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방.. 어이쿠, 오늘도 행복했네...
읽고.. 생각나서 옮김.. 푸른 신호등/김문억
-이근후의 『나는 죽는 날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읽고
책 제목이 그렇다. 『나는 죽는 날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평범한 희망이다.
그러나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이 쉽다고 해서 말뜻도 쉬운 것이 아니고 보면
그런 희망을 실천하기까지는
생각의 올바른 안테나를 세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신경정신과를 전공하고
지금은 가족아카데미아 사회복지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无何 이근후 박사의 자서전적 고백서다.
이야기가 솔직하고 담박해서 맛깔스럽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소곤거리고 있어
편 편마다 감동을 준다.
특히 인생의 황혼기를 맞는 노인 문제에 있어서는
체험을 통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갔으면 길이라고 한다.
가시밭 쑥 구렁 길도 누군가가 처음 앞장서서 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없는 길을 찾아 처음 가는 사람은
뚜렷한 목표와 함께 인식의 전환없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것은 스스로 내면에서 잉태하고 있는
어떤 가치관의 능력이 배양되었을 때에 가능하다.
청년 이근후가 처음 정신과를 전공하겠다고 확고한 결심을 갖게 된 동기는
4.19때 데모 주동자로 시국사범이 되어 수감생활을 할 때라고 기술하고 있다.
잡아들이는 학생들 수가 넘치는 때라서
큰 죄를 지은 사람들과 같은 방에 모셨던가 보다.
펄펄 뛰어야 할 생고기 같은 사람이
영어의 몸이 되어 있으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으리라.
생각에 번갯불이 튀고 천둥소리 요란하던 어느 날
그런 심지가 박혀왔으리라.
훤칠한 키에 출중한 외모를 놓고 보면 신성일보다 선배격인 영화배우로
『맨주먹 청춘』 같은 명화가 탄생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늘날 정신건강의 이정표로 상징되는 아이콘이 되어
우리 곁에 마음의 등대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작용이 아둔해지고 있는 문명 시대에
그는 거꾸로 가면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때로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를 선호하기도 하고
젊은이와의 교감에 뒤떨어지기 싫을 때는
첨단 정보산업의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자가용이 BMW(bus métro walk)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완행의 미학을 이야기 하는가 하면
늦은 나이에 사이버대학을 졸업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다.
잠시 본문을 옮겨 본다.
2011년 2월 29일 나는 고려대학교 사이버 대학 문화학과를 졸업했다.
50년 만에, 생애 두 번째 쓰는 학사모였다.
나는 1125명의 졸업생 가운데 76세의 최고령자이자 문화학과 수석 졸업자로 화제가 되었다.
신문에도 기사가 났다. 학위증을 받으러 올라간 연단에서 나는 총장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축하받아야 할 내가 되레 총장에게 꽃다발을 주자 장내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쏟아지는 관심에 머쓱해진 마음을 줄여 보고자 함이었다.
또 나이 들어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준 ‘사이버 대학’에 대한 고마움과
4년 동안 지도해 준 교수들에 대한 내 나름의 인사이기도 했다.
최고령 나이에 1등까지, 정말 대단하다 치켜세워주니
그날 나는 종일 ‘칭찬 받은 고래’처럼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엘리트이면서 언제나 엘리트가 아니다.
좀 더 확대되고 진보하는 시민의식 속에서 살고싶어 한다.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워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울타리와 벽이 없는 드넓은 공간, 자물통과 열쇠가 없는 열린 세상이다.
쉼 없이 넘실거리는 바다. 때리고 부서지는 물보라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뭇사람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시인 박재삼은 인생을 ( )라고 했으며
고은 시인은 말하기를
올라갈 때는 안 보이던 것이 내려올 때 보인다고 했다.
시간은 완고하고 완강한 것이며 냉혹하고 무자비하다.
어쩔 수 없는 괄호 속에 살아야 하는 숙명 앞에서
이근후의 시간 쓰기는 언제나 25시로 모자라는 것이어서
미리미리 가불해서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한참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는 중이어서
세상 모든 것이 더 밝고 따듯하게 보이고 있을 터였다.
정체되는 시간마다 문질러서 광을 내면서도
넘어가는 해를 향해 손 흔들 수 있는 여유 속에서 살고 있다.
마치 살아서 육신을 다 기증하듯이
각도가 맞지 않는 외눈박이가 되어 가족아카데미를 창립하고 불을 밝혔다.
손바닥 가득 아침 해를 받아들면서
하루치의 생명에 감사하는 기도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다고 해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려오거나
요란스러운 강의로 채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느리다.
더구나 한 쪽 눈을 실명한 상태에서 디스크와 당뇨 같은
고질병을 비롯하여 7가지 병을 끌어안고 함께 살고 있다고 하니
웃기는 돈키호테다.
그런 정신과 의사의 정신세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뼈보다 더 강하고 근육보다 더 단단한
정신과 에너지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
나는 죽는 날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늙는 재미를 이야기 하며
불쑥 전해온 책 한 권의 충격은 나를 더욱 분발하게 하고 있다.
노인이라는 칭호가 싫다고 곳곳에서 시시비비가 벌어지고 있는 골빈당들을 향해
당당하고 멋지게 늙어가라고 외치는 이근후의 메시지다.
자칫 마마보이로 전락하고 말 지극한 어머니의 일방적 사랑의 사슬?을 끊기 위해
바다로 가지 말라 할 때 산으로 갔으며
좋은 병원을 찾기보다는 정신병원을 찾아 더 많은 공부를 했다.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가난한 네팔 백성으로부터 묵상하는 수행정신을 배웠으며
의료봉사 활동으로 빈 마음을 채워갔다.
하품 나고 졸음오는 사람으로는 진정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월을 거스르면서 역으로 살고 있는 청년 이근후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물구나무서기로 바라보는 세상 만화경 속에서
외롭다거나 쓸쓸한 일 따위는 불행이라기보다
같이 끌어안고 즐기는 편이었다.
사물을 뒤집어 보고 거꾸로 보는 의식전환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편하게 따라서 가는 형국이지만
그는 막연하게 남과 같이 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이 죄가 아니고 민폐가 아니라면 그렇다.
그만큼 일상적 관념이나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을 거부한다.
겉으로는 친한 할아버지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부지런한 청년이다.
깜박거리는 반딧불이 아니다.
외유내강의 폭발력을 갖고 있는 장작불이다.
이근후는 삼대에 걸친 다섯 세대 열세 명이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다.
아버지는 땅을 내놓고 자식들은 형편에 맞는 재정과 함께 형편에 맞는
설계를 했다고 하니 고집이니 아집이니 따질 일이 아니다.
가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기까지의 교육이나
소통의 관계가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후덕하고 두터운 뿌리 깊은 나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가족이 핵 분열되어 교육이 실종되고 사회가 어지러운 때에
그는 어떤 의식 전환으로 그런 집을 지울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하고 있다.
마치 그런 건축을
오늘 날의 사회생활이나 가족생활 속에 접목시키고 있듯이 말이다.
禮는 다 어디로 가고 式만 남아 있는 풍속이 현대판 혼인식이다.
오직 식을 위하여 혼인을 하는 것처럼
호화판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를 역행하여
자손 모두가 5백만 원짜리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가당치도 않은 말이지만 이근후네 식구들은 가능했던 일이다.
가장 열악했던 감방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듯이
이근후의 삶의 역사를 읽고 있으면
언제나 철저한 계획과 설계속에서 긴 강물의 획을 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그것은 한 줄기 강이었다. 누워서 흘러가는 완행이었지만
모난 돌을 끌고 내려가면서
모서리를 깎아내고 가파른 커브에서는 물보라를 때렸다.
이근후는 그렇게 선천적으로 자연인이다.
그는 진작에 자연으로 돌아간 무욕無慾 무산無算의 부자였다.
돈 많은 부자는 결코 할 수 없는 사막의 낙타였다.
어느 날 이동원 교수님께 딸의 혼인 주례를 어렵게 청했다.
내심으로는 여권신장 같은 것도 생각해 보면서
왜 혼인식 주례는 꼭 남자가 해야 하며
가족과 가족이 공동주최 하는 혼인식에서
왜 사회는 꼭 신랑 친구가 봐야 하며
축하금은 왜 세무쟁이처럼 앉아서 버릇없이 받아야 하는가.
등등 혼인식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이 쌓인 이유도 있었다.
곁에서 나의 섭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사님
“나도 끼워주라 사회 봐 줄게”
난 깜짝 놀랐다. 거꾸로 가기 허물벗기라면
남에게 뒤지고 싶지 않던 나는
언제나 한 수 늦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덕분에 나는 딸애의 혼인 때에 이 박사님 부부가
단상에서 진행하는 감동적인 행사를 치를 수 있었고
지금도 그 여운이 훈훈하게 남아있다.
이근후는 거미 같은 사람이다.
이 쪽 나무와 저 쪽 나무 사이에 줄을 묶고 뱅글뱅글 줄을 엮어
집을 짓고는 먹이 감이 걸릴 때까지 종일 매달려서 기다리고 있다.
놀라운 인내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근후만의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가 있다.
예술이다.
사람과의 인연을 비롯한 모든 관계가
그 거미줄 속에 걸려들면 오래오래 이근후의 먹잇감이 된다.
나 역시 진작부터 그런 오랏줄에 걸려들어
늙는 맛을 같이 즐기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근후의 책은 정신과 의사가 살아 온 자서전적 백서이면서 정신건강 처방전이다.
사람은 끝없이 변화되는 생물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자신을 향한 질문서를 놓고
우리는 종종 답을 얻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 경우 이근후는 독자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기고 있다.
교과서가 아니라 인생 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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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임의 줄바꿈
참고2, 이근후 다른 책/2020/가디언 '괜찮아 나도 그랬으니까'
첫댓글 선택....
통신 공부를 하고 졸업한 지 삼십년쯤 되었지 싶다
삶속에 경제를 배울까 해
아마 아직도 경제학과 수강생일지도 모르겠다
새해엔 도전해 봐야겠다
졸업이 문제가 아니라 죽는 날까지 뭔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일거 같으니까 국문학과 밖에 없지 싶지만
삶 속 경제.. 문학..
그렇네요..
책 속에, 항간의 뉴스에
갇히지 않는..
지금도..
두루 아우르는..
활어 같은 시인이세요.. ^^'
새 책이 나왔네요..
코끼리 만지는 인생/신간
이근후/인디북스/2022.08.30.
오호라...이런 얘기가 있었군요
외유내강, 나이 먹은 청년 이근후.. 멋진 롤 모델이 될 것 같은 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