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브라질 출신의 호세(당시 포항제철)가 외국인선수로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뒤 외국인선수들의 K리그 진출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530여 명의 외국인선수가 저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모두 성공 일기를 쓰지는 못했다. K리그의 외국인선수 역사에 기록되고 팬들의 기억에 남은 선수는 라데(전 포항), 샤샤(전 성남), 마시엘(전 전남), 나드손(수원)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이들에게는 옛 유고 연방과 브라질 출신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구단 관계자들은 이들 나라 출신 선수를 ‘보증수표’라고 부르며 영입 1순위에 올려 놓고 있다. 2007시즌 K리그에서도 그와 같은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선수 38명 가운데 34명이 옛 유고 연방과 브라질 출신이다.
 |
인천의 데얀(왼쪽)과 대구의 루이지뉴는 4월 20일 현재 리그, 컵대회를 포함해 8골을 넣었다. 이는 올시즌 K리그 최다 득점이다.
사진=김병준, 이휘영, 김수홍, 안중훈 | |
 |
1983년 포항제철의 최초의 외국인선수 호세(53,브라질)를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외국인선수들이 K리그를 거쳐 갔다. 그러나 한국프로축구 최초의 외국인 득점왕을 차지한 럭키금성의 피아퐁(48,태국)이나 수비수로 9골을 기록했던 현대의 렌스베르겐(49,네덜란드)이 활약했던 1984년을 제외하면 프로출범 이후 1991년까지 외국인선수들의 활약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 옛 유고 연방인가
이런 흐름을 바꿔 놓은 선수가 있다. 1992년 포항제철에 입단한 라데 보그다노비치(37,보스니아)다. 라데는 입단 첫해 17경기에 출전해 3골과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해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홍명보, 황선홍과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세 시즌 동안 43골과 28개의 어시스트로 포항제철을 전국구 인기구단으로 만들었다. 라데는 K리그 사상 첫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다.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의 국내무대 진출 테이프를 끊은 사람이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종복 사장(54)이다. 안사장은 “그때 대한축구협회 기획실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선배 한 분이 22살 된 라데를 소개시켜줬다. 가장 먼저 대우 로얄즈에 라데를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우 로얄즈는 외국인선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국내구단 가운데 처음으로 외국인선수를 영입했던 포항제철이 라데에게 관심을 보였다. 훗날 그가 팀의 보물단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면서.
라데의 활약에 영향을 받은 국내구단들은 외국인선수 영입에 발 벗고 나섰다. 영입 대상국은 브라질 외에 러시아, 루마니아 그리고 옛 유고 연방 등 동유럽 나라들로 집중됐다. 이들 나라에서는 비교적 싼 값에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고 그 가운데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들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라데에 이어 1995년 대우 로얄즈에 입단한 샤샤 드라큘리치(35)는 옛 유고 연방 선수들의 K리그 전성기를 이끌면서 한국 프로축구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샤샤의 영입 또한 안종복 사장의 작품이었다. 샤샤는 당시 안종복 대우 로얄즈 부단장에 의해 국내무대를 밟은 뒤 2003년 성남 일화에서 활약할 때까지 104골을 터트려 외국인선수 최다골 기록을 세웠다. 대우 로얄즈는 1996년 지역연고제 도입에 따라 팀이름을 부산 대우로 바꾼 뒤 또 다른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들을 영입했다. 뚜레(35)와 마니치(35)였다. 부산 대우는 샤샤와 뚜레, 마니치로 이어지는 '유고 3총사'의 활약으로 1997년 정규리그와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을 석권하는 위업을 이뤘다. 부산은 K리그 사상 처음으로 3관왕을 이룬 팀이 됐다. 이후 수원 삼성이 1999년 다시 한 번 3개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4월 20일 현재 올시즌 K리그에서도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들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새 공격수 데얀 담야노비치(26,세르비아)는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11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며 2004년 인천 돌풍의 주역 라돈치치(24,몬테네그로)와 함께 막강한 투톱을 이루고 있다. 수원 삼성의 마토 네레틀야크(28,크로아티아)는 '통곡의 벽'이라는 별명답게 올시즌에도 K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고 있다. 전북 현대에서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대비해 야심차게 영입한 공격수 스테보 리스티치(25,마케도니아)는 정규리그 6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순항을 예고하고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정해성 감독은 올시즌 영입한 중앙 수비수 니콜라 바실예비치(24,보스니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실패 확률이 낮다는 브라질 선수들도 올시즌 절반 가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보면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들의 활약상은 놀랍기만 하다.
이들이 한국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 유고 연방 선수들의 대부로 불리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종복 사장은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적응력이다. 옛 유고 연방 나라들의 위도는 한반도와 거의 같아 사계절 적응이 쉽다는 것이다. 안사장은 “브라질 선수들은 쌀쌀한 한국의 초봄이나 늦가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는 경우가 있지만 이들은 그럴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반도국의 국민성이다. 발칸 반도 영역에 포함되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옛 유고 연방 나라 선수들은 한반도의 한국 선수들만큼이나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반도 민족의 비슷한 성향은 이른 시간 안에 팀에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또 브라질 출신 선수들과 비교해 팀과 문제를 일으키는 선수도 거의 없다.
세 번째는 오랜 내전에 따른 궁핍한 경제다. 안사장은 “옛 유고 연방 나라들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곳 선수들은 해외에 나가 성공해 돌아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뛰고 있는 것이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들이 국내무대에서 살아남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왜 브라질인가
 |
대전의 에이스 데닐손은 4월 15일 전북전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SPORTS2.0 | |
 |
K리그 내 브라질 출신 선수의 분포도는 지나칠 정도로 높다. 올시즌 외국인선수 38명 가운데 28명이 브라질 출신으로 73.7%나 된다. 외국인선수를 보유할 수 없는 광주, 옛 유고 연방 나라들과 친밀한 관계인 인천을 제외한 12개 구단에는 브라질 출신 선수가 최소 1명 이상씩 뛰고 있다. 경남, 대구, 부산, 전남, 포항 등 5개 구단은 외국인선수 보유 한도 3명 모두를 브라질 출신으로 채웠다. 해마다 브라질 출신 선수들의 숫자는 늘고 있다.
국내 구단이 브라질 출신 선수를 선호하는 이유는 풍부한 선수층과 검증된 실력 때문이다. 브라질은 축구 세계 최강국답게 주마다 수많은 구단이 있고 각 구단에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들이 즐비하다. 브라질리그는 아르헨티나리그와 함께 경쟁력과 공신력을 갖추고 있어 선수의 성적을 믿을 수 있다. 게다가 각 구단이 브라질 현지에 개별적으로 연락망을 구축해 놓고 있어 선수 관련 정보를 수시로 전달받는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아프리카나 동유럽보다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브라질 출신 선수들은 K리그에서 ‘보증수표’로 통한다. 구단 관계자들은 “다른 나라 선수에 비해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실패할 확률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실력만큼은 K리그에서 확실히 입증됐다는 뜻이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간 K리그에서 뛰었던 수비수 마시엘(35,전 전남)은 ‘브라질 열풍’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177cm의 비교적 단신이지만 정확한 위치 선정으로 안정된 수비력을 보여 이적 첫 해인 1997년부터 4년 연속 베스트11에 뽑혔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가 한국 대표로 뽑기 위해 귀화를 추진했을 정도였다.
2000년대 들어 브라질 출신 선수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산드로C(2001년,당시 수원), 에드밀손(2002년,전 전북), 모따(2004년,당시 전남), 마차도(2005년,울산)가 득점왕을 차지했고 나드손(2004년,수원)은 K리그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선수 MVP가 됐다. 이에따라 각 구단의 손길이 더욱 브라질로 향하게 됐다. 특히 이 기간 브라질이 경제 위기를 맞으면서 플라멩고, 산토스 등 명문 구단의 주축 선수를 보다 싼 값에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브라질 열풍에 큰 몫을 차지했다.
브라질 출신 선수들도 옛 유고 연방 출신 선수들처럼 국내 무대 적응 속도가 빠른 편이다. 정철수 성남 사무국장은 “기후가 다르긴 하지만 문화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어 거친 K리그에 빠르게 적응한다. 실력이 뛰어난 데다 K리그에 빠르게 정착하니 각 구단이 브라질 출신 선수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브라질과 함께 남미 축구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들이 K리그에서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한 것도 적응력 때문이다. 김종건 전남 홍보실장은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들은)다혈질이라 다루기가 쉽지 않다. 동양 축구를 다소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데다 한국적인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를 금방 받아들이는 브라질 출신 선수들과는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출신 선수들은 K리그에 우호적이다. 유럽 빅리그 진출이 힘겨운 선수들에게 K리그는 선망의 대상이다. 올시즌 대구에 입단한 루이지뉴(22)는 “(브라질 축구계에서)K리그는 한·일월드컵 개최 이후 경기장 등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으며 경기 수준도 많이 올라 아시아 최고의 리그로 평가 받는다. 연봉 등 대우도 좋아 K리그에 오려는 선수들이 많다”고 했다.
100% 성공 장담 못해
 |
에두(수원)은 차범근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SPORTS2.0 | |
 |
브라질 출신 선수의 영입이 100%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몸값 거품 문제가 심각하다. 브라질에서 실거래 가격이 공개되지 않아 실제 몸값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2004년에는 국내 한 구단의 프런트와 에이전트가 담합해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의 몸값을 몇십 배 부풀려 차액을 챙긴 비리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브라질 출신 선수의 영입 과정이 많이 개선됐지만 몸값 의혹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브라질 구단에서 선수 연봉을 공개하지 않아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골머리를 썩고 있다. 동유럽이 브라질보다는 투명한 편”이라고 말했다.
K리그 내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많다 보니 자신들만의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정보를 공유하며 한국 무대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서로 계약 내용을 공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소속팀에게 터무니없이 몸값을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브라질리그 내에서도 K리그 입단 테스트를 거부하면 몸값이 올라간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있어 이적 협상을 할 때 어려움이 따른다”는 게 한 구단 관계자의 말이다.
SPORTS2.0 제 48호(발행일 4월 23일) 기사
첫댓글 ...-_- 외국인노동자들이 커뮤니티 형성해서 월급 적은 노동자들은 공장주들한테 올려달라고 요구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거랑 흡사하네요
제발 유럽이든,브라질이든 용병다 좋다. 제발 손해보면서까지 영입하지말고 머리좀 굴려서 이적료등 싸게좀 데려와라. 우리나라도 먹고 살기 힘든판에 하는짓거리들은 맨날 손해만 보냐~(아마 중간에 누군가 낼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