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볼 인물은 문명6 지도자 프리드리히1세 바르바로사
지도자 특성고증은 좋은데 유닛이랑 건물 상태가

당시 신성 로마제국 제관은 슈타우펜집안과 벨펜집안이 경쟁하면서 대립관계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간단요약:하인리히5세가 죽으면서 잘리에르집안은 몰락하고 왕위는 슈타우펜 집안에 갈뻔하다가
주플린 부르크집안의 로타르 3세가 슈타우펜을 찢어버리고 황제가 된다.
근데 주플린 부르크 집안이 단절되어버리고 다음 왕은 로타르의 매형이자 벨펜집안의 우두머리인 하인리히 오만공이 될뻔하다가 그의 힘이 너무 쎈탓에 제후들의 반발로 슈타우펜 집안의 콘라트3세가 왕이되고
벨펜과 슈타우펜은 서로 영혼의 맞다이를 하게된다. 써보니까 간단하지 않군)
그뒤에 황제가 된게 바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인데 그는 벨펜집안과 슈타우펜집안의 양쪽혈통을 이어받은 황제였습니다.(프리드리히 독안공의 장남이자 콘라트3세가 그의 숙부이며 외숙부는 하인리히 오만공,호모나 섹상에)

프리드리히가 독일왕+이탈리아왕에 오르고서(1152) 처음으로 한 일은 바로 이탈리아 원정이였습니다.
1154년 하인리히 사자공(오만공 아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내려간 프리드리히는 밀라노시의 화폐주조권을 크레모나(황제당에 속했음)시에 넘겨주고 로마로가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고 돌아갑니다.

원정에서 돌아온 그는 사자공의 아버지인 오만공의 잃어버린 영토를 주기위해
(과거 오만공에게 승리한 콘라트3세는 오만공의 바이에른 영지를 몰수하고 바벤베르크집안에 줌)
바벤베르크 집안의 하인리히 2세 선서공에게 바이에른(당시 바이에른은 오스트리아북부+바이에른)을 반환하라고 하고 그냥 주긴 좀 그랬는지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땅을 사자공에게 줍니다.
그리고 때어낸 오스트리아를 바벤베르크집안의 아소미르고트에게 봉토를 주고 이 영지는 바벤베르크집안의 세습영지로 선포하고 여자의 상속도 인정한다는 특권을 줍니다. 이게 바로 소특허장

그러던중 1157년 교황 하드리아누스는 황제에게 신롬=교황봉토임을 선언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당연히 빡친 프리드리히는 2차 이탈리아 원정을 떠납니다.
1157년 자신의 제국을 신성제국이라 칭한 프리드리히는 1158년 보헤미아왕 브라티슬라프2세와
헝가리 왕 게자2세의 군대 일부를 가지고 밀라노로 향합니다.

더이상 버틸수가없었던 밀라노는 항복하고 밀라노는 황제당 도시인 코모, 로디 두 도시의 재건을 승인하고
화폐주조권을 포기합니다.
(이때 교황이 알렉산데르 3세로 바뀜)
근데 여기서 문제가 터지는데 프리드리히가 롬바르디아 14개 도시에게
매년 3만파운드의 세금을 바치도록 요구를 보냅니다.

교황당도시는 말할것도 없고 황제당 도시인 크레모나 시도 경악을 하게됩니다.
이에 반발한 밀라노가 다시 반황제세력의 중심이 되자 황제는 밀라노를 제국의 적으로 선포
3차원정을 떠납니다.(이때도 사자공은 함께) 1162년 밀라노는 항복을 하고 황제는 도시를 파괴시킵니다.
그리고 코올이 걸렸다

1167년 크레모나 시, 베로나 시를 중심으로 여러 도시들이 단결해서 롬바르디아 도시동맹(밀라노, 크레모나, 만토바, 베르가모, 페라라, 로디, 등등)을 결성하고 밀라노를 재건합니다.
황제는 1176년 4차원정을 떠나려는데 사자공은 바르바로사를 비판하며 전쟁참가를 거부하고
많은 제후들이 이에 동의하여 쓸쓸하게 혼자 떠난황제는

레냐노 전투에서 개발살난뒤 목숨만 건져서 겨우 돌아옵니다.
그후 1183년 콘스탄츠 강화조약에서 도시동맹은
황제의 종주권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대신 사실상 독립국화

프리드리히는 이 전투의 패배를 사자공에게 돌리고
1180년 사자공에게 제국 추방을 선언, 영지를 몰수하고
이 기세를 몰아 공작 영지와 백작영지를 통합하면서 제후의 숫자를 줄입니다.
1186년 프리드리히는 아들 하인리히 4세에게 시칠리아 왕위를 주고

1187년 예루살렘이 함락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1190년 3차 십자군에 참전하여(실패해도 십자군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제국 권위는 높아지고 성공하면 뭐..) 약 10만 대군을 이끌고 가지만

첫댓글 보...보헤미아가 헝가리라닝?!
보헤미아 왕은 참전하고 헝가리 왕은 군대 보냈다고 썼는데요?
@아즈텍 아녀 지도 보고 한 말입니당 ㅎㅎ
글을 NTR하는건 나뻐요....
잘읽었습니다
할끄야
주..죽엇어!
이아저씨가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이브레아의 베아트릭스 키잡한게 빠졌네요. 그리고 이탈리아 원정시기 토스카나,스플레토는 다른 외삼촌인 벨프 6세가 다스릴만큼 벨펜가가 잘나갔쥬..
(바이에른 벨프1세가 토스카나 여백작 마틸다랑 재혼한덕에.. 여튼 몰락전까지 잘나갔던 가문이고 이후 조지1세가 재발굴하자 합스부르크에 징징거림.)