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하늘에 모두의 고운 꿈을 새기다
- 본당설립 10주년기념 전신자 기차여행을 마치고 -
‘가을은 사랑에 빠진 하느님의 얼굴’ 이라고 했던가, 오늘 따라 하느님의 얼굴이
맑게 피어 올랐다. 기찻길 옆에 곱게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손사래를 치고,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이 서로의 등을 긁어주며 정답게 노래하고 있는 그 벌판의 한 가운데
로 열차가 달린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느림보가 된 무궁화열차, 상식적으로
2시간 반이면 KTX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요즈음에 누가 5시간 반이나 걸리는
400km 장거리 여행을 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렇게 빨라진 세상에 길
들여져 있는 우리들은 그 편리한 만큼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이제 이 느린 여행은
우리들을 그 잃어버린 추억들이 묻어있는 과거로 되돌려 많은 것을 찾아줄 것이다.
그 기다림이 어릴 적 소풍날과 같이 가슴을 마구 설레이게 한다. 구역장인 아내가
자정이 다 되기까지 김치를 담그고서 새벽 3시에 일어났다는데, 아마 그녀에게도
그런 설레임이 있었는가 보다. 그리고 비단 아내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교우들이
그런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을까?
여행에 나서는 길엔 항상 무언가 빠뜨릴 것 같아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앞 집
교우 부부와 함께 집을 나서 안양역을 향해 5분이나 달렸는데, 갑자기 아내가 괴성
을 질렀다. “아이쿠, 홍어!” 그나마 빨리 생각해 다시 차를 뒤돌려 홍어를 실고서 지
정된 시간에 맞추어 안양역에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질서정연한 인원파악과
승차가 끝나고, 정시보다 약간 늦은 시각에 드디어 우리 638명의 오전동본당 교우
를 실은 10량의 무궁화열차가 느린 여행의 서막을 열고서 남쪽 바다를 향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기차여행의 별미는 계속되는 만남과 헤어짐에 있다. 이제 우리는 경부선을 타고
경기도와 충청남 ․ 북도를 거쳐 대전에서 호남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충남 논산에
들어섰다가 전북 익산에서 전라선으로 갈아탄 다음, 전주와 남원을 지나 전남 구례
에서 은빛 모래의 낙원 섬진강변을 따라 내려가다가 순천을 지나 광양만에 이르러
종착지인 여수역에 도착하게 된다. 무려 5개의 광역시 ․ 도와 80여 개의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되풀이 되는 수 많은 만남과 헤어짐. 그것은 비단 교차되는 열차 안의
사람과 사람 뿐만 아니라, 푸른 들과 산들, 강과 하천들, 도시와 농촌들, 그리고 그
산하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과도 그렇게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
게 되고, 그것들은 모두 우리들의 마음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질 것이다.
정다운 사람들과 같이 하는 시간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설기떡을 먹으면서 정담을 나누고 묵주기도를 드리는 경건한 교우들의 모습
들, 삑삑거리는 스피커를 들고 준비한 오락을 진행하고 있는 오락부장들, 어느 곳에
서는 기타를 치면서 다 같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제 미사 시에 주임신부님
이 ‘오늘은 분명히 놀러가는 여행’임을 공지한 탓인지 그만큼 분위기가 자유스럽다.
잠깐의 시간에 열차는 구례역을 지나 지리산 자락과 동행하며 섬진강변을 달려가고
있고, 열차 안에서는 교우들에게 점심 도시락이 나누어졌다. 점심을 먹고 뒷정리를
하다 보니 멀리 율촌산업단지의 전경이 보이는 듯 하더니 열차는 금새 종착지인 여수
역에 도착해 버린다.
여수역 출구에는 ‘환영, 오전동성당 교우 여수방문’이라고 쓴 프랭카드가 걸려 있고,
서교동성당 심유환(유스티노) 보좌신부님과 이재국(도미니코) 사목평의회 부회장님을
비롯한 몇 몇 교우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돌산대교 입구에 있는 서교동성당은
1961년 9월에 설립되어 현재 50주년을 넘긴 오래된 성당이다. 여수역 주변은 2012년에
있을 엑스포 준비로 무척 어수선하다. 역 앞에 대기하고 있는 셔틀버스에 옮겨 타고 입
구에 도착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이 768m의 방파제길을 걸어서 오동도에 들
어서니 시간은 벌써 1시를 넘어서고 있다. 곧바로 잔디밭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가브리엘
주임신부님의 영명축일 기념행사를 가졌다. 미사 후 인사말씀을 하는 서교동성당 사목회
부회장님의 꽁지머리가 가브리엘 신부님의 수염과 잘 어울려 보는 즐거움을 더 하게 한다.
미사를 마치고 약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오동도는 작은 섬이라 한 바퀴 돌아보
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이 먼 길을 달려온 노고와 이런 기회를 다시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을 감안해 찬찬히 생각을 하면서 둘러보기에는 약간은 짧은 시간이었던 듯 하다.
오동도에는 약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화살로 만들어
썼다는 시누대가 도처에 깔려있으나, 섬의 이름과 같은 오동나무는 없다. 이에 대하여는
원래 이 섬에 있던 오동나무를 봉황이 날아드는 상서로운 곳이라고 해서 고려말 신돈이
모두 잘라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동도등대는 1952년
5월에 처음 불을 밝혔고, 현재의 8층 높이 팔각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은 2002년에 지은
건물로서, 높이 27m에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한려해상공원의 경치를 조망
할 수 있도록 일반인에게 전망대를 공개하고 있다. 과연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
르니 여수항 일대의 엑스포행사장 주변과 남해바다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와 가슴을 시원
하게 뚫어준다.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서 계단으로 내려와 시누대 터널을 지나 물개바위
가 있는 해변에 내려서 수평선 건너편에 있는 빈 배의 모습들을 보니「바닷가에 와서 빈 배
를 보면 왜 이리 좋은가」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싯귀가 생각나 아련한 마음이 든다.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길은 석양빛에 물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사색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시간이다. 우리 교우들이 모두 한 없이 맑은 가을하늘, 그 하느님의 얼굴에 고운
꿈을 새기고 아름다운 자연에 푹 안겨 쉬면서 추억을 공유한 오늘 하루는 우리 본당의 일치
와 화합을 이루는 소중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조용히 이번 여행길에 내 마음의 책갈피에
끼워 둔 낙엽을 하나 둘 세어서 곱게 접어둔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한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아름다운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여 마치기 까지 밤낮으로 애쓰신 전합수
(가브리엘) 주임신부님과 사목평의회 회장을 비롯한 모든 임원들, 그리고 여수 서교동성당의
교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 34구역 고철산(마르티노) 씀 -
첫댓글 마르티노 형제님도 아름다운 추억 카메라에 담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운 추억들 많이 간직하시길 기도합니다.
글이 정말 맛갈지네요. 독서하실 때의 멋진 목소리 만큼이나 글솜씨도 멋지시네요. 기차여행의 감동을 새롭게 불러일으켜주시네요. 감사!
주임신부님의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사목지침으로 이번의 아름다운 여행이 이루어졌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나저나 주임신부님의 칭찬을 들으니 왜이리 기분이 좋은가요!!! 부족한 사람 격려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구역장님께 음식 참으로 맛있었다고 좀 전해주세요^^ 손수 담그신 김치랑 머리고기. 빛깔 좋은 사과등 진짜 맛있었어요~~..이번여행을 통해서 많은 친교의 시간이었으며 34구역엔 한분 한분들이 다 멋지시고 본연의 역할들을 잘 하시는 것을 느꼈어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같은 추억을 만드는 것만큼 화합을 이루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34구역의 귀중한 봉사자로 거듭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름답고 넘치는 마르띠노 형제님의 감성을 어이할꼬!!!! 좋은글 감사합니다.
어른이나 어린아이나 칭찬받으면 참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더더욱 전례분과 왕 언니께서 칭찬해 주시니 그야말로 기분이 따봉!!! 입니다.ㅎㅎㅎ
저는 안양 중앙성당에서 막내딸소피아 결혼떄문에 기차여행에 동참하지못해서 너무도 아쉬웠는데 열차기행기를 너무도 자상히 표현해주심에 상상으로도 마치 여수 기차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드는 군요 예전에 샛별레지오 단원으로 활동을 하실떄 교본연구발표를 할때면 박식한 연구내용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오늘 기행문을 보니 작가를 하셔도 손색이 전혀없을 주옥같은 내용에 감탄을 금할길이 없네요. 대단하십니다 환절기 건강관리 잘하시고 화이팅 입니다
하필 전신자기차여행때 따님 결혼식을 해서 이전에 만나뵙기를 원했는데, 뵙지 못했습니다. 늦게나마 따님 결혼 축하드리옵고, 근번 주일에는 11시 미사에서 꼭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뒷봉사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