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야(山野)에 있는 모든 식물은 산-약초이며 산-나물이다. 신산불이(身山不二)
민들레 ......
옛날 노아홍수 때 삽시간에 온 천지에 물이 차오르자 온통 달아났는데 민들레만은 발(뿌리)이 빠지지 않아 도망을 못 갔다.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머리가 하얗게 다 세어 버린 민들레의 마지막 구원기도에, 하나님은 가엾게 여겨 씨앗을 바람에 날려 멀리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피어나게 해주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밉게 보면 잡초 아닌 것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것이 없다한다. 맞는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 오래오래 자세히 살펴보면 아름답지 않은 들풀이 없지. ‘고운 잡초’ 민들레는 쌍떡잎식물,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다년초)이며, 겨울엔 깊숙이 박은 튼실한 땅속뿌리로 지내다가이듬해 봄 오면 다시 잎과 꽃을 피운다. 볕이 잘 들고 물이 손쉽게 빠지는 곳에서 잘 자는 이들은 원줄기는 아예 없고, 잎이 뿌리에서 뭉쳐나서 사방팔방 옆으로 드러눕는다. 그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장미꽃을 닮았다 하여 로제트(rosette)형이라 한다. 잎사귀는 곪은 데를 째는 침(披針)을 닮은 바소꼴이고, 길이 6∼15cm, 폭 1.2∼5cm이며, 葉身(잎 몸)이 여러 갈래로 깊이 패어 들어갔으니, 잎의 모양이 ‘사자이빨(lion's tooth)’과 흡사하다하여 ‘dandelion’이라 부른다.
민들레는 根莖(뿌리줄기)나 종자로 번식하는데, 노란색 꽃은 4∼5월에 봄꽃으로 다투어 피며, 낮에는 열리고 밤엔 닫힌다. 잎 길이와 비슷한 속이 빈 늘씬한 꽃대가 길게 죽죽 뻗어 나오고, 그 끝에 頭狀花(head flower, 꽃대 끝에 꽃자루가 없는 작은 통꽃이 많이 모여 피어 머리모양을 이룬 꽃) 1개가 달린다. 하나의 꽃 송아리(덩어리)에는 수많은 작은 꽃(floret)이 뭉쳐 달리니, 결국 그 꽃의 수만큼 씨앗이 영근다. 민들레는 특이하게도 꽃가루받이가 필요 없는, 자가수분이나 타가수분도 아닌, 일종의 단위생식법인 無受精生息(apomixis)을 하기에 세월이 가도 유전적으로 ‘어미와 자식’이 꼭 같다.
재래종 민들레(Taraxacum platycarpum)는 꽃받침이 꽃을 위로 싸고 있지만 서양민들레(Taraxacum officinale)는 아래로 낱낱이 처지며, 전자는 잎 갈래가 덜 파였지만 서양민들레는 깊게 파인다. 또 후자는 유럽이 원산지인 귀화식물로 도시 주변이나 농촌의 길가와 공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꽃대가 짧은 편이다. 서양에서 잔디밭에 많이 나니, 잔디를 깎을 적에 그들도 목이 잘려지기에 꽃대가 짧은 것만 살아남아 그렇다고 한다. 이 둘 말고도 우리나라 본토종인 흰민들레(Taraxacum coreanum, Korean dandelion)가 있으니, 앞의 둘은 꽃이 노란데 비해 이것은 아주 희다. 이 또한 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잎이 무더기로 나와서 비스듬히 퍼지며, 잎은 셋 중에 길이가 20~30㎝, 폭은 2.5~5㎝로 가장 크고, 잎 몸의 갈래조각은 6~8쌍이며, 이 또한 꽃받침이 위로 바싹 붙인다.
가수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의 몇 구절이다.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이 가사에 먼저 칭찬 할 것은 ‘이름 없는 꽃’이 아니고 ‘이름 모를 꽃’으로 쓴 것이다. 만일 이름 없는 들꽃이 있었다면 식물분류학자들이 벼락같이 달려갔을 터. 未記錄種이 아니면 新種일 것이었으므로 말이지. 그러나 ‘민들레 홀씨 되어’가 탈이다.
식물학자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것이 이 노래의 ‘민들레 홀씨’와 ‘붉은 찔레꽃’, ‘억새풀’ 이라 한다. 여기서 ‘홀씨’를 ‘홀로 날아다니는 꽃씨’ 정도로 해석하면 좋으나, 곰팡이나 버섯의 홀씨(胞子)라면 안 된다는 것이고, 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에 나오는 가사 또한 엉터리로 찔레꽃은 모두 희다는 주장이며, ‘아~~~으악새 슬피 우는(…)’의 으악새는 결코 억새풀이 아니고 꺽다리 새 ‘왜가리’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에 동의하는 바이며, ‘과수원길’이란 노래 탓으로 ‘아까시나무’가 아닌 ‘아카시아’로 쓰인 것도 큰 잘 못이다.
한방에서는 민들레를 젖을 나게 하는 약제로도 사용한다. 그런데 민들레잎줄기를 꺾거나 땄을 때 하얗고 쌉싸래한 액즙 이눌린(inulin)을 분비하기에 그랬던 것이 아니가 싶다. 암튼 이눌린은 돼지감자, 달리아, 우엉 등 국화과식물의 뿌리 혹은 덩어리줄기에 저장되어 있는 탄수화물(다당류)의 일종이다. 민들레 순을 묵나물 해먹고, 특히 흰민들레가 대장이나 간에 좋다하여 씨를 말린다. 유럽에서는 잎은 샐러드로, 뿌리를 커피 대용으로 쓰며, 세계적으로 한 때 救荒植物로 쓰였다. 그래 그랬을까, 꽃말은 ‘감사’라 한다.
한 떨기 노란 민들레꽃이 지고나면 그 자리에 솜방망이 모양을 한 호호백발 씨앗들이 한가득 줄지어 열리며, 한껏 크고 둥그렇게 부풀었다가 불현듯 바람타고 가볍게 흩날린다. 솜뭉치 하나를 조심스럽게 따서, 후우~~~ 불어 씨를 공중으로 훨훨 날려보내 낙하산부대의 공중묘기를 본다. 이토록 세어봐야 직성이 풀리니 이 또한 병 이련가? 궁금하여 일부러 그러모아 또박또박 헤아려 봤더니만 머리에 인 솜덩이 하나에 평균하여 123개의 씨앗이 달렸더라. 씨앗 끝자리에 落下傘((parachute) 닮은 冠毛(갓털,pappus)가 있어 마구 浮力을 한껏 높인다. 실은 관모가 낙하산을 닮은 게 아니고 관모를 흉내 낸 것이 낙하산이다. 과학에는 자연을 모방한 것이 많고 많다!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권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