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경회(景晦) 김영근(金永根)선생의 《遠遊日錄(원유일록)》 중 장흥 위씨 관련 부분을 7회에 걸쳐 연재합니다.-마지막편
《遠遊日錄(원유일록)》은 경회 김영근선생이 홍의재 위봉,후포(後圃) 조동겸(趙東謙), 자(字)가 인부(仁夫)인 홍병원(洪秉元), 경회당의 아들 효주(孝柱) 등 다섯분이
1906년 5월 19일 장흥 강진을 떠나 간도로 망명을 가는 여정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그중에서 자공(自恭)할아버지가 터를 잡고 사셨던 함경도 신흥군 원평면 우상동의 장흥 위씨 집성촌을 방문한 생생한 117년전의 기록을 경회 김영근선생 후손 김환균씨의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7월)이십일일 청(晴)하다 아침에 일어나 비로소 술을 마셨는데 각기 한 잔씩을 마시고 생배를 안주로 먹었다. 아침밥을 마치고 성일이 우리를 보내는데 오리 되는 곳까지 와서 주점에 들었고 술도 몇 잔을 들었다 골짜기에 들어가니 돌길이 험악하고 사람의 집도 드물었으며 큰 강물이 급하게 흘러 물결소리가 산을 감쌌다. 인하여 일 수의 율(律)을 지었으니 〈만첩청산에 한 강물이 울고 맑은 매미 소리는 가는 사람을 전송한다. 삼대가 이어진데 소를 탄 사람이 있고 곡구에서 이따금 벌목하는 소리가 난다. 벼와 기장은 비를 맞아 여물게 익었고 무 배추 짤막하게 가을 되어 싹텄다. 남아가 어려움을 수심할 것이 아니니 마음 고생한 뒤에 지혜가 밝아진다(萬疊靑山一水鳴 淸蟬嘒嘒送人行 麻莖相屬騎牛客 峽口時傳伐木聲 禾黍離離經雨熟 蔓菁短短入秋生 男兒未可愁艱險 疢疾前頭智慧明)〉 했다. 고개 아래 주점까지 사십 리를 갔는데 해가 아직 높이 떠 있었으나 길은 험하고 주점이 멀기 때문에 그대로 유숙을 했다.
이날 밤에 세우가 보슬보슬 내리고 강물 소리는 귀를 시끄럽게 하여 절구 일 수를 지었으니 〈고개 위에 안개 끼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니 풍진이 동구 밖에 막혀 있음을 느낀다 밤 들어 강물 소리가 베개 아래서 울리니 꿈속에선 오히려 철갑을 입어 보인다(嶺頭宿霧雨霏微 便覺風塵隔洞扉 入夜川聲鳴枕底 夢中猶擬鐵爲衣)〉 했고, 또 오언 시 절구 하나를 읊었으니 〈밤낮으로 큰 강물이 우니 무슨 까닭에 불평을 하는가. 물은 본시 무심한 물건이지만 나의 강개한 심정을 도와준다(日夜大川鳴 緣何有不平 水本無心物 助余感慨情)〉 했다. 여관 사람이 귀보리의 밥을 내놨는데 밤중에 설사를 다섯 번이나 하고, 기력이 떨어져 죽을 지경이었다. 절구 두 수를 지었으니 〈호남의 쌀밥 고을에 태어나서 귀보리도 먹을 수 있다는 걸 몰랐도다. 한 숟가락 입에 들자 뇌성 소리가 나고 밤새도록 속이 급하여 누웠다 얼어나기 바쁘다(生長湖南稻飯鄕 不知耳麥亦堪嘗 一匙入口雷聲吼 裏急終宵臥起忙)〉 했다.
* 위봉(魏棒 철종14년 1863 ~1943) 향년 81
長興魏氏 30世 안항공파, 字는 대언(大彦), 號는 弘毅齋, 진사 영이재 위문덕의 5대손. 존재공의 아우인 상암공(諱 伯昊)의 현손으로 방촌 출신이다.
父는 魏世祚, 母는 金海金氏 金俊譯의 女. 冠山 古下面 桂春里生. 강진 오남 김한섭 선생의 제자이다. 면암 최익현 선생에게 보낸 간찰 6통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술합방 후 翌年 3월 가족을 이끌고 間島 和龍縣 西城村 南陽情舍에 정착했다.墓는 미상. 配는 해남윤씨다.대동보 3권 124페이지. 일반적으로 '봉식'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족보에는 '봉'(1863∼?)으로 되어 있다.
*경회 김영근(1865~1934)선생은 구한말 강진 태생의 유학자이다. 조선 후기의 격동기와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조선의 선비이다. 노사 기정진과 화서 이항로의 학맥을 계승하였고, 평생을 '위정척사'와 '항일호국'의 정신 속에서 살았다. 김영근은 나라가 위태로움에 처하자 1906년과 1913년 두 번에 걸쳐 간도 망명을 결행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후에는 후학들을 길러내는 한편, 인도공의소 등 유림 조직의 일에 적극 참여하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다. 김영근 문집 등 서적 29권 및 유묵13점은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다. 2013년 9월 25일 강진군의 향토문화유산 제55호로 지정되었다. 문화방송(MBC) 'PD수첩' PD와 제20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 제8대 제9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으로 현재는 대전MBC 대표이사 사장으로 있는 김환균이 그의 증손이다.
장흥위씨 족보 자문 : 호산 위신복 장흥위씨족보편찬연구위원
연재를 마치면서...
경회당 김영근선생이 117년전에 남긴 '원유일록'의 소중한 기록 몇 장에서 함경도 신흥군 원평면 우상촌의 장흥위씨 집성촌과 자공할아버지 묘소의 전경을 그리고 홍의재 선생에게 보여준 따뜻한 모습의 장흥위씨 종친들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약간의 상상과 함께 조사하고 연재하는 동안 제 스스로도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특히 실향민이 되어버린 관북종친들에게는 잔잔하게 망향의 슬픔도 느끼셨을것 같습니다... 경향각지의 장흥위씨 종친들이 잊혀지고 골방 깊숙한 곳에 있는 선조들의 기록을 먼지 털어 조사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과 인지의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이 글을 연재할 수 있도록 '원유일록'의 자료를 제공하고 배려해 주신 대전MBC 대표이사 사장 김환균씨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탁마재 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