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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참불교공부 일타스님 發心修行章강의 중에서 2007.02. ~~~
옛날 영각사에 백파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백파 스님은 추사 보다 나이가 스무살인가 더 먹었어. 초의 스님이 추사하고 나이 동갑이고, 백파 스님하고 정다산 선생하고 나이가 거의 비슷하고 그래.
그런데 그 네 사람이 이조 말년에 한국불교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라. 초의스님은 해남 대흥사 스님이잖아. 해남에서 조금 나온 강진이 있거든요. 강진에 “만덕사”라고 있습니다. “만덕사 다산 초당”이라는데 정다산 선생이 귀양 와서 살았거든요. 거기서 오래 살았거든요.
그래서 초이 스님이 정다산한테 가서 한문을 배웠어. 초이 스님의 “다신전”같은 곳을 보면 한문이 순전히 불교 한문이 아니고, 유교의 온돌 같은 소리만 해놨어. 말이 그렇게 까다롭고 어려워. “사망오조”같은 이야기 “반고시”같은 이야기 그런 아주 까다로운 소리 많이 해놓고 그랬어.
그리고 초의 스님하고 추사하고 나이가 동갑이고 아주 친했고. 정다산 선생하고 백파 스님하고는 친하지는 아니했지만, 어쨌던지 정다산 선생은 儒家의 큰 선비이고, 백파 스님은 불교의 큰 불교학자인데...
백파 스님이 그랬다고도 하고, 설파 스님이 그랬다고도 하는데, 화엄경의 대과 과목을 쳐서 추사가 중국을 가는데, 중국 북경 昆盧寺라고 했지만 곤로사가 아니고 毘盧寺일 겁니다만, 곤로사라고 그랬어요. 곤로사 방장 스님한테. 큰 스님이니까 화엄 대과를 좀 보여 달라고...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굴욕적이었는지, 뭐 큰 것. 좋은 것 있으면 중국에 가서 인증을 받아야 돼. 중국의 인증을 받아야 행세를 하게 돼있어. 그래서 그랬던지 어땠는지 간에 북평 곤로사 방장 스님한테 대과를 보여 달라고 추사가 가지고 갔는데, 책 껍데기를 보니까 글씨도 못 썼거든요. 멍청이 글씨 같이 영 시원치않게 썼거든. 추사는 명필이잖아. 그래서 껍데기를 쑥 빼내버리고 자기가 턱 하니 “화엄대과”라고 글씨를 옥필로 잘 써서 알맹이는 할 수 없고, 가지고 가서
인사를 드리고 “우리 조선에 백파라는 學聖이 있는데, 화엄대과를 지어서 갖다 보여드리라고 해서 가져 왔습니다” 갖다가 바치니까 그 스님은 “으~ㅇ”그러더라는 겁니다.
“으~ㅇ 그래?”그 뿐입니다.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고, 만져보지도 않고, 열어보지도 않고... 그 이튿날 가서 봐도 처음에 놨던 그 자리에 그냥 있지 한번도 열어보지 않고... 사흘 후에 가도 객실에 그냥 있더라는 겁니다.
發心修行章 제 18 강
行者心淨, 諸天共讚; 道人戀色, 善神捨離.
四大忽散, 不保久住, 今日夕矣, 頗行朝哉.
世樂後苦, 何貪着哉, 一忍長樂, 何不修哉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그래도 한번 거들떠라도 봐야 될 것 아닙니까? 무식한 사람도 아닐텐데... 무식한 사람들은 梵網經책 다섯 권을 주니까 웬 책 다섯 권이나 주느냐면서 한 권씩 나눠줬다 합디다만...
“웬 책 다섯 권이나 주느냐고. 한 권씩만 줘도 될 텐데...”이렇게 하듯이... 무식한 사람은 그렇지만 무식한 사람도 아니고 열어보지도 않는다 싶어서 ‘거 참 이상하다’ 한 5일 지나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무리 大國사람이라 해도... 그때는 대국이라고 그랬지 중국 이라고 안했어요. 우리는 자칭 동방소국이라고 그랬어요. ‘사람을 너무 무시한다’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새벽에 꿈을 꾸니까 백파 스님이 “화엄대과라”그러거든. 그 소리에 얼른 힌트가 떠오르는 겁니다. ‘내가 껍데기를
바꿔서 그런가?’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그 이튿날 살짝 훔쳐 왔어. 자기가 갖다 준 책을내버리다시피 구석에 쳐 박혀 있으니까 살짝 가져 왔어. 휴지통에 보
니까 자기가 빼내버린 껍데기가 그냥 있거든요. 그것을 다시 끼워서는 또 가지고 가서 인사를 또 드리고, 첫날 처음 가져온 것처럼 “우리나라에 백파라고 하는 중이 있는데, 갖다 보여 드리라고 해서 가져 왔습니다”
처음에는 “으~ㅇ 그러냐”고 시큰둥히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고 쳐다보더라는 겁니다. 쳐다보더니만“시자야~ 향상을 가져 오너라”香床... 상에다 향로를 받혀 가지고 오너라 그 말입니다. 떡 받혀다 놓더니만, 거기다 올려놓으라 하더래요. 올려놓더니 턱 절 삼배를 하고, 한번 턱 들쳐보더니만,
“東方小國에 동방 조그마한 나라에 離垢地菩薩이 出現於世오아 이구지보살이 이 세상에 출현 했을까보냐?”
그러더라는 겁니다.
백파스님을 “이구지보살”이라고 그러더래. 초지에 歡喜地요. 2지에 이구지거든. 3지에 發光智요. 4지에 焰惠地 그러거든요. 10지보살 가운데... 마음이 깨달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면 그야말로 온 세상천지가 환희심이 꽉 찼다 이겁니다. 환희심이 꽉 차서 어떤 것이나 기쁘고 즐겁지 아니한 일이 없어.
●萬里에 黃金國이요. 만리길이 전부 황금의 나라요.
●千層白玉樓로다.1천층 되는, 누가 7층집 짓는다고 했지만, 천층 집. 이 세상에 아직 천층짜리 집은 없지? 미국에 120층짜리 112층짜리 집은 있지만, 천층짜리는 없지? 저 천상에 가면 천층 집이 있답니다. 천층백옥루라. 천층을 백옥으로 만든 누각이라는 말입니다.
●盡大地가 歌舞하고, 온 대지가 노래하고 춤추고,
●渾天地가 風流로다. 온통 천지가 풍류일 뿐이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환희지보살의 경지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우면 노래를 그렇게 부르겠습니까?
만리에 황금국이요. 천층백옥루로다. 이것이 말하자면 파우스트가 머피스트를 만나서 턱하니 하는 소리 있잖아. 북을 뚜두리면서, 모든 것은 회색이요. 살아있는 생명의 황금나무는 푸르다고 한 것... 그리고 쫙 온 세상을 황금세계로 펼쳐 보인 것 있잖아요. 바로 그 경지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와 비슷한 경지입니다.
●不貪夜識金銀氣라. 탐욕심이 눈꼽만큼도 없으면 온 세상이 금덩어리랍니다. 중생이 탐욕심이 있어서 금덩어리가 안 보이는 것뿐이지, 탐욕심이 없으면 온 세상천지가 금덩어리 뿐입니다.
●遠害朝看麋鹿遊라. 남을 헤치고 미워하는 생각이 눈꼽만치라도 있기 때문에 짐승하고 안 통하지, 남을 중생들을 헤치려는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으면, 아침마다 산의 사슴들, 노루들 궁노루들이 놀러 온답니다.“스님 잘 잤어요? 놉시다”이렇게 하고 놀러 온답니다. 원해조간미록유 하고, 헤치는 생각을 멀리하니 아침에 미록들이 놀러오고, 불탐야식금은기라. 탐하는 마음이 없으니 밤에 금은의 기운을 보더라.
백파 스님은 환희지를 넘어서 이구지보살입니다. 때를 떠났다 이 말입니다. 이런 스님이 동방소국에 몇 분이나 계시냐고 묻더래요. 몇 분이나 계신지 알 수가 있나요? “8도에 한 분 씩은 계길 겁니다”이랬대. 조선 8도에 한 분 씩은 계실거라고 하니까
“道在一個之 一個重하고, 도가 1개에 있으면 1개가 중하고, 道在天下之 天下重이라. 도가 천하에 있으면 천하가 중한데, 이런 스님을 나라에서 어떻게 대접을 해 올리는고?”
“대접하는 것은 없지만, 상공대접은 하는 것으로 아뢰오”相公이라 하면 정승판사대접은 한다는 말이지. 상은 宰相이라는 말이고, “公卿”하면 장관들...“이런 사람들 대접은 해 올리는 줄 압니다”하니까 잘 대접 해 올리라고 그러더래요.
와서 보니까 백파 스님은 옷을 입다가 벗어놔도 때가 안 묻더랍니다. 이구지보살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뒤에 ‘화엄대과 경판 찍어야 되겠네’싶어서 경을 찍었대. 경을 찍자니까 그 때만해도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때니까, 판대기에다 팔만대장경처럼 낱낱이 새겨야 되거든. 새기려면 어렵잖아. 시주들도 많이 받아야 되고 그러거든. 돈 좀 있는 삼공들한테 모두 얘기를 해서 경판 한 장 하는데 얼마씩 내시오 그랬겠지.
이렇게 해서 “화엄대과”를 다 새겼거든. “화엄경청량소”하고 다 새겨서 안의 영각사 판정에다 전부 쌓아 모셨다고. 6.25사변 때 다 타버렸잖아. 지금 온 주석이 있는 화엄경청량소는 봉은사에 한질 밖에 없지...
그래서 책을 찍고 나니까 백파 스님이 때가 묻더래. 백파 스님이 그때부터 한탄을 하면서, ●근각도수에 기불석각가, 다리를 걷고 물을 건너간다고 어찌 다리가 젖지 않을까보냐? 때가 묻는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100년도 못 가서 불 타버렸잖아. 백파 스님이 100년전 사람이거든. 60년 만에 불 타버린 셈이지.
行者가 心淨하면, 諸天이 共讚하고. 道人이 戀色하면, 善神이 捨離하나니라.
행자=도인 이지요? 색을 생각한다는 ●연색이라는 소리나 ●연애라는 소리나 같은 말 아이가? 도인이 연애하면 선신이 사리한다. 선신이 내버리고 도망간다는 얘기입니다.“에이 더럽다”하고“치워버려라”하고 도망간다 이 말입니다. 마음이 지극히 청정하면 모든 하늘이 다 같이 칭찬을 한다고 그랬거든. 그러니까 行者心淨. 諸天共讚. 道人 戀色善神이 捨離하는, 이것이 중노릇의 총체라고 볼 수 있지요.
술 한 잔 먹고 고기 한 뭉텅이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얼마나 청정하냐?
고기를 먹고 술을 먹으면 마음이 탁해지잖아. 저절로 마음이 탁해지고 마음이 흐려지거든.
그 다음에는 돈이 필요하게 되고, 돈 갖게 되면 자연히 여자도 필요하게 되고,
돈 더 벌어야 되는 거고 그러다 마는 것이지
별것 있나?
중노릇하는데 있어서는 行者가 心淨하면, 諸天이 共讚하고. 道人이 戀色하면, 善神이 捨離하나니라.
四大가 忽散이라. 不保久住니
사대가 홀연히 흩어지는 것이라, 보존하여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이니
今日夕矣라 頗行朝哉인저
오늘이 저녁이라 자못 아침에 행할진저. 이것을 보니까 옛날 스님네들도 파행조재인저를 여러 가지로 얘기를 해.
●오늘도 어쩌다 보니 해가 다 저물었구나. 자못 = 모름지기 일찍 서둘렀어야 될 것 아닌가? 아침부터 부지런히 했어야 될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보는 스님들도 있고요. 왜 떵떵 거렸나? 먼 길을 가려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했어야 될 것 아닌가? 일찍 새벽부터 출발 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자못 아침에 행할진저. 아침부터 행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 말입니다.
또 어떤 스님은 금일은 석의라 파행조재인저...
●오늘은 벌써 저녁이라 어디로 가느냐? 이겁니다. 내일 새벽 아침으로 갈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금방 금일은 다 돼버렸고 곧 내일이다 이겁니다. 파행조재인저. 곧. 자못 = 틀림없이 = 반드시거든. 아침으로 간다 이겁니다. 저녁이니까 아침으로 가지 저녁이 저녁으로 가나? 시간이 그렇게 흘러 가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말이 되긴 됩니다. 글자가...
또 어떤 스님은 금일은 석의라 파행조재인저, ●오늘은 영 틀렸으니 내일 아침부터라도 부지런히 해라. 이것은 조금 엉터리입니다. 이렇게 스님네들도 있지만 이것은 잘못이라는 소리가 많아요.
今日夕矣라 頗行朝哉인저 ●오늘 저녁이 자못 아침으로 옮겨 가느니라. 내일 아침 새벽으로 옮겨간다 이 말입니다. 오늘도 벌써 저녁이 다 되었으니 아침부터 서둘렀어야할 것이 아니냐? 오늘도 저물었거니 자못 모름지기 아침 새벽이 다가오리. 곧 다가올 것이 아니냐? 이것이 파행조재. 아침이 다가온다. 이렇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볼 적에는
“일찍부터 부지런히 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오늘 하는 일은 그야말로, 흐롱화랑 하다니 세월이 거의로다.
이렁저렁 하다 하니 이런 일 전혀 없네... 하는 시조가 있듯이 사람이 뭘 똑 부러지게 하지 않고,
공부하러 가면서도... 가면서 공부하면 될 텐데,
꼭 가서 공부할 것으로 생각하고 가면서는 공부하지 않거든...
일 하면서도 지금 공부하면 될 텐데, 일 다 하고 나서 공부하려고 하거든...
수좌들이 운력에 땀내면 옛날부터 지옥 간다는 말이 있어.
그러면 놀면서 운력하라는 말이 아니고, 공부하면서 운력하라는 그 말입니다.
수좌들 생각은 안 그렇거든. ‘얼른 해 놓고 공부하자’이거거든요.
‘다 해 놓고 공부하자’공부가 무슨 하늘천 따지를 익히는 것도 아니고,
한 생각 놓치지 않고 챙기는 것이 공부이기 때문에,
가나오나 한 생각 놓치지 않고 화두 챙기는 것이 공부이기 때문에, 풀매면서도 운력하면서도 조근조근 공부하면서 일하면 ---> 땀 흘릴 일이 있나? 슬금슬금 공부하면 될 텐데... 얼른 해 놓고 공부하려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 버리거든. 그러니까 땀나죠. 그러면 못 쓴다 이겁니다.
그래서 옛날 스님네들이 운력 하는 데 와서 보고, “일만하면 일꾼이지 수좌가 아니지. 공부하면서 일해야 수좌지 ”옛날 스님네들이 그랬다고 그러거든.
그러니까 그야말로 금일석의라 파행조재인저...
오늘도 벌써 저녁이 다 되었으니 아침부터 서둘렀어야 될 것이 아닌가?
옛날 사람 공부할 때 하루해가 지나가면 다리 뻗고 울었다 이겁니다.
오늘도 해가 다 지나가 버리고 내가 이뤄 놓은 것이 하나도 없구나!
오늘 지나간 하루해를 어디 가서 다시 만회 시킬 것인가?
오늘 지나간 해는 다시 찾아올 수 없다 이겁니다. 그래서 두 다리를 뻗고 울었다 이겁니다.
‘옛날 사람 공부할 때 잠 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나?’
이런 것이 참선곡에 있잖아. 그러니까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말로 봐야지.
그러거나 저러거나 내일 아침으로 가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그런 소리 하나마나지?
광고한다고 내일 아침으로 안 가고 그렇게 한다고 내일 아침으로 가나? 그러니까 앞에 것이 더 좋을성 바래.
世樂이 後苦어늘 何貪着哉며, 세상의 즐거움이 뒤에는 괴로움 이다 이겁니다. 어찌 하탐하며 //
一忍은 長樂이어늘, 한 번 참으면 그것이 길이 즐거운 것인데,
何不修哉리오. 어찌해서 닦지 않느냐? 참고 닦으라 이겁니다.
“사바~ 세계”“사하~ 세계”그러는데 “●사바~ 세계”는 감인... 견디고 참아야 된다는 소리이고,“●사하~세계 ”는 잡동사니가 모였다는 소리입니다. 천층만층 구만층 잡동사니가 모여서 그저 시시비비가 하도 많다 이 말입니다. 옳다 긇다도 하도 많으니까 견디고 참아야만 되는 세상이다 이 말이지.
忍辱하는 것은 괴로운 것만 참는 것이 아니고, 즐거운 것도 참는 것입니다. 즐거운 것도 즐거운 수용을 않는 것이 참는 것이거든. 逆境界. 順境界가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역경계를 참는 것 보다, 순경계 참기가 더 어렵답니다. 그것이 훨씬 어렵답니다.
어떤 사람이 “네 말만 아니하면 성불한다”하거든요. 염라대왕한테 잡혀 갔어요. 염라대왕이 뭐라고 하던가 말던가 말하지 말라 이겁니다. “네 시험을 여러 가지로 할 것이니까 절대 말하지 말라”“예, 절대 안 하겠습니다.”“이 눔의 자식, 네 말 안할래? 죽인다”하고 입을 막 벌리고 온갖 고문을 다 해도, 다 참았거든. 모가지가 반쯤 떨어져도 말 안한다고 참았거든.
●역경계는 다 참아 냈어. 그런데 ●순경계는... 그렇게 다뤄 놓고는 나중에는 살살 꼬시거든. 암만 꼬셔도 말 안 하거든. ‘참 지독한 놈 일세. 안되겠다’하고서는 암 말을 끌고 왔어요.
“이것이 누군지 아나?”‘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네 어미다” ‘엄마요? 어째서 엄마입니까?’“네 엄마인지 아닌지 보자. 시작해라”이러니까 使者들이 말을 두두리기 시작하거든요. 말을 두두리는데 나중에는 말이 푹 쓰러집니다. 하도 두두려 패니까 빈사상태지요. 말이 마지막 한다는 소리가“아무개야~”부르거든요.
“아무개야~ 나는 죽어도 좋으니까 니 절대 말하지 말거라”이러거든요.
그 소리가 자기 엄마 소리니까 더 참을 수가 없거든요. “아이고 엄마”해버렸어요.
“에라 이 자식아 드디어 터졌다”이겁니다. 그러니까 역경계보다 순경계가 훨씬 더 어려운 것입니다.
일인이 장락이라. 어쨌던 간에 그 고비만 딱 넘겼으면 될 텐데 그것을 한번 참지 못해서...
보통 닦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거든요.
“닦는다”소리는 한 번 닦아서 반들반들 해지나?
되게 닦아야만 그것이 반들반들 해지지지 시원찮게 닦아서 되나? 갈고 닦는 것이 닦을 修자거든.
계속 익힌다는 뜻입니다.
우리 생각은 한 번 생각 했으면 다른 번뇌 망상이 덮쳐버리기
때문에, 금방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망각해 버린다 이 말입니다.
여기다 하늘 천자 써놨는데 눈이 와서 덮어 버리면 없어져 버리잖아요.
그런데 눈이 오거나 말거나 하늘 천자 계속 쓰거든.
또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자꾸 쓰면 눈이 많이 쌓였어도 위에 하늘 천자가 나타나거든.
그것이 계속 닦는 겁니다. 千磨萬鍊. 천 번 갈고 만 번 단련 하는 것이 닦을 修자. 修鍊한다는 소리입니다.
수련을 요새는 연수라고도 합디다만 연수나 수련이나 같은 거거든... 發心修行章 제 19 강
道人貪是行者羞恥 出家富是君子所笑.
遮言不盡貪着不已
道人貪은 是行者의 羞恥요 出家富는 是君子의 所笑니라!!!
불교교단이 제대로 자리가 잡혀져 있으면, 스님들이 살림살이를 하지않거든...
타일랜드· 미얀마 저쪽에는 스님네들이 살림살이를 안 하거든. 절집도 스님네들이 수리하는 법이 없어. 신도들이 다 수리도 해주고 스님네들은 수도만 하지. 공양구도 신도들이 다 지어서 올리게 되어 있고. 집이 낡게 되면 신도들이 와서 신도회에서 다 수리를 해. 스님들은 청소도 아니 합니다.
오직 공부에만 몰두할 뿐이지 청소도 군인들이 일요일 토요일에 예불하러 오거든... 와서 수십 명 수백 명이 달려들어서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갑니다. 대학생들이 와서 청소하지, 군인들이 와서 청소하지,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하니까 아무리 넓은 도량이라도 깨끗합니다. 방콕 시내에 있는 절들은 거의 다 그래.
자기네 아버지 어머니 49재일을 따로 안 지내고 절 수리 하는 것으로 49재를 지냅니다. 와서 “우리 아버지 왕생극락을 위해서. 우리 어머니 왕생극락을 위해서 저 집 하나는 내가 맡아서 수리를 하겠습니다”그래. 탑 같은 것도 신도들이 하나씩 맡아서 아주 더 좋게 황금 칠보로 장엄을 하고 그러거든. 스님들은 탑 만드느라고 신경 쓰는 법이 없고, 집수리하느라고 신경 쓰는 법이 없습니다.
아침마다 스님네들이 걸식을 하기 때문에
절 재산이라는 것이 따로 없지. 신도 절이지
스님네 절이 아니니까 신도들이 다 알아서 하게 되어 있지...
스님네들이 신경 쓰지 않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불교 교단의 윈래 근본체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라서 재산을 축적하지 아니하고, 교단 운영 골조가 제대로 짜여져 있지를 아니하고
순전히 신도들의 힘에 의해서 교단이 운영되게 되어 있고 스님네들은 수도하고 교화만 하게 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그랬는데 세월 따라서 그렇지를 못하거든. 우리나라도 신라 시대에는 그랬다고. 신라· 고려시대에는 그랬다고. 방생도 방생할 데가 없어서 그러는데 절 집안에 방생지를 만들어서 집안에서 방생하도록 되어 있고, 절 안에 병원이 다 있고, 소· 말 치료해주는 데도 있었어. 양로원· 고아원도 절 안에 있었어.
그러니까 경주시내 3분지 1은 절이라고 그러잖아. 지금 방콕이 그래.
■방콕 “10대 가람하면 절이 해인사 다섯 여섯 배 되는 절들이... 길 하나 담장 하나 사이로 큰 절이 또 하나 있고... 길만 없으면 절 크기가 이루 말도 못하지. 해인사 10배가 뭡니까? 한 도시 같아. 한 동 자체가 그대로 절입니다. ■서울도 옛날에 대원각사가 인사동 전체가 안국동까지 거기가 다 절이거든. 경복궁이나 덕수궁처럼 말이지... 덕수궁도 많이 줄어졌잖아. 산 중에 있지 않고 도시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절 집안에 재산을 모아놓고 쌓지 아니하는 시대 같으면, 출가 불가 있을 수가 없지. 그런대 이조시대에 와서 어쨌든지 간에 세상 사람들한테 지지 아니하려고, 용을 쓰다 보니까 스님네들이 재산을 알뜰하게 아끼고 모으고 해서 출가 불가(?) 있었다 말입니다.
통도사 묵도끼라고 하는 스님은 도끼가 얼마나... 장작을 쪼개면, 아무리 꾸부러진 나무라도 쫙쫙 쪼개진다는 겁니다. 그거 벼루는 돈이 아까워서 안 벼뤄서... 통도사 360방을 다 찾아다니면서 불씨가 없으면 할 수없이 저 궤짝 속에 들어가 성냥하나 꺼내서 켜고, 안 그러면 성냥 꺼내는 겁니다. 기어코 불씨를 솔잎에 넣어서 훅혹 불어서 피워서 불을 떼지. 그렇게 해서 스님네들이 돈을 모으고...
이조말년에는 또 스님네들이 누룩 장사도 했어. 밀겨울로 눌러서 다락에 고무다라에 놔서 띠우고. 그래서 다락을 튼튼하게 한다고 그러지. 메주장사 보다도 누룩 장사를 많이 했어. 그래서 땅 사고... 땅 사 놨다가 죽으면 寺田이지요. 지금 절 집안의 땅들이 다 그거라고. 옛날에 땅만 있으면 큰 부자니까. 요새는 땅이 별것 아닌데... 요새도 땅이 별것 아닌 것은 아니지. 나락. 쌀 그 추수가 별것 아니지. 옛날 천석꾼이니 만석꾼이니 해봐야 요즘 공장하나 가져있는 것만 못 하니까. 몇 백석. 천 석해도 요새 매표 수입만 못하지. 육각정 하나만 못 합니다.
그러니까 그 출가부라고 하는 것이 어쨌든지 간에 도가 없으면 돈이라도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한다 해서 돈을 벌려고 용을 쓰고 그랬어 이조말년에... 송죽 끓여먹고 돈을 아끼고 아끼고...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돈을 그렇게 아꼈거든요.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기가 막히게 아꼈어요.
절 집안에는 마을 보다 더 아꼈고. 마을 사람들도 물론 아꼈지. 마을에서도 우리 어릴 때는 밥 한 그릇 기가 막히게 귀하게 여기고, 누가 손님이 와서 밥 한 그릇 먹고 가면 아주 그냥 큰 신세진 것으로 생각하고, 이 은혜를 언제 갚겠습니다!!! 하거든요. 요새 사람은 밥 한 그릇 먹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잖아. 밥 한 그릇이야 먹으나 안 먹으나...
그래서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알뜰한 것을 많이 배웠거든. 아주 알뜰한 것을 배워서 휴지 같은 것도 손가락에 똥 안 묻을 정도로만 해서 싹 닦으면 것이지, 두 장 세장을 쓴다고 야단을 치고, 옛날에는 종이를 썼나? 지푸라기 손으로 싹싹 해서 지푸라기로 닦고, 안 그러면 떡갈나무 잎을 변소에 수북이 갖다 놓거든요. 그것이 약간 뜨는 냄새가 상긋하니 좋아요. 구렁내 보다는 푸른 잎이 뜨는 냄새가 상긋하니 괜찮아. 나뭇잎 두어 개를 싹싹싹싹 문질러서 닦았거든. 시원찮게 닦아지니까 뒷물을 꼭 해야 되고.
그렇게 알뜰하게 해서 出家富... 부자가 되고... 논을 몇 백석씩 만들고 모두 그랬거든. 어쨌든 논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담배 곯고 모은 재산, 먹고 가며 쓰고가랴”하는 백발가 노래와 같이 참 알뜰하게 한 푼 한푼 모아서 논 한마지기 사고, 또 한마지기 사고 그랬거든... 옛날 우리 스님도 그렇게 해서 논 몇 십 마지기 장만해서 상좌, 다섯 마지기 여섯 마지기 나눠 주니까 마을로 다 속환해 가 버렸지.
그래서 제자라고 두거든. 상좌가 아니고 제자라고 하면 법사스님 정한다고 그러거든. 은사스님 말고 법사스님 정한다고 그러면, 중간에 저희 스님 시원찮고 그러면 논 좀 있는 스님한테 가서 법답을 받거든... 법제자로 당호를 받고 그 스님 제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법답 몇 마지기 받거든. 최소한 작아도 서 마지기 이상 받거든. 서 마지기 내지 닷 마지기는 받지. 그래서 그 스님 제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法師가 아니고 답사다” 이러지요. 논 畓자. “畓사다”이러지요. 논이 많으면 부자지. 그러니까 出家富지요.
그래서 이조말년 무렵에는 통도사 스님네들이 400 여명 스님 가운데 편지를 제대로 보고 쓸 만한 스님네들이 10명이 안 되
었단다. 논 많은 스님은 많은데 文不入鼎이니라. 글이 솥 안에 들어가지 않느니라. 글 많이 알아봐야 배고프면 무슨 소용 있느냐 이겁니다. 글이 솥 안에 들어가느냐 이겁니다... 해서 글 많이 배운 사람들을 오라고 하는 겁니다.
“아무개 오라해라. 글씨께나 쓰지?” “예”백지 한 권 주고,
“이거 가서 책 메가지고 오게” 백지 한 권 가지고 가서 책을 잘 메가지고 오거든. 그것도 떼어 먹었는가 안 떼어 먹었는가 낱낱이 헤아려 봅니다. 몇 장인가 헤아려보고... 글을 볼 줄 모르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은, 그 대신에 기억의식이 참 좋거든... 기록을 많이 하는 사람은 기억의식이 부족해.
기록 의식이 있는 사람은 기억의식이 부족하고, 기억 의식이 많은 사람은 기록의식이 부족하고 그래. 이런 노장들은 글을 모르고 글 쓸 줄은 모르는데, 외우는 데는 박사입니다.
긴 담뱃대 딱 물고, “적게, 고라실 닷 마지기. 적게. 배생원 한테서 쌀 두 섬 반이 入”들어왔다고 쓰고, 또 “未入”다 쓰거든. 그래서는 회계해보라 하거든. 전부 자기 논 어디 있는 것. 환하거든. 어디서 추수가 들어왔고 안 들어왔고 전부 얘기하는 겁니다. 하루 종일 해서 문서 다 해주면 “욕 봤네”하고 쌀 한 되 주지. 쌀 한 되가 품값입니다. 옛날에는 돈이 아니고 전부 쌀로 쳐 주거든. 쌀 한 되면 어디라고. 쌀 한 되면 이틀은 먹어.
그래서 모두 출가부를 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것이 “王宮佛敎” 왕궁에서 귀족불교로 숭상할 때, 그때 너무 호화스럽고 사치스럽다 보니까 스님들이 원효스님 당시에도 재산에 탐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가 봐.
그래서 원효스님이 出家富는 是君子의 所笑니라 그랬지요. 군자들이 웃을바 다. 道人貪은 是行者羞恥라. 도를 닦는 사람이 탐욕심을 내는 것은 수행하는 자로서는 부끄러운 짓이 아니겠느냐?
탐욕이라고 하는 것은 돈만 탐욕이 아니라 물건에 대해서도 탐욕이거든. 어떤 사람이 반질반질한 좋은 염주가 있는데 그것. 욕심 나거든. 욕심이 자꾸 나서 가서 만져보고, 만져보고...
어떤 중이 로렉스 시계를 찼는데 상좌가 와서 만져보고, 만져보고... ‘자식이 왜 자꾸 남의 시계는 만져봐?’“그 시계 좋네요”하고 자꾸 와서 만져보고, 만져보고... 아무래도 안 되겠거든. 할 수없이 시계하나 사 줬답니다. 그 시계 때문에 탐욕심이 자꾸 생겨서 그를 수 도 있거든... 옛날에는 시계가 없었으니까 반질반질한 좋은 염주가 자꾸 욕심이 나거든...
한번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층암절벽에 가서 그 염주 좀 보자
고 하고 만지는 척 하다가 그 사람을 확 밀어 버렸어.
염주하나 뺏으려고 사람을 밀어 버렸어. 그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떨어졌는데, 떨어져서 가만히 정신을 차리니까 밑이 고무처럼 무엇이 물컹물컹하니 지가 다치지도 않고 괜찮아.
그래 살았어. ‘이것이 무엇인고?’밑이 자꾸 꿈틀꿈틀 움직이거든요. 보니까 큰 대들보만한 굵은 비늘이 덕쩍덕쩍덕쩍... ‘이것이 소나무인가? 무엇인가?’물렁물렁 하거든요. 나중에 피로해서 비몽사몽간에 큰 뱀이 고개를 들면서 말을 하는 겁니다.
“아무개야~ 내가 아무 절 주지를 했더니 라.
그런데 寺衆물건을 함부로 쓰고,
내가 탐욕심이 많아서 사중 물건을 내 책상에다 넣어놓고,
절 지으라고 돈 모아놓은 것을 어디다 숨겨놓고, 어디다 숨겨놓고
내가 죽어 버렸다”이겁니다.
죽어서는 이런 큰 구렁이가 되어서 이렇게 엎어져 있니 니 참 잘 만났다 이겁니다.
내가 너를 저 언덕으로 다시 올려 줄 테니까 내가 가르쳐 주는데 가서 땅을 파면 돈 무더기가 있고, 보물단지가 있으니까 그것으로 집수리를 하고 나를 위해서 대중공양을 하고 복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겁니다.
그래 모가지를 번쩍 드는데 큰 용입니다. 사람을 등에다 태우고 언덕위에다 올려주거든... 살았어!.
집에 돌아와서 염주 그까짓 것은 생각할 것도 없고. 대중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고,
파 보니까 그 안에서 보물단지 돈이 나오거든.
그것으로 시킨대로 재도 지내고 선방수리도 하고, 일을 다 해줬더니 離苦得樂을 했고,
그 염주를 뺏어서 밀었던 사람도 나중에 대 발심을 해서 도인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道人貪은 是行者羞恥요. 出家富는 是君子의 所笑니라.
도인이 탐욕심을 내고 출가해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군자들이 다 웃을바다. 세상 사람들이 웃을바다 이겁니다.
군자라고 하면, 옛날에 마을 군자들은 금 덩어리를 보고서도 본체만체 했다고 그러잖아. 금 덩어리를 보고 耡金不顧(서금불고)라. 호미 끝에 걸린 금덩어리를 보고 ■한 사람은 본체만체 하고, ■한 사람은 금덩어리를 보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홀리니라”하고 집어 던졌다는 겁니다. 던진 것만 하더라도 벌써 거기에 착심이 있기 때문에 던졌다는 겁니다.
한 사람은 화운이 라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관중이라는 사람인데, 관중이라는 사람은 그것이 금덩어리인지 돌덩어리인지
아무 관심이 없어. 그냥 호미 끝에 걸고 지나가 버렸다는 겁니다. 뒤 따라오던 화운이는 그걸 집어서 이것이 사람을 많이 홀린다 하고 집어 던졌다는 겁니다. 나중에 두 사람이 출세를 했는데 ■관중이는 아주 현자 소리를 듣고, ■화운이는 그 보다 훨씬 못 했다고 그러지요.
군자들... 세상 선비들도 耡金不顧는 世儒道常(?)이라. 호미 끝에 걸리는 금덩어리를 세상 선비들도 본체만체 하는데, 세상을 벗어난 出世離俗. 세속을 출세해서 모든 속가를 떠난 사람이 蓄財하리요. 재산을 모아서 무엇에다 쓰겠느냐?
知足이 第一■富요. 만족한 줄을 아는 것이 제일 부자라 그 말입니다.
無病이 第一■利라. 병 없고 몸 건강한 것이 제일 이익이다 이 말입니다.
涅槃이 第一■樂이요. 열반이 제일가는 즐거움이고
安心이 第一■益이니라. 마음 편한 것이 제일 이익이니라.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겁니다.
出家富 얘기는 제일 대표적인 얘기가 범어사 명학동지 얘기 아닙니까? 명학동지가 돈 많이 모아서는 돈 고방에서 불나는 것을 보고 도 닦으러 못가서 나중에 걸인이 되어서 자기 상좌가 제도해서 바늘구멍에 황소 들어온다고 했다는 얘기. 그것이 명학동지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돈이라고 하는 것.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미리 걱정하면 미리 걱정하는 것만큼 따지고 보면 그것이 고생입니다. 우리 중은. 중뿐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거든. 本來無一物입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이 왔고, 空手來空手去잖아? 갈 적에도 한 물건도 가져가지 못 한다 이 말입니다. 출가부는 군자가 웃을 바다!
遮言이 不盡이어늘, 이것도 옛날부터 두 가지로 말을 많이 합니다.
이것이다. 이것 저것 할 때는 이자, 遮言(●자언)이 그러고 막는다할 때는 ●차 라고 그럽니다. 같은 말을 막을 ●차. 이 ●자 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자언이 부진이어늘 할 때는, 이런 말이 다 하지 않거늘. 여태까지는 잔소리 많이 했잖아. 출가부는 시군자의 소소니라 까지는 전부 경계하는 말씀을 많이 했는데, 이런 말들이 다 하지 않거늘.
貪着不己하고 탐착을 왜 말지 않느냐? 이랬는데,
이것을 ■차언이 부진이어늘 할 때는. 막는 말이 = 방패막이 하는 말이 다 하지 않거늘. 이러거든.
이 핑계 이 구실. 저 변명. 그 말이 다 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이래서 못 했다고 저래서 못 했다고 사람마다 다 그렇지요.
사람마다 다 구실이 있고 방패막이 하는 말이 많지.
막는 말할 때는 = 방패막이 하는 말. 이것이 다 하지 않거늘. 끝이 없다 이 겁니다. 다 사정 봐 주려면 끝이 없다 이 겁니다.
그러니까 차언이 부진이어늘 탐착을 말지 않는다.
이 몸뚱이에 대한 탐착이라든지 온갖 탐착이 끝이지 않는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수월하게 보려면 차언이라 하지 말고, 막는 말이라 하지 말고,
자언이 부진이어늘 이런 말글이 다 하지 않거늘. 문법상으로 봐서는 이것이 수월해.
그런데 차언이 부진이어늘 하는 사람이 더 많기는 많아.
發心修行章 제 20 강(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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