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의 두 얼굴’… 일본 정부가 15조 엔을 투입해도 다시 160엔대, 관광업계는 웃는다 / 8월 31일(월) / 중앙일보 일본어판
일본과 미국 당국의 개입에도 엔화 약세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뉴스]
바닥이 빠진 병과 같은 상황이다.
약 40년 만에 엔화 약세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일본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실탄을 투입했지만, 엔화는 약 한 달 만에 다시 1달러당 =160엔대까지 약세가 진행되었다.
일본 재무성은 7월 30일부터 8월 26일까지 15조 3,993억 엔 규모의 엔 매수·달러 매도 개입을 실시했다고 28일 발표했다.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집계에는 지난달 31일 약 28년 만에 실시된 미일 협조 개입도 포함되었다. 일본은 4~5월에도 11조 7천억 엔을 투입해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미국도 개입에 가세했다.
협조 개입 직후 엔화 환율은 1달러당 =155엔대까지 상승했지만, 28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워시 의장의 보수적 발언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이 강화돼 달러가 다시 160엔대로 올랐다.
올해 일본의 누적 개입액은 27조 엔을 넘어, 지금까지 연간 최대였던 2024년 약 15조 엔을 크게 웃돌았지만,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외환 개입만으로 엔화 약세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선 타카이치 정권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엔화 약세 요인으로 꼽힌다. 경기 부양과 성장을 내세운 대규모 재정 지출이 재정 악화와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차이도 문제다. 미국의 정책 금리는 연 3.50~3.75%로, 일본의 1.0%보다 2.5~2.75% 높다. 저금리 엔을 빌려 고금리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지속되기 쉬운 구조다. 시장의 일부에서는 엔화 환율이 1달러당 =161~162엔까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엔화 약세의 가장 전통적인 피해자는 가계와 수입 기업이다.
원유와 천연가스, 곡물 등을 해외에 의존하는 일본에서는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전기·가스 요금과 휘발유, 식료품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하는 중소기업도 어려워진다.
일본은행은 엔화 약세가 수출 대기업의 수익과 임금을 끌어올리는 반면, 중소기업의 수익과 임금에는 하락 압력으로 작용해 격차를 확대한다고 지적했다.
엔화 약세 부담이 방위비까지 확대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30일, 방위성의 중간 평가를 인용해 ‘방위력 정비 계획(2023~2027년도)’에 포함된 일부 주요 장비 가격이 초기 계획보다 40~70%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F35B도 2023년 1대당 179억 엔에서 2026년에는 242억 엔으로 35% 상승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관광·쇼핑 업계는 미소를 짓고 있다. 원화 대비 엔 환율은 30일 현재 100엔 = 862엔 수준까지 엔화 약세가 진행됐으며, 28일에는 한때 859엔까지 하락했다.
29일 시부야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최성정 씨는 “일본에서 쇼핑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150만 원어치 물건을 사면 차액으로 비행기 요금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도쿄·긴자의 고급 식당도 예약이 어려울 정도다. 이날 긴자에 있는 유명 회전 초밥집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30대 관광객은 “초밥집이 어디든 만석이라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도 40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