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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이 23일 “간부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며 일왕가가 고대 한반도와 깊숙이 관련돼 있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간무’는 재위 기간 781~806년의 제50대 일왕이며, 재위 중인 일왕 자신이 공개적으로 한반도와의 혈연적 관련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68세 생일을 기념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생각을 질문받고 이같이 답변한 뒤 “무령왕은 일본과의 관계가 깊어 이 때부터 오경박사가 대대로 일본에 초빙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의 사람들 간에 옛날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음은 ‘일본서기’ 등에 상세히 기록돼있다”며 “성명왕은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이주·초빙돼온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문화·기술이 (일본에) 전래돼 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도쿄의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 사전 조율됐다는 흔적은 없다. 일왕이 개인적 인식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며 “한·일 간 현안 중 하나인 일왕 방한 문제에 이 발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분석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또 “궁내청(왕실 행정 담당 관청) 악부의 악사들 중에는 당시 이주자의 자손들이 대대로 악사를 지냈고, 지금도 때때로 아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고 언급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런 문화·기술이 일본 사람들의 열의와 한국 사람들의 우호적 태도에 의해 일본에 전래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며 그 후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과는 이런 (우호적) 교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 불행한 과거사도 기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이 “양국민의 협력에 의해 차질없이 진행돼, 양국민 사이의 이해와 신뢰감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아키히토 일왕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때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다”고 하는 등 재위 12년간 네 차례에 걸쳐 한국에 대한 반성의 뜻을 표명했었다.
(동경=박정훈특파원 chosun.com)
▲505년 백제 무령왕 아들 사아군(순타) 왜국 파견. 일본 칸무(781~806)왕 생모의 직계 조상이 됨. ▲513년 백제 오경박사 단양이 선진 문물 파급 위해 왜국 파견. ▲538년 백제 성왕, 왜국에 불교 전래. ▲555년 백제 위덕왕 동생 혜왕자, 왜국 파견. ▲570년 고구려 사절, 왜국 방문. ▲588년 백제서 승려와 와(기와)박사, 화공 등 문화인들 파견. ▲595년 고구려 승려 혜자 왜국 방문. 쇼토쿠 태자 스승 됨 ▲596년 왜 아스카사 준공. 준공식 때 일본 최고 귀족 100여명 백제 옷 입고 참배. ▲610년 고구려 승려 담징 왜국 파견. 금당벽화 그렸으며, 채색법, 종이와 먹 만드는 법 전래. ▲623년 신라서 불상과 불교 관련 물건(불구) 전래. ▲642년 백제 의자왕 아들 풍왕자(훗날 백제부흥군 총사령관) 왜국 파견. ▲647년 신라 김춘추 왜국 방문. ▲661년 백제 풍왕자 왜국서 5000여명 지원병 이끌고 백제부흥군 총사령관 으로 귀국. ▲662년 왜국서 화살·솜 등 전쟁물자 대량 입수. ▲663년 금강 하류 백촌강 전투서 백제·왜 연합군과 나당연합군 간 전쟁 발발. 왜 2만7000명의 대군 지원했지만 나당연합군에 패배. ▲664~667년 왜, 한반도와 인접한 서북부지역에 병력 배치. 백제 유민 지도 아래 대야성, 가네다성 등 한반도식 산성 축조. ▲667년 백제 귀족 나카토미노 가마타리 신라 사신에게 김유신에게 줄 배 한 척 선사. ▲671년 백제 유민에게 대규모 관작 수여.( 도움말 주신 분 연민수 동국대 사학과 강사(일본 고대사) )
[日천황 이례적인 한일 관계 언급]
(도쿄=연합뉴스) 김용수특파원 = 일본 천황이 역사상의 한일 교류 사실과 한국과의 연(緣) 등을 이례적으로 강조하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양국민의 이해와 신뢰감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2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68세 생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월드컵 개최와 관련한 한일 양국의 인적, 문화적 교류에 대해 언급,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데 대해 한국과의 연을 느끼고 있다"면서 "무령왕은 일본과의 관계가 깊고 당시 일본에 오경박사가 대대로 일본에 초빙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聖明王)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러나 유감스럽게 한국과의 교류는 그러한 교류만이 전부는 아니었으며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회견에서 "일본과 한국민간에는 옛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서기 등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한국에서 오신 사람들과 초빙돼온 사람들에 의해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전해졌다"고 한일 관계에 대한 서두를 꺼냈다.
그는 특히 "궁내청 악사(樂師) 중에는 당시 한국에서 이주해온 자손이 대대로악사를 하고 지금도 가끔 아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러한 문화와 기술이일본인의 열의와 한국인의 우호적 태도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것은 다행한 일이며그후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천황이 한국과의 연을 강조하면서 한일 관계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양국민간 교류가 활발해졌지만 이것이 좋은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양국민들이 각자의 나라가 걸어왔던 길을 정확히 알도록 노력하고 개인 개인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월드컵을 계기로 한 양국민간 이해와 신뢰 확대를 기대했다.
(끝)<연합뉴스>
일본 천황 백제기원설 인정 의미 "월드컵 한일관계 개선
일본의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혈통' 문제까지 언급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의 황족들은 생일을 맞게 되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갖는 것이 관례다. 23일의 기자회견에서 아키히토 천황은 한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 테러사건과 국내의 장기불황, 황태자비의 출산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키히토 천황의 '혈통'관련 발언은 내년 서울 월드컵 개막식에 자신이 참석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한국민에게 뭔가 우호의 메시지를 보내려 한데서 나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그 수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그가 한일 과거사에 대해 언급한 것은 98년 10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일 때 "한 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준 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한 깊은 슬픔은 항상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고 한 것이 가장 최근이다. 그에 비해 이번 발언은 훨씬 인간적이며 대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 황실이 백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일본 역사서에도 기록돼 있기는 하다. 일본인들도 사석에서는 "천황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에서 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 그러나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돼 왔다.
천황의 이번 발언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아사히신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의미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천황이 정부측과 사전에 상의한 것 같지도 않다. 그저 기자회견을 앞두고 나름대로의 대한관(對韓觀)을 정리한 것 같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그 영향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천황이 직접 자신의 혈통이 한반도와 관계가 있다고 스스로 밝혔기 때문이다. 천황의 이번 발언은 적어도 민간 차원에서 한일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데는 일본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도쿄=심규선특파원donga
▼일본 천황 발언요지▼
일본과 한국인들 사이에는 옛날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한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나 초빙됐던 사람들에 의해 여러 가지 문화나 기술이 전수돼 왔다. 궁내청 악부의 악사 중에는 당시 이주자의 자손으로 대대로 악사가 돼 지금도 아악을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문화나 기술이 일본인의 열의와 한국사람들의 우호적 태도로 일본에 전해진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일본의 그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게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 무령왕은 일본과의 관계가 깊고, 이때부터 일본에 5경박사가 대대로 초빙되어 왔다. 또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과의 교류에는 이런 교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을 앞두고 양국민의 교류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것이 좋은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양국민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걸어온 길을, 각각의 사건에 대해 정확히 알도록 노력해야 하며 개개인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이 양국민의 협력에 의해 원활하게 행해지고, 이를 통해 양국민의 사이에 이해와 신뢰감이 깊어지기를 바란다.
▼간무 천황은 누구▼
서기 781년에서 806년까지 재위했던 제50대 일본 천황. 혼란한 정계의 기풍을 혁신하고 율령체제를 재편하기 위해 794년 현재의 교토(京都)에 헤이안쿄(平安京)를 조성해 도읍을 옮겨 헤이안시대를 열었다. 헤이안시대는 간무천황 후 약 400년간 지속됐다. 그의 어머니는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후손으로 외래인이었기 때문에 황후에는 오르지 못하고 후궁의 지위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간무천황의 초상화를 보아도 다른 일본 천황들과 달리 대륙인적인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간무천황은 이런 출신 성분 때문에 정치적으로 실권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김형찬기자donga.com
대국의 호칭을 조선이 쓴다, 대한민국 국호 도수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시속에 중국을 대국이라 이르나 조선이 오랫동안 중국을 섬긴 것이 은혜가 되어 소중화(小中華)가 장차 대중화(大中華)로 바뀌어 대국의 칭호가 조선으로 옮겨 오게 되리니 그런 언습(言習)을 버릴지어다. [道典5:90]
그 동안 은폐되고, 왜곡되었던 역사의 실마리가
풀리는 징조이다. 개벽의 정신은 원시반본이다.
근본의 뿌리가 드러나는 진리이다.
일본국은 개벽때 20만명이 산다고
일본의 기다노 대승정의 예언이 있다.
다가오는 대개벽의 실상을 알자!!!
정리:개벽대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