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온다는 시간에 맞춰 조금 늦은 출근을 했다.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닌 듯..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다는 손님과 함께 짬뽕을 먹는데..
아련한 옛날 기억이 생각이 난다.
창원에서 회사를 다닐때였으니 40년 전 쯤의 일이다.
선이라기는 좀 그렇고..
지금으로 보자면 소개팅 정도의 만남이었는데..
마산 시청에 다니는 참한 아가씨가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 당시 나의 월급이 아마 18만원 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부분은 어머니께 송금을 하고 나니 항상 나의 주머니는 비어 있었던 때였다.
경양식 가게들이 성행했던 당시 이제 막 시작하려는 젊은 커플들은 보통 그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국룰 처럼되었던 때였지만..
아슬 아슬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제 숙취 때문에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은데 짬뽕 먹으러 가면 않될까요"?
체면이고 뭐고 어쩔 수없이 한 말에 상대는 그저 빙그레 웃음만 짓는데..
어쩌면 어설픈 수작이 티가 났을 수도 있겠다 싶다.
"제가 맛있게 하는 가게를 아는데 그리 갈까요"? 이런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인도 하는 곳으로 히죽대며
따라갔다.
마산 고속버스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중화요리 집..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짬뽕이 나오고 막 먹으려는 순간..
이번엔 탕수육을 테이블에 내려 놓는다.
이런~!
탕수육은 계획에 없었던 일인데..
이럴바에는 경양식 집 갈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니 역시 빙그레 웃음만 짓고 있다.
돈 없는 자가 주제도 모르고 팔자 좋게 미팅을 하다니..
자책 모드에 들어가는데..
주인 분위기의 중년 아주머니가 오더니 "많이 먹어요"이런다.
그러고 보니 들어 설 때부터 날 자꾸 쳐다 보는게 이상하긴 했었다.
내가 뭐 잘 생긴 것도 아닌데 왜 저러나..
휴..그렇다.
그 집 딸이였다.
중화요리 집 딸과 미팅을 한 거였다.
세월이 무상하여 그녀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담하고 단단하게 생겼었는데..
그 후 몇 번 만나다 일본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가는 일로 인하여 생 이별을 하긴 했지만..
그 때 먹은 짬뽕의 맛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녀는..아마도..
풍족한 공무원 연금을 받으며..
나처럼 가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혹 저랑 짬뽕 먹으러 가실 분 안 계실까요?
저도 맞선 많이 봤네요.
어떨 때는 하루에 세 번.. 두 시간 간격으로..
예~그 당시 경양식 집에서..
마주앙과 함께 작업을 걸던 때였죠.
첫 만남에 짬뽕 먹은 사람은 아마 드물 겁니다.
어렵게 고른 신랑..
퇴직하면 잘 해 드리시길 요.
선볼때 밥먹으면 깨진다고
우리 중매한 시집안 어른께서
다짐을 주셔 안먹었더니
안깨지고 성사됐네요ㅎㅎ
아~
그랬었군요.
저도 차만 마실 걸 그랬습니다.
괜히 식사를 해서..
선배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시절의 최고 음식은 짬뽕~짜장면
그 시절은 최고의 대접은 중국 음식~
수원~쇠고기 들어간 짬뽕 너무 맛났음
울 언니가 합격 기념 사줘서 먹었던 추억
삶의 방 글을 보면 공감하는 글이 많아요
아련한 추억을 상기해 보면서 그 땐 그랬지
학교 졸업하거나..
시험 마친 날에 짜장면 많이 먹었었죠.
아리따운 친구도 글 잘 쓰실 것 같은데..
참여해 보세요.
건강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2000년도
잠시 도청밑
창원 야외스케이트장6개월 일하면서
마산도자주가고
용호저수지 주변
복 해장국이 그렇게 좋앗는데
모텔서 바람도 피우면서
ㅎㅎ
제가 있었던 때와는 한참 후였네요.
마산이 가까웠으니 저도 오동동이나 가포 유원지에 제법 갔었죠.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