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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성령님과 우리의 신앙생활 스가랴 4:6-7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고 하용조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목회 초창기에 중고차를 구입했습니다. 날마다 먼지를 닦아내고 왁스칠을 해서 차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차를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나게 타고 다니던 어느 날 차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길에 서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차에 엔진 오일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엔진에 기름이 공급되지 않아 인진이 타고 만 것입니다. 자동차에 엔진 오일을 주기적으로 교환하지 않으면 엔진이 고장 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성령님의 정기적인 기름 부으심이 없으면 영적으로 고장나게 됩니다. 자동차는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엔진이나 기어 등 내부 장비들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겉모습은 화려하고 멋지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속사람은 점점 시들어가고 메말라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영적 침체에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반찬 중에 하나가 김입니다. 사람들은 김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김에 기름을 바릅니다. 그런데 기름을 바른지 오래된 김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기름을 발라 놓은 지 오래 되면 묵은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김치는 오래 묵으면 깊은 맛이 더해지지만 김은 기름을 바른지 오래 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참 맛을 보려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도 늘 새롭게 신선해야 합니다. 성령 받은 지 오래 되었는데 그 이후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다면 이런 신앙의 묵은내가 나는 것입니다. 시편 92:10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뿔은 권세를 상징합니다. 기름부음은 성령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다고 말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묵은내 나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늘 새로운 늘 신선한 충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이 성령의 충만한 신앙생활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친히 사심을 나타내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부어주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이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10일 동안 전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에 갑자가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더니 불에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 하나님의 교회가 시작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시작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원형교회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들은 원형 교회인 초대교회를 복사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으로 시작한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힘을 써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전도에 힘을 써야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으로 시작 되었고, 성령의 능력으로 모이고 사역했습니다. 우리도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으로 모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오늘 설교는 성령님과 신앙생활이라는 주제입니다. 성령님 없는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본문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 가운데 있었던 일입니다. 스가랴가 환상 중에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고,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스가랴가 본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는 기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성령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6절에서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포로 되었던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있었지만 열악한 환경과 방해 세력들의 횡포 때문에 성전 건축이 중단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성전을 건축하는 그 일은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성전을 짓는 생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몸은 성전입니다. 성령님이 믿는 사람들 몸 안에 오셔서 성전삼고 거하십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된 성전은 아닙니다. 솔로몬 성전은 완공된 후에 하나님이 임재하셨는데 우리는 성령님이 내주하신 후에 건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것입니다.
7절에서 천사는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성전을 건축하는데 방해 되는 많은 방해요소들이 있는데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큰 산 같은 문제들이 평지가 되어 성전 건축이 완성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 건축이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 개인의 영적인 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우주적인 성전 건축의 비유라면 구약 시대에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힘으로나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역사로 가능했던 것처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과 신앙생활은 따로 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님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나누겠습니다.
1.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중국에 기도여행을 갔을 때 백두산에 들려서 천지를 봤습니다. 천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백두산에 여러 번 가도 기상상태가 안 좋아서 맑은 모습으로 보는 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안개나 구름이 끼어서 전혀 안 보일 때도 많습니다. 여러 번 가도 허탕 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여러분 갔는데 겨우 한번 맑은 천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한 번 가서 천지를 딱 보고 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천지를 보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보는 게 아니랍니다. 하나님이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걷히게 해주셔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보게 해주셔야 볼 수 있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에 있는 의심의 안개와 흑암의 먹구름을 걷어주셔야 믿어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사역 중에 중요한 사역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사역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셔야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13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여기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알려고 노력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할 때 알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가르침으로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고 영생을 얻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17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사역하시는 문성 선교사님과 이민아 선교사님의 사역 중에 일어난 은혜로운 간증입니다. 이 부족사람들은 가정에 대한 개념이 없답니다. 아내를 사랑하여 부부의 정을 나누고 자녀를 함께 양육하는, 그런 가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말씀을 배우기 시작한 제자들 가운데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더랍니다. 아내를 사랑하며 부부관계가 생겨나더랍니다. 자기 자식을 양육하려고 힘쓰더랍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가정에서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더랍니다. 선교사님이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한 일이 없었답니다. 부부가 사랑해야 하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고, 가정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씩 둘씩 알아가게 되었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서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2.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요한복음 16:8-11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죄에 대해서 책망하신다는 말은 일반적인 죄에 대해서도 책망을 하시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책망하셔서 회개하고 믿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예수님은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정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해서 이루신 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 사역을 통해서 의로워집니다. 의에 대하여 책망하신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거부한 것에 대하여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십자가를 통한 마귀의 심판을 말합니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마귀의 심판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의 마음에 찔림과 양심의 가책 등을 통해서 책망하십니다. 그 책망으로 인하여 불신의 길에서 신앙의 길로 불의한 길에서 의로운 길로 회개하게 하십니다.
교회사를 보면 성령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사람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을 돌이키게 한 일들이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목사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를 통해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비 맥알리스터라는 사람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때 11살 난 캐틀린이라는 소녀가 일어나 영어가 아닌 방언으로 그 신사를 향하여 크게 말하였습니다. 그날 이 신사는 성령의 강력한 책망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은사와 방언에 대하여 조사하려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 도시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설교를 낱낱이 분석하여 기독교에 반대하는 강의에 사용하려고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오는 순간 캐틀린이 히브리어로 그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녀는 그의 이름을 말했고, 그곳에 온 목적도 말했고, 도저히 알 수 없는 그의 사생활까지 말했습니다. 소년는 그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그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회개했습니다.
사람들은 성령의 책망하심 때문에 회개하고 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밖에 있다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 중에 이런 일이 있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 마음에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리고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드렸습니다.
성령의 책망하심 때문에 신자들은 진리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시편 16:7입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믿는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훈계하시고 양심에 찔림을 통해서 우리를 교훈하십니다. 우리가 진리에서 벗어날 때 성령님은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양심에 찔림을 받아서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선한 길을 가게 됩니다. 책망하시는 성령님입니다.
3.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로마서 8:14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목적지를 세 가지로 정리해봅니다. ➀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세상에 수많은 유혹이 있지만 우리가 중간에 타락하여 지옥으로 가지 않고 무사히 천국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인도 때문입니다. ➁예수님을 닮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성품과 능력과 비전이 예수님을 닮도록 인도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➂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역으로 인도하십니다. 성경의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믿음의 사람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로 인도하십니다.
‘히즈빈스(Hisbeans)’라는 카페의 임정택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한동대학교 재학시절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대학생 창업교류전’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빌게이츠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중국의 15억 인구 중에서, 1억 미만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렵게 살고 있다. 그 지역에 들어가 그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중국을 변화시키겠다”는 중국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모습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포항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 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쳐 주시면 그대로 살겠습니다.” 야속하게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를 만난 경험이 없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예수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지극히 작은 자를 도운다면,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히즈빈스라는 카페가 창업했습니다. 장애인 바리스타를 양성하여 채용하는 카페였습니다. 가장 취업하기가 힘든 장애가 ‘정신 장애’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임대표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실패할거다. 장애자들과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히즈빈스 커피는 성업하여 현재 45명의 장애인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되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꿈을 이루게 하는 기업을 만들 것이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임정택 대표는 “저의 마음에 성령께서 오셨고, 저는 그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성령의 역사로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령이 오시면 변화됩니다. 성령님은 믿는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목회를 하는 저에게는 성령님의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여러분에게도 성령님의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성령님, 저를 가르쳐주세요. 저를 인도해주세요. 저를 감동해주세요” 늘 이런 기도를 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살기 바랍니다.
4.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26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기도생활을 잘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보혜사’이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다른 보혜사를 구하셨습니다. 그분은 성령님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입니다. 그 뜻은 ‘옆에서 돕도록 부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을 옆에서 그리스도인을 돕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의 저자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책에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에서 땅을 사기 위해서 땅 주인을 만나 계약하려고 했습니다. 땅 주인이 말했습니다. “이 땅을 구입하는데 얼마나 예산하십니까?” 그 때 성령께서 “대답하지 말라”고 목사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주인은 계속 말하였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땅주인이 값을 내렸고, 가격이 적당하기에 목사님이 동의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적 생활을 도우시는 것만 아니라 땅을 사는 일도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저는 교회를 막 개척한 후에 베니 힌(Benny Hinn)목사님이 쓴 [안녕하세요 성령님]이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분은 성령에 대해 새롭게 깨닫고 난 뒤에, 매일 아침 “안녕하세요 성령님!”하고 인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분이 성령님의 인정하니 성령님께서 이분을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이 분의 삶에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날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더듬었는데 치유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핍박을 했었는데, 가족들도 하나 둘 씩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자신이 변했고 가족들이 변했습니다.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성령님을 인정하시고 그분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감리교 운동을 이끌었던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라는 곳에서 회심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에 페터레인이란 곳에서 철야기도를 하다가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1739년 1월 1일자 웨슬리의 일기입니다. “미스터 홀, 킨친, 잉함, 휫필드, 허친스, 그리고 나의 동생 찰스가 우리의 형제 60여 명과 함께 페터레인 애찬회에 참석하였다.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새벽 3시까지 계속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기쁨으로 소리쳤다. 많은 사람들이 땅에 엎드러졌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존에 경외와 놀라움으로 사로잡힌 우리는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 당신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들은 성령의 강한 역사로 새벽 3시까지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놀라움에 사로잡혔고 큰 기쁨으로 예배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이렇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성령충만하면 됩니다. C.C.C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이끄셨던 고 김준곤 목사님은 6.25 당시 아버지와 아내가 목사님의 눈앞에서 공산당에게 맞아죽는 것을 목격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사랑하던 동생이 불놀이를 하다가 불에 타서 죽던 날 밤, 죽어 가는 동생이 당하는 고통과 슬픔을 체험하셨습니다. 또 다른 동생 하나는 집 근처 벌목 현장에서 놀다가 나무에 치어 죽는 것도 보셨습니다. 성장해서는 고등학교 교감으로 봉직하던 착한 동생이 줄줄이 달려 있는 딸 네 명을 남겨놓고 간암으로 죽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자신의 딸 역시 위암으로 고통을 겪다가 어린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 참혹한 비극을 당하셨습니다. 동생과 제수가 죽고 막내 동생은 간 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습니다. 고아원을 차려야 할 정도로 부모 없는 유자녀들을 떠맡으셨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상황입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줄줄이 연이어 오는 많은 비극들을 겪으면서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하나의 얼굴로는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운다. 내 영은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깊은 곳에서 샘물같이 환희가 솟는다. 그러나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옆을 보면 정신착란증에 걸릴 것 같다” 그리고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시집가는 처녀처럼 새날을 맞이하여 새 집에서 새 살림 꾸려 새 사랑을 살자. 한해 한해를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아니다. 한 발짝, 한 호흡, 주님을 사랑하며 창세기 첫날처럼 날마다 영원한 첫사랑으로 살자. 주님을 호흡하며 살자. 내게 깊은 위로와 감사와 찬송과 평안이 있다. 그것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게 주시는 것들이다.” 김준곤 목사님은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았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의 위로가 있었기에 첫사랑으로 살았고, 감사와 찬송과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성령의 도움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가 가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셨고, 우리를 책망하셔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믿는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지만 천국을 누리고, 육신을 가졌지만 영으로 육신을 이기는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범사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찾고 그분의 인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진짜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승리생활이 성령님과 동행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책망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