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청간정(淸澗亭)
조선조 선조 13년(1580년),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鄭澈)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대관령 너머 동해안의 경승지를 유람한 뒤 경치가 뛰어난 여덟 곳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으니 곧 <關東別曲(관동별곡)>이다. 정철이 노래한 관동팔경은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고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을 말한다. 그런데 관동팔경 중 통천의 총석정과 고성의 삼일포는 현재 북한에 있어 가고자 해도 찾아가 볼 수 없다. 그 가운데 청간정(淸澗亭)은 남한에서 갈 수 있는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다.
청간정((淸澗亭)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누각 형식의 정자이다. 청간정은 당초 청간역에 딸린 정자였다. 이 정자를 누가 언제 세웠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조선조 중종 15년(1520년)에 간성 군수 최천이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뒤 청간정은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불에 타버린 뒤 10여 개의 돌기둥만 남아 그대로 방치됐던 것을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의 발기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또다시 전화를 입은 것을 1981년에 해체한 뒤 복원했다.
조선조 중기의 문신인 이식(李植)은 한때 인조의 노여움을 사 간성현감으로 좌천됐다. 이식은 청간정을 둘러본 뒤 그가 편찬한 <수성지(水城志)>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정자 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면 물과 바위가 서로 부딪쳐 산이 무너지고 눈을 뿜어내는 듯한 형상을 짓기도 하며, 갈매기 수백 마리가 아래위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일출과 월출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좋은데, 밤에 현청에 드러누우면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창문을 뒤흔들어 마치 배에서 잠을 자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간성은 그 뒤 고성에 편입되었으며, 이식은 뒤에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또한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이 편집한 역사서 <燃藜室記述(연려실기술)> ‘지리전고’ 편에는 청간정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간성의 청간정(淸澗亭)은 군의 남쪽 40리에 있다.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았는데 층층마다 대(臺)와 같고 높이가 수십 길이나 된다. 위에는 용틀임을 한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 대의 동쪽에 만경루가 있으며, 대의 아래쪽에는 돌들이 어지럽게 불쑥불쑥 바다에 꽂혀 있다. 놀란 파도가 함부로 물을 때리니 물방울이 눈처럼 날아 사방에 흩어진다’
청간정은 설악산에서 발원한 청간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 언저리에 있으며, 현재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청간정과 관련하여 어우당 유몽인 등 당대의 문장가들이 시를 지어 찬양했고,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가 전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명필인 양사언과 정철의 글씨와 함께 유명 인사들의 글씨가 남아 있다. 청간정의 현판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친필이며, 최규하 전 대통령의 글씨가 남아 있다.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이 설악산을 찾고 있다. 설악산에서 차편으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20여 분을 달리면 정철이 절경이라 칭송한 청간정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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