 울고
늙은 농부도 빠진 이를 드러낸 채
허수아비처럼 멍하니 논 가운데 서 있습니다.
사냥
임보
에스키모 인들이 그 영악한 여우를 잡는 방법이 이렇답니다
칼을 예리하게 잘 갈아 얼음 판 위에 거꾸로 꽂아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칼의 표면에 꿀이나 동물의 피를 발라 놓습니다
지나가던 굶주린 여우가 꿀이나 피의 냄새를 맡고 칼을 핥습니다
혀가 칼날에 베이어 피가 흐릅니다
흐르는 피가 자신의 것인지도 모르고 계속 핥습니다
신발장수
임보
한 신발회사 사장이
상품 판로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아프리카에 두 명의 사원을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맨발로 살아가는 토인들을 보고 돌아온
두 특파원의 보고가 서로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절망적이라고 비관했고
한 사람은 고무적이라고 낙관했습니다
전자는 맨발의 토인들에게 신발을 팔 수 없으리라 판단했고
후자는 맨발의 토인들에게 신발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년 뒤,
한 사람은 여전히 평사원으로 본사에 머물러 있고
한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유능한 CEO가 되었습니다
하동 천렵
임보
6월 중순, 섬진강 하구 하동에 가서
푸른 전어들을 영접했다
목선을 타고 강의 중심에 나가면
밀물을 밀고 떼로 몰려오는 어군들을 만난다
배의 이물에 높이 오른 구릿빛 어부가
독수리 날개처럼 허공에 투망을 띄운다
그러면, 출렁이는 둥근 그물을
푸른 강물이 넓은 품에 받아 안는다
어부의 능숙한 손길을 따라
조여지는 투망의 그물 속에 갇힌 은린들
갑판 위에 그물을 쏟아 놓으면
동동 튀어 오르는 어린 전어들이 싱그럽다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되기 전
열예닐곱쯤 되는, 버들잎 크기의 어린 것들
밤꽃이 피고 보리가 익어 갈 무렵 찾아온 이놈들을
하동 사람들은 보리전어, 버들전어라고 부른다
어부는 계속 투망을 던져 전어를 퍼 올리고
배 위에는 안주를 준비하는 분주한 손들
상추 들깻잎 방앗잎 풋고추 마늘에 초고추장
달큰한 버들전어 맛에 술 따르기 바쁘다
청록 산수를 병풍으로 둘러 놓고
배 위에서 펼치는 여름맞이 잔치
바람 따라 밤꽃 향기는 솔솔 스며드는데
기우는 석양에 노을이 먼저 취한다
상수리나무의 절규
임보
1.
겨울산은 참 을씨년스럽다
잎들을 다 잃고 떨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은 처량도 하다
수많은 나목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상수리나무는
허리와 어깨에 힘을 주며 다짐한다
“떨지 말자!
우리는 나무들 가운데서도 참나무,
참나무 중에서도 상수리나무가 아닌가!”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얼핏 보면 그놈이 그놈 같지만
상수리나무는 다른 참나무들과도 다르다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매끈한 뼈대를 타고났다
2
참나무 마을의 씨족들은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다
참나무는 예로부터 사람들의 의식주를 도우며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옛날 산골의 굴피집 지붕을 덮었던 것이 굴참나무 껍질이며,
농군들이 짚신 바닥에 푹신하게 깔았던 것이 신갈나무 넓은 잎이며,
명절 떡시루에 떡을 싸서 함께 찌던 것이 떡갈나무 향긋한 잎이다
늦가을까지 고운 단풍으로 자태를 뽐내는 갈참나무며,
작은 도토리 올망졸망 많이도 달고 있는 졸참나무도 얼마나 기특한가
또한 흉년이 들면 사람들은
참나무 씨족들이 공들여 만든 열매― 도토리들을 주워서
죽을 쑤기도 하고, 묵을 만들어 연명을 하지 않았던가?
여러 도토리 가운데서도 상수리 맛이 으뜸이어서
임금님의 수라상에까지 오르다 보니 ‘상수리’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여인네들은 상수리 삶은 황갈색 물을 물감으로 쓰기도 했으니……
참나무 씨족들이야말로 나무 중의 진짜 요긴한 나무라고
사람들이 부르기를 ‘참나무’라
그 참나무 가운데서도 제일인 것이 상수리나무가 아닌가?
요즘은 먹을 것 잔뜩 있는데도 욕심 많은 인종들이
상수리를 탐하여 익어 떨어지기 무섭게 모조리 다 주워가니
아니, 그것도 모자라, 매달린 열매 떨어뜨리려
돌멩이로 몸뚱이를 무참히 찍어서 만신창이가 되었도다
상수리 자손들 제대로 못 번식케 한 죄罪 크기도 하려니와
다람쥐 산짐승들이 배를 곯고 지내게 되었으니
어이할꼬 어이할꼬 한탄하는 소리 숲에 가득하다
3
인제 봄이 오고 있다
양지쪽에선 눈을 인 복수초가 노란 꽃잎을 열었다
그러자 직박구리가 어서 일어나라고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며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안달이다
때까치도 짹짹이고,
멧비둘기도 구국구국 목을 틔우고 있다
노루귀가 별처럼 반짝이며 작은 꽃들을 밀어올리자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깨어나
황금 수술 같은 꽃 타래를 터뜨린다
진달래도 안간힘을 쏟으며 꽃 문들을 열기 시작하고
딱따구리는 아직도 겨울잠에 빠져 있는 나무들을
딱따르르륵 딱따르르륵 깨우고 있다
나목들의 가지에는
연록의 새순들이 달팽이 뿔처럼 밀고 나와 밖을 내다본다
상수리나무도 서둘러 싹을 틔워야겠다고 생각하며
푸른 기운이 감도는 산록을 굽어본다
“저 놈들은 겨울잠도 아니 자고 저리 극성이란 말이야”
푸른 소나무 마을을 건너다보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두고 봐라,
한여름이면 우리 참나무 마을의 무성한 숲을
제깟 놈들이 어디 당해낼 수 있을지……”
상수리나무는 참나무 마을의 씨족들을 향해
어서 무성하게 잎을 피우라고 고함을 지른다
참나무 마을 주위의 오리나무, 아까시나무들도
앞을 다투어 잎들을 내미느라 소란스럽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지?
참나무 마을의 신갈나무 몇 놈이 아직도 늑장을 부리고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저놈들이 저렇게 게으름을 피우니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나, 쯧 쯧……“
상수리나무가 혀를 차며 못마땅해 한다.
그러자 지나가던 직박구리가 한마디 건넨다
“잠든 게 아니에요. 갔어요!”
“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참나무시들음병으로 죽었단 말이에요”
“아니, 참나무시들음병이라니?”
“아저씬 아직 그것도 모르고 있나요?
참나무에게만 달려들어 말라 죽게 하는 돌림병인데…”
“뭐? 우리 참나무가 시들어 죽어가는 병이라고?”
기가 막힌 상수리나무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때 때까치가 날아와 참견을 한다
사람들이 죽은 참나무들을 베어내
무덤을 만들면서 올라오고 있다고――
이 봄날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붕붕거리며 돌아가는 기계톱날 소리며
웅성거린 사람들 말소리며
우지직 우지직 나무 넘어지는 소리며……
언젠가 멧비둘기가 날아와
소나무혹파리라는 병 소식을 알려주었을 때
참, 소나무 동네 안 됐다고 안타까워했었는데,
이젠 우리 씨족들을 말살하려는 시들음병이라니……
상수리나무는 발을 동동거리지만 움직일 수도 없다
4
도대체 우리 참나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왜 그 몹쓸 돌림병이 우리 씨족에게 달려든단 말인가?
열매 맺어 뭇 중생들 다 나누어 먹이고
구멍 뚫린 몸뚱이로 버섯도 길러 주고
끝내는 숯으로 온몸 불태워 인간에게 헌신커늘
대대로 베푼 우리의 보시 적선 무엇이 아직 부족하여
그런 천형을 받아야 된단 말인가?
하늘이여, 하늘이여,
이 원통함을 굽어 살피소서!
사람들아!
그대들이 잘 살려거든
부디 우리 참나무를 어서 돌보시라!
상수리나무의 절규가 온 산천을 흔들지만
사람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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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첫 시집『임보의 시들 59-74(1974)』)에 수록된 작품은 총 31편에 불과하다. 15년 동안 만들어 낸 작품집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10년에 걸쳐 쓴 제2시집『산방동동山房動動(1984)』에 담긴 작품들도 겨우 45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원래 과작의 습성에 잦은 게으름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근자에 이르러『눈부신 귀향(2012)』『아내의 전성시대(2012)』『자운영꽃밭(2013)』등 해마다 작품집을 엮어내고 있으니 무슨 바람이 들긴 단단히 든 모양이다.
이『검은뻐꾸기의 울음』은 열일곱 번째 시집이 된다.
시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 시대에 시집들을 자주 출간해내는 일이 세상에 번거로움을 더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 없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시를 믿는다.
시가 이 삭막한 세상을 좀 더 부드러이 위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 시집을 간직한 이들이 부디 위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바다.
2014년 늦은 봄날
삼각산 아래 운수재에서
임 보 적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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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보 詩集 [※검은등뻐꾸기의 울음※]
[ 시인의 산문 ] -
한국현대시의 정체성
임 보
시는 원래 통제된 글이다. 정해진 틀이 있어서 그 틀에 맞도록 써야 하는 글이다. 그것이 곧 정형시인데, 정형시가 그런 틀을 갖게 된 것은 율격과 압운이라고 하는 시의 음악적 요소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 전제주의가 무너지고 자유사상이 대두되면서 시의 형식도 정형적인 틀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서 자유시가 등장한 것이다. 자유시의 등장으로 시의 틀이 허물어지자 시와 시 아닌 글의 한계가 애매해졌다.
어떤 소재를 시로 다루어도 상관없고, 어떤 형식으로 써도 무방한 것 같다. 성자의 얘기든 불량배의 행패든 다 다룰 수 있다. 분행시로도 쓸 수 있고 산문시로도 쓸 수 있다. 그렇다보니 어떤 시는 취객의 주정 같은 것도 있고, 정신착란증 환자의 독백 같은 것도 없지 않다. 독자들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난삽한 글이 있는가 하면 아예 소통을 거부하는 글까지도 시라는 이름으로 행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라는 글이 지닌 특성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어떤 글을 ‘시’라는 이름으로 부르려면 분명 시다운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리라. 그 시다운 특성이 쇠퇴해 가고 있다면 그것을 다시 불러일으켜 쇄신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시와 산문을 구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산문시와 산문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결국 시詩와 비시非詩를 따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나는 바람직한 시란 ‘시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한 글’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러면 시정신이란 무엇이며 시적 장치는 어떤 것인가가 또한 문제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모든 글은 작자의 소망한 바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시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시 속에 담긴 시인의 소망은 보통인의 일상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훌륭한 시작품들 속에 서려 있는 시인의 소망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격이 높은 것이다. 말하자면 승화된 소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를 시정신이라고 부른다. 시정신은 진眞, 선善. 미美, 염결廉潔, 지조志操를 소중히 생각하는 초연한 선비정신과 뿌리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가 되도록 표현하는 기법 곧 시적 장치 역시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이를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제시하기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지적을 해 보자면, 감춤(상징象徵, 우의愚意, 전이轉移, 가화자persona), 불림(과장誇張, 역설逆說, 비유比喩) 그리고 꾸밈(운율韻律, 대우對偶, 아어雅語) 등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들을 한마디로 ‘엄살’이라는 말로 집약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는 시인의 승화된 소망(시정신)이 엄살스럽게 표현된 짧은 글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리라.
산문시도 그것이 바람직한 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된 글이어야만 한다.
-「산문시」,『엄살의 시학』
산문과는 달리 어떤 글이 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려면 ‘시정신’을 담고 있어야 하고 또한 ‘시적 장치’로 표현된 글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정신이란 세속적인 욕망을 넘어선 승화된 욕망이라고 보며 우리의 정통적인 선비정신과 궤를 같이한 것으로 판단했다. 시는 곧 선비의 글이다.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다면 시라고 할 수 없다. 말하자면 선비정신의 발동으로 쓰인 글이 시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그 선비정신을 담고 있는 글이 ‘엄살스런’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되었을 때 산문과는 달리 시로 불릴 수 있는 글이 된다는 생각이다.
온전한 시란 내용(시정신)과 형식(시적 장치)이 다 갖춰진 글이고, 내용과 형식 중 어느 한쪽만 갖춰진 글은 반시半詩, 두 가지를 다 갖추지 못한 글은 비시 비시非詩- 곧 시라고 할 수 없다.
한편 나는 ‘좋은 시’를 ‘좋은 음식’에 비유한 바 있다.
좋은 음식의 조건은 첫째, 몸에 이로운 영양가를 지니고 있어야 하고, 둘째, 맛이 있어야 하고, 셋째, 좋은 그릇에 담겨 있어 보기도 좋아야 한다. 좋은 시 역시 좋은 음식의 조건과 다르지 않다.
첫째, 시가 독자들에게 정신적인 영양소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독자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든지 정서적인 영역을 확장시켜 정신활동을 원활케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둘째, 즐겁게 읽혀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읽기가 괴로운 글이라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맛있는 음식처럼 시도 흥겹고 재미있게 읽혀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셋째, 아름다움을 지닌 글이어야 한다. 시가 예술작품이 되려면 아름다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아니,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한국 현대시단은 적지 않은 문제성을 안고 있는 것 같다.
시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글들이 난삽하여 시의 위의가 무너져 가고 있고, 독자들은 시를 외면하고 읽으려 하지 않으며, 수많은 시지詩誌와 비평가들은 한국 시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일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 현대시의 역사도 한 세기를 넘어선 지금 오늘의 시인과 시 단체 그리고 시 이론가들은 한국 현대시의 정체성 수립에 관하여 고민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월간『우리詩』에서 ‘시의 선언’을 내걸고 시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시도와 무관치 않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한국현대시의 정체성’에 관하여 앞에 인용한 내 생각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선비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된 글을 이상으로 삼는다.
둘째,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글을 지향한다.
셋째, 독자에게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글이기를 모색한다.
이것이 곧 잃어버린 시의 위의威儀를 회복하는 길이며, 떠나간 시의 독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방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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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매미는
맴맴맴매- 맴맴맴매-
귀뚜라미는
뀌또르르- 뀌또르르-
제 이름을 외치면서
이웃들을 부른다
까치는
작鵲작작짝 작작작짝
비둘기는
구鳩구구르르 구구구르르
이놈들은 제법 유식하게
한자漢字로 읊어 댄다
그런데
풀리지 않은 은유의 소리로
내통하는 놈들도 있다
야옹夜翁야옹, 날랜 고양이
음매陰梅음매, 느린 염소
-「울음소리」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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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보 시인∥
∙ 본명은 강홍기姜洪基
∙ 1962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 1988년 성균관대학교대학원에서「한국현대시운율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받음
∙ 1962년『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함.
∙ 시집 :『임보의 시들 59-74』『산방동동山房動動』『목마일기』『은수달사냥』『황소의 뿔』『날아가는 은빛 연못』『겨울, 하늘소의 춤』『구름위의 다락마을』『운주천불』『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기』『자연학교』『장닭 설법』『가시연곷』『눈부신 귀향』『아내의 전성시대』『자운영꽃밭』등이 있음.
∙ 저서 :『현대시운율구조론』『엄살의 시학』『미지의 한 젊은 시인에게』『시와 시인을 위하여』등이 있음.
∙ 충북대학교 인문대학국문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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