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냉장고를 생활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여기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 신선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을 잘 활용하면 냉장고 없이도 싱싱하고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바로 집 안 베란다에서.
겨울철 베란다의 온도는 보통 외부보다 10℃ 정도 높다. 그러므로 외부 기온이 영하 1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베란다 안쪽은 항상 영상으로 유지되어 웬만한 음식을 보관해도 쉽게 썩거나 얼지 않는다. 냉장고의 냉장실 온도는 평균 2℃. 겨울철 베란다는 냉장고와 비슷한 저온이 유지되어 냉장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습도가 낮아 건조하기 때문에 채소를 손쉽게 말려 보관할 수도 있다.
겨울뿐 아니라 봄, 여름, 가을에도 베란다는 훌륭한 냉장고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각 계절에 맞는 채소 씨앗들을 화분에 심고 물만 주면 간단하게 재배할 수 있고, 필요할 때 바로 수확한 싱싱한 식재료를 식탁에 올려 영양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데 무조건 냉장고가 능사라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그동안 방치해두었던 베란다로 눈길을 돌려보자. 베란다는 사계절 내내 냉장고를 대신할 최고의 음식 저장고와 채소 재배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1_베란다 안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마늘과 고추를 노끈으로 말려 놓았다.
2_겨울철 냉해를 막기 위해 만든 미니 비닐하우스.
3_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내용물을 비닐에 담아 보관하는 이원미씨의 냉장고 내부.
4_갓 수확한 감자.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가져다주는 키친 가든결혼 후 일본 시즈오카에 살림을 차린 이원미씨는 우연히 NHK 교육방송에서 채소 키우기 노하우를 소개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마침 깻잎, 고추 등 한국 채소들이 그립던 터라 겸사겸사 재배를 시작했다. 조그만 정원이 딸린 집에 살고 있어 정원 한쪽에 미니 텃밭을 만들고, 그곳에서 기른 채소를 수확해 바로 밥상에 올리기도 하고, 베란다에 저장하거나 햇볕에 말려 두고두고 먹었다.
특히 같은 동네에 그녀처럼 집 베란다에서 먹을 것들을 직접 재배하고 보관해두는 가정이 더러 있어 서로 품앗이도 하고 색다른 재배·보관 방법을 공유하기도 하며 채소 키우는 재미를 더할 수 있었다. 대지의 기운을 받으며 자라난 것을 바로 수확해 영양 가득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식탁에 올릴 수 있게 해준 그녀의 베란다는 냉장고 이상의 역할을 해내는 훌륭한 음식 저장고가 되었다.
그래서 베란다 텃밭을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부엌의 냉장고를 찾는 횟수가 줄었고, 장을 볼 때도 꼭 필요한 것만 소량으로 구입하다 보니 379리터의 소형 냉장고만으로도 충분했다.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은 대개 요리하고 남은 자투리 채소나 약간의 과일 등이 전부였다. 냉장 보관할 때도 꼭 비닐에 넣음으로써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냉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에너지 손실을 줄였다.
이원미씨의 노하우 1
미니 비닐하우스를 활용한 사계절 재배이원미씨는 배추, 무, 시금치, 청경채, 상추 등 일반적인 재배 채소는 물론 딸기, 콜리플라워, 토란, 참나물 등 재배할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심는다. 사계절 내내 아무 탈 없이 채소를 재배해내는 그녀의 비결은 미니 비닐하우스. 휘어지는 지지대 서너 개를 설치하고 두꺼운 비닐을 덮어 가을, 겨울 동안 냉해 피해를 막는다. 10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는 비닐 한 겹,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12월 중순부터 2월까지는 비닐 두 겹으로 보온력을 높여준다. 그렇게 길러낸 채소는 필요한 만큼 바로 수확해 먹거나 바람이 통하는 채반에 담아 선선한 베란다에 보관하면 오랫동안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
이원미씨의 노하우 2
베란다 햇볕에 말려 보관하기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는 말린 채소가 비상식량으로 요긴하기 때문에 수확한 채소 대부분은 말려서 저장해둔다. 그중에서도 무, 무청, 당근, 우엉, 가지, 오이 등을 주로 말린다. 이때 3단 건조망을 사용하여 층마다 다양한 채소를 넣어 한꺼번에 말린다. 마늘, 고추, 허브 등은 노끈으로 엮어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매달아둔다. 채소를 건조하면 비타민 성분이 농축돼 체내 흡수률이 높아진다. 오레가노, 세이지, 로즈메리, 캐머마일 등 말린 허브는 허브 솔트를 만들어 음식의 향과 맛을 더하는 데 쓰거나 허브 식초를 만들어 린스 대신 사용하고 차로 우려먹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