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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라
시편 107:1-43(구p.882) 찬송 304장 / 찬송 302장 20240915
오늘도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시편 107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시편 107편은 이제 시편의 마지막 권, 제 오 권의 첫번째 시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시면, 구원받은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해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편 107편의 주제를 말하라고 하면 “여호와의 인자하심, 헤세드”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다양한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반복되어 나오는 내용이 “하나님께서 고통과 환란을 더하실 때에 구원받은 백성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는 내용이 4번이나 반복이 되어 나옵니다. 6절, 13절, 19절, 28절에 네 번이나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8절, 15절, 22절, 31절 4번이나 하나님의 인자와 행하시는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후렴구처럼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 시편 107편의 특징 입니다.
먼저 우리 1절-3절까지 말씀을 보시면, 이 시편 기자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라고 노래를 합니다.
여러분 1절 말씀은 굉장히 유명한 구절입니다.
“호두 라도나이 키 토브, 키 레오람 하스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핵심이 여호와의 인자하심! 입니다. 이 인자하심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인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데, 누가 감사해야 하느냐?
“여호와께 속량을 받은 자들, 값을 지불하고 구원한 자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을 상징하는 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인애, 사랑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 말씀부터, 시대 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고 명령을 합니다.
여러분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도 없어 광야에서 유리하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4절 말씀에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고통은 광야의 고통, 방황하는 고통,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고통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불러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주겠다! 라고 약속을 하셨고, 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들어가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그들을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의 기업을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6절 말씀을 잘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 또 바른 길로(곧은 길, 평탄한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 중요한 단어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 한다면, 여러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부르짖어야 된다는”겁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지만 하나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 2:24절-25절까지 말씀을 한번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거기 보시면,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 된지라 /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신명기 26:7절-9절까지 말씀에도 보시면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여호와를 향해 부르짖었다”라는 단어 입니다.
여기 부르짖는다! 는 단어는 “차아크”라는 말인데, 큰 소리로 부르다, 소리지르다, 외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큰 소리로 부르든, 작은 소리로 부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소리치고, 말하느냐?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를 향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성도가 어려움을 당할 때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소리가 크든 작든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급하면 소리가 크질 것이고, 기력이 없으면 소리가 작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은 우리가 고통 속에 있을 때, 문제 속에 갇혀 있을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신앙이 없으면, 눈 앞에 있는 문제만 보이고, 또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 있는 자들이나, 다른 우상들이 보이고, 그것을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감사한 것은, 제 인생 중에 이런 고통을 만났을 때, 마치 광야에 버려진 것처럼 내가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갈 때, 그 길들을 열어 주셨습니다.
남들이 학교를 가고 진학을 할 때 나는 혼자 뚝 떨어져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초등학교때는 남들은 교실에서 공부할 때 저는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부에 들어가는 바람에 운동장에서 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해야 할 공부를 잘 못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를 갈 때도 친구들은 다 가까운 학교로 배정을 받았는데, 저 혼자 능인중학교 불교 중학교를 가서 불경을 배우고 그랬습니다.
고등학교를 갈 때도, 남들은 다 낮에 학교를 다녔는데, 저는 혼자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왜 야간 고등학교를 갔냐하면,
고등학교 진학시험을 칠 때, 아침에 설사가 난 겁니다. 그래서 시험치다가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윤리하고 수학 두 과목이었는데 1번에 다 동그라미를 치고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시험을 마쳤는데, 그때 주간에 떨어지고 야간 고등학교를 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이 학교갈 때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석촌조각이라고 조각 공장에도 다니고, 신발 만드는 공장에도 다니고, 알루미늄 주물공장에도 다니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12동안 한번도 학교를 빠지지 않고 정근상을 탔을 정도로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때 지각을 하는 바람에 개근상을 못하고 정근상을 탔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저는 미대를 가려고 학원은 못가도 열심히 그림 공부를 해서 미대 시험을 쳤는데 떨어지는 바람에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고, 19살 때부터 직장을 다녔습니다. 용접하는 공장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친구하고도 떨어지고, 가족들 하고도 떨어지고 혼자 세상에 버려진 것처럼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주일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예배를 드렸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인도 하셨는데, 결국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게 된 겁니다.
그때 내가 지나 왔던 길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의 단련 기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그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다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어려울 때마다 수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내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편 기자도 그 하나님의 사랑과 그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8절 말씀에 보시면,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 이로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또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라”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우상을 섬길 때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요,
여러분 10절 말씀에 보시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길 때 “세상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게 되고요,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는 그런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섬기고 불순종하다가 결국은 나라가 망하게 되었고,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잡혀가서 이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는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바벨론 포로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회개하며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포로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여러분 13절 말씀에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도 반복 되어 나오는 말이“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말씀입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곤고와 쇠사슬에 매여 있을 때,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그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16절 말씀에도 보시면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 놋 문을 깨뜨렸다는 것은 바벨론을 심판하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겁니다. 고대시대 이 바벨론이 청동으로 성문을 만들었다는 것이 고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바벨론을 심판하셨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게 되면, 고통에 줄에 매여서 흑암과 죽음의 그늘에 매여 버릴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그늘 아래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면, 하나님께서 그 고통의 줄을 끊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 말씀에 보시면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자하심, 이 사랑을 노래하라! 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17절 말씀에는, 세번째 고통이 나옵니다.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 중병에 걸렸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반역의 길을 가고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아서 “음식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은 “중병이 걸려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그런 처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병에 걸리면 입으로 음식이 넘어 가지를 않습니다.
음식이 몸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망의 문에 이르게 되었다!, 죽게 되었다!” 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도 19절 말씀에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도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 그의 말씀을 보내셔서, 고치셨다!, 말씀으로 그 영혼을 고치시고, 그 지경에서 건지셨다!, 그 영혼이 회복 될 때 몸도 회복시켜 주셨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21절 말씀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런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그 사랑을 노래하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23절 말씀에는 세상에 있는 나라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배를 바다에 띄웠다! 라고 말씀하는데요, 이 바다를 실제 바다로 볼 수도 있지만 세상에 있는 나라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여러 나라들이 고통을 당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바다에는 풍랑이 일고, 광풍이 불 때, 배를 탄 인생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25절-27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늘도 솟구쳤다가, 깊은 곳에 쳐박혔다가, 이리저리 구르기도 하고, 비틀거리기도 하고, 혼란과 혼돈 속에서 살아간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28절 말씀에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이런 세상의 고통 속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30절 말씀에 보시면,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세상 속에서 이 문제 해결하려고 뛰어다니고, 저 문제 해결하려고 뛰어다니면서 정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결국 내가 원하는 소원의 항구로 가게 하신다! 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들이 바라는 항구”라고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라고 번역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31절 말씀에 보시면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불순종하다가 “인생의 풍랑을 만나고 고통의 물결에 빠지기도 하지만,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부를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또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고, 사망의 올무도 끓어 주시고, 때로는 질병에서 놓임 받게 하시고, 결국 내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33절 말씀부터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인생이라는 것이, 좋을 수 있지만 또 불행해 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강같이, 생수같이 형통하다가 또 광야같이, 마른 땅같이 고통을 당하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33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저주의 땅이) 되게 하시며”라고 말씀을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하다가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고,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라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돌아오면,
35절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37절-38절까지 말씀을 보시면
“포도원에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고, 복을 주셔서 번성하게 하시고 가축을 풍성히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또 힘있는 자들이 악을 행하고 교만하게 되면,
39절 말씀에 보시면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죽이시며 낮추시는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편 기자의 마지막 결론이 뭐냐 하면?
이렇게 긴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성도라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악을 행함으로 실족하기도 하고, 고통 속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또 정직한 자의 편에 서고, 비록 가난하고 궁핍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 할려고 애를 쓰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41절-43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의 지혜가 된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나니 /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지혜 있는 자는 이런 역사를 살펴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인자하신 분이라,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 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라!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 있는 자!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편 107편 말씀을 보면서, 누가 생각이 났냐 하면? 바로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요한이 우뢰의 아들로서 큰 소리치면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예수님이 왕이 되면 내가 오른쪽에 앉고, 내 형제 야고보는 왼쪽에 앉아서 영광을 누려야지! 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제일 먼저 순교를 당해 죽어 버리고, 요한은 오랫동안 살아 남아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를 읽어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시구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인도하시려고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신 것을 안다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와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요, 믿음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고, 사망의 올무를 끊어 주시고, 모든 질병에게 건져 주시고,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송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 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여호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성령의 교제, 교통하심이,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와 믿음으로 예배하며, 가정과 직장에서 엎드려 예배하는 모든 하나님 백성들의 머리 위에, 우리 가정과 자녀들과 손으로 하는 모든 생업들과 대구샤론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