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
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일상이
늘 좋은 일들로만
만나지면 얼마나 신날까?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아프고 힘들고
슬프고 괴롭고 쓰라릴 때도 있다.
세상에 가장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내게 주어진 슬픔이
작아질까?
슬픔은 우리가 피하려는 것 이상의
많은 보물들을 그 안에 담고 있다.
큰 슬픔을 경험하고 나면
회복탄력의 근육이 생긴다고나 할까?
어지간한 슬픔을 만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까?
어쨌거나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를 통해
작은 희망의 실타래를 풀어볼까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질병속에 있는 사람이다.
가장 잔인하고 잔혹하고
흉측하고 슬픈 질병
그것이 문둥병이다.
다른 병은 병을 앓으면
가족들의 사랑과 돌봄과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이 나병은 가장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잔혹한 이별을 통고 받아야 한다.
사랑하기에 더 가까이 갈수 없는 병
사랑하기에 더 멀어져야 하는 병
그렇게 사랑과 정도 끓고
외로운 섬에서
썩고 문들어져 죽어야 하는 병
그것이 나병이다.
물런 이제 세상은 나병에 대한 치료제가 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문제가 되었지만,
심각하게 취급하고 싶은 것은
나병으로 표현되어지는 우리의 죄에 대한 병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이기심과 교만, 위선, 탐욕의 나병은
우리 모두의 심장에 자리잡고
따스한 사랑의 온도를 서서히 냉각 시켜 가고 있다.
나병이 무서운 것은
그렇게 엄청난 파괴력으로 서서히 썩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신경을 차단시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정체를 깨닫게 되는
죄의 질병이 바로 그러하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6)
소록도로 자식을 보낸 어떤 아버지의 이야기
부모와 아들의 소록도 해후(邂逅)
어느 날 K신부 앞에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왔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신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호소하는 노인을 바라보다
자리를 권하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하였다.
" 저에게는 모두 열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그 아이가 열한 살 때였지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과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에
나는 문득 잠에 곯아떨어진 그 아이를 없애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해서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거의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과 손가락이 없고 코까지 달아난 환자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정면으로 대하는 순간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그곳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타니 않은 나는
역시 심란하게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 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고맙게도 아이가 수긍을 하더군요.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외진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 을 벗어두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 발 두 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찼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 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해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나를 밀치는 아들을
나는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대학을 나오고, 혼인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가 지나 큰 아들이 시골 땅을 팔고 올라와 함께 살자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안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 펴 주면 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 생각이 났지만 얼마 동안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드디어 어느 날 큰 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셋째, 넷째......를 전전하다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버린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소록도에 아들을 떼어놓고
서울로 돌아와 잊은 채 정신없이 세월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자 소록도라는 낮선 섬에다 버린 아이,
다른 아홉 아이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먹었던 아이.....
내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이나 잊은 채 살아온 것입니다.
만시지탄, 다시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10대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하루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게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 버린 한포기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신부님
이제 내 아들은 완쾌되어 이곳 음성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애는 내가 여기 와서 함께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 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선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 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아무리 슬퍼도
나보다 더 슬픈 이들이 세상있다.
https://youtu.be/90JzNbRlCrU
그러나 그 모든 눈물도
아픔도, 심지어 늙어 죽고, 병들어 죽는 죽음이란 질병도
이기심과 교만, 게으름 탐욕이란 나병도
예수 안에서 치유될 희망이 있다.
https://youtu.be/TNLBfsHAchc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https://youtu.be/F4c7z2PHWcs
https://youtu.be/Uvhk6yTwY7o?list=RDUvhk6yTwY7o
https://youtu.be/qyJ-YkCGQS0
https://youtu.be/8raO5NdcYAo?list=PLkDm9k3-yeTgunWo2AqtCfGqlaYQlZcHS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