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장. 초원의 별
1. 반초의 등장
후한 後漢 명제 明帝.
북 흉노가 수차 국경을 침범하여 약탈을 일삼자, 한의 조정에서는 특단 特段의 조치를 취하였다.
반초를 남흉노와의 연합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반초는 서기 33년 섬서성 함양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역사가 반표 班彪이며
형은 《한서》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 班固이고, 여동생은 시인 반소다.
반초는 키가 크고 체구가 컸으며 언변이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형 반고와 함께 아버지 반표에게 학문을 익혔으며,
난대영사(蘭臺令史, 한나라 왕실의 문고를 ‘난대’라고 하는데, 궁중에서 장서를 교열하고 문서를 관장하던 직책)
가 된 형, 반고를 따라 낙양 落陽으로 진출했다. 이곳에서 반초는 문서를 베끼는 일 즉, 필사 筆寫를 했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항상 큰 뜻을 품고 있었다. 《후한서》에는 그의 포부를 알 수 있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일찍이 반초는 이상적인 인물로 비단길의 개척자 ‘장건’을 꼽았는데,
어느 날 문서를 베끼다 화가 난 그는 붓을 던지며
“남자라면 마땅히 장건을 본받아 이역만리 異域萬里로 나가 공을 세워야 한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명한 고사 故事 ‘투필종군 投筆從軍’이란 말이 나왔다.
후한 광무제 시절, 흉노는 심각한 내분으로 남 흉노와 북 흉노로 갈라지게 되었다. 남 흉노가 후한에 항복한 반면,
북 흉노는 후한의 서북방 쪽으로 이주하여 후한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73년 북 흉노가 변경에 침범하여 백성들을 약탈하고 살상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후한의 제2대 황제
명제는 두헌 竇憲을 총대장으로 삼아 흉노를 정벌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반초는 두헌이 이끄는 흉노 원정군의
별장으로 출정했다. 두헌은 반초를 36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서역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반초가 처음으로 도착한 나라는 선선국(鄯善國, 타림 분지 남동쪽에 있던 오아시스 국가로 동서 무역의 요충지)
이었다. 그러나 선선국에는 이미 흉노의 사자 使者들이 들어와서 동맹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반초는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불입호혈 부득호자 ‘不入虎穴 不得虎子’)라며
수행원들을 독려하여 흉노의 사자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선선국과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반초는 우전국(于闐, Khotan, 호탄)으로 향했다. 선선국에서 반초의 명성을 전해 들은 우전국의 왕은
곧 반초에게 투항했다. 또한 반초는 부하 전려 田廬를 시켜 소록국(카슈가르)의 항복을 받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반초는 2년여 동안 서역의 수십 나라들을 평정함으로써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한나라와 서역 교류 부활의 서막을 열었다.
이어 대장군 두헌이 장안 長安의 황궁으로 복귀하고 반초가 연합군을 이끌었다.
반초는 남 흉노와 연합하여 북 흉노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말이 연합군이지, 실은 남 흉노는 한 군의 한낱 용병 傭兵에 지나지 않았다.
왼쪽으로 가라면 왼쪽으로 가고, 저쪽을 공격하라고 지시하면 그 방향을 향해 말을 몰아 달려가고,
후퇴하라는 징소리가 울리면 아무리 우세한 전투 상황이라도 무기를 거두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공격용 무기의 종류와 방패까지 한 군의 지시에 따라야 하였다.
남 흉노는 자신들의 전략이나 독자적인 전술은 진작에 포기하고, 전장 터의 지리적인 정보와 적군의 규모나
동태 등의 정보를 한 군에게 보고 해주며, 전투의 최전선에서 위험한 역할은 도맡아 하고 있었다.
적군을 유인하기 위한 선봉대 역할을 전담하다시피 하였다.
말이 선봉대지 실제로는 위험천만 危險千萬한 낚시용 ‘미끼’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는 터였다.
남 흉노는 날이 갈수록 자주성 自主性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렇게하여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 ‘정보가 틀렸다. 지명 地名이 잘못 전달되었다’는 식으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갖은 욕을 다 먹고 때로는 체벌 體罰까지 가하였으며,
어렵게 승리하면, ‘수고했다’는 짧은 치하 致賀와 그 댓가로 상품이라며 소와 양 몇 마리와 고량주 몇 통이 다였다.
그리고 수뇌부에게는 승리한 지역을 관할할 수 있는 관할권 管轄權을 넘겨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수뇌부들은 입이 귓가에 걸린다. 자신의 관할영토가 넓어졌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괄할 지역이 커지고, 영토가 넓어지면 뭣하냐?
일일이 한 군의 간섭을 받고, 그 지시 방침에 따라 수비 守備 배치를 조정하고 관리하며,
변동 사항은 수시로 보고하여야 한다.
한나라의 영토관리자 역할을 충실히 대행하는 것이다.
속된 말로 핫바지 선우가 된 것이다.
표면적, 대외적으로는 왕의 행세를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나라 조정의 한갓 신하 역할에 불과할 뿐이다.
즉, 한낱 변방의 장수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아니, 신하나 장수는 좋게 표현한 것이고, 그 들의 담당 역할은 일개 용병이나 노예와 같은 신세였다.
그리고 한의 사신이라며 한의 조정에서 관리가 나와 선우의 막사에 상주하다시피 한다.
이것도 말이 사신이지 실은 선우의 일거수일투족 一擧手一投足을 감시하는 감독관이나 진배 없다.
명색 名色만 허울 좋은 선우다.
여러 번의 전투에서 대패한 후, 결국에는 인사권까지 빼앗겼다.
수하들은 모두 흉노인이 분명하다.
그런데, 대인회의에 참석하는 수뇌부 首腦部의 반은 한 군이 추천한 자들이다.
말이 추천이지 한 군이 그냥 지명한 자들이 고위직 高位職에 오른 것이다.
나머지 반 半도 선우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선우 옆에 있는 후한 사신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한의 군수부 軍帥府에 들락거리며 아첨을 잘하는 자들이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한다는 얘기다.
통솔력 있고 무용 武勇이 뛰어난 강직한 용사보다, 입 주위 구륜근 口輪筋 근육이 발달한 입술 두꺼운 자와
혓바닥을 부드럽게 잘 놀리는 교언영색 巧言令色에 능한 자들이 빨리 승진하는 추세다.
이제 선우는 핫바지 신세다.
돌이켜보면, 무턱대고 주변국의 지원을 함부로 받은 대가 代價다.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자 하다가 오히려 진창 陳倉에 빠진 꼴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모든 것이 반초 班超의 작품이다.
반초는 사막에 등장하면서 먼저, 무기 등 각종 전쟁 물자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남 흉노가 북벌 대전에서
대패 大敗한 사실을 빌미 삼아, 그 책임을 추궁 追窮하면서 인사권을 앗아, 흉노족을 자신의 수족 부리듯이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그리고 북 흉노 토벌에 임하였다.
초원에 새로운 전운 戰運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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