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4월15일(금)맑음
제따와나 선원에서 점심 먹다. 일묵스님과 커피 한 잔하고 쉬다. 오후강의하다. 저녁 먹고 밤 강의하다. 택시타고 지월거사 댁에 와서 쉬다. 지월거사는 제주도로 출장 갔기에 혼자 지내다.
2016년4월16일(토)흐림
아침 대충 먹고 버스타고 진주로 내려오다. 버스 안이 덥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봄놀이 가는 행락객으로 붐빈다. 집에 와서 점심 챙겨먹다. 오후 늦게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더니만 밤이 되자 바람이 세게 불어 창문이 덜컹거린다. 세계가 바람에 흔들린다. 흔들리는 고층빌딩에 몸을 구겨 넣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파트라는 게 개미굴 같기도 하고 벌집 같기도 하다. 제각기 제 방에 틀어박혀 자기가 만들어낸 세상 속에 묻혀 자기만의 경험을 한다. 한 곳에 밀집해 사는 사람들끼리는 비슷한 생활,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비슷한 삶을 꾸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끼어서 사는 나는 매우 이상해 보이는 독특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개미굴에 개미와 함께 살되 개미는 아니고, 벌집 한 칸을 빌어서 살되 벌떼에 속하지는 안는다. 세상을 공유하되 세상을 벗어나 있다. 局內국내에 참여하고 있지만 局外者국외자로서 사는 것이다.
2016년4월17일(일)맑음
아침 하늘을 보니 너무도 청량하다. 지난 밤비가 하늘을 말쑥하게 씻어 새파랗게 말려놓았다. 눈이 싱그러운 봄빛을 향해 달려가고 몸이 개운해진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강변을 산책하다. 물이 불어난 강물이 질펀하게 굼실굼실 흐른다. 버드나무들이 살이 비치는 엷은 연두색 드레스를 걸치고 부드러운 바람에 몸을 실어 살랑거린다. 제따와나 선원 강의를 준비하다. 문아보살과 진양호 전망대에 올라 봄물 가득한 湖光전망을 즐기다.
2016년4월18일(월)맑음
아침 해먹고 일찍 광주 위석한의원으로 가다. 위석 원장 진료 결과 비장이 정상보다 커졌는데 이유는 과로와 思煩脾大사번비대라 한다. 생각이 많아서 비위가 커졌고 따라서 비위가 약해졌단다. 생각이 많다하니, 번뇌가 많아진 것이다. 책을 출판한 후 신상에 벌어진 걸 보면 사번비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로 강의하러 가랴, 불교방송에 출연하랴, 북 사인회 하랴, 몸이 과로한 게 사실이다. 4월만 지나가면 할 일이 줄어져 평상을 회복하리라.
2016년4월19일(화)맑음
도향스님이 21일 오후에 진주에 도착하리라고 연락이 왔다. 오후에 부산에 계신 고등학교 때 은사 전병익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1977년 거창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만나게 되니까 40년만의 재회이다. 선생님은 올해 71세라 하시는데 아직도 정정하시고 활력이 넘치신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도 몰라볼 만큼의 세월이 흐른 것이 사실이다. 동창생 이선화가 부산에서부터 운전해서 왔다. 이선화는 해운대중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호연거사와 모두 같은 학교의 동창이다. 죽향에서 차를 마시며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다. 옛일을 기억해내며 이야기를 풀어내니 꽃잎이 떨어져 찻잔 속으로 날아드는 듯하다. 은사님은 항상 가슴 깊이 나를 품고 계셨다. 나에 대한 기억에 연민과 자애가 깃들어있음이 느껴진다. 나는 그 당시 병약하고 가정형편도 불안했다. 그런데도 특별하게 공부를 잘하고 착하니 모든 선생님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었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 제자가 아무리 세상을 떠난 스님이라 할지라도 선생님이 먼저 제자를 찾아 멀리 오시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니, 은사님은 “아닙니다. 스님은 만 중생의 선생이니 내가 스님에게로 와야지, 어찌 스님이 나를 찾아오게 하겠느냐.”고 하시다. 5월28일 부산 영광서적에서 있을 예정인 북 사인회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지다. 은사의 손을 꼭 잡고 작별인사 드리다.
2016년4월20일(수)맑음
아침밥을 지으려고 밥솥에 불을 넣고 잠시 누웠는데 은사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자주 자주 만나자고 하신다. 어제 만남에서 받았던 감동의 여운이 아침까지 남아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주신 것이다. 예, 선생님. 진주와 부산은 가까우니 자주 만나요.
아침 먹고 강변길을 산책하다. 봄물이 불어 질펀하게 흐르는 꼴이 풍요롭고도 평화스럽다. 오후에 죽향에 가서 북 사인회 스케줄을 논의하다. 호연, 아미화, 정안과 문아와 스케줄을 짜다. 문아가 저녁밥상 차려서 같이 먹는데 오늘이 호연거사의 생일이란다. 때마침 저녁식탁에 미역국이 차려졌는데 마치 문아보살이 알고나 준비한 듯해서 이게 법우들 사이의 이심전심이 아니겠느냐 하면서 웃다. 수요 강의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和光同塵화광동진에서 유래한 ‘동진’이란 호를 가진 거사님이 불교공부를 하리라고 결심하셨단다. 선재, 선재라.
2016년4월21일(목)흐림
비에 젖은 아침. 서울 갈 채비를 하여 고속버스를 타다. 차안에서 싸온 점심 먹고 서울 도착하자마자 창경궁을 찾다. 창경궁은 예전에 창경원이라 불리던 곳으로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서울 온 김에 온 것이다. 봄빛이 무르익는 고궁의 풍취가 선연하다. 춘당지에 봄물이 가득하고 정원에 영산홍 진달래 철쭉이 만개했다. 경복궁도 좋지만 창경궁이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다음엔 창덕궁과 종묘도 가보아야겠다. 지월거사 댁에 유하다.
2016년4월22일(금)맑음
아침에 전철 타고 제따와나 선원에 오다. 선원식구들과 함께 점심 공양하다. 일묵 스님과 강촌의 수행센터에 대해서 논의하다. 오후와 밤 강의하다. 밤 강의 때 주형훈과 주재기 거사님 오셔서 상봉하다. 사미 시절 때 공주 영명사에서 만났던 인연이 이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얘가 이제 법무회사에서 높은 직책을 맡아 일하고 있다. 고속버스 타고 진주로 내려오니 새벽2시반이다. 올빼미처럼 밤을 뚫고 둥지로 돌아와 깃들다. 나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인가, 중력파에 떠밀리는 입자의 덩어리인가, 자유의지가 있는 AI인가?
2016년4 23일(토)맑음
굿모닝. 변함없이 아침이 주어졌다. 매일 아침 ‘새로운 아침’이 꽃다발과 함께 배달된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선물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이 달라진다. Thank you, A fresh brand new Morning! I love you and will treat you as you`ll be proud of meeting me. 고마워, 최신 브랜드 아침아!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나를 만난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들어줄게.
10시 무렵에서 의성에서 네 분 보살님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반가운 손님을 맞아 차를 대접하고 책에 사인을 해드리다. 죽향에 가니 울산에서 온 청신보살과 영천에서 온 진성도예 부부, 보인이도 와있다. 모두 함께 문아보살이 차린 점심을 먹다. 대구 관오사에서 스님들이 세 분오셨다. 3시에 출판기념회가 시작되다. 개회 전에 분위기를 정돈하는 하모니카 연주가 조용히 울렸다. 문아보살이 사회를 보다. 호연거사가 귀빈 소개를 하다. 나의 인사말과 관오사 주지 지우스님의 축사가 있었다. 초록보살에게서 꽃다발을 받다. 정안보살 따님의 ‘머무는 자를 위한 서시’를 낭독이 있었고, 향산거사가 붓다프로젝트 가운데 연기게송 부문을 읽었다. 모두 아름답게 진행되었다. 이어서 떡 케이크를 자르고 오미자차 건배를 하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여러분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화가인 길산 선생님도 오셨다. 이어서 참석자들이 가져오는 책에 사인을 해드리다. 5시 무렵 모임이 끝나고 모두 돌아갔다. 6시 버스 타고 서울 와서 지월거사 댁에 유하다.
2016년4월24일(일)맑음
일찍 일어나 좌선하다. 아침 먹고 지월거사 운전하여 상도선원으로 가다. 선원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명품 커피를 대접받고 앉아 선원장이신 미산스님을 기다리다. 주지스님은 전법부 모임을 주재하시는 중이다. 선원장 스님 방에서 인사를 나누다. 전명철(숭실대 불교학생회 회장역임)과 정용학(서울대 총불회장 역임)법우와 인사 나누다. 실로 오랜 간만의 해후로 밀린 이야기 보따리를 한 자락 풀다. 일요 정기 법회에 명사초청 법회에 전명철과 정용학 법우의 추천으로 선원장스님의 결정에 의해 내가 법문을 하게 되었다. 돈황석굴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분위기의 법당이 아주 안온하게 느껴진다. 붓다프로젝트에 관해서 법문하다. 대중의 호응이 아주 좋다. 말미에 세 가지 질문을 받고 정성껏 대답해주다. 이어서 책에 사인 해주는 시간. 150 권 사인을 하니 할 일이 끝났다. 대불련 동창과 고향의 고등학교 동창 10여명이 참석했다. 고등학교 동창과는 실로 40년 만의 재회이다. 모두들 많이 변했다. 한참동안 얼굴을 빤히 쳐다보아야 그 때 그 이름의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가닿아 면전의 그 인물이 ‘아, 그 사람이구나.’라며 수긍이 간다. 그러면 ‘옛날에 그랬는데...’라며 이야기가 솔솔 꺼내진다. 북사인회에서 민족사 편집위원 사기순과 최윤영이 할 일을 잘 한다. 전명철과 정용학 법우의 도움이 컸다. 오후3시가 되어 자리를 떴다. 지월 거사 운전하여 남부터미널에 도착, 산청 대성사로 가다. 산청에 도착하니 밤 8시. 도향스님과 저녁을 함께하다. 밀린 이야기 나누다.
2016년4월25일(월)맑음
점심 먹고 진주 오다. 도향스님 월요 강의 하다. 앞으로 3개월 집중적으로 공부할 것을 다짐하다. 인생이 얼마나 길길 래 공부하기를 게으를 것인가? 공부할 여유가 얼마나 많길 래 차일피일 미룰 것인가? 有意氣時添意氣유의기시첨의기라. 뜻과 힘이 있을 때 밀어붙여야 할 것이다. 이런 고구정녕한 간절함으로 말씀하시다. 3개월 동안에는 일주일에 두 번하는 강의시간에 꼭 참석할 것을 당부하다. 그리고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가슴에 깊이 담아 씹고 씹으며, 음미하고 음미하여 자기의 것으로 소화할 것을 부탁하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이 가슴이 열리고 견해가 바로 서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씩 새로운 법우를 데려오라고 하다. 가장 아끼는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친한 사람을 법회에 데리고 나오라고 권하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 신입생 반을 편성하여 내가 가르치게 될 것이다. 법회 끝나고 차담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