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소요유편에서는 유토피아의 광막지야에 큰 나무를 심어놓고 유유자적하다가 낮잠 자는 무한자유를 누리는, 사고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제2편 제물론에서 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남곽자기의 吾喪我 에서부터 시작되는 도에 대한 이야기는 대목의 바람소리인 지뢰와 이를 나게 하는 천뢰에 대한 이야기, 인간 감정의 변화, 시비는 천리에 따른 명석한 인식으로 밝혀야 하는 것이고, 피아의 구분이 없으며 세상 모든 것들은 도를 통해 하나가 된다(만물제동).
조삼모사 이야기를 들어, 성인은 절대의 시에 따라 시비를 조화시켜 천균에 이르는 양행을 한다. 도는 ‘一’ 이며, 또 ‘無’로서 인간의 知로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 ‘道’의 세계는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지 말 것이니 절대의 시에 그저 따라야 할 뿐이다.
좌우윤의분변경쟁이 인간의 8가지 작용이고, 이로써 사람들은 사물을 구별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道‧言‧仁‧廉‧勇의 다섯 가지는 본래 원만함을 추구하려 한 것인데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고 昭‧辯‧常‧淸‧忮와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도리어 본래의 목적과 어긋나 모난 데로 가게 된다. 말없는 말, 도라 하지 않는 도를 안다면 지혜가 무궁한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모든 사물이 동등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도 모르고 모른다는 것도 모르고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도 모를 진데, 물고기와 원숭이 사람이 다 편하다는 생각이 다르고, 사슴과 지네 소리개와 사람이 각기 맛이 다르고, 미인을 보고는 도망가는 물고기, 새, 사슴을 보면 미에 대한 생각도 다르거늘 어찌 구별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至人(득도한자, 도에 이른자)은 신통력을 가져 모든 것 위에서 노닌다.
꿈속에서 꿈을 가지고 점을 치는 것 같이 부질없는 짓을 하다가 꿈을 깨면 알아차린다. 현실도 하나의 꿈이란 사실을 깨우치려면 큰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꿈속에서 헤매며 꿈인지도 모르고 스스로 깨어있다 생각하며 잘난 체를 한다. 큰 깨달음이 있어야 꿈인 것을 알터인데...
도는 사람이 쉽게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다. 이기고 짐, 옳고 그름이 모두 주관적인 것이니 시비를 따지려고만 하지 말고, 자연의 도로 조화하여 끝없는 변화에 맡기는 것이 천수를 다하는 방법이다. 나이나 편견을 잊어버리고 경계 없는 세계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것이 바로 자연의 도로 조화하는 것이다.
그림자가 변하는 것은, 무언가 의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의지하는 것도 또한 무엇에 의지하는지?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를 어찌 알겠는가? 그림자와 곁그림자의 대화. 존재의 근원인 실체가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 곁그림자가 의지하는 그림자, 그림자가 의지하는 物, 물이 의지하는 그것이 실체인가? 그 실체는 무엇에 의지하는가? 끝없는 순환, 변화 속에서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허상인가? 장자는 무한반복을 통해 만물제동의 이야기를 한다.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장주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알 수 없다. 장주와 나비는 분명 다르니 이를 物의 변화라 한다.
①제1편 소요유에서 곤이 붕으로 변화하는 이야기에서 시작했는데, 제물론 마지막에서는 장자가 나비로 변화하면서 마친다.
②제2편 제물론에서 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③제3편 양생주 편에서는 끝이 있는 우리의 생명을 가지고 끝이 없는 지식을 추구하게 되면 위태로울 뿐이니, 무한히 확대되어 나가는 인간의 지식이나 욕망을 경계하며, 知와 欲의 放恣로부터 自己를 지킬 것, 또는 善惡의 彼岸에 서서 萬物의 自然에 冥合할 것, 그리고 生에 집착하지 않고 死를 두려워하지 않는 安時處順의 경지에 서서 無爲自然의 道를 따르는 것이 養生의 비결이라 한다. 장자는
④제4편 인간세편에서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나가는 것의 위험함과 삶을 보존하는 방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무심의 경지인 심재와 무용지용(쓸모 없슴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간다.
⑤제5편 덕충부 편에서 도를 체득한 인물의 덕이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 형상을, 세속사람들이 추하다고 여기는 불구자들의 예를 들어, 세속 인간들의 形骸(육체적 조건)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고 참다운 德은 形象을 超越한 높은 內面性에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⑥제6편 대종사편에서, 太宗師는 커다란 宗師, 大宗인 스승, 크게 존숭할 스승 등으로 볼 수 있는데, 모든 가르침의 으뜸이 되는 道를 바로 大宗師라 할 수 있다. 도를 체득한 진인이 대종사라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이르기 위한 단계별 수행과정을 알려주고, 이 전 과정을 관통하는 상태를 ‘좌망’ 이란 한마디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참다운 사람이 있어야 참다운 앎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